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정의를 향한 여정 - RBG가 되기까지 북극곰 그래픽노블 시리즈 6
데비 레비 지음, 휘트니 가드너 그림, 지민 옮김 / 북극곰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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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역사를 논할 때, 내가 늘 빼놓지 않는 것이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학살, 유색인(흑인) 인종차별, 그리고 남녀 불평등, 세 가지다. 지금의 초강대국 미국이 있기까지 미국이 공공연하게 감추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흑역사'가 바로 이 세 가지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어쩌라고?" 라는 태도로 견지하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커녕 '불편한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해결하지 않아도 별 문제는 없어. 괜히 들쑤셔서 큰일 만들지 말고 그냥 알아서 적응해. 그게 미국사회니까...이런 느낌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강력하게 규탄하려 한다. 그런 '차별'이 존재하는 한 미국은 절대로 '아름다운 나라(美國)'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사회에서 'RBG'는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한 평생을 다 바친 위인이며, 미국사회가 존경해마지않는 '여성 대법관'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비단 '여성인권' 뿐만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사회가 정당하고 당연하다고 여긴 까닭에 미국사회에서 '소외'받아 불공정한 판결을 받은 소수자를 위해 힘쓴 법조인이었다. 지금도 '소수자의 인권'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의 모든 법조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이 바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바로 줄여서 RBG다.


  그녀는 미국계 유대인으로 유대인 부모 밑에서 착실하고 선량한 유대인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미국사회에서조차 '유대인'이라는 꼬리표로 '차별'을 받기 시작하면서 사회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차별은 멈추지 않았다. 루스가 성장을 하면서 '유대식 예배'에 '여자'라는 이유로 예배에 배제되는 일도 겪고, 대학생일 때나 변호사로 활동할 당시에도 여자인 까닭에 '도서관 출입'조차 거부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몸소 겪으면서, 루스가 한 평생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분명히 깨닫게 된 셈이다.


  그녀는 '여자'였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아이비리그 대학의 법학과'를 합격했고, 역시나 졸업생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영광을 쟁취(!)했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로 취업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당연히 경력을 쌓기 힘들었고, 남성 법조인과의 경쟁에서도 밀려나기 일쑤였다. 더구나 여성으로서 '결혼'과 '출산', '육아'는 당연하고 아름다운 권리였지만,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모든 커리어'를 포기하고 한 남자와 아이들의 '전업주부'로 전락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루스는 그런 사회적 편견에 일침을 가하면서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고 난 뒤에도 남성 경쟁자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뽐내며 탁월한 법조인으로 성큼성큼 성장하였다. 그리고 온갖 차별을 감내해야만 한다고 사회에서 내몰린 '소수자의 인권'을 위한 변호에 늘 앞장을 섰으며, 특히 '남녀평등'을 내세운 법안을 제출해 승인을 따내는 등 빛나는 업적을 남긴 전설적인 위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남녀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을 향해 당당히 외쳤다. "나는 가녀린 여성들을 동정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목을 밟고 있는 당신들의 더러운 발을 치워 달라고 말하는 겁니다" 정말 멋진 말이다. 남녀평등은 힘 없는 여성을 불쌍히 여겨 도와달라는 외침이 아니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당당히 '경쟁파트너'로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주장이다. 이토록 감동적이고 정중한 호소를 묵살할 용감하고 무식한 남성이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 매장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니, 반드시 매장을 시켜야 아름답고 멋진 사회가 될 것이다. 정의는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말이니까 말이다.


  물론, 루스가 여성법조인으로, 그리고 훌륭한 엄마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동료 법조인'이면서 루스를 대신해서 '가사와 육아'를 톡톡히 도와준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잘난 여성의 성공을 위해 '남편의 내조'를 강조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집안일과 육아, 그밖의 결혼으로 발생하는 모든 일은 당사인 남편과 아내가 '공동'으로 분담하는 것이 맞다는 얘기다.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없기에 '함께' 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계급'과 '차등'을 당연시하던 하던 전근대사회가 아니기에 반드시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부득이 집안일과 육아 등의 일을 남편과 아내 둘 중 '한 사람'이 전담하게 된다면 굉장히 미안해 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혼'을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집안일과 육아는 인류가 반드시 해야 할 '노동의 고통' 가운데 가장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 사람의 위인'이 탄생하기까지 주변에서 도와준 많은 분들의 노고도 함께 조명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가족의 희생 없이 위인은 탄생할 수 없다. 천애 고아라 할지라도 '당당한 어른'으로 자라기까지 영향을 준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이 여느 위인전과는 다르게 '루스의 주변 사람들'을 깊이 조명한 것도 그래서 대단히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루스의 부모님을 비롯해서 루스의 남편과 자녀, 그리고 학창시절 교수님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동료 법조인들의 헌신 없이는 'RBG의 위대한 업적'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겠다. 유명 연예인의 수상 소감 가운데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이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유난히 아름다운 까닭도 별 주변이 충분히 어둡기 때문인 것과 같은 논리일 것이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준 고마운 분들이 없다면 '스타'는 반짝일 수조차 없다.


  간만에 깊이 공감가는 '위인툰(만화 형식의 위인전)'을 읽었는데, 읽기에 눈이 너무 불편했다. 단조로운 블루 계통으로 통일을 한 덕분에 눈의 피로도가 매우 심했고, 조명이 조금만 어두워도 그림과 글이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단색'을 고집할 것이었으면 '검정톤'으로 하는 것이 눈의 피로도를 줄여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런 색감의 책은 기피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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