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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계사 9 - 전체주의와 제2차 세계 대전 ㅣ 처음 세계사 시리즈 9
초등역사교사모임 지음, 한동훈.이희은 그림,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6년 10월
평점 :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승전국은 패전국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하며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독일이었으며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던 1320억 마르크를 배상금으로 요구했다. 물론 승전국들의 전후복구비용으로 충당하려는 속셈이 더 크다고 하겠다. 허나 독일도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다 잃은 뒤였기에 배상금을 하루 아침에 지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승전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등은 '독일이 갚을 배상금'을 담보로 삼아 미국에서 필요한 물품을 수입하기에 급급했고, 미국도 역시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외상(?)'으로 대금을 지불받고 유럽에 수출을 했더랬다. 그래서 미국은 때아닌 '호황'을 맞이하게 된다.
미국은 전쟁에서 큰 피해도 입지 않고 막대한 수출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국은 1920년대 '경제호황'을 맞았고 공장에서 만든 물건은 만드는 족족 남김없이 수출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했고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 있었던 미국은 흥청망청한 '재즈의 시대'를 맞이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다. 허나 미국의 경제성장은 속빈 강정과 다를 바 없었다. 물건을 잘 팔렸으나 팔린 물건의 '대금'을 제때에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건을 가져간 영국과 프랑스가 그 대금을 치뤄야 했는데, 전쟁으로 황폐해진 터라 독일로부터 받을 배상금으로 치뤄야했는데, 독일도 경제가 말이 아닐 정도로 엉망이니 배상금을 제때에 내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대호황을 짧게 누린 뒤에 '미국발 경제대공황'을 겪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이처럼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반면에 1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한 소비에트 연방은 슬기롭게(?) 대공황에 대처할 수 있었다. 모든 자산을 '국유화' 시켰기에 자본이 돌지 않아서 생기는 '대공황'의 여파에서 비켜날 수 있었고, 자급자족에 가까운 배급제로 대공황의 위기에서 '경제성장'까지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에는 마르크스가 예언(?)한대로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로 착착 진행되어 결국엔 자본주의가 폭망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고 공산주의 국가들은 예견했더랬다. 허나 자본주의는 쉽게 망하지 않았다. 이건 '또 다른 이야기'이므로 다음 기회에 다시 하도록 하겠다.
암튼, 경제대공황으로 가뜩이나 전후처리로 어려움을 겪던 나라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런 혼란을 틈타 '전체주의'가 등장하게 되었으니, 바로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가 그것이다. 이 세 나라는 훗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추축국'이 되는데, 모두 경제대공황으로 경제가 위태롭게 되자 '군사력'을 앞세워 위기를 극복해보겠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여기에 전체주의는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내세웠고, 집권자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생활 등 모든 영역에서 실질적 통치를 하는 독재국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물론 독재자라도 개인의 욕심을 내세우지 않고 국민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정책을 지향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고, 애초에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전체주의 국가이니 국민 모두가 일치 단결하여 아주 큰 시너지 효과를 얻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딴에는 일치단결한 국민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허나 파시즘과 나치즘, 그리고 군국주의 국가에서는 '집단의 이익'을 추구했지만 결국 '독재자'의 이익만을 채울 뿐이었으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제 한 몸을 아끼지 않고 앞장 서겠다던 독재자는 하나같이 대다수의 국민들을 '총알받이'와 '방패'로 삼아 혼자만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다는 공통점도 아주 잘 돋보인다. 결국에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또 다시 영국, 프랑스, 그리고 미국 등의 연합군이 승리하는 시나리오를 썼다.
허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제국주의'가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고, 프랑스혁명 이후 서서히 자라난 '민족의식'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으로 세계 곳곳에서 '민족주의'가 대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민족의식'을 내세운 식민지국가들이 독립을 추구하게 되는데, 과거에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속속 독립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등 식민지 건설에 앞장 섰던 나라들은 자신들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의 꿈'을 품은 세력에게 아주 몹쓸 짓을 하게 된다. 독립의 기운이 커져가면 군대를 보내 짓밟거나 거대한 경제재제를 통해 독립운동을 훼방놓거나, 유력한 독립지사들을 암살하거나 상대세력에 막대한 지원을 해서 독립의 열기를 꺾으려 했고, 그마저도 안 되면 '위성국가(속국)'으로 만들어버리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럼에도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수많은 '독립국가(신생국)'가 생겨났으며, 이들은 훗날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의 한 편이 되든가, 아니면 '제3세계 국가'로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한편, 한중일 삼국은 1920년부터 1945년까지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군사력을 앞세워 집어삼키더니 끝내 1910년에 한일병합을 하고 말았다. 이후엔 만주국을 세우고 몽골까지 세력을 뻗치더니 1930년대부터는 중국까지 거침없이 점령해나갔다. 한편, 나라잃은 한국인들은 일제의 무단통치에 항거하며 3·1 혁명을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웠다. 망해버린 왕조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주체로서 '한국인'임을 각성하게 된 것이다. 이후 일제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지만 독립의 열기도 더욱 굳세어져만 갔고,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등 무장독립투쟁을 이어나갔다. 허나 1930년대 이후엔 일제가 본격적인 중국침략을 할 정도였기 때문에 우리의 독립운동은 위축되는 듯 싶었다. 허나 독립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대대적인 토벌작전과 야만적인 탄압을 피해 중국과 러시아 각지에서 독립운동가들이 활발히 활동을 했는데, 이들은 중국의 '군벌'과 손잡기도 하고, 때로는 '마적단'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본격적으로 장개석(장제스)의 '국민당'과 모택동(마오쩌둥)의 '공산당'이 활동할 때는 이들과 손을 잡고 일제와 맞서 싸워나갔다.
서구열강의 침략을 막아내던 손문(쑨원)은 소련의 도움을 받아 저항을 이어나갔는데, 이때 '중국 공산당'도 창건하게 되었다. 그리고 손문의 국민당은 장개석을 중심으로 부족한 군사력을 키워나갔고, 소련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서구열강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허나 손문이 죽고 장개석이 국민당을 이어받자 상황은 급변한다. 서로 손을 잡았던 국민당과 공산당이 둘로 갈라졌던 것이다. 장개석은 지주와 자본가와 손을 잡고 반공 정책을 내세웠고, 공산당은 농민과 노동자를 기반으로 세를 불려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장개석의 힘이 압도적이었다. 그 때문에 모택동(마오쩌둥)은 자신을 따르는 공산당원을 이끌고 '대장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둘로 갈라진 중국의 빈틈을 더욱 파고 들어 나갔고 끝내 '남경(난징)대학살'이라는 끔찍한 만행까지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이에 중국은 '1차 국공합작'으로 일제에 저항하게 되고, 중국에서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는 소식이 서양에 전해지자 '국제연맹'을 앞세워 일제에 압력을 행사하자 일제는 연맹에서 탈퇴를 하고, 석유를 비롯한 자원수출을 중단한 미국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태평양전쟁'을 벌이고 말았다.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지만 일제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하며 두 발의 핵폭탄을 맞고서야 뒤늦은 항복을 한다.
전체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확실히 패배를 맞보며 사라지는 듯 싶었다. 허나 이후에 벌어진 '냉전체제'에서 공산주의 국가들과 새롭게 독립을 했던 국가들 가운데 독재자들이 '또 다른 전체주의'를 내세우며 자신들만의 욕심을 챙기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로써 '전체주의'는 여러 모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특히, '전체주의적 독재'가 한 나라의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장점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독재는 독재일 뿐이라는 사실만 재확인시킬 뿐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박정희 정권'이 그러했다. 분명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형적인 경제구도로 인해 현재에도 '대기업 위주 성장발전의 폐해'를 고스란히 맛보고 있으며, 독재를 이어나가기 위해 민주주의를 혹독하게 탄압한 결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평화적으로 안착하기 힘든 상황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말았다. 그 결과, 독재정권의 강압에 의한 경제성장은 친일적폐세력의 면죄부로 작용하여 '친일우파세력'과 '독립좌파세력'의 대결이라는 웃기지 않은 현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따위 못난 짓거리는 종식시켜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