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한 형태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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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한 형태> 아멜리 노통브 / 허지은 / 문학세계사 (2011) [원제 : Une Forme de Vie]

[My Review MMCC / 문학세계사 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아홉 번째 리뷰는 논란의 주인공 아멜리 노통브의 <생명의 한 형태>다. 과연 아멜리 노통브는 천재 작가가 맞는가? 아니, 이것보다는 그녀의 소설에 열광하는 독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질문을 이렇게 바꾸는 것이 더 적확한 질문이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녀의 소설을 '극찬'하는 쪽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에 흥미를 끌만한 '뭔가'가 분명히 있다는 확신은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가 문단에서 호평을 받고, 수많은 상을 휩쓸었으며, 출간하는 책마다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를 설명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의 소설에서 굉장한 '반감'을 느끼곤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소설을 쓰는 것인가? 어떻게 제대로 된 등장인물이 없을까? 정말이지 이런 괴팍한 소설을 좋아라하며 읽는 독자들은 왜 이리 많은 것인가?...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계속 이어진다. 이 참에 국내에 출간된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몽땅 리뷰해볼 마음을 먹었다. 가능하면 2월 안에 다 읽고 써보려 한다. 얼추 헤아려보니 가능할 듯도 싶다. 자, <생명의 한 형태>다.

<생명의 한 형태> 관점 포인트 : 그나마 노통브의 소설에서 '인정'하는 바는 괴팍한 이야기 형태속에 나름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의 한 형태>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의식'은 이라크 전쟁에 파병된 미군 병사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세상의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메시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반전 메시지'를 읽기 위해서 몸무게가 무려 18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이등병을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사람이 이 정도로 살이 찌게 되면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전투원으로 파병을 나간 미군 병사가 180킬로그램의 몸을 하고서 '현역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완전군장의 무게가 보통 40킬로그램이다. 거기에 소총과 실탄을 휴대하고, 수류탄이나 방독면과 같은 개인휴대물품까지 모두 착용하면 이 병사는 전체 무게가 230킬로그램이 넘게 된다.

보통 일본 스모선수의 평균 몸무게가 120킬로그램 정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신장 184센티미터에 몸무게 180킬로그램이 넘는 선수가 등장해서 스모 경기를 휩쓸었다고 한다. 스모는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유리한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스모선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옷도 남이 입혀줘야 하고 씻는 것도 혼자서 할 수 없다. 심지어 용변을 본 뒤에 밑을 닦는 것도 남이 대신해준다. 그나마 스모선수는 '선수단' 안에 규칙과 서열이 엄격하게 적용되어 '후배'가 선배의 모든 것을 뒤처리 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현역군인은 누가 해준단 말인가? 120킬로그램만 되어도 혼자서 처리하기 힘든 부분이 발생하는데, 180킬로그램이 넘게 되면 불가능하다. 물론 미국인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아멜리 노통브는 이메일도 전화기(요즘에는 스마트폰이겠지만)도 쓰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유일하게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편지'를 이용한다고 하는데, '답장'하지 않기로 유명한 작가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주인공으로 아멜리 노통브가 등장하고, 그녀가 심지어 '미지의 미군 병사'와 자필 편지를 주고 받는 내용이 담긴 일종의 '서간문' 형태로 소설을 구성했다. 그럼에도 아멜리 노통브가 아주 '답장'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그렇다 셈치고 읽어나가면, 아주 가관이다. 실제라면 절대 '펜팔(?)'을 주고 받을 상황이 아닐텐데, 소설속 아멜리는 일면도 없는 '미군병사'와 친밀한 편지를 주고 받게 된다. 편지 말미에는 늘 '우정을 담아~', '진심을 담아~'라는 문구를 써가면서 말이다.

편지의 내용도 별개 없다. 미군 병사의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된 아멜리가 답장을 하면서 '인연'을 쌓기 시작했고, 처음엔 '오해'도 했다가 나중에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개인적인 비밀까지 나누며 서로의 '속마음'도 내비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순전히 '작가와 독자'로서 말이다.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싶다가 '특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멜빈 매플이라는 병사가 가난 때문에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사람이 죽고, 사람을 죽이는 '전장의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폭식을 일삼았고, 먹다보니 '중독'이 되어 점점 더 먹게 되었는데, 점점 불어나는 체중으로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다가 '저항의 의미'를 담아 점점 더 폭식을 하게 되면서 '반전의 마스코트(?)'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입대 전 50킬로그램이었던 몸무게는 이라크 파병 이후 130킬로그램이 불어나 현재는 180킬로그램이 되었고, 앞으로 더 살이 찔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멜빈 매플의 현재 외모는 추악하다 못해 인간의 형상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비만'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고 역겹기까지 한 묘사속에서도 이 소설을 참고 읽을 수 있던 까닭은 다름 아니라 '반전의 메시지'로 읽을 만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으로 '합법'적인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혼자가 아니란다. 부대원 가운데 일부가 동참을 했고, 똑같이 폭식과 비만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보이고 있다면서 말이다. 근데 말이다. 폭식이나 비만 같은 것으로 어떻게 '저항'을 하고, '반전'이라는 구호를 외칠 수 있다는 것일까? 이게 또 아멜리 노통브를 '천재'라고 부르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무튼 '기발'하기 때문이다. 폭식을 함으로써 '미군 내 식비'를 대폭 늘려서 미행정부를 향해 '반전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뭐 대충 그런 메시지다. 몸무게를 130킬로그램을 찌우기 위해 얼마나 먹어댔겠냔 말이다. 남들 햄버거 1개, 비스킷 몇 조각, 초콜릿 1개를 먹을 때 멜빈 매플은 그냥 쓸어담듯 먹었단다. 식판 가득 햄버거를 쌓아놓고 흡입하듯 먹어치우고, 좁은 식판에 최대한 많이 담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음식은 한데 섞여 뒤범벅이 된 상태로 먹어치웠다고 한다. 게걸스럽다는 표현을 하던데, 우리식 표현으로는 '꿀꿀이죽'이라는 훌륭한(?) 표현이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먹는 모습이 혐오스럽다보니 동료장병들의 '사기저하'를 가속시켜서 미군사령부가 이 무의미한 전쟁에서 하루빨리 '철군'할 수 있도록...암튼,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좋은 의미'란 의미는 다 빼려박아 전달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멜리도 긍정적으로 수긍했지만, 점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그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듯 '답장'을 보냈을 뿐이다. 그러다 멜빈 매플이 자신의 폭식과 비만의 몸이 '예술행위'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아멜리의 조언(?)을 덥석 받아서 자신의 몸, 그러니까 '예술행위'를 전시할 수 있는 전문가를 소개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하기에 이른다. 아멜리는 똥 밟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이 한 조언이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멜빈 매플의 소원(?)을 들어주려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한 주점을 '갤러리' 삼아 예술행위를 전시할 계획을 짜고 멜빈 매플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는데,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아멜리가 보낸 편지에 '답장'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멜빈 매플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고 있었지만, 여전히 뉴스에서는 미군병사의 사망소식을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멜리는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 뒤의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나가는 글 : 아쉽게도 이 소설의 결말은 기발하면서, 동시에 그녀의 다른 소설에서 이미 보여준 '패턴'이었기에 예상한 범위였었다. 뭐, 이런 '반전'을 두고서 기발하다, 천재적이다..라며 호평을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딴에는 '작가의 무책임'을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도대체 이따위 '열린 결말(?)'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냐고 말이다. 애써 구색 맞춘 '반전 메시지'도 이런 식의 결말이라면 '진정성'이 사그라들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또한 제목에서 전하는 <생명의 한 형태>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도 그저 그런 평범함 속에 묻혀버리고 말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사실 '생명의 한 형태'라는 표현은 미생물인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을 일컬을 때 쓰는 용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을 '사람'한테 쓰질 않나. 심지어 초강대국인 '미국인'을 상대로 자극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과 동시에 미군을 상대로 '반전'이라는 저항의 메시지를 전하는 숭고한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비판'을 무색하리만치 '무성의'한 결말로 끝내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마치 성난 군중을 몰고 중무장을 한 경찰 앞까지 행진한 '지도부'가 시위가 격해지고 일촉즉발의 심각한 사태가 닥칠 것으로 예상되자 기꺼이 동참한 시위대를 등지고 '발걸음'도 가볍게 냅다 도망친 것과 마찬가지라고 느꼈다. 다시 말해, 심한 배신감마저 들었다는 얘기다. 도대체 이런 작가의 소설을, 아니 이 소설 <생명의 한 형태>를 읽고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 독자들의 뇌구조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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