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상상놀이터 2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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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말한다. 평화를 지키려면 전쟁을 대비하라고 말이다. 또한, 평화를 위한다면 상대보다 더 강한 무기를 만들어 감히 우리를 쳐들어올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상대보다 더욱 더 강한 무기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말해도 그닥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그 강한 무기를 끝내 만들고 말았다. 단 한 발만으로도 도시 하나를 순삭시킬 수 있고, 서로를 향해 수십 발을 쏘아대는 것만으로 온 지구의 생태계를 망가뜨려, 결국 인류의 멸망을 앞당길 '핵무기'를 말이다. 다행히 여지껏 단 두 발밖에 '떨어뜨리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만 발을 '쏘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중 1/10만 터뜨려도 온 지구는 끔찍한 일을 치루게 되겠지만 말이다. 인류는 그런 끔찍한 일을 잘 알고 있기에 아직까지 만들었으나 쏘지는 않는 '암묵적인 합의'를 도출해내었다.

 

  물론 전쟁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비극이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아프리카와 아시아 곳곳에서는 '내전(시빌 워)'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강대국 러시아와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자신들보다 한 없이 약한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을 향해 거침없이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하지만 약소국이라고 해서 마냥 당하고만 있지도 않는다. 그들은 처참하게 패배하고 망가져 가고 있지만 결코 '항복'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전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고, 결국 '누구도 승리하지 못할 전쟁'의 마침표를 찾지 못하고 헤맬 뿐이다.

 

  만약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만에 하나라도...핵무기를 사용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로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라면 '서로를 향해' 아낌없이 쏘아 댈 것이며, 한 쪽만 보유한 상황이라면 '또 다른 나라'가 끼어들어 '핵우산 카드'라고 이름을 붙여 대신 쏘아 댈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파괴할 것이 분명한 '핵전쟁'이 벌어지고 난 뒤에는 어떤 상황이 펼쳐지게 될까? 이 책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은 바로 그 '핵전쟁 이후'에 벌어질 상황을 상상하며 쓴 소설이다. 1983년이 쓰여졌기에 '독일 통일(1991)'이 아직 이루어지기 전을 배경으로 삼았다. 바로 서독은 미국을 대신하고, 동독은 소련을 대신하여 '냉전체제'에 종지부를 찍고서 서로를 향해 핵탄두가 실린 미사일 '버튼'을 눌렀다고 가정한 뒤에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전쟁의 원인' 따위는 밝히고 있지도 않다. 그저 '핵폭탄'이 터진 상황만 보여줄 뿐이다.

 

  물론 '핵폭탄'이 터졌다고해서 곧바로 지구가 붕괴되거나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은 끊임없이 고통을 겪어야만 할 것이다. 왜냐면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원인 모를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원자병'이라 불리는 병은 아예 치료가 불가능하다. 엄청난 고용량의 방사능에 피폭이 되면 겉으론 멀쩡해보여도 심각한 '유전자 변형'으로 인해 치료를 할 방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병원치료라는 것은 '자가치료(면역체계)'를 도와주는 역할일 뿐, 망가진 유전자만 골라내어 '정상 유전자'로 치유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유전자'가 망가지면 다시 원래대로 회복이 불가능하게 된다. '원자병'은 그래서 무섭다.

 

  다행히 핵폭발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방사능 피폭'을 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방사능 물질'은 오랜 시간동안 남아 우리가 숨쉬는 '공기속'에, 마시는 '물속'에, 그리고 먹는 '음식속'에 남아 숨쉬고, 마시고, 먹는 행위를 하면 할수록 '우리몸'에 차곡차곡 쌓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견딜 수 있는 만큼 견디다 '그 이상'이 축적이 되고나면 결국 '유전자 변형'을 시킬 것이며, 한 번 변한 유전자는 다시는 원상태로 돌아오지 못하고 '끝없는 고통'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렇게 '변형된 유전자'는 고스란히 유전되어서 뒤이어 태어날 아이들에게도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원자병'은 2세, 3세, 4세, 5세...그 이상의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되어 태어날 때부터 고통받을 것이란 말이다. 허나 이런 고통도 엄마의 뱃속에서 '건강'히 자라다 '안전'하게 순산한 뒤에 받을 고통이다. 대부분은 '유산'되어 햇빛도 받아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어른들을 향해 '천벌받을 부모들'이라고 욕을 써놨다. 어른들이 저지른 전쟁 때문에 자신들은 어른이 되어 보지도 못한채 고통받으며 죽어갈 뿐이라고 말이다.

 

  솔직히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너무 끔찍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모른채 죽었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핵폭발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마을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모든 교통과 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죽어나갔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그나마 나았다. 어린이들은 '핵폭발' 이후에 벌어진 끔찍한 아비규환의 다툼속에서 '힘쎈 어른들'에게 먹을 것도, 잠잘 곳도, 심지어 쉴 곳도 다 빼앗기고서 '도둑고양이'마냥 먹을 것을 몰래 훔치려다가 매를 맞아 죽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또한 심한 굶주림에 아프고 병이 들면 제때 치료도 받지 못하고 서로를 끌어안은채 죽어갈 뿐이었다. 어제 한 아이가 죽고, 오늘 두 아이가 죽고, 그렇게 하나둘 죽고 나면 마지막으로 죽은 아이가 서툰 솜씨로 묘비를 만들어주고서 자신은 맨바닥에 쓸쓸히 죽어나자빠질 뿐이었다. 그나마 서둘러 찾아온 '핵겨울'에 '방사능 낙진'으로 오염된 하얀눈이 그 작은 주검 위를 덮어주었다.

 

  그럼에도 온정은 남아 있어 그러한 비참한 죽음에 이르기 전에 마을 어른들이 '전쟁고아'가 된 아이들을 하나둘 거두어 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썼고, 이미 '방사능'에 오염된 먹거리와 마실거리로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따뜻한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이들에게 남은 희망이란 것이 있을까?

 

  다행히 아직까지는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인지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미 만들어놓은 '핵무기'를 아직도 보유하고 있고, 그 보유량만으로도 지구를 절딴내고도 남을 만한데, 여기에 더 보태서 더 강력한 '핵무기'를 개발하고, 없어도 될 '핵무기'를 생산하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21세기에 접어드니 국가간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고, 이런 불평등을 해소할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전세계 곳곳에 갈등과 불화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으니 '핵전쟁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인류는 이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벌어진 비극을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미국의 '스리마일', 그리고 일본의 '후쿠시마' 등등에서 죽음의 방사능이 아직도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핵전쟁의 무서움'을 잘 모르고 있다. 그저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나 마을에만 떨어지지 않으면 그뿐이라는 안일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 책을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지구마을 어느 곳에라도 '핵폭발'이 일어나게 되면 모두가 '똑같이'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핵전쟁'만큼은 막아야 한다. 단 한 발의 핵폭탄도 터뜨려서는 안 될 일이다. 그 뒤에 벌어질 무서움을 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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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소프트 스킬 10: 스펙보다 대세는 일머리 - 시대 경쟁력인 소프트 스킬을 비즈니스 사례로 배운다
라제쉬 스리바스타바 지음, 이미경 옮김 / 프리렉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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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스펙의 시대'다. 고3수험생을 지나 대입에 성공한 새내기들이 일주일에 두세 시간 남짓한 강의 하나만 듣고 판판이 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대학입학과 동시에 '취업전선'에 뛰어들어도 시간이 모자르기 때문에 놀면서도 '스펙쌓기', 알바하면서도 '스펙쌓기'에 목숨을 걸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스펙을 쌓고도 정작 '입사성공'을 하면 또다시 배워야 한다.

 

  그런데 어렵고 힘들게 '신입사원' 딱지를 달고 나면 그간 쌓아온 스펙 따위는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십 장의 자격증이 있어도 신입사원용 '업무스킬'에선 그닥 쓸만 한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동안 배웠던 것을 요만큼이라도 써먹을 수는 경우라면 다행인 편이다. 상사가 던져주는 일감의 대부분은 난생 처음 본 것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나마 '회사연수시절'에 익혔던 사내용 업무프로세스가 써먹을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허나 그것들은 그간 쌓아놓은 스펙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스펙을 쌓아야 보탬이 되는 걸까?

 

  사실 어떤 회사에 입사를 하든 '스펙'은 그닥 중요하지 않다. 물론 '스펙'이 아주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 어렵고 따기 힘든 '스펙'을 하나하나 챙긴 만큼 '실력'을 인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실무경험'이 아닌 스펙 따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왜? 회삿일은 '스펙'보다 '센스'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척하면 착하고 잘 통하며 일을 요리조리 잘하는 센스 말이다. 이 책에선 '일머리'라고 표현했다. 한마디로 어느 회사에서나 환영받는 인재는 '일머리'가 뛰어난 사람이란 말이다.

 

  어쩌면 '스펙'을 쌓는다는 것은 하드웨어의 성능을 키운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컴퓨터의 하드웨어를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메인보드에 끼깔나는 그래픽카드, 그리고 어떠한 프로그램을 돌려도 부족할리 없는 빵빵한 메모리에 절대로 꺼질리 없는 하이퍼울트라 전원장치를 장착한 뒤에 어떠한 발열도 쉬이 식혀줄 수 있는 초강력 펜과 방열판까지 꽂고 나면 정말 뿌듯할 것이다. 이렇게 빵빵한 하드웨어를 탑재한 컴퓨터를 장만하고서 전원버튼을 켠 뒤에 화려한 모니터를 켜고 부팅을 마무리한 뒤에 고작 '지뢰찾기'나 하고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해외유학에 석박사 학위까지 다 마친 인재가 회사에 입사해서 '복사기'와 씨름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다. 결국은 '소프트웨어'가 빵빵해야 한다. 심지어 고졸이나 전문대만 나왔더라도 '일머리'가 뛰어난 사람은 어떤 업무를 던져주어도 척척 해낼 것이고, 하는 일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대박을 터트리고, 남부러울 성과급에 초고속 승진까지 꿰 찰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스펙'이 뛰어난데 '일머리'까지 엄청나다면...이런 인재라면 '회사의 부속품'보다는 차라리 '창업'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암튼, 일머리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바로 그 '소프트 스킬'을 키우는 방법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이 책 <한 권으로 끝내는 소프트 스킬 10>이 바로 그 방법을 익히는데 아주 유용한 책일 것이다. 더구나 '생생한 비즈니스 사례'를 선보이며 10가지 스킬을 소개하고 있다. 그 10가지란 '창의력', '혁신', '비판적 사고', '올바른 질문법', '현명한 문제해결법', '평생학습', '스토리텔링', '권한보다 영향력', 휴머니스', 기업가 정신'이다. 분명 제시한 단어만 읽어도 이 책이 무엇을 말하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 그런 독자라면 '일머리'가 뛰어난 재능 있는 인재가 틀림없다. 근데 무슨 내용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독자라면...그래도 상관 없다. 이 책에 아주 상세하고 쉽고 재밌으며 유용하게 익히도록 '사례'들이 잘 드러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 나온 사례들을 '직접적'으로 써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예시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미 남들이 써먹은 방법을 고대로 베껴서 써먹는다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예 효과가 없지는 않겠지만 잘 써먹어도 '카피'에 불과하니 고대로 써먹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이 책의 사례를 통해 '스킬'로 익히고서, 자기만의 스킬로 써먹는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면 매우 훌륭한 인재가 틀림없다. 그리고 당신도 그런 훌륭한 인재가 얼마든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된다. 처음부터 뛰어난 창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이 책에서 선보인 사례들을 더듬더듬 따라하면서 '자기만의 스킬'로 승화시키면 더욱 훌륭한 방법일 것이다.

 

  이 책은 비단 '비즈니스 업무'를 하는 이들에게만 유용한 책은 아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소프트 스킬 10가지'는 모든 사람에게 유용하고,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성공을 꿈꾸는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조언을 해줄 것이 틀림없다. 성공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좋다. 처음부터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배우고 익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10가지 스킬을 몽땅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꼼꼼하게 읽지는 말길 바란다. 때로는 천재적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거나 '업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딴짓에 열중하기'라든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무조건 신나고 재밌는 것'에 심취하는 것도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갓지고 긴장이 풀어지는 남아도는 시간에 이 책을 한두 쪽씩 읽는다면 족할 것이다. 원래 '일머리'라는 것은 그렇게 배우고 익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당신이 바라는 성공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이 책과 함께 하길 바란다.

 

프리렉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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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원전 완역판 6 : 적벽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바른번역 옮김, 나관중 원작 / 코너스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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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제갈공명이 등장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등장했다는 것은 '천하삼분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등장인물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유비 삼형제도 40~50대에 접어들었는데 반해 비교적 젊은 조자룡도 30대 후반이었다. 그에 비해 제갈량과 방통 등 새로 등장한 인물들은 아직 20대 초반이었으니, 이제 <삼국지>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유비 삼형제는 반백살이 다 되어서도 아직 제대로 된 영지 하나 만들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조조에게 쫓기듯 형주의 유표에 기대어 '친족 버프'를 받아보려 했으나 수명이 다한 유표가 거저 준다는 형주도 마다한 유비였다. 그렇게 '쪽박 인생'이었건만 제갈량은 삼고초려를 한 유비에게 감복해서 천하는 삼분하는 지혜를 유비와 함께 이루겠다며 다부진 출사를 하였다. 그 시작은 신야성에서 거둔 '박망파 전투'의 승리였으며, 이제 '적벽대전'을 통해 (아직은 아니지만) 위나라의 조조와 오나라의 손권을 피로하게 만든 뒤 형주땅을 차지해 파촉땅까지 세력을 넓혀 '위촉오 삼국의 형세'를 형성하겠다는 것이 제갈량의 1차 목표인 셈이다. 이렇듯 천하를 세 나라로 균형을 맞추고 나서야 <삼국지>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제갈공명처럼 거의 신기에 가까운 재능을 가진 인재가 어찌하여 강력한 조조나 풍부한 손권의 세력으로 들어가 출세가도를 달리지 아니하고 무일푼에 가까운 빈털털이 유비와 손을 잡고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 것 말이다. 여기에 이문열은 자신이 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조조의 세력은 이미 걸출한 인물이 등용된 터라 아무리 재능을 뽐낸다고 하더라도 '출세가도'를 달리기 어려울 것이며, 손권의 세력은 너무 안정을 추구하고 소극적인 자세로 평화와 안정을 꾀하는 집단이기에 크게 쓰이는 재목으로 활용되기 힘들다고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조조는 '서서'라는 젊은 인재를 영입하는데 성공했음에도 별달리 써먹지 않고, 그렇다고 내치지도 않고 있었으며, 손권은 이미 제갈근이라는 공명의 형을 영입하고도 중책을 맡기지 않고 인재를 썩히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런 판국에 제갈량이 재주를 보이며 '등용문'을 통과했을지라도 크게 쓰이기도 힘들고 초고속 승진 따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라 본 것이다.

 

  반면에 무일푼에 가까운 유비진영에서는 이와 상황이 완전 달랐다. 떠돌이 집단에 불과했지만 나름 중산정왕의 후예로 '황족 버프'를 살릴 수도 있었고, 관우, 장비, 조운 등 무장들의 역량은 '탑티어'였으며, 미축, 간옹, 손건 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탁월한 재무능력'을 갖춘 명석한 신하들이었다. 이런 유비진영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모사능력'이 뛰어난 군사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뛰어난 장수와 유능한 신하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살림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자리를 처음으로 꿰찬 인물은 '서서'였지만, 조조의 계략에 빠져 유비의 품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후임으로 들어온 제갈량은 유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초고속 승진이 보장된 자리였던 것이다. 더구나 '경쟁자'도 없었기 때문에 제갈량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으니, 유비와 제갈량의 만남은 '금상첨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 이제 제갈량은 제대로 실력을 발휘를 하여 유비진영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형주땅'과 '파촉지역'을 가질 수 있는 지혜보따리를 마음껏 펼쳐놓게 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적벽대전'이다. 허나 적벽대전은 너무나 유명하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전은 다음 권에서 진행될 것이다.

 

  그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무릇 '천하통일'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치뤄야 하는 과정이 너무도 끔찍하기에 그렇다. 과연 '평화를 이루기기 위해서는 전쟁은 필수적인가?' 하는 의문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권력자'다. 하지만 잔혹한 전투에 임하는 것은 부하장수들이고, 하나뿐인 목숨마저 희생 당하는 것은 병졸들이다. 그럼에도 전쟁에서 승리한 뒤 얻은 이득은 '권력자'가 차지하며 온갖 명예도 독차지한다. 그러나 병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얻는 것은 별로 없으면서 잃는 것은 전부다. 그런데도 참혹한 전쟁에 앞장 세워지고 살아도 죽어도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만다. 도대체 이런 전쟁을 왜 해야만 한단 말인가? 북쪽의 병졸과 남쪽의 병졸이 큰 원한을 가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니 전쟁은 권력자의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삼국지>를 읽으며 옛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며 필독을 권장한다. 과연 무슨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일까? 민중들의 목숨조차 하찮게 여기는 지배계층의 잔인함을 배우라는 것일까? 아님 전쟁의 승패를 통해 속고 속이는 지략이 펼쳐지니 그속에서 '인생교훈'을 찾아내 배우라는 것일까? 고작 남을 속이는 계략뿐인데 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흔히 말하는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 수만 명을 몰살시키면 위인', '자신의 성공을 바란다면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만 한다' 따위의 격언을 인생의 모토로 삼으라는 것일까? 모두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에 권장도서로 손꼽기 꺼려지는 대목이다.

 

  그래서 난 '반면교사'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옳지 못한 일을 보고서 스스로 반성하는 자세를 갖춰, 자신은 결코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겠다는 성찰의 기회로 삼는다는 뜻이다. <삼국지> 내용은 어느 것 하나 인생의 교훈으로 삼을 만큼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허나 딱 하나 있다면, 그건 천하가 혼란해지면 평화는 유지하기 힘들고 전쟁을 일삼는 무리가 곳곳에서 나타나게 되니,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첫 번째이고, 전쟁을 일삼을 정도로 혼란한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선 '부국강병'을 이뤄야 하며, '부국'은 나라안의 모든 국민들이 넉넉한 삶을 산다는 뜻이고, '강병'은 주변국이 감히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힘과 실력을 두루 갖추는 것을 뜻한다. 단지 '강대국'이 되어 주변을 잡도리한 뒤에 휘어잡는 방식은 진정한 평화를 유지할 수 없고, '도덕적 우월'을 내세운 강국이 되어야 비로소 주변을 평정하고 평화를 빠르게 안착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란 말이다. 정말 뻔한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이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강대국이 되어 쳐들어오는 적들을 모두 야만으로 치부하고, 공격적 성향을 띠는 것만으로도 주변국이 알아서 '나쁘다'고 면박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우월감'을 갖는다는 것이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도덕적 우월'을 내세워 천하를 통일하려는 세력이 있었다. 바로 '유비'가 그렇다. 난세의 정국으로 보면 유표가 병사한 뒤에 유비가 형주의 주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제갈량도 유비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추천했기에 아주 자연스러운 방법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유비는 이 방법을 거절한다. 한마디로 예의에 어긋나고 도리가 아니라면서 말이다. 그리고서 형주땅이 조조의 손을 거쳐 손권의 전리품이 된 땅을 '빌리는 형식'으로 차지하면서 '파촉땅'을 차지할 때까지 빌리겠다는 약조를 하며, 그 사이에 별다른 전투도 치루지 않고 저절로 땅이 굴러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전략으로 영토를 늘려나간다. 땅이 늘어나니 '부국'이요, 세력을 끌어모아 제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하니 '강병'인 셈이다. 이렇게 유비는 '도덕적 우월'을 앞세워 형주와 파촉의 인재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하고, 더 큰 영역을 차지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런 장면이 바로 <삼국지>에서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아 읽게 하는 묘미일 것이다. 이른바 '촉한정통론'이다. 도덕적 우월을 내세우니 천하통일의 명분까지 얻게 된 셈이다. 허나 실제 역사는 '조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비정한 세력이 천하를 집어삼키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이토록 '비열한 현실'이 펼쳐지니 '인생은 달콤하지 않고 씁쓸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남에게 속기 전에 남을 먼저 속여 이득을 챙기라고 <삼국지> 필독을 권하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맞고, 현실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씁쓸할 뿐이다. 어찌하여 착한이는 허약해 빠진 것인지...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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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계사 10 - 현대 세계의 냉전과 변화 처음 세계사 시리즈 10
초등역사교사모임 지음, 한동훈.이희은 그림,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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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제 뜨거운 열전의 시대는 저물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전세계가 '자본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로 갈라져서 맹렬하게 대립하는 양산을 띠게 되었다. 이른바 '냉전시대'가 열린 것이다. 냉전은 과거의 피튀기는 열전과 대비될 정도로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전쟁'만 벌어지지 않았을 뿐 열전 못지 않은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자본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과 공산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소련이 대립하는 구도로 말이다.

 

  현대사를 간단하게 소개할 방법은 없다. 크게는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벌어졌고, 작게는 이 두 나라의 '대리전' 양산을 띠었기 때문에 세계대전에 비해서는 매우 협소한 '공간' 안에서 세계대전 못지 않은 살육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전'의 성격을 띠었지만 조금만 들춰보면 결국엔 '미국 vs 소련'이라는 양진영의 갈등이 그 원인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 대표적인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다. 두 전쟁 모두 '자본주의 vs 공산주의'라는 이념전쟁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그 속내에는 '미국과 소련'이 벌이는 자존심 대결이었던 것이다. 물론, 두 전쟁 모두 미국은 직접적인 개입을 했지만, 소련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그 물밑작업은 '핵폭탄 개발'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는데, 결국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왜냐면 인류가 절멸할 수도 있는 위기를 스스로 자초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핵개발의 시작은 히틀러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맨하튼 프로젝트'였다. 독일이 먼저 핵개발에 성공한다면 히틀러가 반드시 쓸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히틀러는 애초에 개발할 의사도 없었다는 것이 독일이 항복하고 난 뒤에야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미국은 핵개발에 성공하게 되고 진작에 항복했어야 마땅할 일제를 상대로 '핵폭탄 실험'을 실시하게 된다. 1945년 8월 6일에 '리틀보이(우라늄 폭탄)'를 히로시마에, 9일에는 '팻보이(플로토늄 폭탄)'를 나가사키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 파괴력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핵폭탄의 무서움은 눈으로 보이는 파괴력이 전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위험'이 더 컸다는 사실을 직접 떨어뜨려보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방사능에 피폭되고 나면 '원인 모를 질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죽는 환자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유전자 변이'로 인해 2세대, 3세대, 4세대...끝없이 그 고통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이후에는 '방사능 피폭'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고, 인류는 '방사능 물질의 위험성'을 각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과 소련의 핵개발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쪽이 새로운 핵개발에 성공하면, 저쪽이 더 무시무시한 핵개발에 성공한다는 식으로 '무한경쟁'이 불붙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핵을 쏘는 전쟁에 돌입할 수는 없었다. 핵폭탄의 위력을 너무 잘 알았기에 서로를 향해 쏘아대면 결국 인류 전체가 절멸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폭탄을 보유하게 되면 초강대국이라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는 '핵억지력'이라는 역설적인 진실이 암묵적으로 합의될 정도였고, 그 덕분에 전세계는 '핵폭탄 보유 경쟁'에 뛰어드는 엄청난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미국, 소련, 중국, 유럽, 인도, 파키스탄 등을 넘어 끝내 북한까지 핵폭탄을 보유하고, 이를 실어 쏠 수 있는 미사일과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는 정찰위성까지 보유하는 현실이 펼쳐지게 되었다.

 

  결국 인류는 '핵전쟁'에 뛰어들게 될까? 20세기 후반을 장식한 '냉전'은 21세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소련이 붕괴하고 독일이 통일하며 잦아들게 되었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전쟁은 끝없이 진행되었다. 제국주의 시절 식민통치로 몸살을 앓았던 나라들이 냉전시대에 독립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지만, 낙후된 경제와 혼란의 정치로 인해 '내전'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민족갈등, 종교갈등, 이념갈등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망령처럼 떠돌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생계마저 앗아가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런 만행을 잠재울 힘은 '강대국'에게 있는데, 이들은 해결해야 할 의무는 저버리고 자신들이 누릴 권리만 앞세우며 끔찍한 만행을 방치하고 관망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전지구적인 위기 앞에서 강대국들의 무책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온실가스 배출은 선진국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그로 인한 피해는 약소국들이 짊어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21세기 전세계는 '핵전쟁'과 '기후위기'라는 두 가지 인류 절멸 시나리오를 맞이하고 있다. 그 어떤 시나리오라도 인류 절멸이라는 결말로 끝맺게 될 것이다. 과연 인류는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하게 될까? 가장 현명한 선택은 그 시나리오가 제기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슬기로움에는 아주 중요한 전제가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 전인류가 모두 힘을 합쳐야만 겨우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과연 인류는 멸망 스위치를 누르지 않는 슬기로움을 발휘할 수 있을까? 없다면 '현대사'는 머지 않아 종료하게 될 것이다. 더는 역사로 기록할 인류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공산주의...그딴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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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계사 9 - 전체주의와 제2차 세계 대전 처음 세계사 시리즈 9
초등역사교사모임 지음, 한동훈.이희은 그림,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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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승전국은 패전국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며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독일이었으며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던 1320억 마르크를 배상금으로 요구했다. 물론 승전국들의 전후복구비용으로 충당하려는 속셈이 더 크다고 하겠다. 허나 독일도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다 잃은 뒤였기에 배상금을 하루 아침에 지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승전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등은 '독일이 갚을 배상금'을 담보로 삼아 미국에서 필요한 물품을 수입하기에 급급했고, 미국도 역시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외상(?)'으로 대금을 지불받고 유럽에 수출을 했더랬다. 그래서 미국은 때아닌 '호황'을 맞이하게 된다.

 

  미국은 전쟁에서 큰 피해도 입지 않고 막대한 수출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국은 1920년대 '경제호황'을 맞았고 공장에서 만든 물건은 만드는 족족 남김없이 수출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했고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 있었던 미국은 흥청망청한 '재즈의 시대'를 맞이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다. 허나 미국의 경제성장은 속빈 강정과 다를 바 없었다. 물건을 잘 팔렸으나 팔린 물건의 '대금'을 제때에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건을 가져간 영국과 프랑스가 그 대금을 치뤄야 했는데, 전쟁으로 황폐해진 터라 독일로부터 받을 배상금으로 치뤄야했는데, 독일도 경제가 말이 아닐 정도로 엉망이니 배상금을 제때에 내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대호황을 짧게 누린 뒤에 '미국발 경제대공황'을 겪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이처럼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반면에 1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한 소비에트 연방은 슬기롭게(?) 대공황에 대처할 수 있었다. 모든 자산을 '국유화' 시켰기에 자본이 돌지 않아서 생기는 '대공황'의 여파에서 비켜날 수 있었고, 자급자족에 가까운 배급제로 대공황의 위기에서 '경제성장'까지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에는 마르크스가 예언(?)한대로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로 착착 진행되어 결국엔 자본주의가 폭망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고 공산주의 국가들은 예견했더랬다. 허나 자본주의는 쉽게 망하지 않았다. 이건 '또 다른 이야기'이므로 다음 기회에 다시 하도록 하겠다.

 

  암튼, 경제대공황으로 가뜩이나 전후처리로 어려움을 겪던 나라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런 혼란을 틈타 '전체주의'가 등장하게 되었으니, 바로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가 그것이다. 이 세 나라는 훗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추축국'이 되는데, 모두 경제대공황으로 경제가 위태롭게 되자 '군사력'을 앞세워 위기를 극복해보겠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여기에 전체주의는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내세웠고, 집권자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생활 등 모든 영역에서 실질적 통치를 하는 독재국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물론 독재자라도 개인의 욕심을 내세우지 않고 국민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정책을 지향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고, 애초에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전체주의 국가이니 국민 모두가 일치 단결하여 아주 큰 시너지 효과를 얻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딴에는 일치단결한 국민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허나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군국주의 국가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추구했지만 결국 '독재자'의 이익만을 채울 뿐이었으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제 한 몸을 아끼지 않고 앞장 서겠다던 독재자는 하나같이 대다수의 국민들을 '총알받이'와 '방패'로 삼아 혼자만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다는 공통점도 아주 잘 돋보인다. 결국에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또 다시 영국, 프랑스, 그리고 미국 등의 연합군이 승리하는 시나리오를 썼다.

 

  허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제국주의'가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고, 프랑스혁명 이후 서서히 자라난 '민족의식'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으로 세계 곳곳에서 '민족주의'가 대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민족의식'을 내세운 식민지국가들이 독립을 추구하게 되는데, 과거에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속속 독립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등 식민지 건설에 앞장 섰던 나라들은 자신들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의 꿈'을 품은 세력에게 아주 몹쓸 짓을 하게 된다. 독립의 기운이 커져가면 군대를 보내 짓밟거나 거대한 경제재제를 통해 독립운동을 훼방놓거나, 유력한 독립지사들을 암살하거나 상대세력에 막대한 지원을 해서 독립의 열기를 꺾으려 했고, 그마저도 안 되면 '위성국가(속국)'으로 만들어버리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럼에도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수많은 '독립국가(신생국)'가 생겨났으며, 이들은 훗날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의 한 편이 되든가, 아니면 '제3세계 국가'로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한편, 한중일 삼국은 1920년부터 1945년까지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군사력을 앞세워 집어삼키더니 끝내 1910년에 한일병합을 하고 말았다. 이후엔 만주국을 세우고 몽골까지 세력을 뻗치더니 1930년대부터는 중국까지 거침없이 점령해나갔다. 한편, 나라잃은 한국인들은 일제의 무단통치에 항거하며 3·1 혁명을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웠다. 망해버린 왕조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주체로서 '한국인'임을 각성하게 된 것이다. 이후 일제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지만 독립의 열기도 더욱 굳세어져만 갔고,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등 무장독립투쟁을 이어나갔다. 허나 1930년대 이후엔 일제가 본격적인 중국침략을 할 정도였기 때문에 우리의 독립운동은 위축되는 듯 싶었다. 허나 독립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대대적인 토벌작전과 야만적인 탄압을 피해 중국과 러시아 각지에서 독립운동가들이 활발히 활동을 했는데, 이들은 중국의 '군벌'과 손잡기도 하고, 때로는 '마적단'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본격적으로 장개석(장제스)의 '국민당'과 모택동(마오쩌둥)의 '공산당'이 활동할 때는 이들과 손을 잡고 일제와 맞서 싸워나갔다.

 

  서구열강의 침략을 막아내던 손문(쑨원)은 소련의 도움을 받아 저항을 이어나갔는데, 이때 '중국 공산당'도 창건하게 되었다. 그리고 손문의 국민당은 장개석을 중심으로 부족한 군사력을 키워나갔고, 소련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서구열강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허나 손문이 죽고 장개석이 국민당을 이어받자 상황은 급변한다. 서로 손을 잡았던 국민당과 공산당이 둘로 갈라졌던 것이다. 장개석은 지주와 자본가와 손을 잡고 반공 정책을 내세웠고, 공산당은 농민과 노동자를 기반으로 세를 불려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장개석의 힘이 압도적이었다. 그 때문에 모택동(마오쩌둥)은 자신을 따르는 공산당원을 이끌고 '대장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둘로 갈라진 중국의 빈틈을 더욱 파고 들어 나갔고 끝내 '남경(난징)대학살'이라는 끔찍한 만행까지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이에 중국은 '1차 국공합작'으로 일제에 저항하게 되고, 중국에서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는 소식이 서양에 전해지자 '국제연맹'을 앞세워 일제에 압력을 행사하자 일제는 연맹에서 탈퇴를 하고, 석유를 비롯한 자원수출을 중단한 미국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태평양전쟁'을 벌이고 말았다.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지만 일제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하며 두 발의 핵폭탄을 맞고서야 뒤늦은 항복을 한다.

 

  전체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확실히 패배를 맞보며 사라지는 듯 싶었다. 허나 이후에 벌어진 '냉전체제'에서 공산주의 국가들과 새롭게 독립을 했던 국가들 가운데 독재자들이 '또 다른 전체주의'를 내세우며 자신들만의 욕심을 챙기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로써 '전체주의'는 여러 모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특히, '전체주의적 독재'가 한 나라의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장점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독재는 독재일 뿐이라는 사실만 재확인시킬 뿐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박정희 정권'이 그러했다. 분명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형적인 경제구도로 인해 현재에도 '대기업 위주 성장발전의 폐해'를 고스란히 맛보고 있으며, 독재를 이어나가기 위해 민주주의를 혹독하게 탄압한 결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평화적으로 안착하기 힘든 상황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말았다. 그 결과, 독재정권의 강압에 의한 경제성장은 친일적폐세력의 면죄부로 작용하여 '친일우파세력'과 '독립좌파세력'의 대결이라는 웃기지 않은 현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따위 못난 짓거리는 종식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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