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7 : 수군수군 호모 사피엔스 - 어린이를 위한 호모 사피엔스 뇌과학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정재승.차유진 지음, 김현민 그림, 백두성 감수 / 아울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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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류탐험보고서 7 : 수군수군 호모 사피엔스> 정재승, 차유진 / 백두성 / 아울북 (2023)

[My Review MMCCIV / 아울북 4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서른세 번째 리뷰는 어린이 뇌과학 공부를 위해서 출간한 <정재승의 인류탐험보고서 7>이다. 이 책은 <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의 '이전 작품'의 성격을 띠고 출간되었기에 두 시리즈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기도 하다.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는 완간된 상태다. <인간탐구보고서>는 계속 출간중이고 말이다. 기본적으로는 '아우레 행성의 외계인', 즉 '아우린'들이 지구에 와서 활약하는 줄거리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것도 두 시리즈가 같고, 외계인이 '인간(인류)'을 탐구하면서 '뇌과학'의 개념을 익힌다는 점도 같다. 다만, <인간탐구보고서>는 좀더 '과학적인 접근'으로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분석하고 있다면, <인류탐험보고서>는 '역사고고학적인 접근'으로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렇게 다른 점이 분명한데도 아우린들이 전체적인 이야기 줄거리를 끌고 가고 있는 탓에 어린이들은 재미에 흠뻑 빠져서 읽기만해도 '역사와 과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상승하게 되는 유익한 책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정재승의 인류탐험보고서 7>의 내용속으로 들어가보자.

<정재승의 인류탐험보고서 7> 관점 포인트 : 역사 공부를 좋아하고 인류의 기원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한 번 쯤 들어봤을 '호모 사피엔스'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미 앞선 책에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빌리스''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에 대해서 벌써 '호모 사피엔스'까지 넘어 갔음을 짐작할 것이다. 그렇다면 깜짝 퀴즈를 내겠다. 에렉투스는 '직립 보행'이란 특징이 있고, 하빌리스는 '도구'를 잘 다뤘으며, 네안데르탈렌시스는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피엔스'의 특징은 무엇일까? 사피엔스가 '지혜'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래서 우리 명칭으로는 호모 사피엔스를 '슬기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정답은 '거짓말'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거짓말'을 즐겨했을 정도로 '이야기꾼(재담꾼)'이란은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호모 사피엔스가 살던 시기에는 인간종의 친척들도 함께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간종이 바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였다. 사피엔스보다 월등한 체격과 큰 두개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두 무리간 경쟁에서 네안데르탈렌시스가 훨씬 더 유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피엔스는 다른 인간종을 멸종(?)시키다시피 하고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오늘날의 인류고고학자들은 그 원인으로 '인지혁명'을 들고 있다. 사피엔스 무리는 저들끼리 의사소통을 하면서 '사실'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까지 발휘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사피엔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까지 '만들 수 있'었고, 보이지 않는 것도 '믿을 수 있'었으며, 그 덕분에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고, 신을 믿는 종교까지 만들어냈다. 어디 그뿐인가? 인지혁명 덕분에 사피엔스는 '노래'와 '춤'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었으며, 심지어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서 퍼뜨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능력까지 생겨났다. 이런 거짓말은 단순히 사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것을 넘어 '무리의 결속'을 다지는 용도로도 쓰이게 되었다. 이른바 '소문'과 '믿음'이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소문'과 '믿음'의 힘이란 다름 아닌 '사고력', 즉 '생각하는 힘'이 폭발적으로 향상할 수 있게 했다. 그 덕분에 사피엔스들은 '의사소통'을 하는데 더 구체적으로 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지식 축적'이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각종 '문화예술'로 승화되면서 인류는 더 현명해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인류는 생태계에서 포식의 '대상'에서 '주체'로 위치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래서 사피엔스는 덩치가 작았지만 무리가 의사소통을 하며 협동력을 발휘하면 '매머드' 같은 거대한 동물도 사냥할 수 있었고, 다른 인간종과의 경쟁에서도 유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가 다른 인간종들을 학살한 결과 오늘날 '유일한 생존자'로 남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도 있다. 그만큼 인류고고학은 '지식의 원천'이 빠르게 변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암튼, 인류는 '거짓말'을 잘 할 수 있을 정도로 두뇌를 발달시켰던 결과로 오늘날에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할 수 있게 되었다. 거짓말이 꼭 나쁜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야 사피엔스들이 '허구의 이야기'를 지었다는 것도 믿을 수 있고, '간절한 기도'를 담아 염원을 빌고, 희망을 품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기에 생존전략에 유리해지게 된 것이다. 더구나 '동굴 벽화' 같은 예술작품을 남길 수 있는 원천이기도 했다. 만약 사피엔스들이 '거짓말'을 할 줄 몰랐다면 동굴 벽에 굳이 '그림'을 그릴 필요도 없다. 사실관계만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림'은 그저 그림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채집하거나 사냥을 하러 떠나야지, 하릴 없이 동국 벽에 '그림' 따위를 그려서 뭣을 하겠는가 말이다. 동굴 벽에 들소 10마리를 그린다고 배가 부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해진 사피엔스는 동굴 벽에 '들소 그림'을 그리며 다음 사냥에서 잘 잡히게 '기도'를 할 수도 있었고, 무리에게 사냥방법을 전달하며 '사냥법'을 전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가는 글 : 물론 거짓말은 나쁜 짓이다. 남을 속이기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좋은 행동은 아니다. 그런데 거짓말의 '유용성'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보편적으로 인정 받곤 한다. 나이 어린 어린이들이 특정 시기가 되면 '거짓말'을 하면서 헤벌쭉 웃음 터뜨리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아이의 두뇌는 지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왜냐면 우리의 뇌는 '사실인지'만 하는 것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짓말'로 남을 속일 때에는 뇌가 미칠듯이 폭발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고, 뇌활동 영역도 엄청나게 넓어진다. 기본적으로 남을 속이기 위해서는 똑똑해야 하기 때문이니 이해하는데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유용하니 어린이들이 '거짓말'을 해도 혼내지 않아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아이가 잘못을 했는데도 제대로 된 훈육을 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규칙'이나 '도덕'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게 되면 심각한 '가치관 혼란'을 겪고, 심하면 '사회부적응자'로 찍혀서 격리시키거나 추방해야 하는 일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짓말쟁이의 최후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기에 사랑스런 자녀가 '거짓말'을 했을 땐 적절한 훈육을 할 필요가 있다. 그 기준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에게도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따끔하게 훈육해야만 한다. 그리고 거짓말을 일삼다가 다른 친구들에게 '신뢰'까지 잃어버리게 되면 제대로 된 '사람구실'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명심시켜야 한다.

이 책에서는 '말마따'라는 주인공이 입만 열면 거짓말을 늘어놓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말마따가 한 거짓말로 인해서 '인류 최고의 발견'을 이룩하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을 속인 죄로 인해 무리에서 완전하게 쫓겨나는 일도 발생하게 된다. 그럼 어떤 거짓말이 좋은 거짓말이고, 어떨 때는 나쁜 거짓말이 되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그건 직접 이 책을 읽으면서 배워보시길 바란다. 견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백날 설명하는 것보다 딱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단박에 깨칠 소중한 지혜보따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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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전문 퐁퐁 학원
박승희 지음 / 한솔수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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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전문 퐁퐁 학원> 박승희 / 한솔수북 (2025)

[My Review MMCCIII / 한솔수북 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서른두 번째 리뷰는 박승희 작가의 <마음 전문 퐁퐁 학원>이다. 어린이책 명문출판사 한솔수북에서 출간한 따끈따끈한 동화책답게 마음 가득 따스함이 퍼져나가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방과후'에 학원이나 공부방을 의무교육처럼 다니고 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10시간 가까이 공부, 공부, 또 공부만 하고 있다. 그저 뜨거운 교육열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그보다 '소중한 자녀를 믿고 맡길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부모님이 퇴근할 시간까지 '학교와 학원'에 묶어두고(?) 안심을 하기 위함이 더 크다고 본다.

옛날처럼 한 집에 자녀 셋 이상을 두고 해 질 무렵까지 온 동네 꼬마녀석들이 바글바글하게 놀거리가 풍성하던 시절이었으면 부모들도 초등생 시절만이라도 맘껏 뛰놀라고 할 것이다. 헌데 지금은 한 집에 자녀 수가 한 명인 경우가 태반이다. 거기다 부모님들은 '맞벌이'로 직장에 메인 몸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하나 뿐인 소중한 자녀가 '퇴근시간 전까지' 그대로 방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방과후 수업'을 운영하는 등 노력을 해왔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원활하지 않은 형편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초등생들이 다시 '학원 뺑뺑이'를 돌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에 이런 학원이 있다고? 내 마음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학원이 있다고? 그 학원이 바로 <마음 전문 퐁퐁 학원>이다. 그럼 그 소문의 학원으로 들어가보자.

<마음 전문 퐁퐁 학원> 관점 포인트 : 이 학원의 선생님은 '퐁샘'이라 불린다. 왜냐면 학원에 들어선 아이들에게 그날그날에 딱 맞는 아이들의 감정에 따라서 딱 알맞은 퐁을 준비해주기 때문이다. 퐁은 만화애니메이션 <포켓몬>에 나오는 캡슐처럼 생겼다. 또는 놀이동산에서 살 수 있는 커다란 구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퐁에게서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마법같은 일'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퐁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책 속에 등장하는 퐁만 보아도 '내 맘대로 만들기퐁', '입맛대로 요리퐁', '비밀 보장 수다퐁', '마음 찾기 게임퐁', '기분 상승 댄스퐁' 등등 엄청나게 많다. 그 수많은 퐁 가운데 퐁샘은 학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학생들의 마음을 단박에 알아채고 아이들에 마음에 꼭 맞는 퐁으로 수업을 준비한다. 그리고 아이가 그 퐁을 열기만 하면 된다. 퐁을 여는 순간 '가상 현실'이 펼쳐지듯 아이들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펼쳐진 '공간'속에서 마음껏 뛰놀고, 울적한 기분을 풀고, 화난 감정을 털어내고, 기쁘고 행복한 마음이 있다면 나누고 싶은 대상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그러니까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말씀 드린 것이다.

이 책의 중요한 키 포인트는 '퐁샘'이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방법이다.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바로 '관심'과 '경청'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까먹고 어린이를 대하곤 하는데, 이게 큰 실수로 이어지곤 한다. 어린이들도 분명히 '인격'이 있고, '인권'이 있으니 당당히 '한 사람'으로 대우해줘야 한다. 그런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아직 미성숙한 어린아이로만 본다면 큰 실수를 저지를 완벽한 조건이 형성된다. 바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아이들은 상처 받기 딱 좋은 '여린 마음'을 지녔다. 여린 마음이란 자기 마음을 자기도 잘 몰라서 '컨트롤'하기도 힘들고, 자기 감정을 '표현'하기도 힘들어하기 일쑤다. 그런데도 어린이의 마음을 잘 캐치하지 못하게 되면 어린이는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고, 그 상처는 평생 간직하기도 한다. 지금은 늙어버린 어른인 나도 아직까지 그런 상처를 몇 개 가지고 있다. 그럼 어린이들의 여린 마음을 어떻게 하면 잘 캐치할 수 있을까?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관심'과 '경청'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말이다. 퐁샘이 가장 잘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표정만 보아도 그날그날의 아이들의 마음에 딱 맞는 퐁을 골라줄 수 있는 비결이 바로 그것인 셈이다.

나가는 글 : 어린이책은 '아이'만 읽는 책이 아니다. 부모도 늘 함께 읽는 책이어야 한다. 그래야 소중한 자녀와 '대화'를 한 번이라도 더 할 수 있고, 자녀의 생각과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시도해봄직 할 것이다. 암튼 <마음 전문 퐁퐁 학원>을 자녀와 함께 읽었다면 '창의적 독후활동' 겸해서 넌지시 물어보길 바란다. "너는 어떤 퐁을 열고 싶니?"하고 말이다. 너무 쉽고 뻔한 질문이지만 효과는 만점일 것이다. 이때 말로 표현하는 퐁이 자녀의 '진짜 마음'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난 뒤에 그 '진짜 마음'에 딱 어울리는 선물을 준비해주면 좋을 것이다. 이건 오직 부모님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학원쌤들은 고작해야 '독후활동'으로 아이들에게 만들고 싶은 퐁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각종 재료'로 만들기 수업을 하는 것이 고작일테니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은 '독서지도'를 위한 학원쌤도 좋겠지만, 자녀에게 멋진 선물을 줄 수 있는 학부모에게 딱 좋을 책이다.

아울러 그날그날 시시때때로 돌변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딱 알맞게 읽어내는 '관심'과 '경청'도 잊지 마시길 바란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라면 이 책을 읽자마자 이퐁 저퐁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 날 것이다. 하지만 과묵하고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서 '혼자만의 상상'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부모님이 엄하고 무서운 성격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니 더욱 조심스럽게 '아이의 여린 마음'이 상처받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서 '관심'과 '경청'을 하고, "넌 어떤 퐁을 만들고 싶니?"라는 속내가 다 들어나는 뻔한 질문을 던지지 말고, "와~ 퐁퐁 학원 정말 신기한 걸, 아빠는 멋진 자동차를 타고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는 신나는 퐁을 열고 싶은 걸"..뭐, 요런 정도로 부모님이 먼저 마음을 들려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약싹 빠른 어린이들은 "공부 안 하는 퐁을 열고 싶어요. 엄청 비싼 장난감을 만껏 사는 퐁을 열고 싶어요." 등등 부모의 바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런 마음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럴 때에도 일단은 그 마음을 다 받아주어야 한다. 무턱대고 혼낼 궁리부터 하지 않길 바란다. 대신, "그럼 [공부 안하는 쿠폰]을 만들자. 공부를 평생 안 할 수는 없으니까. 30분 공부 안하기 쿠폰을 언제든 쓸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안타깝지만 엄청 비싼 장난감은 '당장' 살 수는 없겠구나. 하지만 사고 싶은 장난감 목록을 만들어보렴. 그중 한 개는 아빠가 사주마. 대신 '그 장난감이 꼭 필요한 이유와 얼마나 좋은 장난감인지 장점도 꼭 써보렴. 그 이유와 장점이 정말 '합리적'이라면 아빠가 꼭 사준다!" 이런 식으로 '협상(?)'을 하면 좋을 듯 싶다.

<마음 전문 퐁퐁 학원>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살짝 엿보고 '여린 마음'에 상처를 주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관심'과 '경청'을 다짐해보도록 하자. 또한, 우리 어린이들은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연마해보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듯 싶다. 나 자신도 잘 모르는 것이 '마음'이지만, 그 마음을 '퐁'으로 표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퐁이 하나만 있을 까닭은 없다. 퐁퐁 학원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퐁을 만들어도 좋다. 그만큼 '자기 마음'을 잘 표현했다는 증거가 될테니 말이다. 어제의 퐁과 오늘의 퐁, 그리고 내일의 퐁이 한결 같이 똑같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담은 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줄 용기다. 엄마, 아빠, 선생님, 친구, 누구라도 좋다. 내 마음의 퐁은 홀로 간직하는 것보다 '함께' 나누는 것이 훨씬 이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어린이들이 만든 퐁을 잘 '기록'해두는 것도 훗날 좋은 추억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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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인명사전 - 나를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세계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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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인명사전 : 나를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 아멜리 노통브 / 김남주 / 문학세계사 (2010) [원제 : Robert des noms propres (2002)]

[My Review MMCCII / 문학세계사 1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서른한 번째 리뷰는 끔찍하고 비정상적인 소설만 쓰는 이상한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로베르 인명사전>이다. 이 책의 부제를 눈여겨 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나를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들은 소설속 주인공이 자신을 살해한 '인물'에 대해 이런저런 변명과 핑계를 늘어놓았을 거라고 짐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장르의 소설은 식상할 정도로 너무 많다. '반전'을 전혀 줄 수 없는 진부한 방식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작가가 누군가? 절대로 '정상'이라거나 '제 정신'이 아닐 수밖에 없는 소설가. 맞다! 아멜리 노통브다.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아멜리 노통브'였던 것이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서 아멜리 노통브는 총에 맞아 뒈져버린다. 이렇게 결말을 다 밝혀놓고 '스포'를 한다고?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멜리 노통브가 죽건 말건 이 소설의 줄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작가 스스로도 책 겉표지에 당당히 밝혀놓은 것이다. '자신'을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이라고 말이다. 참으로 엉뚱한 소설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로베르 인명사전> 관점 포인트 :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은 이럴 것이다.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정말이지 줄거리가 이산 저산 정신이 없을 정도로 난삽하다. 열아홉살 어린 소녀가 임신을 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자마다 그 소녀는 무능한 남편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소녀는 아기를 낳자마자 감옥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고 만다. 하나 뿐인 딸에게 끔찍한(?) 이름을 지어주고 말이다. 플렉트뤼드. 이게 갓 태어난 여자아기의 이름이다. 다행히 아기는 클레망스라는 친이모에게 인계되어 자라나고, 클레망스는 플렉트뤼드를 자신의 셋째 딸로 여기며 소중히 기른다. 여기까진 어찌어찌 스토리가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다음은 더욱 기괴하다. 클레망스의 '집착'이 보이기 때문이다. 분명 플렉트뤼드를 사랑해서 행동하는 것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플렉트뤼드를 '자신의 꿈'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못다한 꿈을 플렉트뤼드를 통해서 '대리 실현'을 하려는 열망으로 가득해 보인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반면교사처럼 보여주려는양 정말이지 너무 심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다.

클레망스의 못다한 꿈은 '발레리나'였다. 하지만 일찌감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이상'에 비해 '실력'이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평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클레망스의 눈에 플렉트뤼드는 너무 예뻐보였다. 그래서 평범한 아기를 대하는듯 하지 않고 '공주님'처럼 키우려 했다. 플렉트뤼드도 그런 '엄마의 사랑(?)'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엄마(사실은 이모지만, 플렉트뤼드는 그 사실을 모른채 성장한다)의 기대에 한껏 부흥하기 위해서라도 플렉트뤼드는 '공주'처럼 행동했고, 클레망스는 그것을 행복으로 여겼다. 뭐, 여기까지는 예쁜 여자아이를 키우는 여느 엄마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클레망스는 더 나아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쫓겨날 때에도 평범한 아이가 아니니까 상관없다거나, 학교에 입학해서 초보적인 '글자'도 떼지 못해 낙제를 할 것 같다는 담임선생과의 상담에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같지 못하고 플렉트뤼드는 '특별한 아이'니까 아무 상관 없어..라는 식으로 일관한다. 물론 클레망스에게도 다 생각이 있다. 왜냐면 플렉트뤼드가 '발레'에 완전한 소질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집 선생이나 학교 담임선생이 '주위'를 요할 정도로 산만한 학습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데도, 발레 선생이 플렉트뤼드는 "발레를 하기 위해서 태어난 아이예요"라는 말에 꽂혀서 다른 건 아무 상관도 없다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플렉트뤼드는 발레만 잘 하는 천재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다 공립학교를 자퇴하고, '오페라 무용 학교'로 진학을 해서 발레만을 전문으로 배우는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일종의 '아이돌 연습생'처럼 오직 발레만 배울 수 있는 학교이기 때문에 실력 매우 뛰어난 학생들만 모아놓은 학교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플렉트뤼드가 어린 나이에 이곳에 입학하게 된 것 때문에 주위에서 축하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생활은 지옥과 다를 바 없었다. 완벽한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서 '체중'과 '몸매' 관리부터 시작해서 혹독한 연습을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입학한 저학년 학생들은 좋아하는 춤도 출 기회를 주지 않는다. 철저한 '관리'와 반복 '연습'을 해내고 선생으로부터 통과했다는 의미의 인정을 받아야만 10초짜리 짧은 단역의 기회라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런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몸무게가 40킬로그램 이하가 되어야만 했다. 그 이상이면 '돼지'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45킬로그램이 넘어가면 '자퇴'를 강요받아야 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최고라고 칭찬받는 무용수들은 대부분 '해골 형상'을 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플렉트뤼드는 일반적인 학교생활에서 만족을 느낄 수 없었기에 이곳에 왔고, 발레를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학생으로서 너무나도 모범적이고 바람직한 태도 아닌가? 그런데 여기에 아주 큰 문제가 있다. '성장기 소녀'에게 무리한 다이어트와 혹독한 훈련을 강행하다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몸무게'가 늘지 않으려도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장을 위해서 배고픔이 몰려오면 선생들 몰래 '한 입'을 더 먹었다가 몸무게가 늘어서 혼쭐이 나는 일이 반복되었지만, 플렉트뤼드는 이런 꾸중조차 받기 싫었기 때문에 성장에 필요한 딱 한 입조차 먹기를 거부했다. 특히 뼈성장에 필수적인 '칼슘'이 들어있는 유일한 음식인 '저지방 요쿠르트'까지 말이다. 그러자 플렉트뤼드는 뼈마디가 쑤시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아픔을 애써 참아냈다. 선생에게서 칭찬을 듣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다 더는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오자 플렉트뤼드는 엄마인 클레망스에게 '아픔'을 호소한다. 그러나 클레망스는 플렉트뤼드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성장통'쯤으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대한다. 왜냐면 클레망스의 눈에 플렉트뤼드는 너무도 완벽한 발레리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를 비롯한 다른 언니들은 의견이 달랐다. 플렉트뤼드의 키가 155센티미터에 몸무게는 32킬로그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뼈만 앙상한 '해골 형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클레망스는 그런 딸의 형상을 보면서도 기쁨과 환희의 미소만 띌 뿐이다. 그렇게 플렉트뤼드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최고의 무대를 선보였지만 아름다운 점프를 위해 힘차게 도약했다가 발끝으로 착지하는 동작을 하다가 다리 전체가 부숴지고 만다. 그녀의 뼈는 이미 폐경을 한 70대 할머니처럼 변했기 때문이다. 의사는 두 번 다시 발레를 할 수 없다는 진단을 내린다.

플렉트뤼드는 발레가 전부였던 삶을 살다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끝내 자살은 하지 않았다. 퍽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 열일곱 살밖에 안 된 소녀다. 고작 발레를 할 수 없다고 인생을 끝마치기엔 너무 이른 시기이지 않은가. 그래서 플렉트뤼드는 재활치료에 전념하고 하루하루 일상을 되찾기 위해 음식을 섭취했다. 그리고 몸무게가 40킬로그램이 되자 얼추 사람의 형상으로 되돌아왔다. 아빠는 이 모습을 사랑스럽게 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병문안조차 오지 않았다. 플렉트뤼드에게 엄마는 '인생의 전부'라고 할 정도였기 때문에 빠르게 회복을 하고 두 다리로 직접 걸어서 엄마의 집으로 향했다. 엄마에게 다시 두 다리로 걷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보면 엄마는 또 환희에 찬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기뻐할 거라 믿어 의심조차 하지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엄마는 두 다리로 걸어오는 플렉트뤼드를 보고 내뱉은 첫 마디는 "넌 돼지처럼 살쪘구나"였다. 플렉트뤼드는 인생은 무너져 내렸다.

나가는 글 : 전체 이야기는 정말 산만하기 때문에 핵심 포인트만 잡아서 정리해본 내용이다. 짤막하게 간추리면, 플렉트뤼드의 인생은 클레망스의 꿈으로 점철되었고, '엄마의 꿈'을 대신 실현시키기 위해서 '엄마의 삶'을 자신의 인생으로 여기며 살아온 딸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그저 '치맛바람이 쎈 엄마'가 주제인가 싶지만, 그보다는 '자식의 삶'을 송두리채 빼앗아 '자신의 삶'으로 바꾸려 드는 스릴러와 공포, 그리고 서스펜스가 좔좔 흐르고 있다. 그런데 겉으로는 그저 그런 '어린 소녀의 성장소설'처럼 꾸며 놓은 것이다. 이래서 아멜리 노통브를 '천재 작가'로 부르는 것 같다. 치밀한 짜임새만 보았을 땐 딱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천재 작가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초현실적인 소설'을 썼다. 기발한 '발상'만 했더라면 천재 소리를 듣고도 남을 텐데, 기발하다 못해 기괴한 '이야기 전개'를 하면서 그냥 '미xx 널뛰기'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대리만족이 실패로 돌아가자 클레망스는 플렉트뤼드에게 '진실'을 밝히고, 자신의 딸이 아닌 자신의 동생이 낳은 '조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친엄마가 친아빠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했다는 사실로 털어놓는다. 고작 열일곱 살 어린 소녀에게, 더구나 전부라고 생각했던 '발레'조차 더는 할 수 없게 된 처지에, 클레망스는 플렉트뤼드에게 딱 하나 남은 '끈'인 엄마마저 단칼에 삭제해버린 것이다. 이런 비극을 던져주고 이야기는 어디로 향했을까? 어이 없게도 플렉트뤼드는 '발레'가 아닌 '연기'로 진로를 바꾸고 보란듯이 성공에 이른다. 원래 어릴적부터 '미인'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예뻤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수를 꿈꾸는데 그것이 또 상상을 초월하게도 '엄마'가 아니라 '자신'을 파멸시키는 쪽이다. 그런데 파멸의 순간 '기적'이 찾아오고, 그 기적과 함께 천재 작가 '아멜리 노통브'가 등장해서 플렉트뤼드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고, 다들 아시다시피 아주 진부한 결말인 천재 작가의 사망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역시 노통브식 결말은 늘 허무하다. 딱 하나 <적의 화장법>만 빼고 말이다. 그건 아주 탁월했다.

그러면 궁금증 하나는 해결이 되었다. 천재 작가로 소문이 난 까닭은 아멜리 노통브의 '독특한 이야기 전개방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독자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양상이다. 어떤이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지만, 나와 같은 독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않고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닌 '명확하게' 싫은 이유가 있다. 바로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딴에는 '정상'은 진부함과 지루함을 동반한다. 너무나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다루기 때문에 금새 식상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전'을 주기 위해 '비정상'을 추구하는 경향을 강렬하게 선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허나 '비정상'과 '반전'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반전은 '낯섦'을 바탕으로 하지만, 비정상은 '부도덕'하고 '불건전함'을 넘어 '혐오'스러움까지 내비칠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아멜리 노통브는 감히 부도덕적이고 불건전함을 넘어 혐오스러움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왔다갔다 '경계'를 허물어버리곤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아멜리 노통브를 '천재 작가'로 인정할 수가 없다. 적어도 개인적으로 말이다.

몇몇 작품은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멋졌다. 이를 테면 <적의 화장법>이 대표적이다. 이 소설에서는 '내면의 적'이 등장하는데, 그 적의 정체는 다름 아닌 나와 다른 '또 다른 나'였기 때문이다. 공항 대합실에서 느닷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불청객'과의 오랜 대화 끝에 밝혀진 진실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아멜리 노통브의 '비정상'과 '부도덕'의 미묘함을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결말에서 마주할 수 있는 '낯설음'이 주는 강렬한 인상은 이 소설을 여러 번 읽고 또 읽게 만드는 매력을 던져준다. 그런데 <로베르 인명사전>은 어떤가? 아름다운 동화속 공주님 이야기로 포장된 상자를 개봉하자 마주한 것은 '낯설음'이 주는 강렬한 인상이 아니라 '추악한 속내'를 드러내는 불쾌한 적(敵)을 마주할 뿐이다. 그것도 언제나 기쁨과 행복을 줘야 할 '엄마'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세상에 엄마가 딸에게 퍼붓는 저주라니...천재 작가로 불리는 아멜리 노통브도 이런 '무리수'를 캐치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결말을 바꾸었다. 천재 작가를 죽일 수 있는 영광을 말이다.

이제 남은 궁금증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 왜 재밌냐는 의문이다. 이 소설조차 재밌다. 초반의 황당한 설정만 넘기면 끝까지 일사천리로 술술 읽어나갈 수 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 이유를 밝혀낼 여정은 아직도 먼 것 같다. 앞으로 읽어야 할 작품이 꽤 남았다. 부지런히 달려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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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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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아멜리 노통브 / 허지은 / 문학세계사 (2015) [원제 : Le Voyage d'hiver (2009)]

[My Review MMCCI / 문학세계사 10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서른 번째 리뷰는 누가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천재 작가로 불리는 아멜리 노통브의 <겨울 여행>이다. 세월이 흐르면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고 하는가 보다. 내가 노통브의 소설을 처음 접했던 것이 2003년이다.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흥분이 잦아들지 않던 시절에 그녀의 첫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을 처음 읽었는데 너무 강렬했다. 그런 장르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감상이 자리 잡기도 전에 주위에서 극찬과 호평이 난무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그런가보다 싶었다. 첫 느낌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았지만, 그러다 조금 텀을 두고서 <오후 네 시>란 소설을 읽었는데, 정말 센세이션 했다.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말이다. 정말 강렬한 느낌과 인상을 받았는데, 전반적으로 '묘한 불쾌감'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있다. 그 뒤로도 틈틈이 <로베르 인명사전>, <공격>, <적의 화장법>, <사랑의 파괴> 등등을 읽었는데 점점 의문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아멜리 노통브의 '무엇' 때문에 천재로 불리는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묘하게 '재미'는 있었다. 그래서 '그 맛'에 그녀의 소설을 읽는가보다 싶었다. 그런데 좀 찜찜하다. <겨울 여행>에서 그 찜찜함을 풀어보자.

<겨울 여행> 관점 포인트 : 좋다. 먼저 '인정'하는 것부터 풀어본다면, 그녀의 소설은 재미가 있다. 그래서 계속 읽게 만든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가 정말이지 기발하다 못해 기똥찼고 더불어서 기가 찼다. 이를 전문용어로 '어이 없다'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언어학의 전문가인 아멜리 노통브 앞에서 '전문가' 운운하면 실례가 될테니, 그냥 기발하다로 퉁치고 싶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아, 사회문제가 될만한 주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식이 간간히 담겨 있어서 '생각할 꺼리'를 만들어줘서 심심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저렇게 바라보니 '문제의식'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신선한 느낌을 종종 받는다. 여기까지가 아멜리 노통브 소설의 장점이랄 수 있겠다. 이건 인정하는 바다.

그런데 '문제의식'과 '비판'은 있는데 그걸 살살 비꼬는 식으로 풀어내는 모양새가 좀..'진지함'이 없어서 '가볍다'는 느낌을 받는다. 강한 펀치력으로 상대를 인사불성으로 만들고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옆구리를 살살 간지르는 정도의 느낌이라 기분만 상하고 만다는 점이 아쉬웠다. 물론 여성작가라는 점을 감안해서 '직접적인 비평'보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더라도 '정곡'을 콕 찌르는 느낌이 아니라 '비아냥거린다'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전반적으로 가벼워지고 말았다. 사회비평이란 날카롭고 묵직한 맛이 있어야 제맛인데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에서 '기발한 점'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만, '예상밖의 전개'라는 것을 빼고는 딱히 줄게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반전'이란 것도 충분한 개연성이 바탕이 되어야 '그래 그럴 수 있어'라며 이야기에 '몰입'하고,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할 수 있을텐데, 몰입과 이입이 전혀 동반되지 않은 '기발함'만으로 얼마나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겠느냔 말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야기의 소재가 너무 '부정적인 것'들이라 다 읽고 난 뒤에 뒷맛이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에서 주로 만나는 것들을 보라. 살인, 자살, 테러, 마약, 정신병 등등 죄다 '불법'이고, '변태적'이며, '비이성적'인 소재들밖에 없다. 심지어 '사랑'이란 주제를 내세우면서도 '정상'적인 것들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나마 볼만한 주제가 '아름다움'인데, 그녀는 이 아름다움마저 '추악한 속내'를 포장하는 껍데기 취급을 하는 일이 잦아서 제정신인가 싶을 때가 많다. 이런 것들을 다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딱 하나 '섹스(성욕)'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상식적인 선에서 아름다움을 느낄만한 '정사 씬' 하나 찾아보고 힘들다.

자, 이제 <겨울 여행>을 한마디로 표현해보련다. 사랑에 실패한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미련만 뚝뚝 남아서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행기 테러'를 꿈꾼다. 그것도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을 향해서 말이다. 정말 이게 다다. 사랑이란 '공식'이 정말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다. 그러니 두 남녀가 만나서 진정으로 사랑을 나누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며, 수없이 지지고 볶는 과정을 '극복'한 뒤에야 겨우 사랑에 성공하고 마는 지난한 과정을 보여준다면, 얼마나 진부하겠냐는 심보가 아멜리 노통브 소설들에 가득하다. 그래서 정말 신선하게도 '사랑의 실패', 그래봤자 고작 '섹스'를 못한 것 뿐이다. 그런데 속좁은 남자는 그 길로 비행기 운전을 익혀서 비행기 납치를 기획하고 그걸 실행에 옮기려 한다. 그리고 목표 대상은 그녀의 이름 '아스트로라브'의 앞글자인 'A'를 형상화한 '에펠탑'을 향해 비행기를 납치해서 돌진하려 한다. 이게 제정신으로 할 법한 일인가?

나가는 글 : 소설은 '허구'의 세계인지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유명 작가의 소설은 그렇지 않다. 소설속의 내용을 '현실'에서도 반영할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프랑스아즈 사강이 법적으로 금지된 마약복용으로 기소되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식의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느냔 말이다. 작가의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물며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할 말'을 대신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자기 소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도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너무 '방종한 면'이 없지 않다. 사회적으로 '금기'되고 '터부'시 되고 있는 소재로 강렬하게 쓰면서도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 재밌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권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특히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내 관점에서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저질로 평점을 매길 수밖에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선생'이란 관점에서 내린 결론이다. 그런데 선생이 아닌 '독자'로서 평점을 매기라면 뭐랄까? 뭔가 있긴 있는 것 같다. 그걸 찾기 위해서 좀 더 읽어보려 한다. 단순한 '재미' 말고 더 의미심장한 것, 그 잡히지 않는 무엇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해 찜찜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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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한 형태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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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한 형태> 아멜리 노통브 / 허지은 / 문학세계사 (2011) [원제 : Une Forme de Vie]

[My Review MMCC / 문학세계사 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아홉 번째 리뷰는 논란의 주인공 아멜리 노통브의 <생명의 한 형태>다. 과연 아멜리 노통브는 천재 작가가 맞는가? 아니, 이것보다는 그녀의 소설에 열광하는 독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질문을 이렇게 바꾸는 것이 더 적확한 질문이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녀의 소설을 '극찬'하는 쪽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에 흥미를 끌만한 '뭔가'가 분명히 있다는 확신은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가 문단에서 호평을 받고, 수많은 상을 휩쓸었으며, 출간하는 책마다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를 설명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의 소설에서 굉장한 '반감'을 느끼곤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소설을 쓰는 것인가? 어떻게 제대로 된 등장인물이 없을까? 정말이지 이런 괴팍한 소설을 좋아라하며 읽는 독자들은 왜 이리 많은 것인가?...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계속 이어진다. 이 참에 국내에 출간된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몽땅 리뷰해볼 마음을 먹었다. 가능하면 2월 안에 다 읽고 써보려 한다. 얼추 헤아려보니 가능할 듯도 싶다. 자, <생명의 한 형태>다.

<생명의 한 형태> 관점 포인트 : 그나마 노통브의 소설에서 '인정'하는 바는 괴팍한 이야기 형태속에 나름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의 한 형태>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의식'은 이라크 전쟁에 파병된 미군 병사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세상의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메시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반전 메시지'를 읽기 위해서 몸무게가 무려 18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이등병을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사람이 이 정도로 살이 찌게 되면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전투원으로 파병을 나간 미군 병사가 180킬로그램의 몸을 하고서 '현역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완전군장의 무게가 보통 40킬로그램이다. 거기에 소총과 실탄을 휴대하고, 수류탄이나 방독면과 같은 개인휴대물품까지 모두 착용하면 이 병사는 전체 무게가 230킬로그램이 넘게 된다.

보통 일본 스모선수의 평균 몸무게가 120킬로그램 정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신장 184센티미터에 몸무게 180킬로그램이 넘는 선수가 등장해서 스모 경기를 휩쓸었다고 한다. 스모는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유리한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스모선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옷도 남이 입혀줘야 하고 씻는 것도 혼자서 할 수 없다. 심지어 용변을 본 뒤에 밑을 닦는 것도 남이 대신해준다. 그나마 스모선수는 '선수단' 안에 규칙과 서열이 엄격하게 적용되어 '후배'가 선배의 모든 것을 뒤처리 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현역군인은 누가 해준단 말인가? 120킬로그램만 되어도 혼자서 처리하기 힘든 부분이 발생하는데, 180킬로그램이 넘게 되면 불가능하다. 물론 미국인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아멜리 노통브는 이메일도 전화기(요즘에는 스마트폰이겠지만)도 쓰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유일하게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편지'를 이용한다고 하는데, '답장'하지 않기로 유명한 작가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주인공으로 아멜리 노통브가 등장하고, 그녀가 심지어 '미지의 미군 병사'와 자필 편지를 주고 받는 내용이 담긴 일종의 '서간문' 형태로 소설을 구성했다. 그럼에도 아멜리 노통브가 아주 '답장'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그렇다 셈치고 읽어나가면, 아주 가관이다. 실제라면 절대 '펜팔(?)'을 주고 받을 상황이 아닐텐데, 소설속 아멜리는 일면도 없는 '미군병사'와 친밀한 편지를 주고 받게 된다. 편지 말미에는 늘 '우정을 담아~', '진심을 담아~'라는 문구를 써가면서 말이다.

편지의 내용도 별개 없다. 미군 병사의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된 아멜리가 답장을 하면서 '인연'을 쌓기 시작했고, 처음엔 '오해'도 했다가 나중에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개인적인 비밀까지 나누며 서로의 '속마음'도 내비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순전히 '작가와 독자'로서 말이다.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싶다가 '특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멜빈 매플이라는 병사가 가난 때문에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사람이 죽고, 사람을 죽이는 '전장의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폭식을 일삼았고, 먹다보니 '중독'이 되어 점점 더 먹게 되었는데, 점점 불어나는 체중으로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다가 '저항의 의미'를 담아 점점 더 폭식을 하게 되면서 '반전의 마스코트(?)'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입대 전 50킬로그램이었던 몸무게는 이라크 파병 이후 130킬로그램이 불어나 현재는 180킬로그램이 되었고, 앞으로 더 살이 찔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멜빈 매플의 현재 외모는 추악하다 못해 인간의 형상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비만'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고 역겹기까지 한 묘사속에서도 이 소설을 참고 읽을 수 있던 까닭은 다름 아니라 '반전의 메시지'로 읽을 만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으로 '합법'적인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혼자가 아니란다. 부대원 가운데 일부가 동참을 했고, 똑같이 폭식과 비만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보이고 있다면서 말이다. 근데 말이다. 폭식이나 비만 같은 것으로 어떻게 '저항'을 하고, '반전'이라는 구호를 외칠 수 있다는 것일까? 이게 또 아멜리 노통브를 '천재'라고 부르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무튼 '기발'하기 때문이다. 폭식을 함으로써 '미군 내 식비'를 대폭 늘려서 미행정부를 향해 '반전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뭐 대충 그런 메시지다. 몸무게를 130킬로그램을 찌우기 위해 얼마나 먹어댔겠냔 말이다. 남들 햄버거 1개, 비스킷 몇 조각, 초콜릿 1개를 먹을 때 멜빈 매플은 그냥 쓸어담듯 먹었단다. 식판 가득 햄버거를 쌓아놓고 흡입하듯 먹어치우고, 좁은 식판에 최대한 많이 담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음식은 한데 섞여 뒤범벅이 된 상태로 먹어치웠다고 한다. 게걸스럽다는 표현을 하던데, 우리식 표현으로는 '꿀꿀이죽'이라는 훌륭한(?) 표현이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먹는 모습이 혐오스럽다보니 동료장병들의 '사기저하'를 가속시켜서 미군사령부가 이 무의미한 전쟁에서 하루빨리 '철군'할 수 있도록...암튼,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좋은 의미'란 의미는 다 빼려박아 전달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멜리도 긍정적으로 수긍했지만, 점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그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듯 '답장'을 보냈을 뿐이다. 그러다 멜빈 매플이 자신의 폭식과 비만의 몸이 '예술행위'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아멜리의 조언(?)을 덥석 받아서 자신의 몸, 그러니까 '예술행위'를 전시할 수 있는 전문가를 소개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하기에 이른다. 아멜리는 똥 밟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이 한 조언이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멜빈 매플의 소원(?)을 들어주려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한 주점을 '갤러리' 삼아 예술행위를 전시할 계획을 짜고 멜빈 매플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는데,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아멜리가 보낸 편지에 '답장'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멜빈 매플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고 있었지만, 여전히 뉴스에서는 미군병사의 사망소식을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멜리는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 뒤의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나가는 글 : 아쉽게도 이 소설의 결말은 기발하면서, 동시에 그녀의 다른 소설에서 이미 보여준 '패턴'이었기에 예상한 범위였었다. 뭐, 이런 '반전'을 두고서 기발하다, 천재적이다..라며 호평을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딴에는 '작가의 무책임'을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도대체 이따위 '열린 결말(?)'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냐고 말이다. 애써 구색 맞춘 '반전 메시지'도 이런 식의 결말이라면 '진정성'이 사그라들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또한 제목에서 전하는 <생명의 한 형태>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도 그저 그런 평범함 속에 묻혀버리고 말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사실 '생명의 한 형태'라는 표현은 미생물인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을 일컬을 때 쓰는 용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을 '사람'한테 쓰질 않나. 심지어 초강대국인 '미국인'을 상대로 자극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과 동시에 미군을 상대로 '반전'이라는 저항의 메시지를 전하는 숭고한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비판'을 무색하리만치 '무성의'한 결말로 끝내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마치 성난 군중을 몰고 중무장을 한 경찰 앞까지 행진한 '지도부'가 시위가 격해지고 일촉즉발의 심각한 사태가 닥칠 것으로 예상되자 기꺼이 동참한 시위대를 등지고 '발걸음'도 가볍게 냅다 도망친 것과 마찬가지라고 느꼈다. 다시 말해, 심한 배신감마저 들었다는 얘기다. 도대체 이런 작가의 소설을, 아니 이 소설 <생명의 한 형태>를 읽고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 독자들의 뇌구조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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