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원전 완역판 6 : 적벽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바른번역 옮김, 나관중 원작 / 코너스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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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제갈공명이 등장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등장했다는 것은 '천하삼분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등장인물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유비 삼형제도 40~50대에 접어들었는데 반해 비교적 젊은 조자룡도 30대 후반이었다. 그에 비해 제갈량과 방통 등 새로 등장한 인물들은 아직 20대 초반이었으니, 이제 <삼국지>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유비 삼형제는 반백살이 다 되어서도 아직 제대로 된 영지 하나 만들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조조에게 쫓기듯 형주의 유표에 기대어 '친족 버프'를 받아보려 했으나 수명이 다한 유표가 거저 준다는 형주도 마다한 유비였다. 그렇게 '쪽박 인생'이었건만 제갈량은 삼고초려를 한 유비에게 감복해서 천하는 삼분하는 지혜를 유비와 함께 이루겠다며 다부진 출사를 하였다. 그 시작은 신야성에서 거둔 '박망파 전투'의 승리였으며, 이제 '적벽대전'을 통해 (아직은 아니지만) 위나라의 조조와 오나라의 손권을 피로하게 만든 뒤 형주땅을 차지해 파촉땅까지 세력을 넓혀 '위촉오 삼국의 형세'를 형성하겠다는 것이 제갈량의 1차 목표인 셈이다. 이렇듯 천하를 세 나라로 균형을 맞추고 나서야 <삼국지>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제갈공명처럼 거의 신기에 가까운 재능을 가진 인재가 어찌하여 강력한 조조나 풍부한 손권의 세력으로 들어가 출세가도를 달리지 아니하고 무일푼에 가까운 빈털털이 유비와 손을 잡고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 것 말이다. 여기에 이문열은 자신이 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조조의 세력은 이미 걸출한 인물이 등용된 터라 아무리 재능을 뽐낸다고 하더라도 '출세가도'를 달리기 어려울 것이며, 손권의 세력은 너무 안정을 추구하고 소극적인 자세로 평화와 안정을 꾀하는 집단이기에 크게 쓰이는 재목으로 활용되기 힘들다고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조조는 '서서'라는 젊은 인재를 영입하는데 성공했음에도 별달리 써먹지 않고, 그렇다고 내치지도 않고 있었으며, 손권은 이미 제갈근이라는 공명의 형을 영입하고도 중책을 맡기지 않고 인재를 썩히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런 판국에 제갈량이 재주를 보이며 '등용문'을 통과했을지라도 크게 쓰이기도 힘들고 초고속 승진 따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라 본 것이다.

 

  반면에 무일푼에 가까운 유비진영에서는 이와 상황이 완전 달랐다. 떠돌이 집단에 불과했지만 나름 중산정왕의 후예로 '황족 버프'를 살릴 수도 있었고, 관우, 장비, 조운 등 무장들의 역량은 '탑티어'였으며, 미축, 간옹, 손건 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탁월한 재무능력'을 갖춘 명석한 신하들이었다. 이런 유비진영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모사능력'이 뛰어난 군사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뛰어난 장수와 유능한 신하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살림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자리를 처음으로 꿰찬 인물은 '서서'였지만, 조조의 계략에 빠져 유비의 품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후임으로 들어온 제갈량은 유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초고속 승진이 보장된 자리였던 것이다. 더구나 '경쟁자'도 없었기 때문에 제갈량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으니, 유비와 제갈량의 만남은 '금상첨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 이제 제갈량은 제대로 실력을 발휘를 하여 유비진영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형주땅'과 '파촉지역'을 가질 수 있는 지혜보따리를 마음껏 펼쳐놓게 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적벽대전'이다. 허나 적벽대전은 너무나 유명하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전은 다음 권에서 진행될 것이다.

 

  그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무릇 '천하통일'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치뤄야 하는 과정이 너무도 끔찍하기에 그렇다. 과연 '평화를 이루기기 위해서는 전쟁은 필수적인가?' 하는 의문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권력자'다. 하지만 잔혹한 전투에 임하는 것은 부하장수들이고, 하나뿐인 목숨마저 희생 당하는 것은 병졸들이다. 그럼에도 전쟁에서 승리한 뒤 얻은 이득은 '권력자'가 차지하며 온갖 명예도 독차지한다. 그러나 병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얻는 것은 별로 없으면서 잃는 것은 전부다. 그런데도 참혹한 전쟁에 앞장 세워지고 살아도 죽어도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만다. 도대체 이런 전쟁을 왜 해야만 한단 말인가? 북쪽의 병졸과 남쪽의 병졸이 큰 원한을 가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니 전쟁은 권력자의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삼국지>를 읽으며 옛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며 필독을 권장한다. 과연 무슨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일까? 민중들의 목숨조차 하찮게 여기는 지배계층의 잔인함을 배우라는 것일까? 아님 전쟁의 승패를 통해 속고 속이는 지략이 펼쳐지니 그속에서 '인생교훈'을 찾아내 배우라는 것일까? 고작 남을 속이는 계략뿐인데 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흔히 말하는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 수만 명을 몰살시키면 위인', '자신의 성공을 바란다면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만 한다' 따위의 격언을 인생의 모토로 삼으라는 것일까? 모두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에 권장도서로 손꼽기 꺼려지는 대목이다.

 

  그래서 난 '반면교사'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옳지 못한 일을 보고서 스스로 반성하는 자세를 갖춰, 자신은 결코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겠다는 성찰의 기회로 삼는다는 뜻이다. <삼국지> 내용은 어느 것 하나 인생의 교훈으로 삼을 만큼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허나 딱 하나 있다면, 그건 천하가 혼란해지면 평화는 유지하기 힘들고 전쟁을 일삼는 무리가 곳곳에서 나타나게 되니,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첫 번째이고, 전쟁을 일삼을 정도로 혼란한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선 '부국강병'을 이뤄야 하며, '부국'은 나라안의 모든 국민들이 넉넉한 삶을 산다는 뜻이고, '강병'은 주변국이 감히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힘과 실력을 두루 갖추는 것을 뜻한다. 단지 '강대국'이 되어 주변을 잡도리한 뒤에 휘어잡는 방식은 진정한 평화를 유지할 수 없고, '도덕적 우월'을 내세운 강국이 되어야 비로소 주변을 평정하고 평화를 빠르게 안착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란 말이다. 정말 뻔한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이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강대국이 되어 쳐들어오는 적들을 모두 야만으로 치부하고, 공격적 성향을 띠는 것만으로도 주변국이 알아서 '나쁘다'고 면박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우월감'을 갖는다는 것이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도덕적 우월'을 내세워 천하를 통일하려는 세력이 있었다. 바로 '유비'가 그렇다. 난세의 정국으로 보면 유표가 병사한 뒤에 유비가 형주의 주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제갈량도 유비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추천했기에 아주 자연스러운 방법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유비는 이 방법을 거절한다. 한마디로 예의에 어긋나고 도리가 아니라면서 말이다. 그리고서 형주땅이 조조의 손을 거쳐 손권의 전리품이 된 땅을 '빌리는 형식'으로 차지하면서 '파촉땅'을 차지할 때까지 빌리겠다는 약조를 하며, 그 사이에 별다른 전투도 치루지 않고 저절로 땅이 굴러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전략으로 영토를 늘려나간다. 땅이 늘어나니 '부국'이요, 세력을 끌어모아 제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하니 '강병'인 셈이다. 이렇게 유비는 '도덕적 우월'을 앞세워 형주와 파촉의 인재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하고, 더 큰 영역을 차지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런 장면이 바로 <삼국지>에서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아 읽게 하는 묘미일 것이다. 이른바 '촉한정통론'이다. 도덕적 우월을 내세우니 천하통일의 명분까지 얻게 된 셈이다. 허나 실제 역사는 '조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비정한 세력이 천하를 집어삼키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이토록 '비열한 현실'이 펼쳐지니 '인생은 달콤하지 않고 씁쓸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남에게 속기 전에 남을 먼저 속여 이득을 챙기라고 <삼국지> 필독을 권하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맞고, 현실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씁쓸할 뿐이다. 어찌하여 착한이는 허약해 빠진 것인지...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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