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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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VII / 이봄 8번째 리뷰] '수짱 시리즈' 2번째 책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3명이다. 지난 편에서 '카페 점장'으로 승진한 서른다섯 살의 수짱, 13년 동안 섹스는커녕 데이트도 하지 못한 사랑꾼 커리어우먼 사와코, 그리고 지난 편에서 갑자기(?) 결혼에 성공하고 지금은 예비엄마가 된 마이코가 주인공들이다. 세 여성의 공통점은 모두 '고민'이 많다는 것이다. 삼십대 중반의 독신여성이 할 법한 고민들을 토로하고 있어서 작가인 '마스다 미리'를 일본 2,30대 여성들의 정신적 지주로 떠올랐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25년인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조금은 그 위상이 하락하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면 현재의 2,30대 여성들이 하고 있는 고민이 바뀐 듯 싶어서 말이다. 정작 나는 '여성'이 아니라서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이 불가하지만 말이다. 최대한 그 고민에 '공감'하려 노력하는 노총각이라는 점만은 밝히고 싶다.

30대 중반 독신 여성을 대변하는 '수짱의 최대 고민'은 결혼이다.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가임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초조하지만, 딱히 결혼상대로 꼽을만한 '적당한 남자'가 없다는 점이 수짱이 결혼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이유다. 남자를 만나야 연애를 하든, 섹스를 하든, 결혼을 하든 '선택'이라도 할텐데, 수짱이 일하는 '카페'에서는 100% 여성 근무자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자연스런 만남'조차 쉬이 허락하지 않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딱히 '맞선'을 보거나 '소개팅'을 받는 노력(?)도 하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하고 있다. 그렇다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그렇다보니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그리 불평불만 따위는 없다. 하지만 녹초가 되어 퇴근을 할 때에는 '고민'이 밀려 온다. 과연 이대로 늙어가도 괜찮은 걸까?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결혼도 않고 자식도 없고 돈도 풍족하지 않은 상태로 노후를 맞이하는 것도 괜찮을까? 등등으로 점점 불안이 엄습해오고 있음을 느낄 때인 것이다.

한편, 사와코는 남자를 원한다. 직장여성(오피스레이디)으로 커리어를 쌓고 있지만, '대단한 경력'은 아니고 회사에서 중역을 맞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지만 13년 동안 섹스..아니 '데이트'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와코는 '사랑'이 고픈 상태다. 하지만 결혼만이 능사도 아니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고 엄마가 할머니를 홀로 돌보고 있기 때문에 사와코가 결혼을 해서 떠나면 그 힘든 일을 엄마 혼자서 감당해야만 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결혼을 더 미루고 나이만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정도다.

마이코도 지난 편에서는 '사와코'와 비슷한 고민을 했더랬다. 그러다 유부남과의 불륜을 정리하고 연상의 남자와 결혼을 하고서 '전업주부'가 되어 현재는 '임신중'이다. 이제 아이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이제까지의 나'와 이별해야 하는 것에 왠지 모를 서글픔을 느끼며 우울해하는 마이코, 예비엄마다.

이런 내용을 담은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어 2013년에 개봉했다던데, 일본여성만의 고민이 아니라 전세계 삼십대 독신여성들의 공통적인 고민이기에 화제가 되었을 법하던데, 아직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여러 평론을 읽어보니 '영화'보다는 '원작 만화'가 더 호평일색이다. 아무래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원작에, '기대감'이 증폭되다보니 영화에서는 이를 극복해낸 '한방'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연기가 부족했던, 연출이 부족했던, 원작에서는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했던 대목을 연기자와 연출자의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만으론 아마도 부족했을 것이다.

암튼, 여성에게 '결혼'은 자신의 일상이 싹 바뀌는 변화를 감수해야만 한다. 또한 '임신과 출산, 육아'도 자신의 목숨과도 맞바꿀 수 있는 소중한 새생명의 탄생이라는 기쁨을 주는 일이지만, '산모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해야 하고, 또한 기쁨을 물색하게 만들 정도로 고된 '육아전쟁'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더구나 철없는 20대에 덜컥하게 되는 '결혼과 임신'이 아니라 뭘 좀 알 나이인 '30대'가 되면 여성에게 결혼은 해도 걱정, 안 하면 더 걱정이라는 딜레마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마스다 미리의 작품들이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그녀들의 고민을 '대신'해서 해주니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막상 읽어보니 답답하다. 결코 쉽지 않은 고민이라 쉬이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는데, 그럼에도 뭔가 답을 내주기 바라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도리가 아닐까?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읽다보면 '문제제기'만 실컷하고서는 '대안제시'나 '해결방법'을 내놓지 않고 여전히 '고민중'이라는 열린 결말(?)로 끝을 맺고 있어서 좀 답답하다. 하나의 고민이 해결되는 것 같아도, '또 다른 고민'이 계속 튀어나오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은 알겠는데, 그런 식의 고민만 잔뜩하고 있으면 '독자가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하고, 그저 '공감'만하고서 끝을 내는 것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원래 여자들의 수다에 '목적'도 없고, '결론'도 없다지만, 결국 '나이'는 먹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마스다 미리씨~ 도대체 결혼은 하는게 좋다는 거예요? 하지 않는게 좋다는 거예요? 고민만 '대신'해주지 마시고, 답도 좀 '대신' 내려보시라고요~ 그래야 이 책이 좋다 싫다 결론을 내릴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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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툰 1 - 가족의 탄생 비빔툰 (문학과지성사) 1
홍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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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VI / 문학과지성사 4번째 리뷰] 21세기가 시작하면서 나는 진정한 독립을 하게 되었다. 비록 부모님과 한 집에서 살긴 했지만 더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고서 '경제독립'을 하고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빌린 대출금도 내가 대신 갚아나가는 것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신문구독'도 이때 처음 했다. '접이식 자전거'를 공짜로 주겠다던 <조선일보>를 거절하고, '한달 구독료 면제'를 내건 <한겨레신문>을 구독했다. 그때 재미나게 보던 만화가 바로 <비빔툰>이었다. 그러다 <비빔툰> 연재가 종료되고 얼마 안 되어 한겨레 구독도 끊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재종료와 상관없이 '내 주머니 사정'이 당시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추억이 담겨 있지만 <비빔툰>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내 추억일 뿐이다. 하지만 <비빔툰>을 연재한 홍승우 작가도 자신의 작품에서 유독 '추억'을 자주 다루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도 자꾸 옛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그러다 문득 지금 읽고 있는 '마스다 마리'의 <수짱 시리즈>와 언뜻 비슷한 점이 보인다. 물론 겉으로는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수짱은 '삼십대 미혼여성' 이야기인데 반해, 정보통과 생활미는 '삼십대 초반과 이십대 후반(3살 차이)'에 서로 만나 초고속(?)으로 결혼까지 골인하여 '신혼살림과 육아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것이기에 사뭇 다른 내용이다. 출생연도는 홍승우가 1968년, 마스다 마리가 1969년이고, <비빔툰>은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연재했고, <수짱 시리즈>는 2006년에 화제를 몰고 와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시기적'으로 <비빔툰>이 더 일찍 선보인 작품인데 작품의 분위기는 <수짱 시리즈>가 더 연배가 많은 사람의 작품처럼 보인다.

이런 차이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무래도 90년대 미일간 '플라자 합의'를 통해서 일본에 '부동산 경기' 거품이 꺼지면서 시작된 '잃어버린 10년 시리즈'가 90년대 불고 있어서 만화에서조차 그런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우울함'이 깔려 있는 모양이다. 그러다 2000년대에는 '잃어버린 20년'차로 접어들면서 '여성의 맞벌이'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일본 여성들이 결혼을 뒤로 미루고 경제활동에 매진하게 되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일과 사랑'을 병행하지 못한 일본여성의 고뇌를 <수짱 시리즈>에 잘 녹아낸 것 같은 느낌이다. 반면에 <비빔툰>도 1997년 IMF 경제체제를 맞이한 '한국경제의 위기 상황'속에서 연재를 시작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정보통과 생활미는 '일과 사랑'을 모두 잡고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며 가족만이 누릴 수 있는 알콩달콩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속에도 '불경기'로 인한 가정불화가 은근히 깔려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가족'이기 때문에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찾아내고, 그것을 '웃음과 재미'로 승화시킨 작품이 <비빔툰>이 가진 매력일 것이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수짱 시리즈>는 오직 '여성의 관점'에서 모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비빔툰>은 정보통으로 대변되는 '30대 가장의 관점'과 '20대 주부의 관점'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신혼부부이자 초보부부, 그리고 한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다양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어서 좀더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일 것이다.

그런데 읽다보면 두 작품은 꽤나 공통점이 많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어려움과 고민'을 녹아내어서 그들 나름의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있고, 또한 이를 '만화형식'으로 풀어내고 있기에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문제제기]와 [대안제시]가 꾸준히 반복하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두 작품 모두 읽고 있으면 처음엔 재밌어서 웃지만 웃음이 잦아들 때즈음에는 진지한 '생각할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점이 꼭 닮았다.

하지만 <비빔툰>은 힘들어도 웃고 살자는 메시지를 확실히 짚고 넘어간다. <수짱 시리즈>는 30대 독신여성의 고민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끝내 '결혼'을 대안으로 삼지 않았다. 여성의 독립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수짱과 그녀의 친구들도 모두 '결혼'을 서두르지 않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그리고 결혼을 한 몇몇 친구들도 그리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고, '여성의 고민'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계속 생기기 마련이라는 투로 풀어냈을 뿐이다. 그래서 좀 답답한 느낌이려나? 그럴 거면 왜 그렇게 고민을 했는지, '고민하기 전의 상황'과 달라진 것은 결국 한살한살 먹어가는 '나이'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빔툰>은 화끈했다.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한국인답게 연애도, 결혼도 속전속결, 육아전투도 각개전투와 연합작전을 펼치며, 시댁과 처댁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극복과정, 직장과 가정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문제해결 겸 부부싸움, 그럼에도 칼로 물 베는 화목한(?) 가족의 탄생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진짜 20년도 더 넘어서 <비빔툰>에 연재된 내용들을 다시 들춰보니 감회가 새로와졌다. 근데 '시즌2'가 나왔더라. '시즌1'도 9편의 단행본이 나왔던데, 아무래도 '시즌2'를 먼저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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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고려사 5 - 개혁의 실패와 망국으로의 길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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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V / 휴머니스트 43번째 리뷰] 제5권은 고려 26대 충선왕부터 34대 공양왕까지의 고려사를 다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원간섭기'에 이은 '여말선초'에 해당하는 500여년 고려사의 후기의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가 익숙한 부분은 '공민왕'부터 우왕, 창왕에 이은 '공양왕'까지의 시기만 자세히 배울 뿐이다. 고려 임금의 시호가 '충'자가 들어가는 경우는 사실상 '원나라의 간섭'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고려임금이라도 고려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었고, 원나라 황제 또한 간섭했다고는하나, 실상은 실세를 누리던 '원나라의 환관(고려출신)'과 '고려의 권문세족(기황후세력)'에 의해 혹세무민하던 암울한 시기였을 뿐이라며 웬만한 역사책에서조차 대충 넘어가던 시절이다. 그나마 '공민왕의 개혁정책'이 많이 다루는 내용이지만, 끝내 '실패한 개혁'이라서 그리 중차대하게 다루지 않고 곧이어 벌어진 '역성혁명의 과정'을 위한 들러리(?) 역할로 끝맺음을 해버리는 것이 고려사 후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박시백의 고려사>는 달랐다. 비록 허약한 왕조로 이어진 '충'자 들어간 임금일망정 비중 높게 다루어서, 그 시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대략이나마 가늠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주었다. 더구나 '공민왕의 개혁'이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그 끝에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 또한 자세히 조명하였다. 그리고 개혁이 실패하자 맞붙게 된 '친원파(권문세족)'과 '친명파(신진사대부)'가 대립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수미쌍관구조를 이루며 마무리하였다. 저자가 밝힌 소감은 '두 저서'의 시간적 공백이 무려 20년인데, '20년 전의 자신'과 마주하는 느낌이 들어서 격세지감이 들었다고 밝혔다. 50대의 노련한 저자가 30대의 패기와 마주하고 있으니 오죽이나 그랬을까. 마치 '노쇠한 왕조'가 저물어가고 '산뜻한 왕조'가 새롭게 떠오르는 장면이 묘하게 마주치는 명장면을 연출했다고나 할까? 암튼 <박시백의 고려사>도 이렇게 마무리 되면서 <조선왕조실록>과 <35년>까지 장장 1000년의 우리 역사를 아우르게 되었다. 이후에는 '격동의 현대사'를 다루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그럼 '몽골제국'과 '원나라'는 같은 나라로 보아야 할까? 사실상 '유라시아 대륙'을 거의 다 점령통치한 '몽골제국'은 세계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린 제국이다. 그런데 '원나라 황제'가 제국의 변방인 여러 '한(칸)국'까지 통치력이 닿지는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고려'는 비록 원나라에 항복을 하고 '내정간섭'을 받았으나 끝끝내 '원나라'에 복속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였으며, 오히려 '부마국의 지위'를 얻어서 원나라 황실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묘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렇기에 원나라가 내부적 혼란으로 약화되었을 때 '주원장'을 비롯한 반원세력이 활약을 할 때, 고려도 '공민왕'에 의해 '반원자주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독립적인 지위와 권력이 없는 상태였다면 그렇게 발빠르게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이고, '역성혁명' 또한 이루어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려의 위상'을 다시금 조정해야만 한다. 고려는 유약한 나라가 아니라 강력한 나라였기에 '고유한 문화'를 보존하고 보전할 수 있었으며, 기회를 틈타 '잃어버린 자주성'을 되찾아 오는 저력까지 보여주었다고 말이다. 만약, 다른 나라에 휘둘리기만 한 '약소국'이었다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힘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제 풀에 넘어지고 말았을 것이고, 주변 강국들이 이를 그냥 좌시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공민왕의 개혁정책'은 시기적으로도 엄청난 위기속에서 해낸 업적이기도 하다. 즉,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던 시절에 개혁정책을 밀어붙였다는 말이다. 안으로는 왕권을 침해하는 난이 그칠 줄 몰랐고, 밖으로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략으로 온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안가는 물론 수도인 개경까지 쳐들어오는 난리통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슬기롭게 물리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들이 겉핥기식으로 대충 보면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역사의 한 장면'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수모'를 당하고도 끝끝내 망하지 않고 이겨냈다는 점에서 '고려'의 대단한 위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무려 500여년이다. 태조 왕건이 918년에 나라를 세우고 태조 이성계가 1392년 다시 나라를 세우기까지 무려 5세기에 걸쳐 '강력한 파워'를 보여주어, 근근히 명맥만 유지한 허약한 나라가 아니라 당당히 맞서싸우고 지킬 건 지켰으며 챙길 건 다 챙겨놓고 그 위에 화려한 문화까지 꽃피운 나라가 바로 '고려'라는 나라였음을 우리는 기록에 새겨넣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국호'로 '조선'이란 이름을 가장 먼저 썼고, 뒤이어 '한'을 썼고, 뒤이어 '고려'를 썼다. 그 사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라는 <삼국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나라이름을 썼으나, 현재는 '조선', '한', 그리고 '고려'라는 이름을 가장 널리 쓰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코리아'라고 부르는 것, 우리가 '대한민국'이라 부르는 것, 북쪽의 동포들이 '조선'이라 칭하는 것에서 낯선 것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국호를 쓰면서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는 자긍심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한때 '까레이스키(러시아)', '커우리(중국)'라면서 우리의 '고려'를 낮잡아 불렀다. 또한 '조센징(일본)'이라면서 우리를 사람취급도 하지 않으려던 치욕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그리고 '그대로' 되갚아주어야 한다. 그 방법은 우리의 <상소리 사전>에 '러시아', '중국', 그리고 '일본'이라는 욕설을 등재하는 것이다. 저들이 우리에게 했던 방식 '고대로' 되돌려주는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은 저들이 욕설로 썼던 우리의 나라이름을 만천하에 자랑스럽게 공포하는 것이다. '조선', '고려', 그리고 '대한'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섭고 강력한 나라의 이름으로 맹위를 떨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역사'를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할 사명이 있는 셈이다. 수많은 외침을 받고도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계승한 것으로도 모자라 더욱 발전시켜서 전세계에 '문화'를 전파하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고 말이다. 오늘날의 '한류열풍'은 우연히 운이 좋아서 불어재끼는 바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저력'이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에서 비롯하였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자부심으로 삼아 당당히 보여주어야 한다.

논술강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던 어느날, 한 학생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왜 한국사는 재미가 없는 거죠? 만날 '침략'만 당하고 땅뙈기도 쬐끄마하고, 그나마 반토막으로 나뉘어서 초라하기 짝이 없네요. 이런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거죠? 부끄럽기만 하잖아요. 저는 차라리 세계사나 배울래요."라고 말이다. 그 당시에는 말문이 막혔다. 당연히 그 학생에게 어리석음을 꾸짖으며 '유구한 우리 역사의 당당한 모습'을 설파하여 반격을 하려고 했는데, 고조선도 망하고, 삼국도 망하고, 통일신라도, 고려도, 조선도 망하고, '식민지'로 전락했다가 강대국들의 전쟁에 휘말려 '대리전'까지 치루고서도 남북대치, 여야와 보수진보 간의 갈등양상에, 현재에도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다 못해 경제까지 휘청거리던 나라꼴 때문에 반박할 적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결국 답을 찾았다. '대한민국'이 진짜 대단한 이유를 말이다. 그럴듯한 비유를 하자면, 대한민국은 '전세계 5위'를 하는 실력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우리는 그 대단한 실력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걸까? 그건 전세계 1등부터 5등까지 '한 클라스'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10위권, 100위 권 밖에 있는 있는 나라들은 저 멀리에 있고, 하필이면 전교 1등(미국), 2등(중국), 3등(러시아), 4등(일본), 그리고 5등(대한민국)이 한 반에 모여 있어서 '세계적인 클라스'인데도 그 실력이 제대로 돋보이질 않는 셈이다. 대략 전세계 50등을 하고 있어도 아프리카 한복판에 있었다면 '대빵 노릇'하며 저 커다란 대륙을 좌지우지 할 수 있었을텐데, 하필 '최상위 클라스'가 대한민국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니 제대로 된 실력을 뽐내질 못하는 셈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전세계 꼴찌'에 '깡패 국가'인 북한도 한 클라스에 속해 있어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속에서 '대한민국'은 불과 100년도 안 되는 시간속에서 세계적인 탑클라스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 우리가 '한국사'를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반만년'동안이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면서 '고대문명국의 지위'를 누려도 좋고,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할 수도 있고, '화려한 문화유산'도 풍족하니, 어디에 내놔도 빼어난 역사임에 틀림없다. 또한, 나라의 흥망성쇠에 따라 '약한 모습'을 보인 적도 많았지만, 단 한 번도 '고유한 문화'를 빼앗기고서 다시 되찾지 못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 증거로, 거대한 중국대륙에 속해 어마어마한 영향을 받았으나 '고유한 언어'를 잃어버린 적이 없다. 중국 역사속에 등장하는 수없이 '사라진 민족들'을 보라. 그들은 고유한 언어와 글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는 자취를 찾아볼 수조차 없지 않은가. 한때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우리말글'을 잃어버릴 뻔한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엔 다시 되찾았고, 오히려 '한자'를 쓰지 않고도 '전세계 모든 문자와 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의 위대함만 세계 만방에 떨치는 계기가 되었다. 오히려 현재의 일본 젊은이들이 '한본어'라는 '한글'을 차용해서 일본어를 구사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박시백의 고려사>가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고려의 위대함'을 일깨우는 목적에서 쓰여진 것이라면, 우리는 더 나아가서 '위대한 한국사'로 새로 정립하여 우리의 자랑으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 우리의 '고려사'가 부끄럽지 않게 되었는데, 다른 역사를 부끄럽게 여길 까닭이 없지 않느냔 말이다. 물론 '국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국중심주의에 빠져 역사적 사실까지 날조하고 왜곡하고 곡해해서 유리하게 해석하자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사'에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빼앗아 내것으로 만들고도 반성하지 않는 '제국주의적 역사관'이 없기에 자랑스러워할 만하다는 것이다. 그리고도 전세계 탑클라스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선진국이라 일컫는 나라들의 역사를 보면 우리와 다르다. 그네들은 '침략'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위해 '문명개화'를 핑계삼아야 했지만, 우리는 그들의 침략을 받은 '피해국가'인데도 꿋꿋하게 버티고 고난을 감내하여 끝끝내 기적을 이루어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걸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의 역사에 '침략의 야욕'을 뿜뿜하며 '젊은 청년들'을 생지옥과 같은 전쟁터로 내몰고서 살아돌아오면 '영웅 대접'하며, 장렬히 전사하면 '신과 동급'으로 추증하여 참배라도 올려야 자랑스럽게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역사'를 다시금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역사의 어느 한 부분을 펼쳐봐도 감히 그 누구도, 그 어느 나라도 우릴 함부로 볼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저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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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빛날래! 쾌걸 공주 엘리자베트 3
아니 제 지음, 아리안느 델리외 그림, 김영신 옮김 / 그린애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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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IV / 그린애플 6번째 리뷰]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트 시리즈의 최종판이다. '순정동화'의 마지막답게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는데, 그건 바로 '프랑스 국왕 루이16세의 대관식'이었다. 물론 대관식이 열리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늘 그렇듯 엘리자베트 공주에게는 쾌활한 소동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좀 스케일이 크다. 대관식에서 꼭 쓰이는 '성스런 보물들'을 훔쳐가려는 도둑 일당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도둑들이 훔쳐가려는 보물은 다름 아닌 '루이16세'가 대관식에서 왕위에 정식으로 등극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샤를마뉴의 왕관'이었다. 무려 4킬로그램에 해당하는 금은보화로 장식된 화려한 왕관이었는데, 역대 프랑스 국왕이라면 대관식에서 꼭 그 왕관을 써야만 인정받았단다.

샤를마뉴 대왕이라면 그 유명한 '카롤루스 대제'이기도 하다. 다른 이름 같지만 '동일인물'이다.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가 '서유럽 전체'를 통일했을 때가 바로 '사를마뉴 대왕' 집권기였기 때문이다. 이후 '베르됭 조약'에 의해 프랑크 왕국이 3개로 쪼개지면서 '서프랑크 왕국'은 프랑스로, '동프랑크 왕국'은 독일로 각각 역사 편입을 하면서 '프랑스 역사'에서는 샤를마뉴 대왕로, '독일 역사'에서는 카롤루스 대제로 부른다. 스펠링은 'Charlemagne'다. 흔히 서로마제국의 황제 '카롤루스 대제'라고도 많이 알려졌다. 서로마제국의 멸망이 '게르만족의 대이동' 때문이라고 볼 정도로 수많은 게르만족들이 서로마제국의 영토를 나눠먹었으나, 현재의 프랑스 지역이 일부를 '프랑크족'이 차지하고, 그 지역의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면서 '메로빙거 왕조'를 열고, 과거 서로마 지역의 대부분을 '카롤루스 대제'가 차지하게 되면서 '서로마제국의 황제'라는 별칭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샤를마뉴 대왕이 죽자 왕국은 셋으로 쪼개졌고, 다시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기에 '서로마제국 황제'라는 명칭도 자연스레 폐기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독일 제국이 그 명칭을 이어받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라는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으나, 로마제국의 황제다운 강력함은 찾기 힘들었다.

암튼, 프랑스 왕정국가는 이후 대관식에서 '왕홀'과 '정의의 손'이라는 권위와 신성함을 상징하는 장식물 이외에 '샤를마뉴의 검과 왕관'을 대관식에서 선보이며 더욱더 화려하고 웅장한 대관식을 연출했단다. 현재 '샤를마뉴의 검'은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보관중이지만, '샤를마뉴의 왕관'은 도난을 당하거나 파괴되는 수모를 겪다가 루이16세의 대관식 이후 프랑스 혁명 때 잃어버리고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단다. 기록에 따르면 루비 16개, 루비를 떠받치는 사파이어 16개, 에메랄드 16개, 총 48개의 보석이 박혀 있고, 왕관 안쪽에는 진주를 덧댄 진홍색 벨벳 모자로 마감을 해서 무게만 해도 무려 4킬로그램에 달했다고 한다. 거의 금 10돈이 3750그램이니, 거의 금 11돈에 해당되는 무게이다. 그걸 반나절 동안이나 진행되는 대관식 내내 쓰고 있었다니 '왕관의 무게'가 정말 장난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물건이니 혁명의 시기에 혼란을 틈타서 사라져버린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동화속에서 엘리자베트 공주는 이런 중요한 보물이 도난당하지 않도록 친구들과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도난의 위기'를 헤쳐나가고 무사히 친오빠 루이 오귀스트가 '루이16세'로 등극할 수 있게 힘을 모았다. 이를 두고, 동화속에서는 '연대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서로의 힘을 모아 함께 책임을 지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을 '연대'라고 말했다. 동화속에서는 '어린이'들이 연대를 해서 왕관을 훔쳐가려는 도둑들의 음모를 해결했고, 심지어 '외국인'들도 함께 참여해서 무사히 대관식을 치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위기는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이고, 이웃 나라가 고난을 당하면 그 주변 국가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남의 문제'로 치부하고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기에 '연대'는 우리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모든 인류가 함께 참여할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연대를 하게 되면 못할 일도 없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건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인 '연대'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건 꼭 전세계인들이 모두 '연대'를 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더구나 강대국이 벌이는 살육전쟁과 관세전쟁은 또한 어떤가? 연대는커녕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난 것마냥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고만 있지 않은가 말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탄핵찬반 논쟁'은 도를 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이룩한 민주화이고, 어떤 희생을 치루고 피워낸 '민주주의'인데, 지금 그꼴이 어떤가? 이게 정녕 민주주의란 말인가? 서로의 생각과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해주는 기본 예절은 어디가고, 서로를 향한 막말과 욕설로도 모자라 '폭력과 위법'을 일삼느냔 말이다. 제발 부끄러운줄 알고 예의를 지키란 말이다. 그렇게 서로를 원수로 여기고 쌈박질하는 '남북갈등'에, 진보와 보수의 '남남갈등'까지 더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탄핵갈등'까지 덧붙여서 나라를 아주 망하게 만들려 작정했느냔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아서 이득을 보는 것은 딱 한 명이다. 그 한 명만이 '다 죽은 목숨'을 연장시키고, 국민 모두를 악의 구렁텅이로 내몰아서, 저 혼자 잘 살면 땡 잡은 거고, 못 잡아서 죽어도 '개죽음'이 아니라 '본전'이니 막나가는 것이다. 거기에 놀아난 '동조범'들도 마찬가지 속셈이고 말이다. 왜 우리가 이런 죽어 마땅한 한 놈 때문에 나라꼴을 이모양 이꼴로 만들어야만 한단 말인가. 제발 정신 차리고 '딱 한 놈' 잡아족치는 연대를 보여줄 때다. 이 책의 제목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우리 함께 빛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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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을 달릴래! 쾌걸 공주 엘리자베트 2
아니 제 지음, 아리안느 델리외 그림, 김영신 옮김 / 그린애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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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XXIII / 그린애플 5번째 리뷰]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트 시리즈 제5권에 해당하는 이번 책의 제목은 <나의 길을 달릴래!>다. 엘리자베트 공주는 우리에게 친숙한(?) 프랑스 왕 루이16세의 친동생이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루이16세의 '무능함'만을 부각해서 보았지만, 그가 프랑스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속사정까지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시리즈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동화같은 이야기를 써놓아서, 여자아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재미나면서도, 동시에 '역사의 이면'도 살펴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루이16세'는 어린 여동생의 슬픔과 고통까지 걱정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오빠이며, 동시에 그런 따뜻한 마음씨로 가족을 돌보는 것처럼 프랑스 왕국의 백성들에게도 '자애로운 아버지'로 군림하고 싶었던 평범한 임금이고 싶어했을 거라는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물론, '격동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구체제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던 무능한 임금의 모습도 루이16세의 한계점임은 분명하고 말이다. 만약, 루이16세가 평화로운 시대에 재임을 했더라면 그는 참 태평스런 시대를 누리게 했을 수도 있는 마음씨 따뜻한 임금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천방지축인 엘리자베트 공주를 보고 있으면 말이다.

이번에도 엘리자베트 공주는 사건사고를 몰고 다닌다. 단 하루도 얌전히 '공주 수업'을 받은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번엔 스케일이 더 커졌다. 북아프리아에 위치한 국가, 리비아에서 평화사절단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앞서서 언급했던 '베르사유 동물원'에 사육하게 될 동물들을 우호를 약속하는 선물로 데리고서 아주 호화롭게 방문했다고 한다. 1775년에 벌어졌던 실제 사건이다. 당시 리비아는 '해상무역'을 통해서 부를 쌓아 경제적 호황(?)을 맞이했더랬는데, 이게 종종 해적질로 변질되기도 했기 때문에 지중해를 항해하는 배들에겐 큰 위협이 되었단다. 이에 루이15세가 프랑스 함대를 출동시켜 리비아의 가장 큰 항구인 트리폴리 항구를 포위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리비아의 파샤(임금)는 프랑스 배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고, 프랑스는 함대를 철수 시켰다. 그리고 1년 뒤, 루이15세가 죽자, 리비아의 파샤는 루이16세와 다시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 사절단을 보낸 것이다. 이때 사절단이 가지고 온 선물이 어마어마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사자, 표범, 낙타, 그리고 아랍의 말까지 프랑스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 신기한 동물들을 엄청 가지고 왔다고 전한다. 특히, 아랍의 말은 유럽의 말보다 뛰어난 혈통을 갖고 있기에 프랑스 사육사들은 이를 '종마(씨말)'로 삼아 뛰어난 품종으로 개량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에 감동한 루이16세는 자신의 대관식에 '리비아 사절단'을 초청하는 것으로 답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엘리자베트가 벌인 소동이 무엇이었냐 하면, 바로 자신의 결혼 상대가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 결혼 결정을 되돌리기 위해서 아무도 몰래 친오빠인 '루이16세'를 알현하고, 결혼을 무효로 되돌리려고 대소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당시에 유럽의 왕실에서는 '정략결혼'이 일상이었다. 다시 말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결혼'을 이용했고, '결혼'을 통해서 전쟁 직전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약속하는 일을 계속 이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각국의 왕자와 공주는 살아생전에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는 듯 싶지만, 일상을 들여다보면 '개인의 영욕을 위해서' 누리는 것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싫은 것도 감수해야만 하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그런 인생을 즐기며(?)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이루는 인물도 있겠지만, 그런 '정해진 운명', '짜여진 각본'에 따라 하기 싫은 것도 억지로 해야만 하는 '연극무대'같은 삶을 저주하는 인물도 있기 마련이다. 엘리자베트 공주는 후자에 가깝고 말이다.

암튼, 엘리자베트가 이번에 결혼할 상대는 포르투갈 왕자다. 하지만 얼굴도 모른다. 그럼에도 결혼을 해야만 하는 까닭은 당시 프랑스와 앙숙이었던 영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포르투갈을, 프랑스쪽으로 끌어들여 한편으로 삼고 영국을 고립무원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영국은 '신교(프로테스탄트)의 국가'이고, 포르투갈은 '구교(로마 가톨릭)의 국가'이지 않은가. 그렇게 같은 종교(로마 가톨릭)인 프랑스와 포르투갈이 손을 잡게 되면 영국과의 경쟁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번 '프랑스 공주'와 '포르투갈 왕자'의 결혼은 아주 중요한 결정을 담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는 국가적인 이익을 따지는 셈법이고, 엘리자베트 공주 '개인의 삶'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폭력(?)적인 결정인 셈법이다. 더구나 엘리자베트 공주는 이제 막 '열한 살'이 되었을 뿐이다. 아무리 결혼 날짜가 2년 뒤라고는 하지만, 이미 '정해진 운명'이 자신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결정되어 버린다는 것에서 슬프고 아픈 것이다. 왕실 가문에 태어난 운명이 그렇게 결정되어 있다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인륜지대사로 여기는 '결혼'인데, 막강한 권력을 쥐고 흔드는 왕실 가문의 사람들조차 '정해진 이익을 위해서' 강제로 짝을 맺게 하는 것은 마치...훌륭한 혈통을 얻기 위해서 억지로 '짝짓기(교배)'를 강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냔 말이다.

그래서 이번 책에서는 리비아 사절단이 데리고 온 '암말, 에클립스'가 등장한다. 바람처럼 달릴 때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그런데 이번 사절단이 에클립스를 데리고 온 목적이 억지로 교배를 시켜서 뛰어난 혈통의 말을 낳게 하는 것이 목적이란다. 그렇게 뛰어난 말들이 프랑스에 넘쳐나게 되면 프랑스와 리비아 사이의 평화도 오래도록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서 말이다. 엘리자베트의 '정략결혼의 목적'과 아주 흡사하지 않은가. 물론 아주 좋은 목적이다. 분명 '이익이 되는 결정'이고 말이다. 그런데 에클립스의 행복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단지 '가축'일 뿐이니 유용하게 써먹고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폐기처분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까? 왕실의 '가족'으로 온갖 보살핌을 살뜰하게 받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주 큰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희생(!)시켜 버리는 것으로 결정해버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냔 말이다.

여기에 프랑스 왕실의 교육을 담당한 '수석교사 마르상 부인'의 태도가 한 몫 한다. 그녀는 루이16세부터 엘리자베트까지 왕실 가족의 어린 시절에 아주 '철저한 교육'을 하는 것을 막중한 책임으로 맡고 있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 귀족 가문은 프랑스 역대 부르봉 왕조의 '왕실 담당 가정교사'로 책무를 맞고 있어서 죽을 때까지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을 '프랑스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엘리자베트 공주의 경우를 봐도 알겠지만, 너무너무 싫은 사람이다. 말끝마다 "프랑스 공주(왕자)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라면서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고, 지루하고 따분한 수업을 할 뿐이다. 각자의 성향이나 재능에 따라서 '유연한 학습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천편일률적'으로 왕실 가문에 걸맞는 교육이랍시고, '변함없이 엄격한 교육'만을 강요할 따름이다. 그러다 '국익에 우선하는 행사'가 발생하면 아낌없이 '왕실 가족'을 희생양 삼아 '정략결혼'을 밀어붙이고, 그렇게 성사된 결혼으로 얻은 '국익'을 자신의 교육적 커리어 덕분이라고 우쭐거리는 아주 밥맛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교사로서의 자격'도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엘리자베트 공주는 사사건건 '마르상 수석 교사'와 대립을 하고 수업이 아니라 벌을 받길 자처한다. 물론, 이런 모습도 '학생으로서의 훌륭한 자질'은 아닐테지만 말이다.

어떤가? 왕자와 공주의 삶이 그들이 입고, 먹고, 자는, 모든 것들의 화려함만큼이나 부러움의 대상인가? 이렇게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삶은 저 넓은 들판에서 맘껏 뛰어놀다가 적당한 때에 도살되어 식탁위에 맛난 요리로 오르는 '육우(고기소)의 삶'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에스파냐의 전통, '투우'가 어차피 도살될 소와 함께 펼칠 화려한 퍼포먼스로 육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처럼 '왕실 가문의 왕자와 공주의 결혼식'도 그런 투우의 화려함과 그닥 다르지 않아 보이게 되었다.

그래서 엘리자베트가 벌인 소동의 결과가 자못 궁금해진다. 그녀는 어떤 소동을 벌였으며, 정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 결정을 스스로 이루어낼 수 있었는지도 궁금해진다. 쾌걸 공주 엘리자베트의 다음 소동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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