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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3 - 일본 개항 ㅣ 본격 한중일 세계사 3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이번엔 '일본개항'이다. 19세기말, 일본이 쇄국에 이어 개항을 하기까지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청나라가 '아편전쟁의 패배' 이후에 굴육적인 개항과 '태평천국의 난'이란 대혼란을 맞은 것처럼 일본도 실질적인 권세를 누리던 막부가 굴욕적(?)인 개항 이후에 '존왕양이의 대혼란'을 겪으면서 권력의 핵심이 막부에서 일왕으로 넘어가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같은 시기 조선에서도 '세도정치의 폐해'가 극심해지면서 혼란기를 맞이하지만 서구열강의 침략이 '같은 시기' 중국과 일본에 비해 덜했던 터라 말도 못할 정도로 국력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던 것은 '동북아 삼국'이 공통으로 겪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서양의 중세 이전까지만 해도 국력이 하늘을 찌를 기세였던 '동북아 삼국'이 몇 백년만에 역전해서 맥을 못추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하루가 멀다하고 피 튀기는 싸움과 함께 '근대화'를 맞이할 만큼 이성이 깨이는 '계몽주의'와 '과학의 발달', 그리고 그 정점이었던 '산업혁명'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서양의 괴력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는데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는 상대적으로 '근대화'가 뒤쳐졌던 탓에 '서양의 제국주의 팽창'을 막을 방도도 찾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이다. 그런 까닭에 '문명국'으로 앞서던 동양의 여러 대국들이 차례차례 서양의 제국주의 침략에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맥없이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암튼, 작금의 세계화를 이끄는 서양의 선진국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발빠르게 선도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이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를 볼작시면, 우리가 얼마나 뒤쳐졌다가 '대역전'을 이루며 앞서나가고 있는지 한 눈에 비교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경험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책 시리즈의 참 매력일테고 말이다. 자, 지금부터 '일본개항'을 소개하겠다.
일본은 일찍이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서 '조총'을 수입하며 서양의 앞선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한다. 허나 서양의 문물과 함께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까지 들어오게 되자 '살아있는 신'이라 불리는 일왕을 모시는 일본인들의 정신적 건강(?)에 심히 해롭다는 결론을 내리고 '쇄국'에 돌입하고 만다. 서양을 향한 유일한 통로는 '네덜란드(화란)'를 파트너로 삼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쇄국을 이어오며 외국인을 철저히 못 들어오게 하였는데, 중국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서구열강의 공격에 맥없이 패배하고 굴육적인 '불평등 조약'을 맺고 후덜덜해진 상황이라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곧바로 태세를 전환하게 된다.
바야흐로 '쇄국'을 철회한 것이다. 당시 일본의 실세는 '막부'에 있었다. 막부를 이끄는 '쇼군'이 지방영주인 '다이묘'들을 다스리며 일본 전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외국인들도 그런 '막부'와 조약을 맺고 이권을 챙기려 했다. 허나 일본은 '막부'가 다스리고 있긴 하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일왕'이 다스리는 '만세일계의 신(神)국'이었기에 쇼군은 일왕에게 승인을 밟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유예기간'을 달라고 한다. 이때가 바로 페리제독이 이끄는 '흑선'이 함포를 발사한 뒤에 서양과 첫 외교를 시작한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일본 내부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던 터라 '외세의 압력'에 개항을 결정했더라도 수월하게 진행될 수는 없었다. 당시 실질적 권력을 쥐고 있던 '막부의 권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왕'에게 충성을 다하며 일본의 자존심(?)을 바로 세우겠다는 '존왕양이 운동'이 지방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에게 충성하겠다는 것은 '왕조국가'의 당연한 진리이며, 유교국가에서는 으뜸으로 취급받던 자연스런 사상이었지만, 일본은 '일왕'에게 충성을 받치되 '권력의 중심'은 막부의 우두머리인 '쇼군'에게 있었기에 일본의 무사집단은 일제히 쇼군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본의 '이중적인 행태'가 일본의 개항을 맞아 대혼란의 빌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서양의 위협에 막부가 오금을 지리며 무력하게 개항 조약을 맺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자존심'이 짓밟혔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무력한 막부를 탓하고 못난 짓을 서슴지 않는 쇼군을 타도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단숨에 '일왕파'와 '막부파'로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갈라서게 된 셈이다. 여기에 '막부파'는 쇼군자리를 놓고 '개혁파'와 '구세력'으로 갈라져 권력승계 다툼을 벌이게 되니, 개항조약에 사인을 받으러 미국을 비롯한 서구열강들이 찾아올 날짜는 다가오는데, 일본 내부에서는 혼란만 가중되어 해결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질 않으니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서양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실질적인 힘도 '막부'에게만 있는 상황이고 보니, 문명개화가 덜 된 일본은 '닥치고 막부에 충성'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허나 서양의 힘을 제대로 알기는커녕 대충이라도 가늠할 줄 모르던 '일왕'과 '존왕양이 지사들'은 이 기회에 막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며 '막부 흔들기'에 열중했던 것이다. 서양의 강력한 힘을 감지하고 '당장'은 납작 엎드려서 소나기는 피해가자는 현실적인 대안을 실천중이던 막부로서는 답답할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그 와중에 권력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쇼군'이 병약하고 무능한 어린아이들로 명맥을 이어나갔다는 것도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일본은 '막부의 나라'였기에 막부는 '내우외환'을 맞아 어찌어찌 버틸 뿐이었다.
한편, 서양은 왜 일본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을까? 아직 영국은 두 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을 치르며 청나라를 요리하기에 바빠 일본까지 넘볼(?)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 사이에 미국과 러시아가 먼저 일본을 선점하려 했는데, 미국은 '고래잡이의 전진기지'로 삼고자 했으며, 러시아는 영국의 눈을 피해 '부동항'을 차지하려고 각각 일본을 최적의 장소로 손꼽았던 것이다. 당시 '고래기름'은 석유가 나오기 전까지 '산업의 에너지원이자 윤활유'였던 탓에 태평양에서 원활한 고래잡이를 하기 위해선 일본에 안전한 정박지를 만들어놓는 것이 미국에게 절실했던 것이다. 반면에 러시아는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으로 정신이 없는 청나라를 대신해서 '연해주 일대'를 러시아가 다스리겠다면서, 어차피 영국이나 프랑스에게 빼앗길(?) 바에야 오랜 친분(?) 관계에 있는 러시아가 대신 차지하는 것이 청나라에게도 이득이 아니겠냐는 해괴한 논리를 펴서, 그토록 염원이었던 '부동항'을 차지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기 위해서 러시아는 만주를 비롯해서 사할린과 그 아래에 있는 여러 섬들을 차지함과 동시에 일본의 항구를 기착지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약을 맺길 원했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일본은 미국과 '불평등 조약'을 맺는 것으로 시작해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와도 '최혜국대우'를 포함한 불평등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된다. 이후에 펼쳐질 내우외환의 깊은 내막이 곧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에 앞서 4권에서는 '태평천국, 그 이후'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