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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툰 1 - 가족의 탄생 ㅣ 비빔툰 (문학과지성사) 1
홍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My Review MCMLXXVI / 문학과지성사 4번째 리뷰] 21세기가 시작하면서 나는 진정한 독립을 하게 되었다. 비록 부모님과 한 집에서 살긴 했지만 더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고서 '경제독립'을 하고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빌린 대출금도 내가 대신 갚아나가는 것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신문구독'도 이때 처음 했다. '접이식 자전거'를 공짜로 주겠다던 <조선일보>를 거절하고, '한달 구독료 면제'를 내건 <한겨레신문>을 구독했다. 그때 재미나게 보던 만화가 바로 <비빔툰>이었다. 그러다 <비빔툰> 연재가 종료되고 얼마 안 되어 한겨레 구독도 끊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재종료와 상관없이 '내 주머니 사정'이 당시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추억이 담겨 있지만 <비빔툰>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내 추억일 뿐이다. 하지만 <비빔툰>을 연재한 홍승우 작가도 자신의 작품에서 유독 '추억'을 자주 다루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도 자꾸 옛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그러다 문득 지금 읽고 있는 '마스다 마리'의 <수짱 시리즈>와 언뜻 비슷한 점이 보인다. 물론 겉으로는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수짱은 '삼십대 미혼여성' 이야기인데 반해, 정보통과 생활미는 '삼십대 초반과 이십대 후반(3살 차이)'에 서로 만나 초고속(?)으로 결혼까지 골인하여 '신혼살림과 육아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것이기에 사뭇 다른 내용이다. 출생연도는 홍승우가 1968년, 마스다 마리가 1969년이고, <비빔툰>은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연재했고, <수짱 시리즈>는 2006년에 화제를 몰고 와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시기적'으로 <비빔툰>이 더 일찍 선보인 작품인데 작품의 분위기는 <수짱 시리즈>가 더 연배가 많은 사람의 작품처럼 보인다.
이런 차이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무래도 90년대 미일간 '플라자 합의'를 통해서 일본에 '부동산 경기' 거품이 꺼지면서 시작된 '잃어버린 10년 시리즈'가 90년대 불고 있어서 만화에서조차 그런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우울함'이 깔려 있는 모양이다. 그러다 2000년대에는 '잃어버린 20년'차로 접어들면서 '여성의 맞벌이'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일본 여성들이 결혼을 뒤로 미루고 경제활동에 매진하게 되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일과 사랑'을 병행하지 못한 일본여성의 고뇌를 <수짱 시리즈>에 잘 녹아낸 것 같은 느낌이다. 반면에 <비빔툰>도 1997년 IMF 경제체제를 맞이한 '한국경제의 위기 상황'속에서 연재를 시작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정보통과 생활미는 '일과 사랑'을 모두 잡고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며 가족만이 누릴 수 있는 알콩달콩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속에도 '불경기'로 인한 가정불화가 은근히 깔려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가족'이기 때문에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찾아내고, 그것을 '웃음과 재미'로 승화시킨 작품이 <비빔툰>이 가진 매력일 것이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수짱 시리즈>는 오직 '여성의 관점'에서 모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비빔툰>은 정보통으로 대변되는 '30대 가장의 관점'과 '20대 주부의 관점'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신혼부부이자 초보부부, 그리고 한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다양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어서 좀더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일 것이다.
그런데 읽다보면 두 작품은 꽤나 공통점이 많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어려움과 고민'을 녹아내어서 그들 나름의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있고, 또한 이를 '만화형식'으로 풀어내고 있기에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문제제기]와 [대안제시]가 꾸준히 반복하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두 작품 모두 읽고 있으면 처음엔 재밌어서 웃지만 웃음이 잦아들 때즈음에는 진지한 '생각할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점이 꼭 닮았다.
하지만 <비빔툰>은 힘들어도 웃고 살자는 메시지를 확실히 짚고 넘어간다. <수짱 시리즈>는 30대 독신여성의 고민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끝내 '결혼'을 대안으로 삼지 않았다. 여성의 독립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수짱과 그녀의 친구들도 모두 '결혼'을 서두르지 않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그리고 결혼을 한 몇몇 친구들도 그리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고, '여성의 고민'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계속 생기기 마련이라는 투로 풀어냈을 뿐이다. 그래서 좀 답답한 느낌이려나? 그럴 거면 왜 그렇게 고민을 했는지, '고민하기 전의 상황'과 달라진 것은 결국 한살한살 먹어가는 '나이'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빔툰>은 화끈했다.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한국인답게 연애도, 결혼도 속전속결, 육아전투도 각개전투와 연합작전을 펼치며, 시댁과 처댁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극복과정, 직장과 가정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문제해결 겸 부부싸움, 그럼에도 칼로 물 베는 화목한(?) 가족의 탄생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진짜 20년도 더 넘어서 <비빔툰>에 연재된 내용들을 다시 들춰보니 감회가 새로와졌다. 근데 '시즌2'가 나왔더라. '시즌1'도 9편의 단행본이 나왔던데, 아무래도 '시즌2'를 먼저 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