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아와 파이의 지구 구출 용감한 수학 1 - 수학 기호는 위험해! 루아와 파이의 지구 구출 용감한 수학 1
남호영 지음, 김잔디 그림 / 한솔수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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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아와 파이의 지구 구출 용감한 수학 1 : 수학 기호는 위험해!> 남호영 / 한솔수북 (2024)

[My Review MMCCXIII / 한솔수북 10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마흔두 번째 리뷰는 초등수학의 정확한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루아와 파이의 지구 구출 용감한 수학 1>이다. 26년 현재에는 이 시리즈가 열 권으로 모두 완간이 되었다. 다시 말해, 열 권만 읽어도 초중고 학창시절에 배울 수학개념의 모든 것을 다 깨우칠 수 있다는 얘긴데, 그렇다고해서 오해는 하지 말자. 이 시리즈를 모두 읽는다고해서 단박에 '수학 천재'가 되고 모든 수학문제를 술술 풀어내는 마법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단 이 책 뿐만 아니라 모든 책이 다 그렇지 않은가. 단지 읽고 나면 그동안 어렵고 풀리지 않던 문제가 술술 풀릴 수 있는 '실마리 하나'를 잡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고작 '실마리 하나' 뿐이이라고 실망하실 것은 없다. 엉킨 실타래를 술술 풀어낼 방법 또한 바로 '그 실마리 하나'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바로 그런 마음가짐으로 읽으면 무척 도움이 될 것이다. 자,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루아와 파이의 지구 구출 용감한 수학 1> 관점 포인트 : 1권의 내용은 어려운 것이 없다. 읽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다. 수학책이라고 하지만 어려운 수식이나 공식을 대입할 일 따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 풀이를 하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이야기책 읽듯 부담을 갖지 말고 그냥 읽어나가면 된다. 그럼 이 책을 다 읽으면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바로 수학이 우리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접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주위를 둘러싼 모든 만물의 근원이 전부 '수학'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이란 말이다. 사실 모든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이 다 그렇다.

그런데 왜 우리는 '수학공부'를 할라치면 왜 그토록 문제만 풀고 또 풀기만 했을까? 도통 알아먹을 수도 없는 복잡한 '수학기호'로 쓰여 있는 교과서와 참고서, 그리고 문제집을 볼 때마다 '이것은 <영어책>인가? <암호문>인가? 그런데 왜 <수학책>이라고 부르는 거지?'라는 의문을 자아내지 않던가 말이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그걸' 보면서 술술 풀어내는 또래가 꼭 있다는 것이다. 슥슥 손으로 풀어내는 모습도 신기할 따름인데, 그걸 말로 읽어가면서 토론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신기한 모습도 알고보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수학공부'를 하게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물론 그 자연스러움을 스스로 느낄 때까지가 어려운 과정이지만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어려운 과정'을 좀더 쉽고 재미나게 연결해주는 책이다. 이를 테면,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 무거운 비행기가 수많은 사람과 짐을 싣고서 거뜬히 허공으로 떠오를 수 있는지 신기할 것이다. "아니요. 나는 그딴 게 하나도 궁금하지 않는데요?"라는 말은 과감히 거절한다. 말을 강가까지 억지로 끌고 갈 순 있어도 말에게 물을 억지로 먹일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억지로 강제로 하기 싫은 공부를 시킬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다시 돌아와서, 커다랗고 무거운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것이 궁금하다고 치자. 이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바로 '베르누이의 법칙'인데, 아주 복잡한 유체역학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다. 하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액체나 기체가 흐를 때 (일정한 공간속에서는) '같은 거리'를 지나는 전체 양이 같다는 원리를 베르누이가 알아냈다. 그런데 이때 '날개' 따위로 공간을 방해하면 흐름이 갈라지게 되는데, 흐름이 갈라지더라도 '같은 거리'를 '같은 양'이 지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비행기의 날개를 유심히 살펴보자. 단면을 보면 날개의 아래쪽과 윗쪽의 단면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쪽은 편평한데 반해서 윗쪽은 살짝 유선형으로 둥그스름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비행기 날개 앞쪽에서 만난 공기가 날개 끝쪽에서 만나는 공기가 서로 같이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자,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비행기 날개 단면에서 앞쪽에서 끝쪽까지의 '최단거리'는 같다. 하지만 공기는 비행기 날개에 부딪혀서 날개 아래쪽과 윗쪽으로 강제로 갈라지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갈라진 시점에서 흩어진 공기가 갈라지고 난 종점에서 똑같이 만나려면 '공기의 흐름'이 어떻게 되어야 할까? 날개 아래쪽은 편평하기 때문에 공기(유체)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느리다. 하지만 날개 윗쪽은 유선형으로 둥그스름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빨라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비행기 날개에 의해서 '속도'의 차이가 생겨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공기의 흐름'이 느린 곳의 압력은 높아지고, 빠른 곳은 압력이 낮아진다. 이렇게 비행기 날개 아래쪽의 압력이 더 높기 때문에 비행기는 위로 뜨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기중에서 아래쪽에서 윗쪽으로 향하는 압력을 '양력'이라고 하고, 비행기는 바로 이 양력의 힘이 비행기의 무게보다 더 강해질 때 비로소 '뜨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걸 '수식'으로 표현하면 매우 복잡한 '수학기호'를 사용해야 하고, 말로 설명하는 것도 이렇게나 길었는데 그에 걸맞게 '수식'도 길고 복잡할 것이다. 그런데 수학공부를 하다보면 이렇게 말로, 글로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 '수학기호'와 '수식'을 이용하면 훨씬 더 간단하게 표현하고, 실제로 얼마만큼의 '양력'이 필요한 것인지 쉽게 '계산'해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자나 기술자, 그리고 공학자들 모두가 '수학기호'를 약속했고, 그것을 '수학공부'할 때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쯤 하면 왜 어렵고 복잡한 '수학기호'를 이해하기 위해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야 하는지 알겠는가? 이걸 알게 되면 '수학천재'가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나가는 글 :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일수 있다. 바로 이렇게나 어려운 수학을 왜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치려 하는가? 라는 의문 말이다. 아주 좋은 질문이다. 비록 복잡하고 어려운 원리나 법칙을 품고 있지만, 그걸 이해하는 것까지 어려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비행기 날개에 비밀이 숨어 있는데, 날개 아래쪽과 윗쪽의 공기가 흐르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비행기가 뜰 수 있는 거란다. 라고 설명하면 어떤가? 이 정도는 초등학생이라도 수학공부를 전혀 하지 않더라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렇게 왜 속도가 달라지는지 이해를 하고 난 뒤에 실질적인 '수학문제'를 접하고, 비행기가 뜰 수 있는 '양력'을 계산하는 문제를 접하게 되면 어떨까? 개념이 이미 잡혀 있으니 복잡한 수식이라도 요모조모 뜯어볼 여유가 생길 것이고, 문제 풀기까지 어렵고 힘들더라도 문제를 풀어야 할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쉽게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끈기 있게 풀어냈을 때 얻어지는 '성과'가 엄청 달콤하게 느껴질 것이다. 단지 문제만 푼 것이 아니라 자신이 푼 결과치를 이용해서 실제로 '비행기'를 띄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공부하는 맛이다. 그저 책상 앞에 앉아서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어내고 '성적'에 연연하는 범생이로 만들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우친 '학문의 진리'를 통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진짜 공부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참교육의 시작일테니 말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런 참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학교나 학원, 그리고 참 스승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 일테니 <용감한 수학>처럼 좋은 책과 읽고 참교육의 끝자락이라도 느껴보는 것이 아주 훌륭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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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9 : 농사로 세상을 바꾼 호미닌 - 어린이를 위한 호모 사피엔스 뇌과학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정재승.차유진 지음, 김현민 그림, 백두성 감수 / 아울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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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9 : 농사로 세상을 바꾼 호미닌> 정재승, 차유진 / 아울북 (2024)

[My Review MMCCXII / 아울북 4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마흔한 번째 리뷰는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9>이다. 이 책은 최초의 인류부터 현생인류까지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인류고고학책'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초등학생을 위한 학습만화인 까닭에 '초등역사책'으로 봐도 무방하다. 9권에서는 호모 사피엔스가 이룩한 고대 문명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다. 여기서 낯선 용어를 마주했을 것이다. '호미닌(hominin)'인데, 쉽게 말해 '호모'라고 불리는 인간종 모두를 일컫는 명칭이다. 그래서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사피엔스 등과 멸종한 인간종 모두를 아울러서 부른다. 그래서 최초의 인류로 알려진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엄밀히 따져서 호미닌이 아니다. '피테쿠스'는 원숭이란 뜻의 라틴어이니 말이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정재승의 인류탐험보고서 9> 관점 포인트 : 이 책의 시대배경은 5천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다. 이른바 '청동기 시대의 인류'를 탐험한 것이다. 이 시대의 호모 사피엔스(청동기인)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잘 알고 있는 '고대 문명'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문명을 이뤘다는 것은 기술, 사회, 문화 등을 발전시켰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발전이 모든 인류를 행복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준 것은 아니다. 왜냐면 '계급'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갈 때만해도 '평등사회'였는데,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이면서 어처구니 없게도 '계급사회'로 변모하면서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불평등한 사회는 나쁜 것일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불평등했기 때문에 '농업혁명'을 이룰 수 있었고, 축적한 기술과 식량을 바탕으로 활발한 '정복활동'을 벌일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더 넓어진 영토와 노동력으로 발전된 기술을 이용하여 더욱 화려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부의 불평등'으로 인해 노동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특권층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 지적 활동에 전념하며 '기술'과 '문화'를 더욱 발전시키는 새로운 동력이 되었다. 그런 까닭에 거대한 구조물(피라미드 같은 건축물)을 만들 수도 있었고, 문자를 발명해서 지식을 축적하고 후대에 전할 수도 있었다. 또한 점토판이나 파피루스 등 종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을 발명하여 인류는 더욱 더 똑똑해지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다른 진화를 걷게 된 결정적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인류는 농업혁명이나 문명 발전으로 인해서 좋기만 했을까? 앞서 문명사회에서는 '계급'이 발생한 탓에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로써 인류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뉘게 되었고, 지배계급은 육체적인 노동보다는 지적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고, 다른 이웃국가를 정복하기 위해 '금속무기(청동기, 철기 등)'를 만들어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었고, 번쩍거리는 도구를 만들어서 화려한 '제사'를 도맡으면서 지배를 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갖춰 자신들이 '지배계급'을 더욱 확실하게 할 수 있었다.

반면에 피지배계급은 육체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불평등한 사회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석기 때 시작된 농경이 더욱 발전하면서 '농업혁명'이 일어나자 피지배계급은 더욱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 까닭은 첫째, 영양 부족이 더 심해졌다. 농업혁명으로 인해 먹거리가 풍족해진 것은 사실인데, 수렵과 채집 활동으로 근근히 먹거리를 마련했던 석기시대 사람들보다 훨씬 영양불균형에 시달렸다. 왜냐면 먹거리가 오직 '곡물'뿐이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농사일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하루종일 노동을 해도 늘 시간이 부족했고 일손이 부족하다. 그러니 더 힘든 일을 하면서 먹는 것은 오직 '탄수화물' 뿐이었던 것이다. 평등하던 석기시대에는 부족이 사냥에 성공하면 공평하게 나눠 먹을 수 있었던 고기는 입에도 댈 수 없는 귀한 음식이 되었다. 목축을 통해서 소, 양, 닭 등을 가축화에 성공해서 손쉽게 고기를 얻을 수 있었지만,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불평등한 일이 상식이 되었기 때문에 손쉽게 잡을 수 있는 가축에서 얻어진 고기는 오직 지배계급의 몫일 뿐이었다. 이렇게 부족한 영양소를 허약해진데다 발달된 도시에서 '집단생활'을 하기 시작한 청동기인들은 점차 전염병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 다음으로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관절 질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농사일이라는게 하루종일 쭈구려 앉아서 하는 일이 대부분이라 그런 것이다.

나가는 글 : 만약 인류가 '문명'을 발달시키지 않고 석기시대에 머물러 살았다면 어땠을까? 평등하게 살 수는 있었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기술이나 화려한 문화를 꽃피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첨단 기술과 눈부신 문화 속에 감춰진 '불평등'을 우리는 감수해야만 하는 것일까? 사실 인간 사회에서 '공평무사'했던 시대는 없다. 다시 말해, 완벽한 평등사회를 구축했던 적이 없단 말이다. 평등사회였던 원시공동체사회에서도 '힘의 논리'는 적용되었고, 힘을 가진 자가 부족을 책임지고 힘이 약한 자는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계급의 분화'를 마냥 부당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인간 사회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감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평등을 완전히 타파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너무 심한 불균형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강자는 약자를 보살펴야 하고, 가진자는 못 가진자를 배려해야 건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5천 년 전에 살던 청동기인도 '호모 사피엔스'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도 '호모 사피엔스'다. 그 많던 인간종은 모두 멸종했고,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럼 호모 사피엔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며 착한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한다. 한마디로 '도덕적인 삶'을 바탕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단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고도로 발달시킨 '첨단기술'과 화려한 '문명사회'를 유지하기는커녕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행동만 일삼다 모조리 파멸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인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마지막 10권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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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아와 파이의 지구 구출 용감한 수학 9 - 색깔도 분류하면 수학이 된다고? 루아와 파이의 지구 구출 용감한 수학 9
남호영 지음, 김잔디 그림 / 한솔수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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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한솔지기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쓰여졌습니다


<루아와 파이의 지구 구출 용감한 수학 9 : 색깔도 분류하면 수학이 된다고?> 남호영 / 한솔수북 (2026)

[My Review MMCCXI / 한솔수북 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마흔 번째 리뷰는 <루아와 파이의 지구 구출 용감한 수학 9>이다. 제목이 길지만 짧게 줄여 '용감한 수학'으로 불리고 있는 어린이 수학 동화책이다. 교과 과정으로 보자면 '초등 4~6학년' 도서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책 내용에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로그함수'나 '미적분'까지도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얼마간 어렵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학습보다는 이야기가 중심인 '동화책'이기 때문에 초등학생도 어렵지 않게 읽으며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어린이책'은 재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훈적이고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른 독자'만 이해할 수 있는 난해한 책이라면 결코 '좋은 어린이책'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학의 개념을 전달하려는 목적이 다분한 책이므로 재미난 이야기를 읽으면 저절로 '수학 개념'을 잡을 수 있는 책이어야만 한다. 이 책이 그렇다. 그렇지만 모든 어린이들이 이 책만 읽으면 '수학 천재'가 되고, '수학 만점'을 받을 것을 장담할 수는 없다. 왜냐면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용기'가 있는 어린이만 '수학 천재'가 될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럼 수학을 잘하고 싶고,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이겨낼 '용기'가 가득찬 어린이라면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루아와 파이의 지구 구출 용감한 수학 9> 관점 포인트 : 수학은 모든 학문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고 따져 물어도 결과는 언제나 똑같다. 모든 학문은 '수학'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과학'은 물론이거니와 '언어', '철학', '예술' 등등 수많은 학문의 기초를 닦을 때 '수학공부'를 꼭 해야만 한다. 여기서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을 풀어야 이 말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수학'은 연산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초등학교 선생님 가르치는 '수학교과 지침서'에 나온 분류만 봐도 짐작 할 수 있다. '초등수학의 분류'는 크게 4가지로 [수와 연산], [도형과 측정], [변화와 관계], [자료와 가능성]이 그것이다. 대부분 '수학공부'라고 하면 첫 번째인 '수와 연산'만 생각하기 때문에 '숫자'와 '덧셈뺄셈' 거기에 '곱하기'만 잘하면 수학공부는 끝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바로 이런 오해 때문에 '언어영역 공부'를 하면서 수학개념의 기초를 활용할 줄 모르고, '철학과 예술'을 다루면서도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지 못해서 마냥 어려워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만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수학공부를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수학'이란 언어를 이해하면 광활한 우주도 단박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왜냐면 우주에서 쓰이는 '공용어'가 바로 수학이기 때문이다. 만약 외계인이 존재하고 그들이 상당 수준의 '지적 교양'을 쌓았다면, 지구인과 소통하기 위해서 쓸 수 있는 유일한 언어도 다름 아닌 '수학' 뿐이다. 심지어 최첨단 인공지능 AI도 숫자 '0'과 '1'로 구성된 컴퓨터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수학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가올 첨단 미래사회에서 잘 적응하며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복잡한 연산이나 어려운 수식을 '풀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수학 개념'만 깨우치고 있으면 첨단으로 가동이 되는 모든 것을 잘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현재도 '미적분'과 '로그함수' 등의 원리로 만들어진 '스마트폰' 속의 애플리케이션을 잘 사용하기 우ㅣ해서 어렵고 복잡한 수학공식을 사용해서 연산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런 '수학 개념'을 구체적으로는 몰라도 어떤 원리로 이용되고 있는지만 알고 있으면 '전문가 수준'으로 스마트폰의 기능을 잘 활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여러 가지 최신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을 그저 통화와 문자만 하는 용도로 쓰는 차이일 뿐이다. 이제 좀 이해가 되는가?

이 책도 그런 용도를 깨우치기 위해서 읽고 자녀에게 '수학 개념'을 일러주면 좋을 것이다. <용감한 수학 9>에는 수학 개념 가운데 '분류'를 배우고 익힐 수 있다. 아니 '분류'라면 국어교과나 사회교과에서 주로 다루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신다면 이미 '분류'가 뭔지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 과학교과에서도 '분류'를 쓰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아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교과'에서 분류를 사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더구나 분류는 꽤나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간혹 문제 풀이만 척척 잘 해내는 '계산기' 같은 학생을 수학 천재라고 오해를 하는데, 그런 천재는 아무 짝에 쓸모가 없다. 실제로 천재적인 수학교수조차 간단한 덧셈뺄셈도 연필로 직접 써서 연산을 하고, 큰 수의 곱셈과 나눗셈 등 복잡한 계산을 할 때에는 '계산기'를 두들기곤 한다. 그걸 암산으로 척척 풀어낼 필요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인간이 아무리 빨리 계산하더라도 컴퓨터가 더 빨리, 더 정확하게 계산해내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인간이 '계산기'가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컴퓨터를 잘 다루는 수학 천재'가 필요할 뿐이란 말이다.

나가는 글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수학 공부의 패러다임을 싹 전환해야 한다. 그나마 초등학생들은 '수학 동화책' 같은 것을 읽으면서 수학 개념의 기초를 탄탄하게 닦을 여유라도 보이는데, 중고등학교만 올라가도 수학학원에 보내기 급급하고, 수학문제집을 산처럼 쌓아놓고 '문제풀이'만 지겹도록 시킬 뿐이다. 그렇게 공부하면 '인간 계산기'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진짜 '수학 천재'가 되고 싶다면 '연산'에만 몰입하지 말고, '그 연산'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왜 풀어야만 하는 것인지 따져 물을 수 있는 지혜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수학 공식' 암기만 중요하다 여기지 말고, '수학 개념'을 먼저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제 풀이는 나중에 풀어도 상관 없다.

더구나 멀지 않은 미래에는 '단순한 연산 문제'는 인공지능 AI에게 물으면 더 빨리, 더 정확하게 풀어낼 수 있는 시대가 온단다. 그때에도 수학 공부랍시고 암기한 '수학 공식'을 대입해서 술술 풀어내는 공부를 할 작정인가? 왜 하릴 없이 어린이를 '인공지능'가 대결하게 만들려고 하냔 말이다. 이는 '무모한 도전'일 뿐이다. 한마디로 그런 공부는 아무짝에 쓸데가 없기도 하고 말이다. 차라리 '인공지능 AI'를 잘 다루는 어린이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그 똑똑한 인공지능 AI가 쓰는 언어가 다름 아닌 '0'과 '1'로 구성된 컴퓨터 언어다. 다시 말해 '숫자로 된 언어'란 말이다. 이런 인공지능 AI를 잘 이해하고, 심지어 잘 통제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탄탄히 해야 할까? 다름 아닌 '수학 공부'다. 문제 풀이에 전념하는 공부가 아니라 철저한 '개념 이해'를 위한 진짜 수학 공부를 말이다. 아직 그런 수학 공부는 익숙하지도 않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면 이 책 <용감한 수학>을 읽으면 된다. 그럼 절로 감이 잡힐 것이다. 분명 '수학 동화책'인데 연산 문제 풀이는 몇 개 없고 온통 '수학 개념'만 꽉꽉 담겨 있는 동화책이니 말이다. 더구나 재밌기도 하다. 심지어 하나 뿐인 '지구'를 구하는 뜻 깊은 내용이 담겨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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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8 : 대륙의 탐험가 호모 사피엔스 - 어린이를 위한 호모 사피엔스 뇌과학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정재승.차유진 지음, 김현민 그림, 백두성 감수 / 아울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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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8 : 대륙의 탐험가 호모 사피엔스> 정재승, 차유진 / 백두성 / 아울북 (2024)

[My Review MMCCX / 아울북 4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서른아홉 번째 리뷰는 어린이 뇌과학 프로젝트를 담은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8>이다. 어린이 뇌과학을 표방한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와 세트로 구성된 어린이책인데, 이 책은 좀 더 '인류의 기원'을 찾아 떠나는 취지에서 '호모 사피엔스'를 만나러 간 아우린들의 모험담을 담았다. 앞선 책에서 이미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그리고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를 만나고 이제 '호모 사피엔스'를 만났는데, 아우린들이 여러 차례 웜홀을 통해서 '호모 사피엔스'를 만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점점 '호모 사피엔스'들이 사는 모습은 달라지고 있다. 이번에는 지구가 온통 꽁꽁 얼어버린 '빙하기'를 맞았는데, 아우린들이 발견한 호모 사피엔스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책속으로 풍덩 빠져 들어가 보자.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8> 관점 포인트 : 인류의 발자취는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누비며 살아 간다. 그러다 맞이한 '빙하기'에 호모 사피엔스는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들어가게 된다. 현재의 세계지도를 봤을 때는 호모 사피엔스가 걸어서는 절대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 것일까? 실제 태평양에 있는 여러 섬들로 들어간 호모 사피엔스는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넜다는 증거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최초로 들어갈 때에는 '걸어서' 건너갔다.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다름 아닌 '빙하기'였기 때문이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과 북아메리카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베링 해협(베링 육교)'이 꽁꽁 얼어붙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빙하 위'를 걸어서 간 것이기 때문에 이동 당시에는 '그곳'이 바다인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2만년 전 그 추운 빙하기 때, 호모 사피엔스는 빙하로 꽁꽁 언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갔던 것일까? 그건 호모 사피엔스가 사냥해서 잡아먹던 '먹잇감'들이 그쪽 길을 통해서 먼저 이동했기 때문이다.

사실 '빙하기'라고 해서 지구가 온통 얼음투성이인 것은 아니다. 극지방에 가까운 곳은 빙하로 덮혔겠지만, 적도 근처에서는 여러 생물들이 살 수 있는 따뜻한 기후로 번성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온대기후' 지역까지 얼음이 꽁꽁 얼어버리는 빙하기가 찾아오자 여러 동물들이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지구 이곳저곳으로 '대이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동물들의 대이동을 따라서 '호모 사피엔스'도 덩달아서 대이동을 하게 된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지구는 앞으로 '빙하기'가 절대 찾아오지 않을까? 그건 절대 아니다. 지구의 공전 궤도자전축이 수만 년마다 주기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빙하기'가 찾아온 것인데, 이 주기가 맞아떨어지면 지구는 다시 추운 '빙하기'를 맞이하게 될 거야. 이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그런데 '기후위기'로 인해서 지구가 너무 빠르게 뜨거워지는 바람에 공전궤도와 자전축의 변화에 따라 찾아오는 빙하기보다 훨씬 더 빠르게 맞이할 수도 있고 전문가들은 경고를 한다. 올겨울도 2~3주 동안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는 긴 추위가 닥쳤다. 극지방에 머물고 있어야 할 '한기'를 내려오지 못하게 막아주던 '제트기류'가 약해졌기 때문이라는데, 이렇게 제트기류가 약해진 원인이 바로 '바닷물 온도'가 너무 뜨거워졌기 때문이란다. 그로 인해서 생기는 기후변화가 극심해져서 맞이한 결과다. 이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없고, '인간 활동'에 의해서 발생한 변화이기 때문에 아주 큰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지구의 기온은 원래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애초에 지구의 공전궤도와 자전축이 변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생기는 '기후변화'가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말하는 '기후 변화'는 완전 다르다. 자연스런 기후 변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급속도로 '온도'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생태계'가 변화된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빠르게 멸종하고 있는 것이 아주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물론 호모 사피엔스 때문에 멸종된 동식물이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 그 당시엔 과학이 발달한 것도 아니었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사냥을 한 것이기 때문에 '무분별한 포획과 남획 문제'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더구나 오늘날의 현생 인류는 생태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멸종되는 동식물'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인류는 변화된 기후에 '적응'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연에 살고 있는 생물종은 '급격한 기후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생태계가 망가지면 결국 인류도 살아남기 힘든 것은 당연하고 말이다.

나가는 글 : 한편, 한반도에도 '호모 사피엔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까?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구석기 유적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것들이 한반도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구석기인)의 흔적이다. 물론 이들이 '우리 한국인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인류의 발자취가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대륙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빙하기' 무렵에 살았던 한반도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육지로 이어진 아시아 대륙이 한반도와 일본열도까지 쭈욱 연결되어 있었고, 지금의 서해(황해) 바다와 남해 바다는 훨씬 남쪽으로 밀려나 있었고, 동해 바다는 '내륙의 커다란 호수' 형태를 띠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기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는 먹잇감을 따라서 대이동 중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반도에 살던 '한국인의 조상'은 언제 왔을까? 아마도 암사동 선사유적지 등에 살던 '신석기인'이 아닐까 추정한다. 이들은 구석인들과는 달리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움집을 짓고 토기를 빗으며 농사도 짓던 '정착 생활'을 했으니까 말이다.

이 책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는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서 인류의 발자취와 기원을 찾아나선 아우린들의 모험을 핵심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때문에 '역사책'에 나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역사책'에 나온 지식과 더불어 이 책을 함께 읽으면 더 넓은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과목과 과목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통째로 배우는 교과통합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서로 다른 책속의 배경지식을 '따로 국밥'처럼 나누지 말고 한데 엮어서 '융합'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AI 시대가 펼쳐지면 이런 현상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인공지능 AI조차 '문과 AI'와 '이과 AI'로 구분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상식'으로 모든 것을 통섭적인 지식으로 간직하고 언제든 필요할 때 꺼내서 활용하는 자세로 학습해야 할 것이다. 뭔가 더 복잡할 것 같으면 그냥 다양한 지식을 쓸어담기라도 해야 한다. '정리'는 나중에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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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2
고우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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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2> 고우영 / 문학동네 (2021)

[My Review MMCCIX / 문학동네 2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서른여덟 번째 리뷰는 기상천외한 해석을 보여준 <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2>다. 앞서 1권 리뷰에서 애초에 '정본'이 없는 <삼국지>에서 '신선한 해석'보다 즐거움을 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2권에서도 그러한 신선함은 여전히 돋보이며 이런 '해석'을 70년대'에 이미 해노았다는 기발함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고우영 화백은 천재가 분명하다. 그 엄혹한 군사독재시절에도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비평을 담아낼 용기를 낼 수 있었는지 진정 용감한 분이기도 했다. 그럼 2권 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2> 관점 포인트 : 먼저 차례를 살펴보면, 4장 '늑대 여포와 돼지 동탁', 5장 '미녀 초선과 트라이앵글', 그리고 6장 '파란만장한 간웅 조조'다. <삼국지>를 좀 읽어보신 독자라면, 이쯤해서 주된 줄거리는 '조조'가 동탁 암살에 실패하고 낙향하며 '여백사 살인 사건'을 일으킨 사건으로 시작해서 사도 왕윤이 자신이 아끼던 '초선'을 앞세워서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 시키는 '연환계(일명 '미인계')'를 써서 동탁 암살에 성공한 사건까지 이어지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여기서는 아쉽게도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인 '장비'의 서민적인 영웅담을 엿볼 수 없었다. 6장에서 조조의 아비가 서주 도겸을 만난 뒤에 황건적의 잔당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그로 인해 조조가 도겸을 토벌하려는 과정에서 '유관장 삼형제'가 잠시 등장하는 것뿐이기에 그렇다.

암튼, 2권에서는 주된 줄거리가 2가지인데, 하나는 '여백사 일가족'을 몰살시킨 조조가 거병에 성공하여 진류땅에 정착하지만, '여백사의 저주(?)'로 인해서 조조의 아비도 허무하게 도륙 당한다는 업보(카르마)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또 하나는 초선이 제 한 목숨을 내놓고서 벌이는 '연환계(이간질)'로 인해 동탁이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너무 평범한 스토리라인일 뿐인데, 그럼 뭐가 '천재적 발상'이고 '날카로운 비평'이란 말인가?

그건 다름 아닌 '조조'를 진정한 악인으로 만들어놓은 '여백사 일가족 살해' 사건을 조조의 아비가 '황건적 잔당에 의한 도륙'으로 연결하는 스토리라인을 짰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권선징악적 결말'에 해당하는 우리식 도덕윤리의 결정판을 <삼국지> 속에도 오롯이 담아 놓은 것이다. 즉, 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귀결을 고전 중의 고전인 <삼국지>에도 담아 놓았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 고전속에서는 '권선징악'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모략'이라고 해서 서로 속고 속이는 거짓과 날조만이 난무할 따름이다. 그속에서 우리가 건질 교훈 따위는 '사람 쉽게 믿지 마라'는 것뿐이다. 이는 오직 '힘의 논리'만을 강조할 뿐이다. 힘쎈 이는 남을 속일 필요도 없고 '정정당당(?)'하게 밀어붙이면 저절로 얻게 되지만, 힘이 약하면 '지혜'를 써서, 다시 말해, 상대를 속여서 이익을 얻어내면 그뿐이라는 '경제적인 동물적 본성'만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에 착하게 살아야 한다. 도덕적인 행동만 일삼아야 한다는 교훈 따위는 일절 없는 셈이다. 그런데 대표적인 중국 고전 <삼국지>에 권선징악이라는 코드를 심어두었다. 조조의 아비가 속절없이 도륙을 당한 것은 '조조'가 악행을 일삼았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말이다. 여느 <삼국지>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교훈인 셈이다.

한편, 사도 왕윤과 초선이 꾸민 연환계에 걸려든 동탁과 여포는 속설없이 계략에 당하고 만다. 하지만 연환계의 핵심은 '알고도 당한다'는 것인데, 도대체 동탁과 여포는 어찌하여 계략인 걸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건 다름 아닌 '초선의 미모'가 너무도 예뻤기 때문이다. 사실 '초선'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나관중이 살던 시기 이전부터 널리 퍼진 이야기속 미녀인 '초선'을 <삼국지연의> 속에 슬쩍 끼어넣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명대 이후에는 <삼국지> 속의 미녀는 으레 '초선'으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그럼 고우영은 초선을 어떻게 <삼국지> 속에 살려냈을까? 사실 한 여자를 두 남자에게 던져주고 서로 질투와 시기를 벌이게 만드는 '삼각관계'는 너무 흔한 스토리일 것이다. 그렇게나 식상한 이야기인데도 늘상 이런 이야기에 솔깃한 까닭은 바로 '여자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예뻤길래 알고도 속았느냐는 것이다. 그걸 고우영 화백이 '에로티시즘'으로 아주 그냥 녹진녹진 녹여버린 셈이다. 사실 여포가 아무리 바보라도 '(양)아들의 혼례를 주선하기 위해서 며느리 될 여자를 데려다가 한 달이 넘도록 감춰두고 있다'는 사실 앞에 속아넘어갈 순딩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포는 동탁 앞에서 '호위무사' 행세를 하며 '초선'을 바라보기만 할 수 있었을까? 차라리 그쯤 되면 여포도 '여자 한 명'을 포기하고 권세를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우영 화백은 그럴 때마다 '초선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여포의 마음에 불꽃을 활활 태우게 만든다. 한마디로 "너무나도 원통해요. 나 초선은 여포의 여자인데, 돼지같은 동탁에게 몸을 망치고 이제 죽는 일만 남았다"는 메시지를 얼굴 표정, 손짓 한 번으로 여포에게 전한 것이다.

사나이 중의 사나이 여포가 이런 초선을 두고서 포기할 수 있었겠는가? 그냥 한 달음에 방천화극을 꼬나쥐고 동탁을 죽이고도 남았으리라. 이걸 곁에서 눈치챈 동탁의 사위 '이유'가 큰일 나겠다싶어서 동탁에게 옛 고사를 일러주면서까지 코칭을 하며 동탁에게 '여자 한 명 vs 온 천하' 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조언하게 된다. 동탁도 멍청이가 아닌지라 '초선'을 여포에게 주고 자신은 '천하'를 취할 것이라 다짐을 하지만, 초선은 그 사실을 알고나자 '열녀 행세'를 하며 동탁 앞에서 자결을 하는 쇼를 펼친다. 늙은 남자는 자신이 젊은 육체를 만족(?)시켜 줄 수 없음을 서글퍼하며 놓아주려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젊은 육체가 늙은 자신이 아니면 앙댄다고 앙탈을 부리며 달겨들면 늙은 남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젊은 육체' 하나만을 빼앗기지 않으려 드는 것이 '필연적'이다. 동탁이 딱 그짝이었던 것이다. 이걸 고우영 화백이 너무나 잘 그렸다. 속된 말로 '심금'을 울린 셈인데, 정말이지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화끈하고 가슴 방망이가 두근세근 뛰면서 "나 아직 안 죽었어요"라는 빵빠레를 울릴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천재적인 발상'은 초선이란 여인이 행한 애국적인 공로가 어떻게 가능했냐는 궁극적인 물음에 해답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제 막 열여섯 살 먹은 어린 여자가 '나라사랑'이 무엇이며, 국가 공직의 자리에 올랐던 적도 없는데 '한 황실'에 충성을 다 바쳐 역적 처단에 앞장 서겠냐는 것이다. 아무리 아버지 같은 '왕윤의 부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자기 인생'이 망가지는 것인데, 그게 쉽게 될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우영 화백은 이 원천적인 힘을 '초선의 첫사랑'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즉,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이니 쉽게 거절할 수도 없었고 아무리 큰 고통이 따른다해도 거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름 아닌, 사랑의 힘이다. 그렇지만 '왕윤과 초선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어떤 이는 초선이 '왕윤의 친딸'이라고도 하고, '왕윤의 수양딸'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초선은 왕윤에게 '딸 같은 존재'였기에 둘 사이의 애뜻한 마음은 있을지언정 '현실적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런데 사도 왕윤은 나라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고, 열여섯 살 초선은 연인의 고충에 자기 마음도 심란해졌다. 그런데 연인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바로 '미인계'를 써서 동탁을 암살하는데 성공하면 왕윤의 큰 고심이 해결될 수 있단다. 이걸 어찌 안 할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그리고 왕윤과 초선의 사랑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동탁 암살 이후 '왕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사실 동탁이 제거되더라도 '정국 안정'을 위해서 천자를 안정적으로 옹립하고, 세력을 길러 주위를 태평하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그런데 왕윤은 동탁 암살 이후 '급발진'을 하면서 동탁의 잔당을 척결하는데 앞장선다. 바로 '이각과 곽사' 등을 포섭하지 않고 처단하는데 열을 올린 것이다. 물론 충성심에 그럴 수는 있겠지만, 당장 '군사적 힘'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무슨 수로 역적 토벌에 나선단 말인가? 그 결과 이각과 곽사가 천자를 손쉽게 탈취(?)했고, 왕윤은 그 자리에서 모든 책임을 지고 '자살'을 하고 만다. 그 똑똑하던 왕윤의 마지막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말이다. 왕윤이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실책을 한 까닭을 다름 아닌 '사랑하는 여인, 초선의 죽음'에서 찾으면 답이 되지 않을까?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이게 너무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다. 정말이지 기발한 발상이다.

나가는 글 : 오늘날의 독자들이 보기에는 '이미 알고 있는 뻔한 스토리'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원작'은 고우영 화백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지만, <고우영 삼국지>는 1978년 작이다. 대한민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던 <이문열 평역 삼국지>도 고우영 화백의 스토리에서 영감을 받았고, 영향을 받아 탄생한 셈이다. 그렇기에 <고우영 삼국지>도 필독서의 반열에 올라야 마땅하다.

다만, 어린이와 청소년 독자들에게 권장하기가 민망하다. 에로틱한 대목이 많이 연출되었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그림체'가 직설적으로 야한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그런데 이게 더 야하다. 사실 '야함'이라는 것이 대놓고 벗기고 드러내는 것보다 '보일 듯이 안 보이는 것'이 훨씬 더 에로틱하기 때문이다. 이걸 전문용어로 '감칠맛(!)'이라고 하는데, 미각 중에서도 단맛, 쓴맛, 신맛, 짠맛보다 훨씬 입안에서 황홀한 느낌을 주는 맛이 '감칠맛'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조차 '다섯 번째 맛'으로 감칠맛을 정식 등록해야 한다고..쿨럭쿨럭.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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