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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인명사전 - 나를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세계사 / 2010년 7월
평점 :
<로베르 인명사전 : 나를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 아멜리 노통브 / 김남주 / 문학세계사 (2010) [원제 : Robert des noms propres (2002)]
[My Review MMCCII / 문학세계사 1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서른한 번째 리뷰는 끔찍하고 비정상적인 소설만 쓰는 이상한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로베르 인명사전>이다. 이 책의 부제를 눈여겨 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나를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들은 소설속 주인공이 자신을 살해한 '인물'에 대해 이런저런 변명과 핑계를 늘어놓았을 거라고 짐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장르의 소설은 식상할 정도로 너무 많다. '반전'을 전혀 줄 수 없는 진부한 방식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작가가 누군가? 절대로 '정상'이라거나 '제 정신'이 아닐 수밖에 없는 소설가. 맞다! 아멜리 노통브다.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아멜리 노통브'였던 것이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서 아멜리 노통브는 총에 맞아 뒈져버린다. 이렇게 결말을 다 밝혀놓고 '스포'를 한다고?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멜리 노통브가 죽건 말건 이 소설의 줄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작가 스스로도 책 겉표지에 당당히 밝혀놓은 것이다. '자신'을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이라고 말이다. 참으로 엉뚱한 소설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로베르 인명사전> 관점 포인트 :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은 이럴 것이다.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정말이지 줄거리가 이산 저산 정신이 없을 정도로 난삽하다. 열아홉살 어린 소녀가 임신을 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자마다 그 소녀는 무능한 남편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소녀는 아기를 낳자마자 감옥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고 만다. 하나 뿐인 딸에게 끔찍한(?) 이름을 지어주고 말이다. 플렉트뤼드. 이게 갓 태어난 여자아기의 이름이다. 다행히 아기는 클레망스라는 친이모에게 인계되어 자라나고, 클레망스는 플렉트뤼드를 자신의 셋째 딸로 여기며 소중히 기른다. 여기까진 어찌어찌 스토리가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다음은 더욱 기괴하다. 클레망스의 '집착'이 보이기 때문이다. 분명 플렉트뤼드를 사랑해서 행동하는 것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플렉트뤼드를 '자신의 꿈'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못다한 꿈을 플렉트뤼드를 통해서 '대리 실현'을 하려는 열망으로 가득해 보인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반면교사처럼 보여주려는양 정말이지 너무 심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다.
클레망스의 못다한 꿈은 '발레리나'였다. 하지만 일찌감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이상'에 비해 '실력'이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평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클레망스의 눈에 플렉트뤼드는 너무 예뻐보였다. 그래서 평범한 아기를 대하는듯 하지 않고 '공주님'처럼 키우려 했다. 플렉트뤼드도 그런 '엄마의 사랑(?)'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엄마(사실은 이모지만, 플렉트뤼드는 그 사실을 모른채 성장한다)의 기대에 한껏 부흥하기 위해서라도 플렉트뤼드는 '공주'처럼 행동했고, 클레망스는 그것을 행복으로 여겼다. 뭐, 여기까지는 예쁜 여자아이를 키우는 여느 엄마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클레망스는 더 나아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쫓겨날 때에도 평범한 아이가 아니니까 상관없다거나, 학교에 입학해서 초보적인 '글자'도 떼지 못해 낙제를 할 것 같다는 담임선생과의 상담에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같지 못하고 플렉트뤼드는 '특별한 아이'니까 아무 상관 없어..라는 식으로 일관한다. 물론 클레망스에게도 다 생각이 있다. 왜냐면 플렉트뤼드가 '발레'에 완전한 소질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집 선생이나 학교 담임선생이 '주위'를 요할 정도로 산만한 학습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데도, 발레 선생이 플렉트뤼드는 "발레를 하기 위해서 태어난 아이예요"라는 말에 꽂혀서 다른 건 아무 상관도 없다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플렉트뤼드는 발레만 잘 하는 천재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다 공립학교를 자퇴하고, '오페라 무용 학교'로 진학을 해서 발레만을 전문으로 배우는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일종의 '아이돌 연습생'처럼 오직 발레만 배울 수 있는 학교이기 때문에 실력 매우 뛰어난 학생들만 모아놓은 학교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플렉트뤼드가 어린 나이에 이곳에 입학하게 된 것 때문에 주위에서 축하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생활은 지옥과 다를 바 없었다. 완벽한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서 '체중'과 '몸매' 관리부터 시작해서 혹독한 연습을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입학한 저학년 학생들은 좋아하는 춤도 출 기회를 주지 않는다. 철저한 '관리'와 반복 '연습'을 해내고 선생으로부터 통과했다는 의미의 인정을 받아야만 10초짜리 짧은 단역의 기회라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런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몸무게가 40킬로그램 이하가 되어야만 했다. 그 이상이면 '돼지'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45킬로그램이 넘어가면 '자퇴'를 강요받아야 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최고라고 칭찬받는 무용수들은 대부분 '해골 형상'을 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플렉트뤼드는 일반적인 학교생활에서 만족을 느낄 수 없었기에 이곳에 왔고, 발레를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학생으로서 너무나도 모범적이고 바람직한 태도 아닌가? 그런데 여기에 아주 큰 문제가 있다. '성장기 소녀'에게 무리한 다이어트와 혹독한 훈련을 강행하다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몸무게'가 늘지 않으려도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장을 위해서 배고픔이 몰려오면 선생들 몰래 '한 입'을 더 먹었다가 몸무게가 늘어서 혼쭐이 나는 일이 반복되었지만, 플렉트뤼드는 이런 꾸중조차 받기 싫었기 때문에 성장에 필요한 딱 한 입조차 먹기를 거부했다. 특히 뼈성장에 필수적인 '칼슘'이 들어있는 유일한 음식인 '저지방 요쿠르트'까지 말이다. 그러자 플렉트뤼드는 뼈마디가 쑤시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아픔을 애써 참아냈다. 선생에게서 칭찬을 듣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다 더는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오자 플렉트뤼드는 엄마인 클레망스에게 '아픔'을 호소한다. 그러나 클레망스는 플렉트뤼드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성장통'쯤으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대한다. 왜냐면 클레망스의 눈에 플렉트뤼드는 너무도 완벽한 발레리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를 비롯한 다른 언니들은 의견이 달랐다. 플렉트뤼드의 키가 155센티미터에 몸무게는 32킬로그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뼈만 앙상한 '해골 형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클레망스는 그런 딸의 형상을 보면서도 기쁨과 환희의 미소만 띌 뿐이다. 그렇게 플렉트뤼드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최고의 무대를 선보였지만 아름다운 점프를 위해 힘차게 도약했다가 발끝으로 착지하는 동작을 하다가 다리 전체가 부숴지고 만다. 그녀의 뼈는 이미 폐경을 한 70대 할머니처럼 변했기 때문이다. 의사는 두 번 다시 발레를 할 수 없다는 진단을 내린다.
플렉트뤼드는 발레가 전부였던 삶을 살다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끝내 자살은 하지 않았다. 퍽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 열일곱 살밖에 안 된 소녀다. 고작 발레를 할 수 없다고 인생을 끝마치기엔 너무 이른 시기이지 않은가. 그래서 플렉트뤼드는 재활치료에 전념하고 하루하루 일상을 되찾기 위해 음식을 섭취했다. 그리고 몸무게가 40킬로그램이 되자 얼추 사람의 형상으로 되돌아왔다. 아빠는 이 모습을 사랑스럽게 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병문안조차 오지 않았다. 플렉트뤼드에게 엄마는 '인생의 전부'라고 할 정도였기 때문에 빠르게 회복을 하고 두 다리로 직접 걸어서 엄마의 집으로 향했다. 엄마에게 다시 두 다리로 걷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보면 엄마는 또 환희에 찬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기뻐할 거라 믿어 의심조차 하지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엄마는 두 다리로 걸어오는 플렉트뤼드를 보고 내뱉은 첫 마디는 "넌 돼지처럼 살쪘구나"였다. 플렉트뤼드는 인생은 무너져 내렸다.
나가는 글 : 전체 이야기는 정말 산만하기 때문에 핵심 포인트만 잡아서 정리해본 내용이다. 짤막하게 간추리면, 플렉트뤼드의 인생은 클레망스의 꿈으로 점철되었고, '엄마의 꿈'을 대신 실현시키기 위해서 '엄마의 삶'을 자신의 인생으로 여기며 살아온 딸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그저 '치맛바람이 쎈 엄마'가 주제인가 싶지만, 그보다는 '자식의 삶'을 송두리채 빼앗아 '자신의 삶'으로 바꾸려 드는 스릴러와 공포, 그리고 서스펜스가 좔좔 흐르고 있다. 그런데 겉으로는 그저 그런 '어린 소녀의 성장소설'처럼 꾸며 놓은 것이다. 이래서 아멜리 노통브를 '천재 작가'로 부르는 것 같다. 치밀한 짜임새만 보았을 땐 딱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천재 작가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초현실적인 소설'을 썼다. 기발한 '발상'만 했더라면 천재 소리를 듣고도 남을 텐데, 기발하다 못해 기괴한 '이야기 전개'를 하면서 그냥 '미xx 널뛰기'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대리만족이 실패로 돌아가자 클레망스는 플렉트뤼드에게 '진실'을 밝히고, 자신의 딸이 아닌 자신의 동생이 낳은 '조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친엄마가 친아빠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했다는 사실로 털어놓는다. 고작 열일곱 살 어린 소녀에게, 더구나 전부라고 생각했던 '발레'조차 더는 할 수 없게 된 처지에, 클레망스는 플렉트뤼드에게 딱 하나 남은 '끈'인 엄마마저 단칼에 삭제해버린 것이다. 이런 비극을 던져주고 이야기는 어디로 향했을까? 어이 없게도 플렉트뤼드는 '발레'가 아닌 '연기'로 진로를 바꾸고 보란듯이 성공에 이른다. 원래 어릴적부터 '미인'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예뻤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수를 꿈꾸는데 그것이 또 상상을 초월하게도 '엄마'가 아니라 '자신'을 파멸시키는 쪽이다. 그런데 파멸의 순간 '기적'이 찾아오고, 그 기적과 함께 천재 작가 '아멜리 노통브'가 등장해서 플렉트뤼드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고, 다들 아시다시피 아주 진부한 결말인 천재 작가의 사망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역시 노통브식 결말은 늘 허무하다. 딱 하나 <적의 화장법>만 빼고 말이다. 그건 아주 탁월했다.
그러면 궁금증 하나는 해결이 되었다. 천재 작가로 소문이 난 까닭은 아멜리 노통브의 '독특한 이야기 전개방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독자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양상이다. 어떤이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지만, 나와 같은 독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않고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닌 '명확하게' 싫은 이유가 있다. 바로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딴에는 '정상'은 진부함과 지루함을 동반한다. 너무나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다루기 때문에 금새 식상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전'을 주기 위해 '비정상'을 추구하는 경향을 강렬하게 선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허나 '비정상'과 '반전'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반전은 '낯섦'을 바탕으로 하지만, 비정상은 '부도덕'하고 '불건전함'을 넘어 '혐오'스러움까지 내비칠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아멜리 노통브는 감히 부도덕적이고 불건전함을 넘어 혐오스러움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왔다갔다 '경계'를 허물어버리곤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아멜리 노통브를 '천재 작가'로 인정할 수가 없다. 적어도 개인적으로 말이다.
몇몇 작품은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멋졌다. 이를 테면 <적의 화장법>이 대표적이다. 이 소설에서는 '내면의 적'이 등장하는데, 그 적의 정체는 다름 아닌 나와 다른 '또 다른 나'였기 때문이다. 공항 대합실에서 느닷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불청객'과의 오랜 대화 끝에 밝혀진 진실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아멜리 노통브의 '비정상'과 '부도덕'의 미묘함을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결말에서 마주할 수 있는 '낯설음'이 주는 강렬한 인상은 이 소설을 여러 번 읽고 또 읽게 만드는 매력을 던져준다. 그런데 <로베르 인명사전>은 어떤가? 아름다운 동화속 공주님 이야기로 포장된 상자를 개봉하자 마주한 것은 '낯설음'이 주는 강렬한 인상이 아니라 '추악한 속내'를 드러내는 불쾌한 적(敵)을 마주할 뿐이다. 그것도 언제나 기쁨과 행복을 줘야 할 '엄마'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세상에 엄마가 딸에게 퍼붓는 저주라니...천재 작가로 불리는 아멜리 노통브도 이런 '무리수'를 캐치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결말을 바꾸었다. 천재 작가를 죽일 수 있는 영광을 말이다.
이제 남은 궁금증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 왜 재밌냐는 의문이다. 이 소설조차 재밌다. 초반의 황당한 설정만 넘기면 끝까지 일사천리로 술술 읽어나갈 수 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 이유를 밝혀낼 여정은 아직도 먼 것 같다. 앞으로 읽어야 할 작품이 꽤 남았다. 부지런히 달려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