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17 - 을미사변과 황해 위기 본격 한중일 세계사 17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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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I / 위즈덤하우스 33번째 리뷰] 고종에 대한 평가는 어찌 해야 할까? 망국의 임금으로서 '나름' 열심히 일한 성군으로 추켜세워야 할까? 아니면, 나라가 망하거나 말거나 '왕권회복'에만 혈안이 된 암군으로 매도해도 될까? 객관적인 평가만 놓고 본다면 '나름' 열심히 일한 왕임에는 틀림없지만 '세계정세'를 볼 수 있는 혜안이 없어서 국가의 운명과 백성의 안위가 바람 앞의 촛불 신세인데도 '제 잇속(왕권)'만은 놓치지 않으려 부던히도 애를 쓰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허나 주관적인 평가를 한다면, 그래도 내 나라 임금인데 미워할 수만 있겠느냔 말이다. 비록 '조선왕조의 백성'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고종을 평가한다면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안목을 읽어내지 못해 결국 '망국의 길'을 제 발로 걸어들어간 암군이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첫 단추는 '흥선대원군'이 잘못 끼웠다. 어린 임금(고종)을 대신해서 '세도정치의 폐단'을 바로 잡고 '왕조의 기틀'을 회복하여 조선왕조의 부흥을 꾀했다는 점에선 높은 점수를 주어야 마땅하겠지만, 서구열강의 야욕과 침탈까지 적절히 읽어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점은 뼈 아프다. 더구나 어린 고종이 '어른 고종'이 되었을 때 자연스레 권력을 이양하고 사심 없이 뒷전으로 물러나야 했음에도, 그러지 않고 '임오군란'을 비롯해서 끊임없이 임금과 '권력다툼'을 했다는 것이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주범이라 할 것이다.

그 다음엔 '민비'의 섣부른 정치 훈수였다. 을미사변 이후에 '명성황후'로 추증되나 살아있을 땐 고종의 아내인 '민씨 성을 가진 왕비'였다. 그리고 조선은 '왕비(여자)의 정치참여'를 용인하지 않았다. 문정왕후의 섭정이 임금(명종)의 권력보다 강할 때도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임금의 어머니'였었다. 왕의 부인인 '왕비'가 권력의 축이 된 적은 조선시대에 없었단 말이다. 그런데도 민비는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권력다툼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민씨의 천하'를 만들 정도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고종의 왕권회복'을 위해서만 이루어진 일이었다면 그나마 높이 평가해줄 수 있겠으나, 딴에는 '고종의 권위'보다 우월함을 점거하며 독단적인 전횡을 저지르기도 했다는 점에서 도를 넘었다 하겠다. 더구나 (친미파에서 친일파로, 친일파에서 친러파로 갈아타는) 개화파의 우두머리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은 추진력은 고종의 든든한 파트너로 대원군과 '왕권다툼'을 벌일 때도 있었으나, 공공연히 고종보다 더 강력한 리더십으로 '권력행사'를 벌이는 일도 있었다는 점에서 국정농단(외척의 간섭)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고종의 줏대를 발휘해서 국정을 원활하게 운영했더라면 조선은 위기 속에서도 살길을 찾는 행보로 나아갔을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청의 개입'을 두 차례나 용인했다는 점이다. 동학농민운동(동학혁명) 때에도, 갑신정변 때에도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지 않고 '청군 원병'을 요청해서 국가의 주권을 크게 훼손시켰다. 더구나 을미사변(민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과감하게(?) '아관파천(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단행한 것이다. 아무리 일본의 강압적 태도에 놀라고 신변의 위협으로 살기 힘들어졌다고 하더라도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외국공사관에 몸을 의탁하고서 러시아의 보호(?)를 꾀하느냔 말이다. 이 역시 '청군의 개입'과 마찬가지로 '러시아군의 개입'을 종용하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나라를 끌어들여 국가를 어지럽히는 자충수를 둔 셈이다. 그리고 청군의 개입으로 '청일전쟁'이 벌어진 것처럼 러시아군의 개입을 빌미로 '러일전쟁'이 벌어질 참이니 조선은 '다른 나라의 전쟁'에 전쟁터를 제공하는 어리석은 짓을 벌인 셈이다. 물론, 결과가 좋았으면 '신의 한 수'라면서 고종을 칭송하는 이들도 많았으리라. 그런데 결과까지 안 좋았으니 고종은 더욱더 비난만 받게 될 뿐이었다.

딴에는 '약소국의 비애'를 감안하여 다른 열강의 힘을 빌어 '이이제이(오랑캐의 힘으로 오랑캐를 제압한다)'를 하려는 고종의 비극을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을 법하다. 호시탐탐 조선을 넘보는 '일본제국의 야욕' 앞에 청의 힘을 빌어 일제를 제압하려 했고, 미국의 힘을 빌어 일제를 저지하려 했으며, 러시아의 힘을 빌어 일제를 호령하려 하는 것이 슬기로운 지혜라 하지 않을 수 있겠냔 말이다. 허나 조선에게 시급한 것은 '근대화'였다. 그 때문에 뒤늦게나마 '개화파의 손'을 들어주며 조선을 개혁하려 들고 근대화에 앞장 서려 했으나 손발이 맞지 않아 번번히 실패한 탓도 있겠다. 먼저 근대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국력'이 바탕으로 깔려 있어야 하는데, 국력의 근본이랄 수 있는 '경제력'이 바닥을 치고 있었으니 서구열강 앞의 먹잇감 밖에 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경제력을 키우기 위해선 '백성들부터 근대교육'을 시켰어야 했는데, 그러기엔 자금도 부족했고, 열의도 없었다. 그저 양반의 자제들 몇몇 만이 소위 '외국물'을 먹고 왔을 뿐이며, 그들이 맛보고 온 '선진문물'에 대해 옥석을 가릴 줄 아는 이가 얼마 없었으니, 그나마도 아무 소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훗날 서재필이 주도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가 망해가는 나라에 빛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 빛마저 고종은 자신의 '전제왕권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제 발로 차버린 셈이 되었다. 그리고서 꿋꿋하게 밀어붙인 것이 '대한제국 황제가 되는 길'이었으니, 한 치 앞도 살피지 못하는 어리석은 임금의 전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긴 이런 전제왕권의 끝을 잡고 허우적거리던 것이 어디 '고종' 하나 뿐이었겠는가? 청나라 황실이 그랬고, 러시아 로마노프 황제가 그랬으며, 프로이센을 비롯해서 유럽 곳곳의 왕조가 모두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더랬다. 그럼에도 그네들은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주의 국가로 거듭난 반면에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 결정적 차이다. 이렇게 종합적인 평가를 매겨도 고종은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이제 조선은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이미 그 역사를 알고 있지만, 제대로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 까닭은 '한국사'라는 우물 속에서만 굴러가는 역사를 공부한 탓이다. 이 책이 훌륭한 까닭은 '한국사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 정세'를 아울러 '세계 정세'까지 역사적 흐름에 발맞춰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깨알같은 글씨'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불편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놓치 않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제 '러일전쟁'이 펼쳐질 참이다. 그 전쟁이 벌어지기까지 어떤 정세가 숨겨져 있었는지 속시원히 알아보고자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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