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국민이 합니다 : 이재명의 인생과 정치철학
이재명 지음 / 오마이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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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국민이 합니다 : 이재명의 인생과 정치철학> 이재명 / 오마이북 (2025)

[My Review MMCLXXXVI / 오마이북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열다섯 번째 리뷰는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의 정치철학'이 담겨 있는 책, <결국 국민이 합니다>다. 이 책은 2025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만큼 큰 인기를 끌었는데, 보통 현직 대통령에 오르고 나면 대통령 관련 책은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는 수순을 밟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을 둘러싼 주변 강국들의 움직임이 수상하고, 세계 정세가 하루가 다르게 요동을 치는 불안한 현실속에 이 책만큼 크게 주목 받아 마땅한 것은 없다는 점을 상기시켜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현직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봐야 할 책이란 말이다. 그리고 '꼭' 따져봐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인물인지 말이다. 우리 나라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워낙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또 다시 윤석열' 같은 종자가 그 자리에 있으면 나라꼴이 거덜나기 십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몸소 체험한 '사실'이지 않는가 말이다. 꼴랑 임기 3년만에 나라꼴을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는가 보란 말이다. 또 다시 이런 바르지 못한 대통령을 자리에 올린다면 우리 국민은 그야말로 '생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말이다. 우리 국민이 '주인'으로서 큰 깨우침을 얻어야 한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이 '쓸만한 도구'인지, '잘 뽑은 머슴'인지 파헤쳐 보자.

<결국 국민이 합니다> 관점 포인트 : 제목부터 눈 여겨 보자. '결국 국민이 한다'고 한다. 무엇을 국민이 한다는 건지 빠져 있는 제목이다. 그걸 책속에서 찾으면 된다. 사실 몇 장 넘기지 않아도 '정답'은 나와 있다. '정치'가 정답이다. 흔히 우리 나라는 '대의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을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하고, 그 선출된 '정치인'이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해서 '정치전문가'로써 정치를 잘 이끌어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허나 이재명은 그건 엉터리라고 말한다. 정치가가 '정치'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국민'이 정치를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헌법상, 정치인이 정치를 이끄는 것은 '비정상'이고, 국민이 정치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정상'이란 말이다. 왜냐면 주권자는 국민이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그동안 몰랐던 것은 아닌데, 왜 국민이 정치를 직접하지 못하게 '정치인'들이 앞장 서서 막아서는 일이 잦았던 것일까? 무언가 잘못 되었고, 이걸 바로 잡겠다고 대통령이 된 사람이 바로 이재명이란 얘기가 이 책의 골자다.

지난해 6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아직 임기 만 1년차도 되지 않았는데 수차례 '정상회담'에 참석하여 내노라하는 강대국들을 상대로 외교성과를 거둬 들이며 대한민국이 마주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이며 수많은 국민들을 안도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막혔던 수출길을 뚫고, 코스피 4800선(26년 1월 18일 현재)을 훌쩍 넘기면서 대한민국 경제에 숨통을 틔우고 희망을 심어주었다. 물론, 대북 노선이 '불통'이 되고 있고, 국제정세도 전쟁과 시위로 인해 몸살을 앓으면서 위기감은 언제든 재점화할 수 있는 상황이고, 치솟은 집값과 물가와 환율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경제적 불안감도 상당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위기가 대한민국을 안팎으로 휘감고 있었는데도 아무 것도 하지 않던 '윤석열 씨'와 대조해보면 천당과 지옥의 차이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하늘이 도왔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트럼프의 '관세 압박'이 물 밀듯이 밀려올 때 '윤석열 씨'가 비상계엄을 하지 않고, '탄핵'도 당하지 않고, 윤석열 정권이 그대로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을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트럼프가 '미중 갈등'의 해결책으로 동맹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처럼 '백기 항복'을 하고 고율의 관세 협상에 그대로 싸인을 했더라면 어땠을 것 같은가? 더구나 미일이 암묵적인 합의를 하고서 '대한민국'을 호구로 보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금을 내노라고 강요했을 때, 협상은커녕 저항도 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빼앗기고 말았다면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으냔 말이다. 거기다 '혐중'을 내세워서 중국 시진핑과의 관계도 엉망진창이었는데 트럼프 행정부를 믿고서 '반중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였더라면, 대한민국은 미국 안보를 위한 '항공모함 신세'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총알받이'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또한, 일본 다카이치 총리 이후 '중일 갈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격상 되었을 때, '한미일 공조'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울 국민의힘 정당의 정치공세에 대한민국이 '중일 전쟁' 한복판에서 끼어들어 대신 두들겨맞는 꼴로 전락할 뻔도 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를 '이재명 대통령'이라는 카드 한 장으로 모두 돌려막기 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트럼프도, 중국 시진핑도, 일본 다카이치도, 이제는 '대한민국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격으로 서로들 친하게 지내려하고 굽신거리는 모습도 모두 '이재명 대통령의 업적'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단한 외교적 성과를 거뒀으니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절대 복종'하며 시키면 시키는대로 다 하고, 달라면 달라는대로 다 주는 '독재자'가 되겠다고 표방했는가? 아니면, 그에 준하는 '야심'이라도 포착했는가? 물론 이제 임기 1년차를 지냈을 뿐이니 더 지켜봐야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더 투명한 '국정'을 운영하며, 국민과 소통하는 진솔한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되려 문제는 '지난 윤석열 정권의 내란잔당세력들'이 저지르고 있다. 윤석열이 '임명'한 잔당들이 아직도 '버티기'를 하면서 온갖 딴죽과 훼방을 놓으며 윤석열 감싸기 모드에 들어가서 도통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 '침대 축구'를 한다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조희대 사법부는 '내란 감싸기'에 여념이 없고, 나머지 잔당들은 먼 비전을 내세우며 '윤석열 사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정도다. 도무지 반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족속들이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바로 '내란 잔당'을 발본색원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그럼, 이제 정치를 '이재명 정부'에게 모두 맡기고 국민들은 안심하고 딴짓을 해도 괜찮은 걸까?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한다. 끝까지 '이재명 정부'가 딴짓을 하지 않고 임기를 다할 때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그걸 함축해서 적은 놓은 말이 바로 '결국 국민이 합니다'라는 말의 참뜻이다. 지금 이재명이 해놓은 국내외적 성과는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면 누구라도 마땅히 해야 할 성과인 것이다. 이재명이 특별해서가 절대 아니란 말이다. 이재명이 이렇게 빛나는 위업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주권자 국민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란 얘기다. 그리고 국민들이 '정치인'을 더 잘 감시할 수 있도록 모든 국정은 '공개'하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았다. 이재명은 이걸 실천으로 옮겼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른 정치인들'도 모두 그렇게 하고, 스스로 '국민들의 감시'를 받을 수 있도록 투명한 정치를 하면 된다.

그럼 그동안에는 왜 이걸 안 했던 것일까? 주권자 국민들이 '감시'할 수 없도록 '비밀회동'을 하고, 중간에서 국정정보를 가로채 '언론브리핑'을 독점적으로 했기 때문에 '국민들'을 기만하고 속일 수 있었던 것이다. 권력자가 '권위 의식'만 높아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의뭉스럽게 감추기 바빴었기 때문에 주권자인 국민이 '대의정치' 속에서 주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이 이걸 속시원히 다 까발렸다. 국정의 모든 것을 '주권자'에게 속시원히 다 보여주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거 하나만은 '이재명'을 칭찬해도 괜찮다. 아낌없이 박수를 쳐줘야 한다.

나가는 글 : 그럼 다 된 것일까? 이처럼 '쓸만한 도구'로, '잘 뽑은 머슴'으로 자처하는 사람을 대통령 자리에 올렸으니 이제 만사형통하길 기원하기만 하면 될까? 대한민국 주권자라면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지금까지 봐온 '이재명'이란 사람의 '정치철학'이 참 올곧고 훌륭하며, 이제 대통령 자리에 올라 대한민국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고 있으니 충분한 것으로 여기고 '주권자의 권리'인 정치인 감시를 철저히 하지 않고 한시라도 눈을 돌리면 또 다시 부정하고 부패한 정치인이 등장해서 대한민국을 좀 먹어치울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대통령 한 사람이 다 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부처의 장·차관들이 전문가도 아니면서 '대통령의 임명'으로 그 자리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물론 잘 뽑은 대통령이 어련히 알아서 좋은 사람을 임명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법무부 장관으로 윤석열을 임명한 것을 우리는 절대 잊어선 안 된다. 그 시기에는 적절한 인물을 임명했다 여겼지만, 그놈이 저지른 분탕질로 인해서 대한민국이 어떤 위기를 초래했는지 절대 잊으면 안 된다는 소리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참으로 훌륭한 정치철학을 마주 할 수 있다. 개인의 사리사욕이 아니라 오직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구절을 읽고 있노라면 행복에 겹다 못해 감격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겠냔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위인일지라도 '한 가지 단점'쯤은 다 가지고 있다. 지금 그 단점이 보이질 않는다고 해서 그냥 믿고 맡기고, 이전 정부 때보다 잘했으면 됐지 정치(인)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품으면 탈나기 십상이라는 마음으로 대충 정치를 맡겨서도 안 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보란 말이다. 그 잘나가던 미국조차 트럼프라는 '망나니'가 칼춤을 추고 있으니 나라가 망해버릴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이대로 트펌프가 '연임'이라도 하는 날이면 미국은 100년은커녕 10년도 못가서 망해버릴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하루 아침에 초강대국 미국이 사라지게 되면 전세계에 어떤 충격을 몰고 오겠느냔 말이다. 우리는 이런 충격까지도 철저히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또 다시 '윤석열' 같은 모지리와 '내란잔당'과 같은 불온한 세력이 활개라도 치는 날이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내우외환'에 휩싸여 망조가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나열된 수많은 '연설문'과 '정치발언', 그리고 '정치철학'은 이재명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다. 대한민국 주권자의 목소리여야 한다. 이 땅에 다시는 불온한 세력이 국가권력을 틀어쥐고 대한민국을 나락(지옥)으로 떨어지게 만들도록 바라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이재명이 손수 보여주지 않았는가 말이다. 우리는 정치적 각성이 절실하다. 대한민국 주권자가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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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 지하실의 미스터리 - 중학교 수학 1-1 개념이 담긴 흥미진진한 이야기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1
권혁진 지음, 차에 그림, 김애희 감수 / 유아이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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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1 : 지하실의 미스터리> 권혁진 / 김애희 / 유아이북스 (2020)

[My Review MMCLXXXV / 유아이북스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열네 번째 리뷰는 '중등 수학의 개념'을 다잡을 수 있는 수학 소설책이다. 흔히 '수학 동화'로 불리고 있지만, '예비 중등을 위한 개념서'를 표방하고 있으니 '청소년 배려 차원'에서 동화보다는 조금 더 수준 높은 '소설'이라 부르는 게 나을 듯 싶다. 물론 소설 속 주인공도 '예비 중등'이고 말이다. 사실 '수학 소설책'은 이미 하나의 장르화가 되었다. 해마다 수학 개념이나 수학 기초를 잡아줄 소설책이 즐비하게 나오고 있지만, 솔직히 '재미'가 없는 경향을 띠는 편이다. 아무래도 '수학교과서'의 내용을 답습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아무리 재미난 이야기로 꾸며졌다고 하더라도 본질은 '교과서'인 것이 금방 탄로가 나고, 이야기는 점점 '참고서'처럼 바뀌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미를 추구하다보면 소설이 아닌 '동화책'마냥 이야기의 전개과정이 너무 심플해지는 모양새가 되어 재미 없는 딱딱한 책이 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책을 잡자마자 끝이 날 때까지 단숨에 읽게 하는 마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신비한 수학의 땅 툴리아 1> 관점 포인트 :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탐정이나 괴도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범죄수사물'을 읽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면서 자연스레 중등 수학의 기초와 개념이 탄탄해지는 경험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기 때문에 '추리소설'도 읽고 '수학 개념'도 잡는 마당 쓸고 돈 줍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 덕분에 '수학 동화책'도 얼마든지 재밌게 만들려면 만들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중등 수학'을 처음 접하는 예비 중등생들에게 기본 개념을 잡기 위한 첫걸음이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면 '초등수학'과 '중등수학'이 개념부터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미지수'에 관한 식도 'ㅁ'나 'ㅇ'와 같은 도형으로 수식을 만들던 초등수학이 중등수학부터는 'x'나 'y' 같은 '문자'로 수식을 만들기 때문에 처음엔 황당하고 당황스러울 수 있다. 또한, 초등수학은 '자연수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중등수학에서는 자연수를 포함한 '정수'를 넘어 '유리수''유리수가 아닌 수(일명 '무리수')'까지 범위를 넓혀서 거의 '실수 범위'까지 확장시키기 때문에 좀 더 넓은 사고력을 확장시키지 않으면 수학문제 풀이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수학을 포기하는 대열'에 낑기게 되는 불운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수학의 기초 개념을 '공교육'에서는 더는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젠 '사교육'에서 기초와 개념을 다잡은 뒤에 '공교육'에서는 공부 실력을 뽐내는 기회만 제공해준다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요즘 학생들은 '사교육'이 필수가 되었다. 그런데 사교육은 기본적으로 '문제풀이'와 '공식암기'만 열을 올릴 뿐, 학생들마다 다른 학습 수준과 단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식으로 '공식'과 '풀이방식'만을 무차별적으로 강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사교육은 학생을 '절벽'에서 밀어버리고 살아 올라오는 우등생(?)만 확실히 키워주겠다는 방식이기 때문에 '내신관리'나 '대입수능'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만을 위한 수업을 빠르게 진행한다는 점에서 엄청 불친절하다. 이런 불공평한 사교육이나마 잘 적응하고 알아서 공부해준다면 정말 훌륭하고 고마운 학생인 셈이다.

그렇다면 뒤쳐진 학생들의 처지는 어떨까? 안타깝지만 결국 버림받고 홀로 극복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이 때문에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에 대한 관리와 대처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럼 이대로 수포자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 다행히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가 굳은 학생이라면 얼마든지 방법은 있다. 공교육과 사교육에서 종사하는 선생님들 가운데 이렇게 절실히 도움을 바라는 학생이 있다면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칠 용의가 있는 훌륭한 선생님이 얼마든지 계시기 때문이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바로 내가...쿨럭쿨럭..비록 '논술쌤'이긴 하지만 어떤 과목이라도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이라면 기꺼이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서 도와줄 테니 말이다.

나가는 글 : 이 책은 1권과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중등 수학 1학년 1학기의 교과 내용을 친절하게 담고 있어서 '스토리텔링 학습'을 하듯 차례대로 읽기만 하면 저절로 중등수학의 기초와 개념을 다잡을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기 때문에 재미는 이미 보장되어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진 사건에서 출발한다. 단서는 오랜만에 만들어 놓은 '오믈렛'과 컴퓨터로 프린팅이 된 '편지 한 장'이 전부다. 따라서 엄마가 직접 만든 오믈렛도, 직접 쓴 편지도 아닐 수 있으며, 곧 돌아온다는 내용도 믿을 수 없다. 오히려 엄마가 납치될 가능성만 높을 뿐이다. 그런데 편지의 내용은 엄마가 사라진 의문과 함께 '할머니 집으로 가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 의문투성이다. 왜 하필 할머니 집에서 '겨울 방학'을 보내라는 것일까? 그런데 할머니 집에 도착하자 사건은 더욱 깊어지기만 한다. 왜냐면 할머니도 집에 계시지 않고, 심지어 오랫동안 집을 비워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창밖에서 집안을 기웃거리는 수상한 그림자를 목격하게 되는데, 과연 그 수상한 그림자의 정체는 누구이고, '수학'은 언제부터 배울 수 있는 거냐는 생뚱맞은 의문이 들 때부터 책속의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 의심하지는 마라. 당신이 이 책을 다 읽을 때즈음이면 이미 '수학의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중등 수학에 마스터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테니 말이다. 2권의 내용을 기대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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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1-17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미 삼십대 성년이 된 두 딸을 통해 느낀 교훈은 수학은 가급적 어릴 적에 기초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이었어요.

異之我_또다른나 2026-01-17 21:49   좋아요 1 | URL
정말 좋은 지적이시네요. 언어영역과 마찬가지로 수리영역도 ‘조기교육‘은 필요합니다.

물론 선행학습이 아닌 ‘기초 개념 확립‘ 차원에 한정해서 말이죠. 너무 앞서서 배울 필요는 없지만 기초는 탄탄하게 말입니다. 그래야 언제든 필요할 때 ‘심화학습‘이 가능하거든요. 사실상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에서 ‘심화‘로 넘어갈 수 있는 능력 함양이거든요. 이때 학생들은 훌륭한 선생님들의 도움이 절실한데 공교육에선 찾기 힘들고 사교육에서는 엄청난 비용을 요구하고 있어서 학생들의 실력차가 ‘부모님의 경제력‘으로 판가름이 나고 있는 현실이 참 안타깝죠.
 
주토피아 2 :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림책 더모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림책
신시아 리우 지음, 핀바 코일.올가 T. 모스케다 그림, 박혜원 옮김 / 더모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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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 2 :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림책> 신시아 리우 / 박혜원 / 더모던 (2025)

[My Review MMCLXXXIV / 더모던 1번째 리뷰] 며칠 아팠다. 급체로 인한 컨디션 저하에 매서운 추위까지 겹쳐서 몸살까지 단단히 걸리고 말았다. 그 덕분에 줄줄이 일상이 무너지고...암튼, 오랜만에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을 다시 오픈한다. 열세 번째 책은 지난 연말에 화려하게 개봉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2>의 줄거리를 담은 '애니메이션 그림책'이다. 사실 어릴 적부터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꿈과 환상을 키워주던 소중한 추억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사랑과 애정으로 즐겨보는 만화영화임에는 틀림 없다. 내 또래 분들 뿐만 아니라 지금의 MZ세대들 또한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런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요즘에는 좀..그렇다. 그런 여러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주토피아 2 :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림책> 관점 포인트 : 벌써 많은 분들이 <주토피아>를 관람 하셨을 테고, <주토피아 2>도 그런 인기에 입어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은 애니메이션임에는 틀림 없다. 그래서 <주토피아 2>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호평인 편이다. 한때는 '본편보다 좋은 속편은 없다'는 공식이 판을 칠 정도로 '후속작=망작'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터미네이터 2>의 대흥행 이후로 이런 공식을 더는 내세우지 않고 있다. 물론 가끔은 그런 경우도 없지 않지만, 최근의 작품들은 대부분 '좋은 작품'으로 팬들에게 보답하는 편이다. <주토피아 2>도 그랬다. 그런데 이런 '명작 애니메이션'을 '그림책'으로 옮겨 놓았을 경우에는 어떨까?

솔직히 '기대 이하'였다. 너무 큰 기대를 했다기보다는 '좋은 그림책'이란 기준에서 많이 벗어난 그림책이라서 그렇다. 상영시간이 100분이 훌쩍 넘는 분량을 꼴랑 28쪽 분량에 다 담으려면 어떤 각색..아니, 어떤 '짜깁기'가 필요한 걸까? 이런 점에서는 차라리 동화책 분량에 해당하는 <주토피아 2 무비동화>를 권하는 바다.

그럼 '좋은 그림책'이란 어떤 책일까? 그림책은 우선 '글'보다 '그림'이 주인공이 되는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고스란히 '그림책'에 담는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할 것만 같다. 사실이 그렇다. 애니메이션에서 '명장면'만 따와서 그림책에 담아 놓는 것만으로도 훌륭할테니 말이다. 이럴 경우 '애니메이션'을 먼저 감상한 독자라면 '그림책'에 멈춰져 있는 장면을 보더라도 '살아서 움직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테니 얼마나 장점이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엔 엄청난 단점이 숨겨져 있다. 다른 <그림책>에서 느낄 수 있는 엄청난 강점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림책'에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치명적 단점이 되고 만 것이다. 다름 아닌 '상상력' 말이다.

어린이 독자들이 30쪽 안팎의 그림책을 보면서 30분이 넘도록 그림책에 푹 빠져 있는 경우를 보았는가? 아이들은 왜 펼쳐진 그림책에서 '다음 장'으로 넘기지 않고 하염없이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어떤 어린이 독자들은 그림책을 보면서 혼자서 웃고 떠들고 흥얼거리며 '자기만의 세상'에 푹 빠져 몰입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어른 독자들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그림책'이 갖고 있는 무한한 장점이다. 이 어린이는 지금 '상상력'이란 날개를 활짝 펴고 훨훨 날고 있는 것이다. 그럼 말이다. 꿈과 환상의 나라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림책'도 아이들이 그렇게 넋을 놓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계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 그림책으로는 '상상력'이 아닌 '회상'만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분명 '애니메이션 속 명장면'이 분명한데, 그 명장면이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다음 장면은 어떻게 이어졌더라?'라는 기억 속 회상만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런 그림책으론 '상상력'을 무한히 발휘하기 솔직히 힘들다.

더구나 <주토피아 2>의 줄거리는 대단히 심오한(?) 편이다. 1편도 그랬지만 '토끼 경찰'이 도시에서 발생하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해결한다는 '기본 얼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그런 사건 추리과정을 통해서 비리를 타파하고 정의를 되살리는 영웅담이 멋지게 펼쳐지기 때문에 엄청 감동적인 내용을 엄청난 스케일에 담아 펼쳐 보인 명작이다. 이런 명작은 '어린 관객'과 '어린 독자'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정의구현' 같은 내용은 너무 어렵기만 하다. 대신에 예쁘고 귀여운 동물들이 춤과 노래를 하는 것은 엄청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런데 춤과 노래가 기억나는 '애니메이션'을 '그림책'에 고스란히 담을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선 사실상 '꽝'에 가깝다.

나가는 글 : 그럼 이 책 <주토피아 2 :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림책>은 엉터리로 아무런 가치가 없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이 책은 어린이 독자가 아닌 '어른 독자를 위한 그림책'이기 때문에 나름의 가치에 손색은 전혀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2>의 열렬한 광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을 제공한 셈일 것이다. 비록 몇 장 되지 않은 그림책에 불과할테지만, 바쁜 현대인에게는 '숏츠'를 대신할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 물씬 담긴 그림책으로 보는 것이 더 낫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어린이 독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어른 독자'를 겨냥했으며, 엄마가 이 그림책을 보며 감동의 추억에 흠뻑 빠져 있는 장면을 보고, 자녀가 '감동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며 함께 기뻐하게 되는 행복 전염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림책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을 <주토피아> 광팬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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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2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증보판 한국 현대사 산책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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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편 2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증보판>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25)

[My Review MMCLXXXIII / 인물과사상사 3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의 열두 번째 리뷰는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2>다. 40년대는 1권에 이어 2권으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앞서도 언급했지만 마음이 무겁고 심란해 진다. 오랜 식민침탈으로 지치고 고통 받던 민중을 도탄에서 구원해줘야 할 민족지도자들이 사분오열이 되어서 이데올로기 대립만 일삼다 끝내는 '조국의 분단'하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한국 전쟁'까지 발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과연 민족지도자라고 지칭해도 괜찮을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딴에는 혼란한 해방정국에서 그들도 할 도리는 다 한 듯 보인다. 첨예하게 찢기고 갈라선 마당에 이를 봉합하고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초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탓'만 하고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남탓'을 아니 할 수도 없지 않았다. 그럼 도대체 '누구탓'을 해야 하는 걸까?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2> 관점 포인트 : 민족지도자 가운데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김구와 이승만의 대립'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적어도 47년 12월까지는 둘은 한 배를 타고 있었단다. 그런데 '장덕수 암살사건'을 계기로 둘은 갈라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장덕수는 누군가? 동아일보 초대 주필로 해방 이후부터 열렬한 한국민주당의 이승만 지지자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죽자 한국독립당의 김구가 살인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이전까지 한민당과 한독당은 서로 합당까지 할 의사를 보이며 타진을 보고 있었는데, 김구가 '장덕수 암살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지목되자 이승만에게 경찰의 수사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했는데, 이승만이 이를 거절한 것이 둘 사이가 틀어진 계기라는 것이다.

이승만과 김구의 통합을 불만스럽게 지켜보던 '한민당'은 이 사건을 결정적 호재로 활용하였고, 김구는 그럼에도 '합당'을 추진했기 때문에 한민당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보였던 것이다. 암튼 이 사건을 계기로 김구는 한민당과 척을 지게 되었고, 김구를 중심으로 한 '한독당'은 극우노선을 버리고 좌우를 초월하는 진정한 민족주의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 해방 직후에 김구가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김일성의 좌파, 이승만의 우파, 이를 통합하려는 김구의 모습은 45년이 아닌 47년에나 보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방직후'부터 줄곧 좌우를 초월한 진정한 민족주의자는 '우사 김규식'뿐이었다고 본단다. 그런데 김규식보다 김구가 진정한 민족주의자로 떠오른 것은 '이승만의 입김'이 그만큼 셌다는 반증인 셈이다.

이듬해인 48년 4월 3일 새벽 2시는 '제주 4·3 항쟁'을 떠올려야 한다. 30여 만명의 제주도민 가운데 3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이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아직까지도 정확한 희생자 수를 알지 못해 8만 명, 10만 명이 희생되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애초에 빨갱이라고 파악된 최대 숫자는 500명이었단다. 그런데 어떻게 3만 명의 희생자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애초에 경찰은 제주도민들의 조직적인 폭동진압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과오와 죄상을 은폐하기 위해서' 일부 주민들의 폭동을 오히려 조장하고, 확대하려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경찰들이 폭도를 가장하며 민가를 방화하고 다니가도 했단다. 이 사건을 통칭해서 '오라리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제주도민들의 분노를 돋운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게 되자. 경비대 총사령부 소속 제11연대는 제주에서 '무차별 체포작전'이 벌어졌고, 이른바 '레드 헌트' 작전이 시작되었다. 미군정 보고서는 군대, 경찰, 우익 청년단체의 토벌을 이렇게 부른 것이다. 이승만의 학살 지시를 미군정이 '사냥'으로 명명한 셈이다. 도대체 어떻게 '같은 편'끼리 싸우는 것도 학살하러 가는 것을 문명국이라고 자처한 미국이 이렇게 명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를 지시한 이승만도 미친 놈이긴 마찬가지다.

허나 이 사건이 밝혀진 것은 '현재의 시점'이다. 당시 남한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화두는 '김구와 김규식의 방북 문제'였다. 5·10 총선거를 앞두고 김구는 남북 단일국가를 만들기 위해 애썼지만, 이승만은 '남한 단독국가'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5·10 총선거는 남한 단독선거로 치뤄졌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정부는 수립(8월15일) 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수립(9월9일) 되었다. 이로써 미군과 소련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이후 '반민족행위 처벌법'이 공포되며 우리 민족의 숙제였던 '친일파 처단'이 시작되었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친일파를 비판하면 '빨갱이'라는 소리가 나돌게 되었다. 당시 경찰의 100%가 친일파로 채워졌기 때문이고, 이들이 활개를 치니 치안은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염원이었기에 막을 수 없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경찰의 노고를 생각해서 그들을 처단한다는 것은 신중히 생각할 문제'라면서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허나 '반민법'을 반대한 명분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럼에도 이승만은 '반민법'에 대단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단다.

48년 10월에도 제주도에선 학살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진압군'을 투입하기 위해 여수와 순천에 집결했는데, 그 진실을 알게 된 국군은 한순간에 학살 명령에 불복하고 '반란군'으로 돌변했다. 이들의 항명은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죄 없는 양민을 학살하는데 자신들은 동의할 수 없다는 가장 인간적인 항명이었다. 그러니 이승만 정권은 인간이길 포기했다. 이승만은 이들을 '공산당 괴뢰의 지령을 받은 불순분자'로 낙인 찍고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뿔뿔이 흩어진 '반란군'을 색출하기 위해 '손가락총'이 동원되기도 했단다. 반란군이 민가에 숨어들자 누군가 "저 사람이 반란군이다"라는 손가락질만으로도 그 자리에서 총을 발사해 즉결처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망자만 2600명이다. 여수에서만 3400여 가옥이 불탔으며, 이재민은 2만 명이 넘게 발생했단다. 여순 사건에는 '소령 박정희'도 체포되어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관동군에서 광복군으로 변신했던 그는 좌익(남로당)에서 우익으로 또 한 번 변신을 꿈꾸며 여순 반란 사건에 연루된 군인들을 색출하는 수사에 적극 협력하며 살아남았다고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남로당원들'을 다 털어놓은 것이다. 결국 박정희는 사형을 구형받았지만, 관동군 선배들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기적처럼 살아남게 되었다고 한다. 한 때 자신의 동료를 팔아넘긴 공로를 인정받아서 말이다. 암튼 '여순 사건'으로 인해 이승만 정권은 확실한 '반공 국가'로 거듭나게 된다.

49년 6월 26일 일요일 경교장 2층 거실에서 김구는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해 암살 당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딱 1년 뒤인 50년 6월 25일 일요일에 북한은 남침을 했다. 38도선을 베고 누워서라도 조국의 통일을 염원했던 백범이 스러졌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김구 암살을 지시한 이승만은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여의치 않자 연일 '북진통일'을 외치며 미국을 자극했다. 이에 대한 미국의 회답은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의 방어 포기 선언이었다. 이 선언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 김일성은 소련 스탈린의 지령을 받아 대대적인 '남침'을 감행한다.

나가는 글 : 우리 민중의 염원은 명료했다. 일제의 탄압도 견뎌내며 모진 목숨을 건진 민중이었기에 '잘 살아보자'는 목적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그런데 이런 민중들의 단 하나의 염원을 '민족지도자'들은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물론 '신탁통치'를 모의한 미국과 소련을 원망하는 것도 맞고, 패전국 일본이 받아 마땅한 '분단'이란 형벌을 한국이 대신 받게 했다는 점에서 미국과 일본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도 맞는 말이다. 허나 우리 민중의 염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우리 민중을 '자신들의 정권 탈취'에 이용해 먹으려는 속셈만 가득했다는 점에서 용서가 쉽지 않다. 그들도 나름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 속에서 열심히 할 만큼 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우리가 반만 년의 문화민족이고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본을 먼저 보여줄 수는 없었느냔 말이다. 만약 우리 민족지도자들이 이렇게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한국역사'에 무지한 미국과 소련도 감명을 받아 신탁통치안을 거둬들이고, 저들의 '군사정부의 만행'도 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에 '만약'은 없다. 우리는 40년대 해방정국에서 그런 '부조리한 모습'을 보였고, 숱한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다. 이대로 원망만 늘어놓을 것인가? 지난 과거는 어쩔 수 없다. 잘났든 못났든 '우리'가 저지른 행위이고, 그 결과에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처절한 반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40년대에 우리가 한 일 가운데 잘 한 것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못난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간다면 분명 더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아프고 슬픈 역사를 견뎌내고 이렇게나 우뚝 바로 섰다고 말이다. 이런 고난과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낸 모습이 더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더욱더 '우리 역사'를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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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1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증보판 한국 현대사 산책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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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1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증보판>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25)

[My Review MMCLXXXII / 인물과사상사 3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열한 번째 리뷰다. 역사적 흐름에 따라 리뷰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 책 <한국 현대사 산책>과 더불어 <한국 근대사 산책>이 좀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진득하니 처음부터 나아가지 못하고 '메뚜기 한 철' 인듯 이리저리 뜀뛰기를 하게 만든다. 기왕 이렇게 된 것 기회를 봐서 <미국사 산책>까지 한꺼번에 시대적 흐름에 맞춰 왔다갔다하며 읽으려 한다. 뭐, 책이 많아지긴 하겠지만 어차피 다 읽을 책인데 뭣을 먼저 읽든 뭔 상관이겠는가 말이다. 앞선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의식의 흐름'에 따라 리뷰를 할 작정이다. 많은 양해를 바라고 언제가 되었든 꼭 리뷰를 하겠다는 다짐을 밝혀둔다. 1940년대다. 다 읽고 나니 마음이 무겁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1> 관점 포인트 : 8·15 해방을 맞이한 순간 조선의 민중들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21세기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우리는 '히로히토 일왕의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무조건 항복이라는 대목에서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뛰어다니며 감격에 겨운 환호를 질렀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 기록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36년간의 일제의 엄혹한 감시와 탄압에 지친 조선민중들은 별로 보급되어 있지 않은 라디오 소리를 직접 듣지도 못했고, 대다수 들리는 소문에 '해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숨죽이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고 한다. 도리어 긴장한 것은 조선반도 내에 머물고 있던 '일본군과 경찰'을 비롯한 일본인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조선인들이 일왕의 무조건 항복 소식을 듣고 '폭도'로 돌변해서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당장은 조선인들이 얼떨떨해하며 눈치만 보고 있지만, 그 옛날 3·1 만세를 불렀을 때처럼 들불처럼 번져나가며 조국의 독립 소식에 들떠 철천지 원수 같은 자신들을 용서치 않을 거라며 지레짐작으로 벌벌 떨고 있었고,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도 조선민중들이 '일본인 학살'을 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하루가 지나자 해방 소식을 듣고 만세를 부르며 감격에 겨워했지만, 일본인들이 걱정한 폭동과 학살은 전혀 없었다. 도리어 일본 본토에서 패망소식을 접한 일본인이 분풀이로 조선인들을 린치하여 사상자가 속출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었다.

이게 뭘 의미할까? 십수 년 전만해도 이런 분위기를 '우리가 못 났기 때문'에 나라 잃은 설움에 슬퍼할 줄만 알았지 분노할 줄도 몰랐노라고 자학적인 해석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러니 21세기 대한민국의 위상을 보라. 우리는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강대한 힘을 가졌다고 남의 나라를 침공하는 역사를 갖지 않은 세계사적으로도 찾을 수 없는 유일한 나라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간 다른 나라의 침략에 시달리면서도 '복수'를 꿈꾸지 않고, 강성한 힘을 자랑할 때에도 '정복국가'를 꾀하지 않으며 평화와 번영을 노래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의 실체임을 여실히 확인하는 순간인 것이다. 우리는 새 시대를 맞아 이러한 역사전통을 자랑스러워 할 만하다.

얼마 전에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 나라의 대통령 부부를 생포한 것을 자랑삼아 떠벌리며 '자국의 강대한 힘'을 보였노라며 '함부로 까불면 다친다(FAFO)'는 포스터까지 제작해서 유포하는 일을 벌였다. 이런 미국이 '정상국가'인 것처럼 보이는가? 물론 아직까지도 미국은 초강대국의 지위를 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델타포스 대원들이 벌인 활약상을 실시간으로 보고 받으며 미국의 위대한(?) 힘을 여실히 증명해냈다. 그런데 왜 침공한 것이냔 말이다.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안전을 위협할 정도로 베네수엘라가 '악질적인 행위'를 했느냔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 미국은 베네수엘라가 자국의 석유자원을 '대중국 수출품목'에 넣어놨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베네수엘라의 석유자원을 독차지하는 만행을 저지른 셈이다. 이를 두고서 미국 대통령은 베네수엘라가 안정될 때까지 미국이 대신 통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게 미국이 '약소국'을 대하는 방식이다.

다시 1945년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미군정에 의한 '남한의 처지'가 딱 그러했다. 해방의 감격을 기뻐할 틈도 없이 일본에 주둔해 있던 '태평양함대 소속의 군대'가 한국의 남쪽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제를 물러나게 한 '해방군'으로 미군을 환영했으나 미국의 속내는 우리를 '적'으로 간주한 '점령군' 행세를 했다. 그리고 우리가 독립의 그날이 오면 시행하려 했던 '건준'과 '임정'을 차례로 무시하며 38선 이남의 땅에서는 오직 '미군정'만이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선언하며 적진지를 점령하듯 무례하게 진압해버린 것이다. 얼마나 무례했냐고? 한 통역관의 증언에 따르면 '호텔 벨보이'로 보이는 소년이 두 손 가득 간식거리를 싸들고 호텔방에서 나와 로비로 뛰어가고 있는데, 미군 장교는 아무런 말도 없이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어 소년의 손을 향해 총알을 발사해 손목만 남아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그러자 한국인 통역관이 깜짝 놀라며 왜 그랬냐고 물으니, 그 미군 장교가 하는 말은 "영락없이 호텔방의 물건을 훔쳐서 달아나는 것처럼 보였다"는 내용이었다. 통역관이 경악을 한 것은 미군 장교의 표정이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태평하고 무표정한 얼굴이었다고 한다. 도둑놈을 혼내준 것 뿐인데 왜 그러냐는 의아한 제스쳐와 함께 말이다.

이게 미국의 실재였다. 훗날 한국의 발전상을 보면서 그때의 증언을 한 미국인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한국에 대해서 무지했던 탓"이라며 자신들의 실수(?)였다고 말할 뿐이다. 과연 실수였을까? 실제로 미국이 남한에 미군정을 세우고 통치할 때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는 보고는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한국인을 대할 거면서 '일본인을 대처하는 법'이란 미군 교본을 들고 왔을 정도라고 한다. 미군의 눈에는 한국인이 '야만인', '비문명인'이었을 뿐이었다. 더 웃긴 건 구한말 선교사로 왔던 미국의 목사들이 그들이 한 경험담을 들춰봤다는데, 그 기록에조차 '한국인은 게으르고 더러운 미개인'이라는 구절만 가득했단다. 이런 잘못된 기록을 기초해서 한국인을 차별하는데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고 하니 미국인이 얼마나 멍청한 족속들인지 알만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미국의 적이었던 '일본인'에 대해서는 세심한 연구(국화와 칼)까지 해서 적국이지만 '문명인'을 대하듯 존경까지 표했던 미국인들이었는데, 어째서 일본의 야만적인 식민침탈의 희생국가였던 '한국'에 대해서는 무지로 일관했더란 말인가? 그건 답이 뻔하다. 그들은 오로지 '힘의 논리'만을 정의로 생각하는 '문명의 탈'을 쓴 야만적 본성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꺼내 보였던 것이다. 이런 미국을 우리가 '혈맹' 어쩌구 하면서 떠받들어야 할까? 대한민국도 강대국이 되어 약소국들에게 이런 모습으로 내비쳐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미당 서정주는 해방의 '그날'을 도둑처럼 찾아왔다고 표현했다. 비단 미당만의 표현이 아니었다. 당시 독립을 염원했던 운동가들도 대부분 이런 식의 감회를 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느닷없이 찾아온 해방을 맞이할 준비가 아직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뒤늦은 준비태세에 돌입했지만, 앞서 말했듯 미국의 야만이 우리의 염원을 바람대로 해주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내 치안 상황을 자국의 군인들만으로 하기에 버겁다고 여겨서 '친일 경찰' 출신을 찾아내어 해결하려고만 들었다. 왜 그들이었을까? 미군정 당시 '공식 공용어'는 영어였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이들은 일제치하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친일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외국어'를 할 줄 알았고, 미군정에서는 이들의 '협력(!)'이 절실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금력'이었다. 조금이라도 뇌물을 건내주고 말이 통하는 '친일파'들을 주요 요직에 내리꽂으면서 해방정국에서 친일파는 '살길'을 찾아나선 것이다.

친일파들은 미군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좌우를 따질 것도 없이 '정치인'이라면 정치자금이 필요할 테니 자신들이 착복한 자금을 마음껏 쓰라고 용돈을 챙겨주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그나마 '좌파 정치인'들은 얄짤 없었다. 이들은 입만 열면 '친일파 척결'을 부르짖었기 때문에 친일파들은 '우파 정치인들'에게 매달리며 자신들의 살길을 도모했다. 이때 느즈막히 귀국한 이승만이 친일파들에겐 봉이었다. 미군정의 하지 중장도 이승만을 환대했다. 영어로 말이 통하고, 맥아더가 '반공주의자'라는 보증도 섰으며, 미국 유학출신의 '박사'가 아니었느냔 말이다. 물론 그 박사 학위로 꼴랑 '1년'만에 딴 출처 불분명한 학위였지만, 당시 한국인 가운데 '미국 박사 학위'까지 딴 사람이 귀할 때였으니 그거라도 어디였을까? 그래서 하지 중장은 이승만을 환대하고, 그의 목소리를 전국에 전파타게 해주면서 나름의 구심점으로 삼으려 했다. 이에 이승만은 "나를 따르시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기며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한편, 중국 중경(충칭)에 있던 임시정부세력은 뭐하고 있었을까? 미군정은 임정 출신 요인들에게 '개인자격'으로 귀국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김구를 비롯한 선발대가 귀국비행기에 올랐는데, 이승만의 소개를 받아 하지 중장과 인사를 나눴고 이승만은 김구를 "스튜(고깃국)에 꼭 필요한 소금"이라는 수식어로 소개했다고 한다. 이에 하지 중장도 흔쾌히 환대를 했다는데, 오래 가지는 않았다. 사사건건 미군정과 임정이 부딪혔기 때문이다.

암튼, 혼란한 해방 정국에서 우리 민중들의 70%는 '사회주의'를 지지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못먹고 못살던 노동자와 농민이 대다수인 나라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북쪽의 '김일성'과 남쪽의 '이승만'이 서로 반대를 외치는 상황이었다. 여운형, 박헌영, 김구, 조소앙, 김규식 등 쟁쟁한 이들은 '사회주의'를 지지했는데도 김일성과 이승만은 요지부동이었다. 김일성은 '남로당'을 뺀 자신들만으로 '공산주의국가'를 건설하려 했고, 이승만은 누가 뭐래도 남쪽에서는 자신이 대빵이라며 '자본주의국가'를 완성하겠다는 일념으로 다른 노선의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서슴지 않았다. 그나마 북쪽에서는 '좌파'가 대세였으므로 김일성을 중심으로 뭉치기 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남쪽은 상황이 달랐다. 북쪽에서 넘어온 '우파'까지 가세한 상황에서 남쪽 내부에서도 '좌우의 갈등'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60여 개가 넘는 정당이 만들어졌다 깨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며 정치적 혼란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낮에 총질은 기본이었고, 선거 유세라도 할라치면 깡패를 동원해서 해방놓기 일쑤였다. 특히, 청년단이 골치였다. 이들은 '순수한 목적의식'만으로도 불나방처럼 갈등의 한복판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갈등봉합을 원천적으로 막아서는 일도 빈번했다.

이런 해방정국의 대혼란은 요즘의 '내란으로 인한 여야 대립' 상황과 비슷한 것일까? 특히 '보수'를 자처하는 극우정당의 행패는 '국가가 망하길 바란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린 상황이니 말이다. 이런 한심한 작태를 보고 있으면 그 당시 혼란은 난리도 아니었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정말이지 우리 정치는 '쿼바디스(어디로 가나이까?)'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을 듯 싶다.

나가는 글 : 1940년대 정치갈등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그 살벌했던 미군정과 소군정조차 두손 두발 다 들고 그냥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을 정도였을까? 앞서 미군정의 횡포만 언급했지만, 소군정도 다를 것은 없었다. 공산주의 군대는 어딜 가나 '거지꼴'이 기본이었던 탓에 그들이 북쪽에 진주하자 처음에는 '해방군'이라며 환영했고, 처참한 몰골을 보면서 불쌍하다, 애썼다는 마음마저 들어 도와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런 해방군이 저지른 횡포는 '강간'과 '강도질'이었다. 밤만 되면 부녀자를 겁탈하고 대낮에도 돈 되는 것을 보면 탐욕스럽게 강탈해갔다. 특히, 손목시계가 주요 표적이었다고 한다. 소련군의 손목에 시계가 4개나 차있는데도 또 손목시계가 보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빼앗곤 했단다. 그리고 밤이 되면 부녀자들은 집밖으로 나가질 않았단다. 그리고 자경단을 꾸려 겁탈 당하는 부녀자들이 세숫대야 같은 것으로 큰 소리를 내면 구해주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져서 소련군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빠졌다고 한다. 훗날 소군정이 들어서고 제대로 된 규율이 잡힌 뒤에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고 전하는데, 한 번 당한 나쁜 기억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 법이다.

이렇게 북쪽에서는 33세의 젊은 지도자 '김일성'이 주목 받으면서 빠르게 안정을 잡은 반면에 남쪽에서는 혼란 그 자체였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원래 시끌벅적하는 것이라도, 미군정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너무 정치를 좋아해서 탈이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한국인 두 사람이 모이면 정당 세 개가 만들어진다'고 말할 정도였겠는가? 각각 한 명이 정당을 꾸리고, 둘이 합작해서 또 하나의 정당을 만들 정도로 한국인들은 '정치질'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니 애먼 정당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고, 많을 때에는 60여 개가 훌쩍 넘었다고 하니 무슨 진지한 토론이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겠는가? 1분씩만 발언을 해도 1시간이 훌쩍 넘기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구심점이 되어야 할 이승만이나 김구, 여운형, 박헌영 등등 쟁쟁한 인물들조차 '좌우'로 나뉘어서 양보를 할 줄 몰랐고, 정치자금을 대는 '친일파'들이 제 목숨 하나 건사하겠다며 이쪽 저쪽을 가리지 않고 돈을 뿌려대니 정치는 '술집(요정)'에서 진행될 판이었다. 이 꼬락서니를 참다 못해 장준하는 "다시 태어나면 일본군 항공대에 입대해서 폭격기를 몰고와 한국정치판을 몰살시켜버리고야 말겠다"는 한맺힌 소리마저 내뱉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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