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2 : 이이 성학집요 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2
곽은우 지음, 이진영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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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고전' 가운데서도 유독 읽지 않는 '고전'이 있으니, 바로 '우리 고전'이다. 역사를 배우면서 '세계사'와 '한국사'를 따로 국밥처럼 다루는 실수를 많이 지적하지만, 철학을 비롯해서 '고전'이라 일컫는 것들은 죄다 서양과 중국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정작 우리네 위인들이 쓴 '고전'에 대해서는 까막눈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에는 심히 부끄러워해야 할만 하다. 심지어 외국의 고전은 곧잘 치켜세우면서 '한국의 고전'은 푸대접을 하기 일쑤다. 까닭인 즉슨, 대단히 '전근대적인 낡은 사상'인 탓에 오늘날에 비추어 온통 '한계점' 투성이며, 심각할 정도로 시대착오적인 내용만이 가득하기에 현대인들이 배우기에 딱 알맞은 '한국 고전'은 없다고 단언할 지경이다. 정말 그럴까?

 

  각설하고, 율곡 이이가 쓴 <성학집요>는 선조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것을 염두에 두어 부디 '바른 정치'를 이끄라는 마음을 담아 손수 적어내려간 책이다. 마치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문에 <군주론>을 지어다 바치며 조국 피렌체를 위해서 써내려간 것처럼 말이다. 하기는 <성학집요>와 <군주론>은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제왕학'이라 부를 정도로 '군주를 위한 가르침'을 담았기 때문이다. <성학집요>도 임금이 꼭 읽어야 할 <대학>을 중심으로 <사서오경>의 핵심적인 내용만 골라서 쉽게 해설까지 곁들여 썼고, <군주론>은 제목부터 '군주가 마땅히 해야할 것'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한 책이니, 책의 내용은 사뭇 다를지언정 책을 지은 글쓴이의 마음과 생각에는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이는 왜 선조에게 책을 지어다 바칠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건 이이가 '실천하는 사상가'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책만 파고들어 온갖 지혜를 쌓는 것을 넘어 '배운 내용'을 그대로 '현실정치'에 반영해 '바른 세상'을 만들려고 애쓴 셈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공부하는 이들의 귀감이 되는 것이다. 단지 부와 명예만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이이는 단언했다.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닦은 뒤에 뜻(목적)을 이루었으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써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이런 이이의 주장은 '선조'에게 닥친 조선의 위기를 생각하면 실로 '예언가'적인 면모가 엿보일 정도다. 속설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0여년 전에 '10만 양병설'을 주장해 사뭇 달라진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조선에게 닥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비책까지 마련했다고 전해질 정도니, 율곡 이이의 선견지명은 단순한 지레짐작이 아니라 '높은 학문의 경지'에 다다르니 보이는 날카로운 안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율곡 이이는 9번 장원급제를 할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다. 이런 대단한 사람이 <사서오경>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만을 간추려 '꼭 알아야 할 유학의 모든 것'을 집필해낸 책이 바로 <성학집요>였던 것이다. 앞서 퇴계 이황이 <성학십도>를 펴낸 것과도 서로 비교가 될 만하지만, '이이와 이황의 비교'는 다음에 기회가 있을 터이니 다음으로 미룬다. 암튼, 이토록 뛰어난 학자가 어린 선조임금을 위해서 써내려간 <성학집요>는 조선의 근간이었던 '성리학의 핵심 포인트'만 담아두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중국의 여러 고서를 <십팔사략>이라는 역사서로 휘뚜루마뚜루 읽어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또 다른 숨은 뜻'을 심어두었다.

 

  <성학집요>의 내용을 읽어내려가다보면 '군자에 이르는 길'이 보이고, '선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오늘날로 비유를 하자면, '시험에 나오는 문제만 쏙쏙 공부하자'는 '시나공 요약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언컨대, 조선의 성리학에 정수를 공부하고 싶은데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또는 <사서오경>을 두루 살펴볼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에도 율곡 이이의 <성학집요> 한 권만 읽어도 충분할 정도다. 그런데 이 책, <이이 성학집요>를 보면 그 속에 '또 다른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바로 '현실정치'에 참여를 적극 권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사실, 이이만큼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숱한 '개혁정책'을 내놓은 신하가 없을 지경이다. 16세기 조선의 혼란은 단순히 '붕당정치'에서 그친 것이 아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선 오랜 전란을 종식시키고 '전국통일'을 이룬 기세로 조선을 넘보고 있었으며, 대륙에서는 바야흐로 '명청교체기'로 명의 기운이 점점 쇠락해지고 청(후금)의 기운은 날로 기세등등해지는 때에 조선의 임금인 '선조'는 붕당정치로 신하들이 편가르기를 한 틈을 타서 '왕권강화'를 할 요량으로 신하들과 힘겨루기에만 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붕당정치는 날로 심각해지고, 임금은 신하들의 다툼에서 '어부지리'로 이득만을 챙기며, 말려야 할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더욱 부추기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으니, 율곡 이이가 보기에 한없이 안타깝기 그지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이이는 <성학집요>를 지었고, 선조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바쳤다. 그리고 현실이 바뀌길 간절히 원했다. 최고권력자인 조선의 임금을 깨우치면 국제적 위기속에서도 절대 위태롭지 않고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딴에는 어린 시절 영특했던 선조를 떠올리며 '기대'가 크게 작용했으리라. 허나 선조는 영리하긴 했지만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 급급했던 졸장부에 불과했다. 끝내 선조는 이이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나라가 스러져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오늘날의 정치는 어떤가? 최고 권력자 곁에 '율곡 이이' 같은 인물이 보이질 않는다. 오직 자기 이익만을 최고로 여기며, 나라를 팔아서라도 제 한 몸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아낌없이 퍼주는 모지리만 가득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율곡 이이 같은 '정치인'이 새로 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가? 일촉즉발의 위기속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 있겠냔 말이다. 이럴 땐 방법이 딱 한 가지다. 온 국민이 '율곡 이이'와 같은 '선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건져내야 할 것이다.

 

  그렇다치고 '낡은 지식'과 '낡은 방법'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에 닥친 위기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겨내라는 말인가 의아하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실상 <성학집요>는 16세기 성리학적 이념만을 읊어대고 있으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허나 <성학집요>가 분명 '적절한 위기극복 방법'을 제시한 것은 맞다. 바로 <대학>에서도 밝힌,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뒤에 정성을 다해, 먼저 '자신'을 닦고, '가정'을 일으켜 세우며, 범주를 넓혀 '국가'를 다스리고 나아가 '세상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 자기 한 몸을 소중히 써야한다는 내용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성학집요>에 쓰인 '제왕학의 핵심'을 깨우치고 실천하게 된다면 위기를 극복하고 우뚝 선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자는 달을 가리키는데 바보는 손가락만 바라본다'는 말이 있다. 현자는 모두를 위해 '함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바보는 '제 이익'만을 탐하며 당장의 이익을 챙기려 어리석기 그지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느냔 말이다. 바보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칠 수 있도록 큰소리로 한데 외쳐야 할 것이다. 현자가 가리키는 달이 '하늘에서 환한 빛으로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고 말이다. 아무리 바보 멍충이라고 해도 비로소 '환한 달빛'을 보고 난 뒤에는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저 제 이익에만 취해서 밝은 달을 쳐다볼 생각조차 안 하는 바보에게 큰 소리로 외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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