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2 - 천년 제국 로마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벌거벗은 세계사 2
최호정 그림, 박효연 글, 김덕수 감수,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기획 / 아울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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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단순암기가 필요한 과목임에 틀림없지만, 암기의 지평을 넓이고 깊이를 더하게 되면 '역사가 감추고 있는 진면목'이 열리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다. 하지만 승자의 기록이 '진실'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승자가 있다는 것은 그 상대편인 '패자도 있었다'는 증거가 되므로 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법이다. 승자가 독식하는 냉혹한 현실에서 굳이 패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까닭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속에 진실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난 시간에 다룬 알렉산드로스와 진시황이 승리를 거둔 뒤에 감춰버린 '역사의 진실'을 되짚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승자가 애써 감추고 싶었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몹시 궁금하겠지만 직접 파헤쳐보는 기회로 삼는 것도 좋은 공부일 것일 것이다. 전혀 감도 잡히지 않는다면 이번 책에서 '로마와 이집트의 상관관계'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보길 바란다.

  두 번째 책은 '로마제국의 탄생과 몰락', 그리고 '이집트와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내용이다. 베르길리우스의 고전 <아이네이스>에 따르면 로마의 건국은 멸망한 트로이의 장군 아이네이아스에 후손인 로물루스가 건국한 것으로 나온다. 고대 로마는 왕정을 거쳐 공화정을 이루며 크게 성장하였고, 너무나도 커진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황제정'을 시행하게 되었다. 비로소 '로마에 의한 평화(팍스 로마나)'를 이룩했지만 오현제 시대를 거쳐 군인황제의 난립과 동서로마로의 분열, 그리고 게르만의 대이동 등의 영향으로 '천년 제국'도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고대 로마제국은 이후 서양의 모든 나라의 기틀이 될 정도로 모든 면에서 탁월했으며, 로마의 문화는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져내려올 정도로 '서양문화의 근간'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한편, 이집트는 로마보다 앞서 찬란한 고대문명을 일구어냈지만, 잇따른 침략으로 인해 고대 왕조는 무너졌으며,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다시금 융성의 기틀을 되찾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 자리를 탄탄히 잡았지만, 로마제국이란 거센 물결 앞에 위태로운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이때 로마와 손을 잡고 이집트의 영광을 재건하려 했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클레오파트라 7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기의 미녀'가 바로 그녀다. 로마의 최고 집권자인 카이사르를 유혹하고, 카이사르 암살 이후 최고 집권자에 오른 안토니우스마저 홀려버린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하지만 여왕의 노력은 로마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 황제'에 의해 물거품처럼 허사가 되었고, 이후 이집트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끝내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만다.

 

  여기까지가 '승자의 기록'이다. 서양이 그토록 잘난체를 하는 근거가 된 '로마의 영광'이 돋보이는 기록이며, 오리엔트가 졸지에 서양(옥시덴트)의 들러리 역할을 하게 된 전말이 또렷하게 보여지는 대목이다. 이런 역사를 배우고 익힌다면 '서양의 우월함'만 남게 되고 세계사를 배우는 애초의 목적인 '인류공영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도 서양쪽으로 기울어지게 할 뿐이다. 그렇다면 '승자의 기록'이 아닌 '패자의 목소리'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짐작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로마의 역사에서 배울 점이 참 많다. 제 스스로 잘난 것 하나도 없이 남들에게서 배운 것으로 착실히 힘을 길러 정점에 올라선 '불굴의 역사'가 가장 으뜸일 것이다. 여기엔 숱한 패배를 통해서 배우고 익혀 '최상의 솜씨'를 발휘하기까지 힘 없는 약소국들이 배워야 할 모든 것이 바로 '로마'라는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는 힘 없던 왕정을 고집하지 않고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체제인 '공화정'으로 탈바꿈을 하고, '로마의 영광'이라고 다시 쓰게 되었던 것이다. 점점 커지는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고자 '황제정'으로 또다시 탈바꿈하게 된 것까지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하였다. 그러나 '황제의 등장'은 곧 '독재자의 탄생'과 다를 바가 없었다. 로마제국은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끝끝내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결국 로마의 멸망은 '외부적인 요소(게르만의 대이동 등)'에서 현저하게 보이지만, '내부적인 요소(정치권력의 부정부패 등)'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탓이 더 크다고 하겠다. 왜냐면 로마는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내부로부터' 건실한 체제를 갖추고, '로마공동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들이 끝없이 등장하며 로마를 다시금 영광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팍스 로마나' 이후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승자의 기록'에서조차 입에 올릴 수 있는 건덕지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로마는 멸망하고 말았다.

 

  자, 이처럼 대단한 로마가 감춘 역사는 이집트의 한 여왕에 의해 속속들이 드러나게 된다. 바로 '클레오파트라 여왕'이다. 그녀는 기울어져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재건하기 위해 자신의 친동생(프톨레마이오스 13세)과 권력다툼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이집트의 집권계층은 여왕의 이런 행보가 달갑지 않았다. 그러자 여왕은 로마의 최고집정관인 '카이사르의 방문'을 계기로 이집트에 개혁을 시도하려 한다. 우리로 치면 구한말 개혁개방을 외치던 개화파와 같은 행보를 걸은 것이다. 즉, 외세의 힘을 빌어 자국의 개혁을 시도한 셈이다. 오직 이런 방법만이 '낡은 세력(수구꼴통)'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을 거라는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외세의 힘'은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그 대가 치뤄야 하는 '모욕의 역사'를 우리는 너무 잘 알지 않느냔 말이다. 그러니 허울 좋은 '동맹'이란 말 따위는 함부로 거론해선 안 된다. 북중러를 상대하기 위해 한미일 공조가 필요하다는 핑계를 내세워 '굳건한 동맹관계'를 위해서 간도 쓸개도 다 내어줘버리고나면 우리가 감당해야할 '청구서'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외세의 힘'은 절대 빌어서도, 믿어서도 안 될 것이다.

 

  암튼, 클레오파트라는 새로운 이집트를 건설하기 위해 카이사르의 힘이 필요했고, 로마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비옥한 이집트'를 탐내던 로마의 최고사령관은 손쉽게 이집트를 거머쥘 열쇠로밖에 보이질 않는 클레오파트라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을테다. 그렇게 두 사람의 야심 사이에서 잉태한 아기가 있었으니 바로 '카이사리온(카이사르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카이사르에겐 달가운 아이가 아니었다. 분명히 자신의 핏줄이었으나 '외국인 여자'에게서 난 아이를 '로마의 지배자'로 만들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버려두고(?) 로마로 훌쩍 떠나버린다. 그 사이에 이집트의 권력문제는 일단락이 되어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의 새로운 통치자가 되었고 말이다. 이제는 클레오파트라의 야심을 엿볼 수 있다.

 

  카이사르가 로마의 권력싸움에 신경쓰고 있던 사이에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리온을 데리고 로마로 행차를 하게 된다. 로마가 새로운 권력자(황제)로 카이사르를 선택하게 된다면, 자신의 아이(카이사리온)를 유일하고 정당한 계승자로 인정받기 위해서 말이다. 이는 이집트의 여왕으로서 식민지에서 지배자로 탈바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허나 황제의 등장을 거리던 '로마의 원로원'은 발빠르게 카이사르 암살을 모의한다. 카이사르의 계승자가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지금이 가장 적기였으며 독재자가 사라지면 로마는 다시 '공화정'으로 돌아가 자신들(원로원)이 권력을 되찾게 되는 절호의 기회로 보였기 때문이다. 마침 카이사르의 양자였던 부르투스가 공화정의 열성당원이었다. 그렇게 로마는 '카이사르의 죽음'을 바랐던 것이다.

 

  허나 역사의 소용돌이는 카이사르를 죽게 만들었지만, '황제의 등장'은 거부하지 않았다. 카이사르의 또 다른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와 카이사르의 부하장수였던 '안토니우스'가 등장해서 원로원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휘몰아쳐나아갔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카이사르의 죽음으로 가장 당혹했던 이는 '클레오파트라'였다. 그녀의 계획은 오로지 '카이사르'에게 달려있었는데,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로마의 성난 민심으로부터 자신과 아들을 보호하고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가 포기한 것은 없다. 로마의 권력싸움이 장기화되며 권력자 중 한 명인 '안토니우스'가 이집트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클레오파트라는 또다시 '외세의 힘'을 빌어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니 이번에는 '로마'를 집어삼키려는 계획을 밀어붙인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에게 헌신할 것을 맹세하며 그녀의 바람을 이루어주겠다고 다짐까지 한다. 이집트의 재건을 넘어 '로마제국' 전체를 클레오파트라의 발 아래 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 뒤의 결말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악티움 해전'이 승부의 갈림길이었는데, 이집트는 '안클의 사랑'이 무색하리만치 허무하게 패전을 맞이하게 되었고, 두 사람의 죽음으로 '이집트의 재건'은 물 건너가게 된 셈이다. 근데 이집트의 허무한 패배가 맞기는 한걸까? 원래 해전은 '변수'가 많은 법이다. 육지에서의 싸움보다 훨씬 많이 말이다. 더구나 이집트 내륙에서의 저항의 기록이 전무하다. 바다에서의 싸움에서 패배했다하더라도 '안클, 두 사람'이 모두 살아 있는 참인데, 병력수에서도 열세였던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의 낙승(?)으로 급히 마무리된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다. 더구나 '안클의 자결(?)'로 일단락되는 것도 곧이 믿기 힘들다.

 

  그보다는 '이집트 내부'와 '로마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로마는 '외국인 집정관'도 용납할 수 없었지만, '황제'로 모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죽음'으로 클레오파트라를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로마시민들은 먼저 '외국인 축출'에 열성적이었을 것이다. 반면 여왕을 모시던 이집트의 권력계층은 겉으로는 복종하였을지라도 속마음까지 체념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때를 보아 클레오파트라를 제거(?)하고 재집권을 노렸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 사정속에서 로마와 이집트는 한판 대결을 앞두게 되었다. 해전에서 어이없는 패배를 당한 이집트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후폭풍이 내부에서부터 드러나게 되었을 것이다. 패주하고 돌아온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를 지지하는 세력은 급감했고, 로마의 자존심은 어린 옥타비아누스를 앞세워 똘똘 뭉치는 효과를 낳았을 것이다. 그렇게 이집트 내륙에서의 싸움은 '이집트의 낡은 세력'에 의해 변변한 힘도 쓰지 못하고 로마의 새로운 주인에게 홀랑 갖다 바치는 결과를 낳게 되었을 것이다.

 

  한 편의 소설처럼 들리는 이런 정황은 분명 '역사적 사실'과는 사뭇 다른점도 있을 테지만, '패자의 목소리'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단초가 될 것이다. 아무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 사라져버린 진실들을 그대로 묻어버리고 '승자의 기록'에만 매달리게 된다면, '기울어진 역사관'만 자리잡게 만들어 줄 것이다. '승자의 영광' 앞에 무릎 꿇고 마는 '패자의 진실'은 밝은 빛과 함께 사라지는 그림자처럼 말이다. 하지만 너무 눈이 부신 빛은 종종 '두 눈을 멀게' 만들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게 만들곤 한다. 로마의 영광을 추켜세우고나니 로마에 의해 멸망하고 사라져버린 이들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분명 로마는 위대하지만 역시나 '정복자'에 불과할 뿐이다. 힘에 의한 평화는 '또 다른 힘'으로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초기 로마 역사의 발자취'는 바람직한 모양새를 취했기에 배울만 하다. 허나 황제정 이후의 로마는 '거대해진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몰락하고마는 모양새라 역시 배울점이 있다. 결국 '로마제국처럼'하면 망한다는 사실 말이다. 또 하나,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역시, '외세의 힘'이 아닌 '자국의 힘'으로 재건을 노렸다면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낡은 세력'이 커다란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구한말의 낡은 세력도 '같은 모양새'를 취하며 외세의 힘을 손쉽게 빌려대다가 끝내 멸망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로마시민의 성숙한 의식'을 본받아 '이집트왕조의 신민들'이 교양을 쌓고 성숙해지길 노력하고 기다렸어야 한다.

 

  그렇게 '자국의 힘'을 키운 뒤에야 개혁이든, 혁명이든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숱한 개혁가, 혁명가들이 실패의 길을 걷게 된 까닭은 '성숙한 시민들의 도움'을 받지 못해 제풀에 꺾여버리고 만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다시금 키워나가야 한다. 아직도 남아 제거되지 않은 '낡은 세력들'이 발악을 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직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길 머뭇거리는 이가 있다면, 부디 깨닫길 바란다. 당신들이 깨어나야 대한민국이 낡은 세력들에 의해 발목이 잡히지 않게 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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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1 -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진시황제의 통일 제국 벌거벗은 세계사 1
신동민 그림, 이현희 글, 김헌 외 감수,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기획 / 아울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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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나라 전체가 미쳐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 정도로 '뻔뻔한 족속들'이 판을 치고 있다.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을 정권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높은 지지율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정녕 부끄러움을 몰라도 '먹고 사는데' 부족함만 없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더 웃긴 것은 지금 돈도 힘도 '없는자'들이 더욱 내몰리고, '복지정책'은 점점 축소되고, 오직 '있는자'들을 위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마당에도 위기감은커녕 콘크리트 지지층만 확인하고 있으니 돌아버릴 지경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주기는 바라지도 않는다. 배부른 돼지가 현대인들의 숙원이라면 나쁘다고 욕하지 않으련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점점 '배골은 돼지들'로 넘쳐나고 있는 실정 아니냔 말이다. 아무 철학도 없고, 역사의식마저 망각해버린 돼지들로 넘쳐나는 현실을 더는 못 봐주겠다. 제발 공부 좀 하자. 어려운 책으로 말하지 않겠다. 쉽고 재미난 책으로 '대한민국의 현실'을 제대로 보길 바란다.

 

  이 책은 유명 TV프로그램인 <벌거벗은 세계사>의 내용을 책으로 엮어내었다. 논란 끝에 '설민석'이 하차하고, 지금은 '대학교수'가 진행을 이끌고 있지만,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누가 진행하는 것이 그닥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역사를 제대로 '시청'하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안목'과 함께 깊이 생각하는 '철학적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역사에는 '정답'도 없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아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거기에 '역사의식'을 제대로 깨우치고 난 뒤에 누구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공부했는지 되짚어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렇다. '역사'는 단지 '승자들의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승자의 이득'을 위해 쓰여지는 유용한 도구다. 이것을 잊고 그저 '암기과목'으로 여기고 말면, 악독한 무리들에 의해 쓰인 '잘못된 역사의식'을 진실로 믿고 잘 길들여진 개돼지(!)로 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쓰여진 역사를 우리는 '날조'라 부르지만, 날조를 '진실'로 믿는 이들에겐 날조가 아닌 셈이 된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겠는가? 아니 무엇이 제대로 된 역사인식이란 것을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 그건 힘 없고 돈 없는 이들을 위한 역사인식인지 되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역사는 '힘 있는 자'에 의해 쓰여지고, '돈 많은 자'를 위해 쓰이기가 너무 쉽다. 그런 역사를 위대하다고 떠받들면 결국엔 힘도 돈도 '없는자'들은 노예가 되고 만다. 이런 역사를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잘못된 역사인식을 배우는 것이 틀림없다. 그때부터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역사가 어떻게 쓰여야 온당한 것인지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없는자'에게 영광스런 역사를 쓸 때, 역사는 깨끗하고 맑고 자신있게 쓰여질 수 있는 것이다. 명심해야 한다. 역사는 '있는자'들을 위해 쓰일 때 가장 더러워진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 1권에는 동서양의 가장 '위대한 인물'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그리스의 통합을 넘어 동서양의 융합을 꾀한 정복자 '알렉산드로스'와 중국대륙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통일의 위업을 넘어 통합의 기초를 몸소 보여준 '진시황제'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이 정복을 넘어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방법을 통해 우리는 배울 것이 참 많다. 그 배움 가운데 가장 으뜸은 결코 '힘'에 의한 통합은 오래 갈 수 없으며, '모두'를 위한 정책이 아니면 반드시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복자'를 위대한 업적이라고 치켜세우기 일쑤다. 지배하는 땅을 넓히고 막대한 자원을 챙기고 많은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을 이름과 명성을 드높이는 것이 그 증거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피해와 환경파괴, 그리고 '한 사람'을 드높이기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 당해야만 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정복자는 결코 '위대한 사람'이라고 불려선 안 될 것이다.

 

  물론, 파괴적인 전쟁이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동서양의 융합'이 일어나 찬란한 '헬레니즘 문화'가 널리 퍼졌으며, 알렉산드로스의 이름을 딴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세계시민)'이라 부르며 전세계인을 '하나'로 묶는 힘을 발휘하며 개별적인 요소들이 한데 섞여 '융합'하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시황제도 숱한 전쟁을 통해 각 나라를 깨부수며 '분열'되고, '갈등'만 조장하는 것을 넘어 단칼에 도려내고 '하나로 통일'을 해내어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것을 일거에 없애고 '통일'을 넘어 '통합'을 이끌어낸 것을 마냥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허나, 그런 새로운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더 많은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오직 하나를 위해 '모두'가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하나를 얻기 위해 '당신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내놓을 이가 얼마나 되겠느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의'를 의해서 '개인의 희생'은 당연한(?) 것쯤으로 묘사하기 일쑤다. 그나마 '모두를 위한 대의'라면 고려해봄직도 하건만 '알렉산드로스'를 위해, '진시황'을 위해, '윤석열'을 위해 대한민국 '전체'를 갖다 퍼주..쿨럭쿨럭

 

  암튼, 모두를 위한 역사인식이란 관점에서 '정복자들의 정복전쟁'을 살펴본다면 그들의 '문화 융합방식'에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물론, '그리스식'이나 '중국식'이 무조건적으로 옳다는 강압적인 통일방식은 노땡큐다. 그런 식이라면 '한국식'이 세계표준으로 삼아 마땅하는 의견에 얼마나 공감할 것이냔 말이다. 그보다는 K-POP이 보여주는 방식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한류열풍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식 음악'이 전세계를 강타했지만, 실상 '한국식 음악'이라는 것의 실체는 '한국만의 독특한 음악'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신나고 흥겨운 리듬에 '젊은이들의 끼와 열정'을 담아 멋들어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K-POP은 누구라도 한 번 들으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음악이면서, 동시에 누구라도 흥과 끼만 있다면 즐길 수 있는 '컬쳐문화'로 거듭났다. 더 나아가 이제는 '한국인 멤버'가 없는 '로컬멤버'로 이루어진 K-POP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것이 새로운 K-POP의 대세가 될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와 진시황도 애초에는 이런 꿈을 꿨을테지만, 감히 실현시키지 못했던 업적이다.

 

  이제 위대한 정복군주의 업적만 나열한 역사책에 열광하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 두자. 그보다는 '모두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 위대함'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그런 인식으로 알렉산드로스와 진시황의 공과를 논하는 역사수업이 대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통합'을 위해서 희생이 강요되어선 절대 안 된다는 것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물론, 대화와 타협의 지난한 과정을 축소하고, 갈등과 분열로 조장된 혼란을 일거에 해결하는 멋진 활약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허나 그럴 때에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통합과 융합으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을 보듬어주어야 하고,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멋짐'이 제대로 멋질 수가 있는 법이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 가운데 흥하는 것을 취하고 쇠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을 역사공부의 목적으로 삼기 마련인데, 이제 여기에 하나를 더 목표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공들여 배운 '역사인식'으로 특정 세력의 이득만 챙기는 것을 경계하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쓰여지도록 철저히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제대로 된 '역사인식'이 절실하게 되었다. 역사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역사적으로 성찰한 뒤에, 올바른 인식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돌아보길 바란다. 그러면 무엇이 잘못 되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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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2 : 이이 성학집요 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2
곽은우 지음, 이진영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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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고전' 가운데서도 유독 읽지 않는 '고전'이 있으니, 바로 '우리 고전'이다. 역사를 배우면서 '세계사'와 '한국사'를 따로 국밥처럼 다루는 실수를 많이 지적하지만, 철학을 비롯해서 '고전'이라 일컫는 것들은 죄다 서양과 중국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정작 우리네 위인들이 쓴 '고전'에 대해서는 까막눈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에는 심히 부끄러워해야 할만 하다. 심지어 외국의 고전은 곧잘 치켜세우면서 '한국의 고전'은 푸대접을 하기 일쑤다. 까닭인 즉슨, 대단히 '전근대적인 낡은 사상'인 탓에 오늘날에 비추어 온통 '한계점' 투성이며, 심각할 정도로 시대착오적인 내용만이 가득하기에 현대인들이 배우기에 딱 알맞은 '한국 고전'은 없다고 단언할 지경이다. 정말 그럴까?

 

  각설하고, 율곡 이이가 쓴 <성학집요>는 선조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것을 염두에 두어 부디 '바른 정치'를 이끄라는 마음을 담아 손수 적어내려간 책이다. 마치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문에 <군주론>을 지어다 바치며 조국 피렌체를 위해서 써내려간 것처럼 말이다. 하기는 <성학집요>와 <군주론>은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제왕학'이라 부를 정도로 '군주를 위한 가르침'을 담았기 때문이다. <성학집요>도 임금이 꼭 읽어야 할 <대학>을 중심으로 <사서오경>의 핵심적인 내용만 골라서 쉽게 해설까지 곁들여 썼고, <군주론>은 제목부터 '군주가 마땅히 해야할 것'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한 책이니, 책의 내용은 사뭇 다를지언정 책을 지은 글쓴이의 마음과 생각에는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이는 왜 선조에게 책을 지어다 바칠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건 이이가 '실천하는 사상가'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책만 파고들어 온갖 지혜를 쌓는 것을 넘어 '배운 내용'을 그대로 '현실정치'에 반영해 '바른 세상'을 만들려고 애쓴 셈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공부하는 이들의 귀감이 되는 것이다. 단지 부와 명예만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이이는 단언했다.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닦은 뒤에 뜻(목적)을 이루었으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써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이런 이이의 주장은 '선조'에게 닥친 조선의 위기를 생각하면 실로 '예언가'적인 면모가 엿보일 정도다. 속설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0여년 전에 '10만 양병설'을 주장해 사뭇 달라진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조선에게 닥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비책까지 마련했다고 전해질 정도니, 율곡 이이의 선견지명은 단순한 지레짐작이 아니라 '높은 학문의 경지'에 다다르니 보이는 날카로운 안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율곡 이이는 9번 장원급제를 할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다. 이런 대단한 사람이 <사서오경>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만을 간추려 '꼭 알아야 할 유학의 모든 것'을 집필해낸 책이 바로 <성학집요>였던 것이다. 앞서 퇴계 이황이 <성학십도>를 펴낸 것과도 서로 비교가 될 만하지만, '이이와 이황의 비교'는 다음에 기회가 있을 터이니 다음으로 미룬다. 암튼, 이토록 뛰어난 학자가 어린 선조임금을 위해서 써내려간 <성학집요>는 조선의 근간이었던 '성리학의 핵심 포인트'만 담아두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중국의 여러 고서를 <십팔사략>이라는 역사서로 휘뚜루마뚜루 읽어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또 다른 숨은 뜻'을 심어두었다.

 

  <성학집요>의 내용을 읽어내려가다보면 '군자에 이르는 길'이 보이고, '선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오늘날로 비유를 하자면, '시험에 나오는 문제만 쏙쏙 공부하자'는 '시나공 요약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언컨대, 조선의 성리학에 정수를 공부하고 싶은데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또는 <사서오경>을 두루 살펴볼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에도 율곡 이이의 <성학집요> 한 권만 읽어도 충분할 정도다. 그런데 이 책, <이이 성학집요>를 보면 그 속에 '또 다른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바로 '현실정치'에 참여를 적극 권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사실, 이이만큼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숱한 '개혁정책'을 내놓은 신하가 없을 지경이다. 16세기 조선의 혼란은 단순히 '붕당정치'에서 그친 것이 아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선 오랜 전란을 종식시키고 '전국통일'을 이룬 기세로 조선을 넘보고 있었으며, 대륙에서는 바야흐로 '명청교체기'로 명의 기운이 점점 쇠락해지고 청(후금)의 기운은 날로 기세등등해지는 때에 조선의 임금인 '선조'는 붕당정치로 신하들이 편가르기를 한 틈을 타서 '왕권강화'를 할 요량으로 신하들과 힘겨루기에만 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붕당정치는 날로 심각해지고, 임금은 신하들의 다툼에서 '어부지리'로 이득만을 챙기며, 말려야 할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더욱 부추기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으니, 율곡 이이가 보기에 한없이 안타깝기 그지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이이는 <성학집요>를 지었고, 선조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바쳤다. 그리고 현실이 바뀌길 간절히 원했다. 최고권력자인 조선의 임금을 깨우치면 국제적 위기속에서도 절대 위태롭지 않고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딴에는 어린 시절 영특했던 선조를 떠올리며 '기대'가 크게 작용했으리라. 허나 선조는 영리하긴 했지만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 급급했던 졸장부에 불과했다. 끝내 선조는 이이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나라가 스러져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오늘날의 정치는 어떤가? 최고 권력자 곁에 '율곡 이이' 같은 인물이 보이질 않는다. 오직 자기 이익만을 최고로 여기며, 나라를 팔아서라도 제 한 몸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아낌없이 퍼주는 모지리만 가득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율곡 이이 같은 '정치인'이 새로 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가? 일촉즉발의 위기속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 있겠냔 말이다. 이럴 땐 방법이 딱 한 가지다. 온 국민이 '율곡 이이'와 같은 '선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건져내야 할 것이다.

 

  그렇다치고 '낡은 지식'과 '낡은 방법'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에 닥친 위기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겨내라는 말인가 의아하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실상 <성학집요>는 16세기 성리학적 이념만을 읊어대고 있으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허나 <성학집요>가 분명 '적절한 위기극복 방법'을 제시한 것은 맞다. 바로 <대학>에서도 밝힌,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뒤에 정성을 다해, 먼저 '자신'을 닦고, '가정'을 일으켜 세우며, 범주를 넓혀 '국가'를 다스리고 나아가 '세상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 자기 한 몸을 소중히 써야한다는 내용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성학집요>에 쓰인 '제왕학의 핵심'을 깨우치고 실천하게 된다면 위기를 극복하고 우뚝 선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자는 달을 가리키는데 바보는 손가락만 바라본다'는 말이 있다. 현자는 모두를 위해 '함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바보는 '제 이익'만을 탐하며 당장의 이익을 챙기려 어리석기 그지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느냔 말이다. 바보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칠 수 있도록 큰소리로 한데 외쳐야 할 것이다. 현자가 가리키는 달이 '하늘에서 환한 빛으로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고 말이다. 아무리 바보 멍충이라고 해도 비로소 '환한 달빛'을 보고 난 뒤에는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저 제 이익에만 취해서 밝은 달을 쳐다볼 생각조차 안 하는 바보에게 큰 소리로 외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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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계사 2 - 통일 제국의 형성과 세계 종교의 탄생 처음 세계사 시리즈 2
초등역사교사모임 글, 한동훈.이희은 그림,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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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관점'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내가 '어떤'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느냐가 핵심이란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역사를 이해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 배우미(학생)들은 학창시절에 역사교과를 배우면서 '안목'을 착실히 키워나가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흔쾌히 "네~"라고 대답할 이가 몇 명이나 될런지 의문이다. 왜냐면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분명히 배웠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좀처럼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는데 까막눈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가르치미(선생)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역사를 가르치다보면 '편향'에 대한 걱정을 하곤 한다. 주류 역사만 가르치느냐, 비주류 역사까지 아울러서 가르치느냐 하는 고민 말이다. 속된 말로 '진보 vs 보수', '좌파 vs 우파'처럼 좌우 양쪽의 균형잡힌(?) 중립적인 자세로 가르쳐야 한다고 입바른 소리를 하곤 하지만, 당최 '중립적인 자세'를 어떻게 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산성과 염기성의 액체를 섞듯이 극좌와 극우의 관점을 대충 얼버무리듯 섞으면 그 사이의 중간적인 '역사적 관점'이 우리 배우미들에게 자연스레 스며든다는 것인가? 아니면, 배우미 스스로 '올바른 역사적 가치관'이 형성된다는 말인가? 오히려 이쪽 저쪽 편갈라서 싸우는 어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그래선 안 된다. '역사적 편향'이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편향적'일까 무서워서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을 가르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르쳐야 바람직한 '역사관점'을 익힐 수 있을까? 역시나 스스로 성찰하는 가르치미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런 가르치미에게 배우는 배우미들이 올바른 '역사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고,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가르치미는 '윤리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한마디로 배우미를 '돈 버는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고, 가르치는 직업을 '돈 버는 수단'쯤으로 여기는 사람은 절대로 남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먹고 살기도 바쁜 현대인들에게 '높은 수위'의 도덕을 강요하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도 들긴 하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미쳐 돌아가는 것을 보니 '도덕'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 얘기다. 공감하지 않아도 좋다. 나 혼자서라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겐 한없이 높은 도덕심으로 가르칠테니 말이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공감하고 인정해줄지는 모르겠으나 나 스스로 부끄러움 없는 가르침을 실천하려 한다.

 

  각설하고, <처음 세계사 2>의 주요 내용은 '로마'와 '인도',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다. 그 가운데 각 나라의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종교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로마의 크리스트교와 인도의 불교, 그리고 불교가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에 끼친 영향에 대한 내용이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각각의 종교가 역사에 미친 영향을 함께 살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책 속에서는 '그것'까지 상세한 설명이 없으니, 역시나 가르치미의 역할이 꼭 필요한 부분이 되겠다.

 

  아시다시피, 로마는 왕정으로 시작해 공화정을 거쳐 황제정으로 크게 성장했다가 오현제(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의 등장으로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를 누렸으나, 그후 '군인황제의 등장'으로 혼란을 겪다 '동서 분열'로 이어지고, 서로마의 멸망으로 사실상 로마제국은 끝장이 난다. 하지만 동로마(비잔티움)제국은 명맥을 이어 나가 '천 년의 역사'를 채우고서 저물어갔으니 로마가 서양역사에 끼친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후 서유럽은 '중세시대'로 접어들어 봉건제가 자리 잡으며 '크리스트교'가 어마무시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니, 우리는 '크리스트교'라는 종교에 대해서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알렉산드로스가 방문(?)한 뒤에 인도에는 '아리아인의 도래'가 시작되었다. 이 아리아인들은 인더스강에 자리잡고 있던 원주민들을 정복하면서 강력한 신분제도를 시행했으니, 흔히 말하는 '카스트제도'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도래한 아리아인들은 자신들이 상위계층으로 자리잡으면서 '브라만교'를 성립시켰는데, 오늘날 인도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불교'라는 종교도 탄생하였다. 불교도 다분히 '브라만교'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철저히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누구나 해탈해서 붓다(부처)가 될 수 있다는 싯다르타의 가르침이 분명한 차이점이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를 널리 퍼뜨린 주인공은 피비린내나는 정복활동을 마친 뒤의 '아소카 왕'이었다.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정복군주였던 아소카는 활발한 정복전쟁을 수행하며 왕조의 기틀을 완성하고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그로 인해 인도 백성들의 피폐한 모습을 보고서 크게 잘못을 깨닫고 뉘우침을 증명(?)하기 위해 '불교'를 퍼뜨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허나 새로운 정복지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색다른 종교가 필요했다는 해석에도 주목할 만하다. 아리아인에 의한, 아리아인만을 위한 '브라만교'를 퍼뜨리기엔 원한이 너무나도 큰 까닭에 새로 얻은 정복지 주민들과의 통합이 힘들었는데, 때마침 일어난 '불교의 가르침'으로 대통합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논리가 더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로마가 '크리스트교'를 공인한 까닭과도 통한다. 로마는 '그리스신화'를 바탕으로 한 '다신교'를 숭배했고, 이후 영토가 넓어지면서 '이집트신화'와 '수메르신화' 등 여러 지역의 종교적 색채를 융합해가며 '다신교 대통합'을 근간으로 삼았다. 하지만 때마침 일어난 '예수의 등장'과 '복음 전파(사도 바울)'로 인해 크리스트교(유일신)는 유대인만을 위한 종교에서 범인류적인 종교로 탈바꿈에 성공해 교세를 펼쳐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널리 퍼진 '크리스트교'를 애써 부인하려 했지만, 기울어진 로마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선 '색다른 종교'로 대통합을 이끌어내는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걸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실행을 했고, 곧이어 로마의 종교가 '크리스트교'로 공인되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를 바라보면 '국가의 대통합'을 위해서는 '종교(큰 믿음)'가 필요했고, 더 넓은 영토와 더 많은 백성을 '융합'시키는데 종교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는 고대 한국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존의 집권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는데 '불교'를 요긴하게 써먹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 전파된 불교는 삼국은 물론 일본에까지 '왕권강화'를 이루는데 걸림돌이었던 '집권세력(구세력)'을 내몰고 '왕'을 중심으로 한 국가 대통합을 이끌어내었기 때문이다.

 

  그럼 고대사에서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리해볼 수 있다. 종교는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꼭 필요한 '응집력'을 갖고 있으며, 더 넓고 더 많은 것을 한데 아우르는 '포용력'을 발휘하기도 하면서, 기존의 집권세력을 견제하고 새로 등장한 집권자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혼란스런 대한민국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종교의 힘'을 빌어올 수 있을까? 우리는 서구열강의 침탈과 일제의 강제병탄을 겪으면서 '동학'이라는 새로운 종교로 민족대통합을 꾀한 적이 있다. 동학은 이후 '천도교'로 명칭이 바뀌며 3·1운동의 핵심 세력이었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도 크게 활약을 했었으나, 일제의 탄압과 훼방으로 인해 주요인물들이 대거 변절하기 시작하면서 교세가 흔들렸고, 오늘날에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위기의 순간'엔 어김없이 종교의 힘이 발휘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다시 돌아와, 오늘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대통합을 이룰 대한민국의 새 종교는 나타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해보자. 불교? 기독교? 천주교? 기존 종교에서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새로운 종교를 창시할 것인가?

 

  아니, 나는 '홍익인간(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에 주목하고 싶다. 굳이 '단군교'라는 숭배대상을 찾고 싶은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 수 있으면서, 세계 인류의 평화와 공영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사상 말이다. 마치 전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이 'K-POP'에 열광하며 저마다의 끼와 흥을 맘껏 발휘하는 '그 힘'처럼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이념 하나에 전세계인이 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무엇'을 발휘하고 싶은 것이다. 그 무엇을 대한민국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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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3분 철학 1 : 서양 고대 철학편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1
김재훈.서정욱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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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철학책'을 즐겨 읽는다. 하지만 '독학'으로 읽는 것이기에 내가 읽은 철학의 사조가 옳게 읽는 것인지 바르게 이해한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저 읽고 '감동'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철학에 '정답'이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철저히 '암기'를 무시하고 '느낀대로' 읽고 생각하고, 나름 사유하면서 즐길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난 철학이 어렵지 않다. 애써 어렵게 써내려간 '철학책'을 읽을 때에도 '쉽게' 써내려가지 못한 까닭을 안쓰럽게 바라볼 뿐이다. 그런 까닭에 난 '쉽게 쓴 철학책'을 선호한다. '단순도식'이라는 우려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누가 읽더라도 쉽게 써내는 것이 '더 대단한 것'이며, 동시에 '명쾌한 설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줄 수 있다고 믿기에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책, <만화로 보는 3분 철학>은 아주 훌륭한 철학책이다.

 

  그중 1권인 이 책은 '고대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철학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흥미'를 돋우고, '대화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며 '철학자의 사상'과 '철학의 계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며, '만화형식'으로 보다 쉽게 '철학자들의 사상에 담긴 핵심'을 강렬하게 드러내 보여주어 누구라도 쉽게 철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렇다면 '고대 철학자들'은 '무엇'에서부터 철학을 시작하였을까? 그건 '세상의 만물'이 무엇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흔히 최초의 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는 "만물은 물이다"라고 세상의 근원을 주장했다. 그 뒤로도 세상 만물의 근원이 불이기도 했고, 수이기도 했고, 사물 그 잡채이기도 했다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서는 '물, 불, 공기, 흙'이라는 '4원소설'을 주장하는 등 온갖 근거를 밝히며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 밝혀내려 애썼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참 쓰잘데 없기 그지 없는 낭설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과학적인 근거' 때문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과학의 원류가 고대 철학자들이 만물의 근원을 밝히던 '자연철학'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고개가 절로 숙연해지기 되고 만다.

 

  이를 테면, 연금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화학도 없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흔한 물질을 값비싼 금속으로 바꾸는 '연금술사'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오늘날 새로운 '화학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위대한 업적으로 치부하는 세태가 우습단 말이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관점에서 봤을 때, 우습기 짝이 없는 '고대 철학자들의 주장'을 낡고 터무니없는 사상으로 취급해선 곤란할 것이다. 애초에 보잘 것 없이(?) 시작되었던 철학적 사유가 현대철학의 복잡다단하고 심오한...때로는 냉철한 분석으로 당면한 사회문제를 풀어내는 소중한 열쇠로 여기는 풍조의 근원이었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면 '고대 철학'을 그저 그렇고 그런 것쯤으로 치부하지는 못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로,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철학'을 알아보자면서 말이다.

 

  앞서 밝혔듯이, '고대 철학'은 세상 만물의 근원을 밝히는 자연철학으로 시작해서 세상 만물의 '존재 이유'를 물으며 나름의 주장을 펼쳐내었다. 그렇게 인간이 가진 지성으로 세상에 관한 모든 학문을 꿰뚫으려 하였고, 세상이 혼란해질수록 삶을 대하는 생각을 바르게 하고 태도를 올바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윤리학'으로 발전하였다. 그런 대표적인 윤리철학이 바로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다. 이 두 학파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존경해서 만들어지고 발전한 윤리학이었으며,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이전의 '자연철학'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수많은 저작물을 통해서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엿볼 수 있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각각 '어떻게' 그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는지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고대를 대표하는 철학자가 바로 '소크라테스'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위대한 스승'을 독배를 마시고 자살에 이르게 한 '냉혹한 현실'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흔히 알려진 대로 소크라테스는 그 당시 '위정자'들에게 믿보이고, 당시의 지식인들이었던 '소피스트(궤변론자)'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아 죽음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당시 소크라테스의 지인들은 그런 세태가 만들어낸 '위선' 때문에 헛된 죽음을 당하지 말고 탈옥을 권했으나, 우리의 위대한 스승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알고도 제 목숨을 챙기는 비겁한 행위를 한다면, '위선자들의 논리'를 따르게 되는 꼴이니, 억울하긴 하지만 '당당히' 죽음을 받아들이며 '참된 진리'로 승리하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말씀하였다. 실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에 이르면서도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저지른 잘못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씀한 것과 같은 위대함일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이 겪는 치욕은 한마디로 '철학의 부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만 더 똑똑했으면 '대한민국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면서, 사죄도 변변하게 못하는 모지리를 '국제적으로 개망신줄' 수 있는 방법도 있었는데, 어찌 멍청하게도 '뻔뻔한 가해자'에게 굴욕적으로 면죄부를 선사하면서도 아무 것도 얻어낸 것이 없는 굴욕적인 외교참사를 저지르고 말았느냔 말이다. 그래 놓고도 자화자찬을 늘어놓으며 '핑크빛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선전선동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으면, 욕지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진정, 참으로 선량하기 그지 없고 착한 내가 감히 심한 욕을 한마디 하겠으니 부끄러운 줄 알면, 제발 좀 눈앞에서 사라져줬으면 좋겠다. "못난 놈~"

 

  쨌든, 철학은 이토록 중요하다. 앞으로 또다시 이런 못난 놈을 대통령이라고 뽑는 머저리들은 없길 바라며, 제발 좀 철학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 이 얼마나 쉽고 재밌는 철학책이냔 말이다. 2권에서 다시 '철학이야기'를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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