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17 - 을미사변과 황해 위기 본격 한중일 세계사 17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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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I / 위즈덤하우스 33번째 리뷰] 고종에 대한 평가는 어찌 해야 할까? 망국의 임금으로서 '나름' 열심히 일한 성군으로 추켜세워야 할까? 아니면, 나라가 망하거나 말거나 '왕권회복'에만 혈안이 된 암군으로 매도해도 될까? 객관적인 평가만 놓고 본다면 '나름' 열심히 일한 왕임에는 틀림없지만 '세계정세'를 볼 수 있는 혜안이 없어서 국가의 운명과 백성의 안위가 바람 앞의 촛불 신세인데도 '제 잇속(왕권)'만은 놓치지 않으려 부던히도 애를 쓰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허나 주관적인 평가를 한다면, 그래도 내 나라 임금인데 미워할 수만 있겠느냔 말이다. 비록 '조선왕조의 백성'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고종을 평가한다면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안목을 읽어내지 못해 결국 '망국의 길'을 제 발로 걸어들어간 암군이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첫 단추는 '흥선대원군'이 잘못 끼웠다. 어린 임금(고종)을 대신해서 '세도정치의 폐단'을 바로 잡고 '왕조의 기틀'을 회복하여 조선왕조의 부흥을 꾀했다는 점에선 높은 점수를 주어야 마땅하겠지만, 서구열강의 야욕과 침탈까지 적절히 읽어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점은 뼈 아프다. 더구나 어린 고종이 '어른 고종'이 되었을 때 자연스레 권력을 이양하고 사심 없이 뒷전으로 물러나야 했음에도, 그러지 않고 '임오군란'을 비롯해서 끊임없이 임금과 '권력다툼'을 했다는 것이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주범이라 할 것이다.

그 다음엔 '민비'의 섣부른 정치 훈수였다. 을미사변 이후에 '명성황후'로 추증되나 살아있을 땐 고종의 아내인 '민씨 성을 가진 왕비'였다. 그리고 조선은 '왕비(여자)의 정치참여'를 용인하지 않았다. 문정왕후의 섭정이 임금(명종)의 권력보다 강할 때도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임금의 어머니'였었다. 왕의 부인인 '왕비'가 권력의 축이 된 적은 조선시대에 없었단 말이다. 그런데도 민비는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권력다툼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민씨의 천하'를 만들 정도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고종의 왕권회복'을 위해서만 이루어진 일이었다면 그나마 높이 평가해줄 수 있겠으나, 딴에는 '고종의 권위'보다 우월함을 점거하며 독단적인 전횡을 저지르기도 했다는 점에서 도를 넘었다 하겠다. 더구나 (친미파에서 친일파로, 친일파에서 친러파로 갈아타는) 개화파의 우두머리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은 추진력은 고종의 든든한 파트너로 대원군과 '왕권다툼'을 벌일 때도 있었으나, 공공연히 고종보다 더 강력한 리더십으로 '권력행사'를 벌이는 일도 있었다는 점에서 국정농단(외척의 간섭)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고종의 줏대를 발휘해서 국정을 원활하게 운영했더라면 조선은 위기 속에서도 살길을 찾는 행보로 나아갔을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청의 개입'을 두 차례나 용인했다는 점이다. 동학농민운동(동학혁명) 때에도, 갑신정변 때에도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지 않고 '청군 원병'을 요청해서 국가의 주권을 크게 훼손시켰다. 더구나 을미사변(민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과감하게(?) '아관파천(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단행한 것이다. 아무리 일본의 강압적 태도에 놀라고 신변의 위협으로 살기 힘들어졌다고 하더라도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외국공사관에 몸을 의탁하고서 러시아의 보호(?)를 꾀하느냔 말이다. 이 역시 '청군의 개입'과 마찬가지로 '러시아군의 개입'을 종용하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나라를 끌어들여 국가를 어지럽히는 자충수를 둔 셈이다. 그리고 청군의 개입으로 '청일전쟁'이 벌어진 것처럼 러시아군의 개입을 빌미로 '러일전쟁'이 벌어질 참이니 조선은 '다른 나라의 전쟁'에 전쟁터를 제공하는 어리석은 짓을 벌인 셈이다. 물론, 결과가 좋았으면 '신의 한 수'라면서 고종을 칭송하는 이들도 많았으리라. 그런데 결과까지 안 좋았으니 고종은 더욱더 비난만 받게 될 뿐이었다.

딴에는 '약소국의 비애'를 감안하여 다른 열강의 힘을 빌어 '이이제이(오랑캐의 힘으로 오랑캐를 제압한다)'를 하려는 고종의 비극을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을 법하다. 호시탐탐 조선을 넘보는 '일본제국의 야욕' 앞에 청의 힘을 빌어 일제를 제압하려 했고, 미국의 힘을 빌어 일제를 저지하려 했으며, 러시아의 힘을 빌어 일제를 호령하려 하는 것이 슬기로운 지혜라 하지 않을 수 있겠냔 말이다. 허나 조선에게 시급한 것은 '근대화'였다. 그 때문에 뒤늦게나마 '개화파의 손'을 들어주며 조선을 개혁하려 들고 근대화에 앞장 서려 했으나 손발이 맞지 않아 번번히 실패한 탓도 있겠다. 먼저 근대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국력'이 바탕으로 깔려 있어야 하는데, 국력의 근본이랄 수 있는 '경제력'이 바닥을 치고 있었으니 서구열강 앞의 먹잇감 밖에 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경제력을 키우기 위해선 '백성들부터 근대교육'을 시켰어야 했는데, 그러기엔 자금도 부족했고, 열의도 없었다. 그저 양반의 자제들 몇몇 만이 소위 '외국물'을 먹고 왔을 뿐이며, 그들이 맛보고 온 '선진문물'에 대해 옥석을 가릴 줄 아는 이가 얼마 없었으니, 그나마도 아무 소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훗날 서재필이 주도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가 망해가는 나라에 빛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 빛마저 고종은 자신의 '전제왕권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제 발로 차버린 셈이 되었다. 그리고서 꿋꿋하게 밀어붙인 것이 '대한제국 황제가 되는 길'이었으니, 한 치 앞도 살피지 못하는 어리석은 임금의 전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긴 이런 전제왕권의 끝을 잡고 허우적거리던 것이 어디 '고종' 하나 뿐이었겠는가? 청나라 황실이 그랬고, 러시아 로마노프 황제가 그랬으며, 프로이센을 비롯해서 유럽 곳곳의 왕조가 모두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더랬다. 그럼에도 그네들은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주의 국가로 거듭난 반면에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 결정적 차이다. 이렇게 종합적인 평가를 매겨도 고종은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이제 조선은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이미 그 역사를 알고 있지만, 제대로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 까닭은 '한국사'라는 우물 속에서만 굴러가는 역사를 공부한 탓이다. 이 책이 훌륭한 까닭은 '한국사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 정세'를 아울러 '세계 정세'까지 역사적 흐름에 발맞춰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깨알같은 글씨'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불편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놓치 않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제 '러일전쟁'이 펼쳐질 참이다. 그 전쟁이 벌어지기까지 어떤 정세가 숨겨져 있었는지 속시원히 알아보고자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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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이야기 - 빅뱅부터 블랙홀까지, 외계 생명체부터 쿼크 별까지 형언할 수 없이 신비롭고 흥미로운 우주과학의 세계
팀 제임스 지음, 김주희 옮김 / 한빛비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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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 / 한빛비즈 152번째 리뷰] 어릴 적 새벽운동을 나갔다가 동쪽 하늘만 바라보다 그냥 집에 돌아온 적이 있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는데 무심코 동쪽 하늘을 바라봤다가 넋을 놓았기 때문이다. 시간은 무려 3~40분 정도였을 텐데,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해가 뜨기 전' 어두운 밤하늘이었고, 새벽 햇살이 밝아오다 '해가 온전히 다 뜬 뒤'까지였으니 그 정도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그런데 난 그 시간동안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동쪽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바로 '금성' 때문이었다. 샛별이라고도 불리는 금성이 동쪽 하늘에서 '열 십(十) 자' 모양으로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하늘이었을 때도 그렇게 밝은 빛이었는데, 해가 동녘에 떠오를 때까지 그 밝음을 잃지 않고 환하기 빛나고 있었다. 경이롭다고 해야 할까? 그 순간 나는 '천문학'에 사로 잡혀버리고 말았다. 아니 진로를 그쪽으로 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천문학과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을 갖추지 못해 결국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였던 나는 그렇게 '천문학'과 거리를 두어야만 했다.

그래도 과학책 가운데 천문학과 관련된 것은 수룩하게 읽어재꼈다. 태양계를 비롯해서 광활한 우주와 관련된 책이라면 가리지 않았고, 영화와 독서도 SF장르라면 빠뜨리지 않고 섭렵할 정도였다. 심지어 '신화 이야기'와 '점성술'까지 탐독했으며, 외계인과 UFO에 관한 '미스테리'에도 관심을 놓치지 않았으니 웬만한 '음모론' 정도는 시나리오로 줄줄 써나갈 정도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자부하는 바다. 그래서 우주에 관한 과학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해박하냐고 묻는다면...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우주에 대해서 그토록 많이 안다면서 왜 대답할 것이 없냐고 묻는다면, 현재 최고의 '천문학자'라 할지라도 나와 비슷한 처지일 것이 분명하다. 왜냐면 우주는 너무나도 광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부터 하이델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킵 손의 '양자역학', 그리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끈 이론'까지 우주에 대해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 천재적인 물리학자들이 수많은 방정식을 통해 분석했고, 위대한 천문학자들이 밤을 낮 삼아 잠을 설쳐가면서도 우주를 연구하고 또 연구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냐면 우주는 너무 광활했고, 우리는 그렇게나 광활한 우주를 '연구대상'으로 삼았으면서도 '지구밖'으로 한발짝도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지구밖'으로 나가 달에 착륙한 인류를 배출하기도 했고,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수많은 위성을 쏘아올렸으며, 외계의 생명체가 살고 있음직한 '골디락스 행성들'을 품고 있는 항성계와 은하계에 '지구의 정보'가 가득 담긴 전파를 줄기차게 쏴대기도 했더랬다. 그럼에도 그 가운데 어느 것도 '목표지점'까지 도달한 적이 없으며, 태양계의 행성을 탐사를 마친 위성들도 명왕성 궤도를 넘어 더 먼 곳까지 항해하고 있지만, 아직도 '태양계 안(오르트 구름)'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 은하에서도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는 (주계열성의 항성들을 기준으로 해도) 조그만 항성에 불과한 '태양계'조차 벗어나지 못한 인류가 어떻게 감히 '우주'를 논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이렇게 비관적인 까닭은 '위대한 천문학자들'의 연구방법이라는 것이 고작해야 '(지구 안에서) 관측'하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이다. 좀더 관측을 잘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오차'를 줄이기 위해서 인공조명이 전혀 없고 공기 맑고 맑은 날이 많은 산꼭대기에 '천문대'를 만들고서 관측을 하던가, 아니면 '관측위성'을 궤도에 쏘아올려 좀더 섬세한 결과치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그래봤자 137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우주의 끝(?)'에 비한다면 그닥 차이가 없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천문학은 계속해서 우주를 연구해 왔고, 그 성과는 놀라울 따름이며, 우주의 신비를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비밀'까지 밝혀내는 쾌거를 낳은 것이 바로 '천문학의 위엄'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고작 '관측'을 했을 뿐인데, 그토록 놀라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나 놀라운 비밀을 밝혀냈지만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왜냐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선 '인간'이 직접 가서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그 사실을 '경험'하고 사실을 판단하고 결과를 내놓아야 할 텐데, 천문학은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주는 광활하고 너무 커서 인간의 짧은 수명으로는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가장 빠르다는 '빛의 속도(초속 30만 킬로미터)'로도 수십 억 광년(빛의 속도로 1년 동안 간 거리)이나 멀리 떨어져 있으니 갔다가 '사실'을 확인하고 '지구'로 돌아오면 지구가 사라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수명이 이제 50억 년 남았을 뿐이고, 40억 년 뒤에는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어 있을 것이고, 그때 쯤에는 태양이 화성까지 집어삼켜버릴 정도로 커져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지구는 태양속에서 불타서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웜홀'이나 '워프'를 통해서 먼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하는 기술을 개발해서 휙 갔다가 휘릭 돌아오면 가능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주는 '시간'과 '공간'이 합쳐진 '시공간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그런 시공간을 인간의 맘대로 접거나 구부릴 수 있는 방법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 알 수도 없고, 실제로 '시공간'을 맘대로 구부리고 펴서 인간이 '원하는 장소'에 정확히 안착할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렇게 '시공간'을 움직일 에너지(원동력)는 무엇으로 얻을 것이냔 말이다. 사실 '웜홀'이니 '타임워프'니 하는 것도 결국은 수학과 물리학의 '방정식'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흔히 말하는 '이론물리학적 계산'으로는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으나, 그 방정식에 인간을 탑재한 우주선을 띄워서 원하는 장소로 보내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면적이 4제곱미터인 넓이를 구할 수 있는 '한 변의 길이'를 방정식으로 풀이하면 한 변이 2미터라는 간단한 결론을 얻긴 하지만, 방정식으로는 '또 하나의 답'이 있을 수 있다. 바로 '한 변의 -2미터'여도 우리는 면적이 4제곱미터인 넓이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쾌거가 늘 '한 변이 2미터'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인간을 우주선에 태워 머나먼 우주로 실어 보낼 수 있을 텐데, 때로는 '한 변이 -2미터'인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을 우주로 보낼 수 없는 것이다. 사실 '한 변이 -2미터'인 우주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증명할 방법도 없고, '한 변이 -2미터'인 우주선을 만들어 인간을 실어서 보낼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더욱 곤란한 사실은 우리는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다보니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정확한' 우주지도를 만들 수 없다. 이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며 세계지도 없이 탐험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지구에서 바라보는 별빛은 이미 별의 수명이 다해서 '죽은 별'일 가능성이 높다. 밝고 크게 빛나는 별일수록 가까이 다가간다면 이미 빛을 뿜어내지 않는 '블랙홀'일 가능성도 높다. 물론 블랙홀도 '질량'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면 착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도 강력한 '초거대질량'을 갖고 있는 탓에 우리에게 익숙한 '시공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 변수다. 더구나 블랙홀에 접근하는 순간 우리의 눈에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일 것이다. 영원히 말이다. 하지만 블랙홀에 도착한 이는 '평범한 시간'이 흐를 것이다. 단지 우리가 관측할 때만 '멈춰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시공간조차 멈추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중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블랙홀에 닿는 순간,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딴에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있으니, 우주의 어딘가에 무엇이라도 뿜어내는 '화이트홀'이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질량보존의 법칙'에 위배되지 않기 위해선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는 우리의 상식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사실 시공간조차 멈춰진 것처럼 보이는 블랙홀은 질량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빨아들일 정도로 '무거운 질량'을 갖고 있으면서도 방정식 계산상으로는 블랙홀에 질량이 없어야만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만 할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방정식을 도입한 결과가 '초끈 이론'이다. 물론, 무식한 비전공자인 까닭에 '초끈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하지 못하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차원이 다른 셈'이다. 우리가 2차원에서 '점'으로 보이는 것이 3차원에서는 '끈의 한 단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3차원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점'이 사실은 '끈'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선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끌어들여야만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초끈 이론'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오늘날의 발달된 천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초끈 이론'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 물론 요즘엔 '초끈 이론'도 시들해진 모양이다. 곧이어 새로운 방정식의 결과로 '색다른 우주'가 펼쳐질 것이란 징조이기도 하다.

물론, 복잡한 방정식을 이해해야만 우주의 신비를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걸 몰라도 우리는 '천문학'을 쉽고 재미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바로 이렇게나 신비로운 우주와 관련된 '음모론'에 빠져들어 잘못된 천문학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바로 '외계인의 침공'이나 'UFO에 관한 각국 정부의 음모론'에 심취해서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이런 음모론은 왕왕 '사이비 종교'와 결탁해서 잘못된 신앙을 전파하는데 악용되기도 한다. 과거에 '점성술'이 그랬다. 단순히 심심풀이로 운세를 점치는 용도에서 그치지 않고 '한 인간의 운명'이 별자리에 영향을 받아서 '결정된다'는 그릇된 맹신으로 심화되기도 하고, '한 국가의 명운'마저 하늘에 떠 있는 별과 있을 지 없을지 모를 '외계인'까지 연루시켜서 지구의 종말을 꾀하는 일은 결코 외계인의 소행이 아니다. 그런 일은 '사기꾼의 꾐'일 뿐이다. 단언컨대, 한 사람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할 대상이지 '별자리'가 정해주지 않는다. 광활한 우주공간에 우리만 '존재'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또 다른 존재'가 있다하더라도 지구를 침공할 일은 결단코 없다. 왜냐면 우리가 지닌 고도의 지능으로도 먼 우주를 여행하지 못하는데, 지구까지 도달할 '외계 생명체'가 있다손치더라도 지구는 탐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하찮은 행성에 불과하기 때문에 굳이 지구를 침공까지 할 외계인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시 말하면, 지구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을 탐내서 침략할 '멍청한 외계인'이라면 지구까지 도달할 우주선을 만들 수도 없을 것이며, 그런 우주선을 만들 정도로 '초초초고도의 지능'을 갖추고 있다면 지구가 아닌 '가까운 곳'에서 필요한 자원을 다 얻을 수 있을 것이기에 결코 지구는 탐나는 행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외계인의 침공' 따윈 그저 공상과학의 소잿거리일 뿐이니 걱정 붙들어매도 상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더구나 종교와 결탁한 '사이비 과학'은 말할 것도 없다. <성경>에 온갖 만물을 만드신 하느님도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인간'을 만들며 온갖 것의 '주인'이 되라 하셨으니, 그 하느님이 만든 세상의 일부에 '외계인'이 있다하더라도 그 존재가 감히 '하느님의 형상'과 닮은 인간을 해치려 할 까닭이 없을 것이고, 설령 그 외계인이 '하느님'을 믿지 않고 몰라서 굳이 지구침공을 결심했다고 한다면 '<성경>, 그 자체'가 헛된 것이니 그런 '거짓 종교'에 심취해서 삶을 망칠 까닭이 없단 말이다. 종교는 인간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고 가르칠 뿐이다. 그런데 그 '사랑하는 마음'으로 누구를 공격하고, 무엇을 배척하라 하며, '특정 인물'에게 절대복종하라고 강요한다면, 그건 절대로 '종교'가 아닌 것이다. 그런 '사이비 종교'에 절대로 발도 들이지 말지어다. 더구나 '천문학'을 더럽히는 '가짜 종교'가 있다면 '과학의 이름'으로 준엄하게 꾸짖어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과학 공부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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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IX / 더오리진 2번째 리뷰] 원 인터내셔널 회사에 재직중인 안영이가 '대리'로 승진을 했다. 장그래, 장백기, 한석율과 함께 원 인터 입사동기였는데, 장그래는 계약직 만료와 함께 퇴사한 뒤에 '온길 인터내셔널'이라는 중소기업의 창단멤버로 재취업을 했고, 남아 있던 동기들 가운데 가장 먼저 승진하게 된 것이다. 물론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다른 무역상사에서 경력을 쌓았기에 입사하면서부터 남다른 실력을 뽐내던 터라 그녀의 승진은 오히려 늦은 감이 따를 정도였다. 그러나 거기에도 속사정이 있었는데 안영이의 상사였던 '조명준 대리'가 안영이의 아이디어를 '자기 것'으로 공을 채가는 바람에 승진기회를 날려버렸던 것이다. 그랬던 상사가 음으로, 양으로 후임인 안영이의 '인사고과'를 챙겨주었고, 그 덕분(?)에 안영이가 입사동기들보다 앞서서 대리 승진을 하게 된 사연이다.

그러나 동기들의 축하를 받기도 전에 '장백기(철강팀)'는 인사고과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실적도 챙기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중국발 철강 이슈가 원 인터를 비롯해서 대한민국 철강무역에 차질을 끼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 인터 같은 '대기업'조차 철강수출입에 곤란을 겪게 된 것이다. 중국이 원자재인 '철강수출'을 금지하고 자국의 철강산업을 위해 '(중국)내수용'으로만 원자재를 활용하겠다는 일방적인 발표 때문에 장백기가 속한 철강팀도 결국은 '해체수순'을 밟게 된 셈이다. 장백기는 그간 쌓아온 실적이 날아가버리는 '악재'였고, 인사고과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상사의 진급'을 위해서 희생(?)하고 말았으니, 한마디로 죽 쒀서 개 준 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원 인터조차 '철강팀 해체'를 결정하자 장백기와 '강해준 대리'는 졸지에 다른 부서(영업3팀)로 발령이 나버리고, 그간 쌓아온 커리어조차 싹 날라가버리는 처지에 놓인다.

한편, 장그래가 몸 담고 있는 '온길 인터'도 송일무역과 합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중국발 리스크'로 인한 철강사업 악재를 겪게 된다. 대기업인 원 인터조차 철강팀을 해체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는데, 그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온길 인터가 어찌 버틸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 바람에 '중국통'으로 온길 인터의 창업멤버로 합류한 '김동수 전무'가 할 일이 없어지게 된다. 그동안 중국과 연관된 사업은 김 전무가 도맡았는데, 중국이 수출금지 조치를 취하자 그가 추진해오던 사업 전체가 '올스톱'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중국발 악재로 인해 관련 사업을 해오던 한국의 사업장들이 덩달아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처지가 되었는데, 김 전무는 이런 상황에서도 중국과의 무역을 계속 이어가자고 주장한다. 그동안 중국에 뇌물(꽌시)을 퍼주며 공을 들인 것이 얼마인데,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사업을 접는 것은 앞으로 중국과의 무역,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김 전무의 주장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것은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바이블'처럼 통용되는 원칙이고, 중국사업의 특징상 '꽌시'로 엮인 사업은 중도하차하는 순간 '배신(?)'을 한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중국사업'에서 손익을 따지며 발을 빼는 것은 영구적으로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꽌시'의 긍정적인 면은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도 사업을 끊지 않고 버티면, 호재 상황을 맞아서 상상을 초월하는 이득을 보장하기도 한다. 이를 테면, 중국에 '라면'을 팔겠다고 사업을 벌였는데 중국인들이 '인스턴트 라면'에 익숙하지 않고, '한국의 매운 맛'을 별로 좋아하는 식감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출이 바닥을 찍고 있었다. 그렇게 매달 적자를 안고서 사업을 이어가던 중에 중국에 전염병(사스)이 돌면서 외국기업들이 사업을 포기하고 탈출러시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위기속에 한국의 한 라면회사가 '중국이 겪는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어려움을 겪는 중국인들에게 '라면'을 공급하며, 함께 위기극복에 나섰다. 몇 년 뒤, 중국은 전염병을 극복했고, 함께 위기극복에 동참했던 '한국라면 회사'에 고마움을 표하며 '라면 소비'에 앞장 섰다. 그렇게 중국인들이 '한국라면'을 먹기 시작했고, 하루에 1봉씩만 먹어줘도 14억 인구에 비례해서 14억 봉지를 판매하는 호황을 맞게 되었다. 한 달이면 400억 봉지를 판매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래서 중국에서는 '꽌시'가 통용되는 것이다. 단순히 '뇌물'이 아닌 '믿음에 대한 보답(보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 것이다. 이렇게나 큰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사업이다보니 '중국통'이라면 중국사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셈이다.

허나 '온길 인터'의 김부련 사장과 오상식 부장의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이들은 작아도 '확실한 이익'을 차곡차곡 챙기며 '탄탄한 사업'을 선호한다. 사업상 '신뢰'가 바탕을 이루는 것도 비일비재하지만, 그 신뢰가 회사에 손해를 끼친다면 뒤돌아보지 않고 사업을 접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렇게 탄탄한 사업으로 다지게 되면 '온길 인터'가 벌이는 사업마다 결코 망치지 않는 사업을 한다는 신뢰가 쌓이게 되고,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키워나간다면 회사는 성장할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성공하는 사업'을 한다는 짜릿함까지 얻을 수 있기에 일 할 맛이 나는 회사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원 인터 시절의 영업3팀은 바로 그런 팀이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하기 싫어하는' 일에 매달리며, 실적도 형편 없고, 인사고과도 엉망진창이었지만, 오 과장과 김동식 대리, 그리고 장그래 사원은 '하는 일'마다 최선을 다했고, 어렵게 성공한 만큼 기쁨도 몇 배가 더 컸던 것이다. 이런 기쁨은 나중에 합류했던 '천관웅 과장'도 함께 맛보았다.

천 과장은 영업3팀이 앞서 벌였던 '요르단 중고차 사업'에서 비리를 적발한 뒤에 합류한 팀원이었다. 그의 주목적은 '영업3팀의 고과'가 아니라 '영업3팀을 감시'하기 위해서 였던 것이다. 왜냐면 그 요르단 사업 비리를 걷어내니 그 꼭대기에 '최영후 전무'가 함께 엮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뛰어난 영업사원으로 실력파였고, 수완 좋게도 '고속 승진'을 하며 전무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하지만 당시 오상식 대리의 직속상사 시절에 '계약직 여사원의 교통사고 사망'과 관련하여 비정한 일처리를 하는 모습을 본 뒤에 최영후 전무와 오상식 과장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최영후 전무'가 엮어 있는 사업에 '비리연루'가 있다며 사내고발을 한 셈이니 불편했던 것이다. 당시 최영후 전무는 '원 인터 사장'과 힘겨루기를 하던 중이었기에 이 비리 사건은 타격이 컸던 셈이다. 그렇게 천 과장이 '전무의 사람'으로 발탁이 되어 영업3팀을 감시(?)하러 왔는데, 오히려 영업3팀의 일하는 방식에 휩쓸려서 '일할 맛'을 되찾은 셈이기도 하다. 사실 천 과장도 신명나는 일 중독자였지만, 이팀 저팀 떠돌아 다닌 덕분에 '인사고과'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저 월급쟁이로 버티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토록 신명나게 일하던 영업3팀 멤버들이 '사내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하나둘 짤려 나가자(장그래 계약만료, 오 차장 명예퇴직, 김 대리 퇴사) 다시 재미없는 회사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런 상황에 새로운 '영업3팀 멤버'로 해체된 철강팀의 멤버(강 대리, 장백기 사원)가 합류하게 되었다. 천 과장으로서는 백만 대군을 얻은 장수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천 과장은 '온길 인터'와 함께 벌일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다시금 신명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젠 오 차장의 부하직원이 아닌 오 부장과 당당한 사업파트너로서 말이다.

그런데 장백기는 고민에 빠진다. 사실 장백기는 장그래를 부러워하면서도 시기와 질투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명문대 출신에, '정사원'인데 반해, 장그래는 고졸 출신에, '계약직'인데 누구나 싫어했던 '영업3팀'에 속해서 규모가 큰 사업도 성공하고, 사내 비리도 척척 밝혀내며, 주위 직원들 사이에서도 '아이디어맨'으로 인정을 받아 '(사업에 관한) 조언'을 구하는 등 여러 모로 자신보다 훨씬 실력을 '인정'을 받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철강팀'에 속한 자신은 다른 팀에 비해 실적을 뽐낼 수도 없고, 그저 묵묵히 실수와 차질이 없는 '안정된 사업'만을 하는 스타일로 일을 하는 팀원으로서 제 실력을 제대로 뽐낼 수 없는 처지를 한탄해왔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입사동료인 '안영이'는 대리로 승진했고, '장그래'는 중소기업이지만 여전히 실력을 뽐내는 일을 하며 부러운 삶(!)을 질투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속했던 '철강팀'마저 중국발 악재로 인해 공중분해 되면서 장그래가 일하던 '영업3팀'으로 발령을 받은 것이 못내 속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장백기는 고민 끝에 천 과장과 함께 일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팀'으로 재발령을 요청하려고 한다.

한편, 천 과장도 다른 팀으로 가려는 장백기에게 고마움을 먼저 표한다. 왜냐면 그럴 정도로 '깊은 고민'을 했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 과장으로서는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장백기 같은 뛰어난 인재를 놓치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천 과장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면서 꼭 필요한 인재인 장백기를 잡기 위해 스스로 뛰어들 사업을 재고하며 반드시 성공해 보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렇게 진행을 해오던 와중에 천 과장은 아내에게 '새로운 사업'을 할 것이라며 포부(?)를 밝히며, 그로 인해 가정에 닥칠지도 모를 '리스크'가 있으니 자신의 결정에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때 아내로부터 되돌아온 말은 '오 차장과 함께 남편의 모습'이었다. 그때 남편의 모습은 힘든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기쁜 모습이었다면서 말이다. 그러다 오 차장이 회사를 떠나자 다시 '고달픈 월급쟁이'로 되돌아가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런데 다시 그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겠다니 굳이 반대하지는 않겠다고 아내는 말한다. 그런데 그때 당신을 신명나게 만들었던 '당신과 전혀 다른 사업 스타일을 갖고 있던 동료'는 찾은 것이냐는 물음에 천 과장은 놀라고 만다. 계약직 신입사원 주제에 사업의 '판'을 흔들던 당차다 못해 건방진 동료가 지금 천 과장, 아니 '천관웅 차장'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과연 장백기에게서 '장그래'와 같은 패기 넘치는 일처리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해답은 '다음 편'에서 밝혀질 것이다.

<미생>의 재미는 에피소드에서 드러난 '전체 맥락'를 조망할 수 있을 때다. 그래서 '전체 줄거리'를 숙지할 필요가 있고, 각각의 캐릭터를 전부 다 완벽히 이해하고 있어야 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마치 바둑에서 벌이는 싸움처럼 말이다. 분명 '각개전투'는 네 개의 귀와 네 개의 변에서 벌어지지만 그 싸움의 끝은 언제나 '중앙의 집'을 얼마나 차지하느냐로 승패가 갈라지곤 한다. 옛날 바둑스타일은 '중앙'에서 싸우면서 '변방'을 어떻게 차지하느냐로 승부가 나곤 했지만, 중앙에서 싸움을 벌이는 것보다는 변방에서 세를 불려가는 것이 더 많은 집을 차지하고, 더 적은 수로 '확실한 집'을 만들 수 있는 이점이 있다보니 '현대 바둑스타일'은 중앙의 싸움을 먼저 거는 것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둑의 전투는 늘 '귀퉁이'에서 먼저 벌이게 되고, 그 전투는 늘 '따로따로' 벌이다 결국 '바둑판 전체'로 귀결되는 식이다. 그렇기에 <미생>에서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들'은 모두 각자스타일대로 나름의 전투를 벌이다 결국 '동료'와 함께 싸우게 되고, 끝내는 '회사의 명운'을 걸고 건곤일척을 내던지는 형국으로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바둑'은 승패가 분명하지만 '인생'에서 승패는 불분명하다. 누가 성공한 삶인지, 실패한 삶인지는 '죽음 이후'에나 계가(집 계산)하는 법이다. <미생>에서도 어느 캐릭터가 최고로 성공하게 될지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계산이 바로 설 것이다. 자기만의 스타일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말이다. 극중의 장백기도 장그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을 멈추고 '정당한 라이벌이자 사업 파트너'로 인정하는 순간부터, 제 실력을 뽐내는 무서운 '실력자'로 거듭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장백기를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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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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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VIII / 민음사 19번째 리뷰] 헤세의 <데미안>을 몇 번이고 다시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은 '색 다른 해석'이다. 많은 이들은 <데미안>을 읽고 난 뒤에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에 꽂힐 것이다. 분명 뛰어난 경구다.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성장의 모티브'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허나 <데미안>에서 이 문구 하나만 기억으로 남기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울 따름이다.

먼저 '두 세계'에 대한 싱클레어의 어린 시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릴 적에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 법이다. 그러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눈을 뜨게 되면서 아이는 어른이 되어 간다. 그렇게 '보이지 않던 세계'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우리는 흔히 '성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그 성장과정이 혹독했다. 왜냐면 선한 세계를 파멸로 이끄는 악한 세계의 악당이 바로 '프란츠 크로머'였기 때문이다. 어린 싱클레어로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강력한 존재였고, 크로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한 존재'인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기엔 감당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동반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싱클레어가 크로머의 악행을 부모님께 일러 받쳤더라면 '어른이 되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건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지 않고 '다른 도움'을 청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난처한 상황에 빠진 싱클레어에게 나타난 이가 바로 '데미안'이었다. 그는 싱클레어가 경험한 바로 가늠할 수 없는 특이한 존재였다. 선한 존재도 아니고 악한 존재도 아닌 특별한 존재 말이다. 특히, 데미안이 크로머를 상대한 방법은 '미스테리, 그 자체'였다.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악당 크로머를 단숨에 쫓아낼 수 있게 한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뒤로 한 채,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푹 빠져버린다. 그리고 싱클레어가 느꼈던 '두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요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데미안이 던져준 질문 덕분이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고도 하느님의 벌을 받지 않은 것은 그가 가진 능력이 월등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해준다. 누구나 믿어 의심치 않는 <성경>에는 카인은 '최초의 살인자'라고 낙인을 찍었는데, 데미안은 어찌 하여 그런 '살인자'에게 '능력자'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가엾은 아벨의 희생을 두고서는 '약자의 비애'라고까지 폄하하고 말이다. 정녕 우리는 카인을 능력자로 우러러보고 아벨은 착한 체하는 무능력자로 봐야 하는 걸까? 한편, 데미안은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들'에 대한 평가마저 남달랐다. 죽는 순간이 찾아오자 예수님께 회개한다고 말하며 '천국행 티켓'을 거머쥔 도둑을 별볼일 없는 존재로 치부하고, 끝까지 자신이 한 짓에 대해 후회나 부끄럼이 없는 도둑은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은 뜻 있는 사람이라면서 추켜세운 것을 들으며 싱클레어는 크나큰 혼란에 빠져버리고 만다. 왜 데미안은 '기존의 풀이'대로 순순히 응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데미안과 같은 친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 특히 '성장기 청소년'에게는 말이다. 흔히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로 평가하곤 한다.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로 표현하는 격동적인 감정을 지닌 청소년기의 특징을 짚어낸 표현이다. 청소년기에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감정의 변화를 겪느냔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이 바라는 것은 결코 '질풍노도'가 아니다. 그저 순종적이고 순응하길 바랄 뿐이다. 이미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절대적인 가치로 놓고서,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지름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게 말이다. 그 길로 가는 것만이 '너, 자신을 위한 길'이란 것을 믿어 의심치 말라면서 말이다. 어째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가 떠오르지 않는가? 한스에게도 '하일너'라는 친구가 모범답안 같은 삶에 대해 경종을 울리며 한스에게 '자신의 길'을 걸으라 충고했었다.

암튼,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생각에는 공감하지 못했다. 아직 어른이 되기에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홀연히 떠난 데미안과의 석별의 정을 나누지도 못한 채, 새로 만난 피스토리우스는 신선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어느덧 싱클레어도 어른스런 면모가 보여지는 대목이다. 아직까지 데미안의 질문과 해석에 답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피스토리우스가 멋진 대답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난 첫사랑 베아트리체, 싱클레어는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사랑을 느꼈지만, 그 사랑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만 깨달았다. 그러다 만난 완벽한 여인은 다름 아닌 '에바 부인'이었다. 완전 성숙한 여인이자 '성숙한 어른'이었던 에바 부인에게서 싱클레어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문득 떠올린 얼굴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오래 전에 헤어졌던 '데미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싱클레어는 대단히 충격을 받는다.

왜 충격이었을까? 싱클레어가 진정으로 꿈꾸던 '완벽한 어른의 모습'이 바로 데미안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절대적으로 선한 모습'도 아니고 '절대적으로 악한 모습'도 아닌 이중성을 지닌 모호함이었다는 것에도 싱클레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어릴 적에 막연히 느꼈던 '두 세계'가 사실은 이질적인 것이 아닌 서로 융합될 수도 있고, 심지어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싱클레어는 진정한 어른의 세계로 접어들고, '성숙'이라는 것을 해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성숙'을 깨달았다고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성숙은 '또 하나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그런 싱클레어에게 포탄의 충격과 함께 다시 나타난 데미안의 말 한마디는 결정적이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말 말이다. 물론 언젠가 필요하다면 다시 한 번쯤 만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떠난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 '어른의 세계'로 접어든 이에게 숙명처럼 다가오는 현실일 뿐이다. 한 번 어른이 되고 나면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갈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었으니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더 많아지게 된다. '자신'과 '소신'으로 말이다. 물론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스스로의 책임으로 어떤 어려움이라도 헤쳐나갈 것이다. 그게 '멋진 어른의 조건'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자신의 생각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물론 그 결정에 따른 '책임'도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자,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결정을 내려보자. 카인은 '살인자'인가? '능력자'인가? 또한, 예수님께 용서를 구한 도둑은 천국을 가고, 자신이 한 일에 한 점 후회가 없는 도둑은 지옥에 가는 것이 맞는 것인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골고다 언덕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것처럼 예수 옆의 '똑같이' 묶인 두 도둑도 억울하게 붙잡혀 온 도둑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억울하게 붙잡힌 도둑이라면 '자신의 죄'를 고해하기보다는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이 더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따지면 자신이 한 일에 자부심을 갖고 당당히 죽음을 맞이한 도둑이 더 멋지지 않겠는가? 단지 예수를 믿고, 안 믿고에 따라서 '천국행'과 '지옥행'이 갈리는 것보다는 '자신의 생'에 더 충실하고 올곧게 살아온 이의 죽음이 더 가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우리는 '자신의 소신'보다 '주변의 신념'에 쉬이 흔들리는 약한 존재다. 이렇게나 약한 존재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인생은 그닥 재미 없는 삶이 되고 말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건 '나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 멋있는 법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자신도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면 된다. 부러워만 하지 말고 말이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힘겨워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오직 이것 뿐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면 멋지게 살다가 가는 것 말이다. 누가 선한지, 뭐가 악한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남이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내'가 하는 것이다. 세상은 '두 세계가 공존하는 곳'이며, 동시에 '선과 악은 함께 존재'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띤다. 그러나 섣불리 옳고 그름을 결정하지 말고, 나름의 논리와 공정한 기준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린 뒤에, 자신의 평가에 온전한 책임을 지는 것이 바로 '멋진 어른의 조건'이다. 내가 옳으니 남은 그르다는 '절대적인 평가'를 섣불리 내리는 것은 결코 멋진 어른이 될 수 없다. 내가 옳으면 남도 옳을 수 있다는 사실, 나도 완벽하지 않으니 언제든 '그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조심성만 갖춘다면 이보다 더 멋진 어른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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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고려사 4 - 대몽항쟁의 끝, 부마국 고려 박시백의 고려사 4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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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VII / 휴머니스트 42번째 리뷰] '조선사'를 다룬 역사책은 참 많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고려사'를 다룬 역사책은 드문 편이다. 더구나 '몽골의 침략'과 '원의 내정간섭'을 집중 조명한 책은 더 드물다. 그래서 이 책 <박시백의 고려사>는 읽을 가치가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려는 태조 왕건으로부터 시작해서 무신집권기 초반 뿐이다. 그리고 '최씨 무인정권부터 원 간섭기까지'의 상당 부분은 겉핥기 식으로 스리슬쩍 넘어간 뒤에 '공민왕의 개혁정치'에 와서야 다시금 조명을 받다가 여말선초의 역성혁명으로 '조선 건국'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고려사를 마무리 짓곤 한다. 이런 까닭은 고려사를 다룬 사료가 '절대부족'한 상황인 탓이 가장 크다. 고려조에 쓰여졌던 '고려왕조실록'은 오랜 전란으로 유실되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조선 초기에 쓰여진 탓에 '객관성'에 상처를 받았던 터라 고려의 진면목을 다잡기에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고려사>를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왕과 고위급 신하들의 전유물이었던 '역사기록'이 아닌 온 국민에게 널리 읽히고 뜻을 새롭게 정리할 역사책이 말이다. 그래야 역사책을 읽는 가치가 더욱 선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최충헌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충선왕의 죽음'까지 다뤘다. 시기적으로는 '몽골의 침략'과 그에 따른 '고려의 항전', 그리고 '항복 이후의 원 간섭기'를 다룬 셈이다. 고려 왕조로 살펴보면 '고종'부터 '원종',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으로 이어졌다. 13세기 전부를 다루고 14세기 초까지 아우르는 10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의 고려를 보여주었다. 고려는 '무신집권'으로 문벌귀족사회가 무너지고 그야말로 '무인시대'가 펼쳐졌다. 나쁘게 말하면 난장판이었고, 좋게 말하면 '실력'으로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대변혁기였다. 이런 처지에 빠진 고려를 '몽골'이 발흥하여 침략해왔다. 무려 40여 년 간이나 말이다. 무신집권시기가 꼭 100년이었고, 그중 '최씨 무인정권'이 60년을 해먹었으니, 무신집권시기의 후반부는 '대몽항쟁의 시기'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무인정권은 몽골과 힘겨운 싸움을 하면서도 '팔만대장경 조판' 등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허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전쟁통에 방치된 백성들이다. 최씨 무인정권은 몽골과의 싸움에서 개경이 함락될 것 같자 '강화천도'를 밀어붙인다. 이대로 몽골에게 패배해 항복을 하게 된다면 '고려 왕족'은 볼모로 잡혀갈지언정 살아남아 '몽골의 속국'이라도 될 수 있겠지만, 최씨 무인정권(당시 집권자, 최우)으로서는 패배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지리적인 이점이 큰 '강화도'에 은거하며 권력의 동아줄인 '고려왕실'을 지켜내고, '조세'도 착실히 걷을 수 있는 최적의 입지인 강화도로 궁궐을 옮기게 된다. 그러면 육지에 남아 있는 백성들은 어찌 되는가? 최씨 무인정권은 몽골군의 침략과 약탈로부터 백성들을 지켜낼 방안이 있었단 말인가? 당연히 없었다. 무인정권이 백성들에게 당부한 것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산으로 도망가든, 섬으로 도망가든, 그도 저도 아니면 용감히 싸우든,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지시 뿐이었다. 그러다 몽골군이 물러나고 나면 '세금'을 걷으러 고을 구석구석 싸돌아 댕겼다. 그야말로 '각자도생'이었다.

그런데도 몽골군은 고려의 백성을 온전히 약탈할 수 없었다. 곳곳에서 고려 백성들은 '침략자' 몽골군을 향해 저항을 계속했고, 실제로도 꽤나 큰 피해를 주기도 했다. 그렇게 40년을 맞서 싸웠다. 몽골군이 지나간 자리에는 누구도,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고해서 '천벌'이라고 불리던 악명 높은 군대였다. 그런 군대를 상대로 수십 년동안 대항했던 것이다. 물론 무신정권이 지키던 '강화도'도 꿈쩍하지 않았다. 연이은 침공에도 강화도는 끄떡 없었고, 몽골군은 작은 섬 하나를 어찌하지 못하고 패배를 밥 먹듯이 한 것이다. 그런 고려였기에 '몽골에 항복한 뒤에도' 몽골(훗날 '원')은 고려를 우대했다. 원에게 있어 고려는 분명 '속국'이었지만, '부마국(공주의 사위로 삼는 국가)'의 지위로 원 황실과 가깝게 지냈고, '조공국'으로 온갖 것들을 수탈 당하는 국가였지만, 고려의 것들을 빼앗아가고서는 '고려의 스타일이 유행하는' 고려양(樣)이 탄생했다. 오늘날로 치면 '한류열풍'과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이 가운데 '고려의 처녀'를 공녀로 받치라고 강요하기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끌려간 고려의 여자들이 원의 황실과 고관대작의 '정식아내'와 '후궁'이 되어 원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위치까지 올랐다고하니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가늠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고려의 공녀뿐 아니라 '고려 환관(내시)'까지 함께 대유행(?)을 해서 얼마가지 않아 자발적으로 '공녀'나 '환관'이 되어 출세길에 오르려는 고려인도 있었다고 하니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고려인들이 다방면에서 활약을 하며 '원나라의 황실'에서만 활약하는 고려인들이 전체의 1/4이 넘을 정도였다고 한다. 허나 이리 출세길에 오르려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더 많은 고려인들은 '자기 딸'을 머나먼 타향으로 보내길 꺼려서 일찍 결혼시키는 '조혼 풍습'이 성행했단다. 그 까닭은 딸자식을 키워야 노후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란다. 이는 고려 때 '데릴사위제'가 널리 유행한 까닭이기도 하단다. 딸자식을 평생 끼고 살아야 행복한 고려인들이었기에 원의 '공녀' 요구는 들어주기 힘든 사항이었고, 원으로서도 '고려 여자'를 처첩으로 삼지 못하면 권세가로 인정 받지 못했다고 하니 '고려 여인의 활약'이 대단하던 시기였다고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한편, 원에 항복한 고려왕실은 원황실의 구색에 맞춰 '격하'되었다. 폐하라는 말을 쓰지 못했고, 전하라고 불러야 했으며, 태자도 세자라고 불려야 했다. 암튼 모든 것이 원보다 낮춰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원과 고려의 관계는 낮춰진 것 같지는 않다. 왜냐면 고려의 자주성은 크게 훼손되지 않은 반면에 고려가 필요하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원나라가 앞장 서서 다 해주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분명 고려는 원의 속국인데, 어찌하여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이는 앞서 '원종'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몽골은 칸이 죽고 후임 자리에 '쿠빌라이'가 오르기 위해 다른 경쟁자들과 각축을 벌이던 때였다. 이때 원종이 한 발 앞서서 '쿠빌라이' 편을 들어 지지를 천명한다. 이에 크게 감명한 쿠빌라이는 '칸의 자리'에 오르고서 이때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몽골에 항복한 고려의 임금일 뿐인 '원종'이었지만, 쿠빌라이는 원종을 극진히 대우하며 모든 면에서 고려에 후하게 정책을 펼쳤던 까닭이기도 하다.

물론, 쿠빌라이가 마냥 고려에 퍼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쿠빌라이로서 '숙원사업'이었던 '남송정벌'과 '일본원정'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일본원정'을 위해서 고려에 '정동행성'을 설치하고, 독려했던 것이 바로 쿠빌라이였기 때문이다. 이때 원종이 '원정의 불가함'을 피력하며 어떡하든 막아보려 했지만, 쿠빌라이는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1차, 2차 원정을 떠났지만, 얼토당토 않게 태풍(신풍, 카미카제)이 불어와 궤멸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쿠빌라이는 재차 일본원정을 추진하다가 수명이 다해 죽고, 원정길을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원정을 위해 설치했던 '정동행성'은 끝내 고려에 남아 두고두고 고려내정의 간섭을 하는 원흉이 된다.

그렇게 원의 내정간섭이 심해지던 때의 왕이 바로 '충렬왕', '충선왕'이다. 이들은 각각 원 황실의 공주와 혼인을 해서 '쿠빌라이의 사위', '쿠빌라이의 외손자'였다. 이들은 각각 원 황실의 공주인 '제국대장공주'와 '계국대장공주'와 혼인을 한 뒤에 고려에 들어와 왕이 될 수 있었다. 말이 좋아 부부이지, 원 황실의 공주들은 사실상 '원 황실의 스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원 황실에서 떠받듦을 받으며 살던 공주가 이역만리 머나먼 땅으로 시집와서 '남편' 하나만 보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고달펐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이 공주들은 하나같이 성질 더러웠고, 툭하면 남편인 왕과 싸웠고,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는 신하들을 원 황실에 '고발'해서 죽게 만드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한편, 이런 공주의 남편인 왕도 툭하면 고려를 떠나 원 황실에 알량거리는 것이 더 편했으니 '고려의 임금'이면서 원 황실에서 더 오래 머무는 기현상도 벌어지곤 했다. 더구나 원 황실에서도 '사위'이고, '외손자'인 충렬왕과 충선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주었으니 두말 할 것도 없다.

이렇게 임금부터 천민까지 권력을 잡고 출세하기 위해 '원 나라'로 떠나는 시기가 바로 '원 간섭기'였던 것이다. 분명 원의 내정간섭은 불편한 것이었지만, 원 황실의 극진한 대접에 고려는 '원의 보호' 아래 평화와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온 백성이 출세하기 위해 원으로 떠나길 바라는 풍토가 만연했으니 '나라의 인재'가 모두 빠져나가는 공동화 현상까지 일어난 셈이다. 이런 국력의 누수는 원 황실의 다툼으로 인해 고려를 침공하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과거에 고구려가 당 태종을 내쫓고, 고려가 거란을 물리치고, 대몽골 항쟁에서도 밀리지 않았는데, 원 간섭기에 벌어진 '원 황실 잔당의 공격'에 고려가 맥없이 무너지고 만 것일까? 그건 나라를 잃어버려 '주인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원 황실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잔당들은 '원의 구원병'이 도착하고 난 뒤에야 진압할 수 있었다. '내 나라'라는 생각으로 똘똘 뭉쳤을 때는 어떤 국난도 극복하던 고려였는데, '내 나라'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려 임금'마저 원 황실에서 머무느라 고려에 오질 않으려 하니 백성들도 예전처럼 지키고 싸우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에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아니겠는가. 외국의 군대가 대한민국을 지켜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국 군대의 도움을 받으면 그 대가로 내놓아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야 할 때인 것이다. 또한 온 국민들이 '내 나라'라는 생각을 갖지 못한다면 나라는 이미 망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지배층'이 나라를 지킨 적은 거의 없다. 피지배계층이라고 온갖 핍박과 수탈을 당하던 '백성'들이 오히려 나라를 구하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적이 비일비재하다. 오늘날에도 다를 바가 없다. 이렇게나 멋진 국민들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이런 국민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지는 못할 망정 배신이나 때리는 정치인, 경제인, 공무원 등등은 각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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