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수록 부자 되는 미니멀리즘 재테크
미니멀리스트 다케루 지음, 안혜은 옮김 / 한빛비즈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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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수록 부자 되는 미니멀리즘 재테크> 미니멀리스트 다케루 / 안혜은 / 한빛비즈 (2026)

[My Review MMCCXXXIV / 한빛비즈 17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예순세 번째 리뷰는 집안에 두는 것들을 버리면 버릴수록 부자가 된다는 자기계발서 <버릴수록 부자 되는 미니멀리즘 재테크>다. 솔직히 부자가 되고 싶다. 40대까지만 해도 버는 돈이 시원치 않아도 몸이 '건강'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쓸만큼 벌고 필요한만큼 또 벌면 부족함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헌데 50대가 넘어가니 몸 건강이 신통치 않은 것이 앞으로 얼마나 더 노동을 하며 살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실제로 일본인 저자도 큰 병을 앓고 나서 생활패턴을 '미니멀리스트'로 바꿨다고 한다. 그리고 부자가 될 수 있었다는데, 뭐 그건 둘째고, 일단 집안에 잔뜩 쌓인 물건부터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 책을 뽑아 들었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버릴수록 부자 되는 미니멀리즘 재테크> 관점 포인트 : 책이 생각만큼 크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집 안이 엉망이면 돈도 못 모은다는 것에는 깊이 공감했지만, '불필요한 물건'을 죄다 버리고, 사지도 않고, 집 안을 텅텅 빈 채로 살면 행복해진다고 끝맺음을 하면 좋았을텐데, 이건 뭐, 시작부터 끝까지 '돈돈돈' 뭐든 돈으로 환산해서 설명하는 품이 흡족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집 안 정리 비결'을 궁금해 했지 '부자가 되는 비결'이 궁금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케루 씨의 '미니멀리스트' 라이프 스타일이 어떤지 살펴보았다. 일단 '당신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까닭'에 대해 일장연설로 책 내용을 시작했다. 물건을 많이 쌓아두는 습관, 집 안을 늘 엉망인채로 방치하는 습관, 사고 싶은 것이 생기면 바로바로 사버리는 충동구매 습관 등등 일상생활이 '더하기 습관'이 가득하면 돈을 모을 수 없단다. 그런 까닭에 집 안이 어지럽혀질 정도로 많은 물건을 사모으는 생활습관부터 고쳐야 한단다.

이렇게 '낭비'를 줄이면 '통장잔고'가 늘어나는 마법이 일어난다면서, 통장잔고를 늘리는 '정리의 기술'에 대해서 서술했는데, 이건 한국식으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저축보다 주식투자! 당장 필요없는 물건을 당근판매! 그리고 난 뒤에 집안이 텅텅 비었다고 다시 물건 사서 쟁여놓지 않기! 뭐, 이런 정도가 될 것이다. 이건 한국인이라면 너무 당연한 습관이라 특이할 것도 없지만, 일본인들은 상상밖으로 '저축'에만 올인하고 있어서 이런 코칭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일본인 거의 대부분이 '주식투자'를 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 주식투자를 하는 인구가 늘고 있는데, 그마저도 대부분 주식초보인 탓에 '묻지마 투자'를 하면서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몇 개의 기업에 전국민이 몰빵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타먹는 '배당금'이나 '연금'으로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 다케루 씨도 그런 사람인 듯 싶다.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자산의 90%'를 주식투자를 하고 있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노후를 즐기고(?) 있다고 한다.

물론 다케루 씨는 유명한 유튜버이기도 하다. 그래서 거기서 나오는 수익으로도 생활비에 보태고 있는데, 주요 컨텐츠는 바로 '미니멀리즘 노하우'인 모양이다. 암튼 저자인 다케루 씨는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나가는 글 :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다케루 씨처럼 미니멀한 라이프를 즐기면 모두가 부자가 되어 편안한 여생을 즐길 수 있는 것일까? 글쎄, 살짝 회의감이 든다. 이 책의 마지막 6장 흔들리지 않는 부의 시스템 만들기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데, '하루 0원으로 사는 행복'을 보자. 당신은 하루에 한 푼도 쓰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뭐, 불가능하지도 않겠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느냔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는 경제를 살리는 기본 원칙이다. 지금도 경기침체로 자영업자들이 줄폐업을 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정부는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복지정책을 풀가동하는 실정인데, 하루 0원 소비가 행복이라니. 너무나도 일본적인 사고방식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로 인해서 일본 경제가 점점 침몰하고 있는데 아직도 이런 식의 조언을 하며 '자기만 부자'가 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라니.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뺄셈 사고'는 경청할 만 했다. 물건을 소비할 때 '쟁여둘 생각'을 하지 말고, 집에 있는 걸로 충분히 해결하고 '꼭 필요한 것'만 사는 것을 배울 점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여기서도 살짝 넘사벽이 있었는데, 바로 '물건 하나를 사면 두 개를 버린다'는 것이다. 버린다고해서 그냥 버리는 것도 아니고 당근판매 같은 것으로 '수익'을 챙기라고 했는데, 내 경우엔 다케루 씨처럼 당근에 팔아서 '고액의 수익'을 낼만한 골동품이 없다. 팔아도 헐값에 팔거나 그냥 내다버리는 것들로만 가득한데 뭘 뺄셈 사고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뭐, 나름 비법을 소개한 것이 '추억이 담긴 물건'은 버리고 '사진'으로 대신해서 클라우드 같은 곳에 저장하라고 조언을 했는데...이게 그냥 버리면 버렸지, 왜 미련이 남게 '사진'을 찍으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사진을 잘 못 찍는 건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사실..쿨럭쿨럭

그밖에는 또 '돈돈돈'이었다. 갖고 있는 돈은 잘 지키고, 투자는 '장기투자'로 확실한 수익을 보장하는 '우상향'하는 주식에 투자하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도 마지막은 '부와 행복의 균형'을 맞추라면서 끝맺음을 했는데, 다케루 씨에겐 돈돈돈이 곧 행복이었던 모양이다.

사실상 '미니멀니즘'의 핵심은 소비는 줄이고 저축/투자는 늘리면서 집안정리 등 자기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살면 돈도 모으고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는데 살짝 얄밉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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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NEW 인간관계론 - 카네기 마스터 에디션
홍헌영 지음 / 한빛비즈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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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New 인간관계론 : 카네기 마스터 에디션> 홍헌영 / 한빛비즈 (2025)

[My Review MMCCXXXIII / 한빛비즈 17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예순두 번째 리뷰는 자기계발서의 원조라고 불리는 <데일 카네기 New 인간관계론>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 데일 카네기가 펴낸 자기계발서는 모두 6권으로 알고 있다. '긍정태도론', '내면성장론', '인생경영론', '성공대화론', '자기관리론', 그리고 '인간관계론'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단연 '인간관계론'이다. 왜 그럴까? 자기계발의 끝판왕은 다름 아닌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관계는 단순히 개인적인 수양만으로 얻을 수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부대낌을 경험해봐야 진정한 '관계의 힘'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관계는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도 살 수가 없다. 억만금을 주고서 '고용'을 하고 맘대로 부릴 수는 있을지 몰라도 억만금에 억만금을 주고서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인간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서 돈으로 매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우리는 인류역사를 통해서도 아주 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데일 카네기는 수많은 조언을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를 꼽으라면 '자기가 먼저 한 발 다가가라'는 것이었다. 정말 이것이 맞는지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데일 카네기 New 인간관계론> 관점 포인트 : 이 책은 '데일 카네기'의 다른 책과는 다르게 저자가 '홍헌영'이다. 왜냐면 대한민국 유일의 '카네기 마스터'가 바로 홍헌영 마스터이기 때문이다. 카네기 마스터는 인간관계를 긍정적으로 이끌어내는데 도움(피드백)을 주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인간관계론>을 수업교재로 사용하는 곳에 파견된 전문 강사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피드백 전문가가 아니라 피드백 능력과 실력을 엄격하게 검증하고 인정을 받은 사람만이 '카네기 마스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홍헌영 마스터가 직접 쓴 이 책이 진정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책의 구성도 살짝 다르다. 다른 '데ㅣ일 카네기책'들은 대부분 데일 카네기가 직접 소개하는 '일화'를 중심으로 자기계발에 필요한 지침을 홀로 읽고 스스로 다짐하고 실천하게끔 출간되어 있지만, 이 책은 실제로 '인간관계'에 변화를 꾀하는 모임의 <수업교재>로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내용에서 중점적인 내용을 압축적으로 수록하고서, 그 압축수록된 내용에 홍헌영 마스터가 직접 '해석'을 해주고, 이를 실제로 실천해볼 수 있도록 30가지 내용으로 꾸며진 교재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굳이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고 홀로 읽을 수밖에 없는 독자들도 쉽게 따라해볼 수 있도록 '주제'에 걸맞는 '실천방안'도 살짝살짝 코칭해놓고 있으니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따라해보고, 손글씨로 직접 '핵심구절'을 필사도 해보면서 인간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그 덕분에 다른 비슷한 책들보다는 읽기가 한결 수월한 편이다. 무엇보다 마스터의 해석이 귀에 실제 음성이 들리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될 듯이 생생한 것이 단연 돋보였다. 괜히 마스터가 아니었던 것이다. 더구나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내용이 '요약'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오해하는 실패를 겪을 일도 없다. 그래서 다른 '데일 카네기'책을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독자분이라도 이 책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장담한다.

나가는 글 : 사실 이 책을 리뷰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리뷰보다는 직접 읽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데일 카네기>가 가지고 있는 장점 가운데 하나다. 읽고 난 뒤에 결코 후회가 없다는 사실 말이다. 왜냐면 수많은 자기계발서 가운데 <데일 카네기>만큼 감명을 주는 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살짝 오해를 했던 부분이 있긴 했다.

나는 <데일 카네기>의 책을 동양의 고전 <논어>와 <맹자>와 같은 성인군자를 만들기 위한 지침서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읽다보면 '성공이 하고 싶으면 착한 사람이 먼저 되어라'는 뜻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동양의 고전이 그렇지 않은가. '지식을 쌓아 똑똑한 사람이 되기에 앞서서 마음을 닦고 도덕을 수양해서 먼저 인간이 되는 지혜를 터득하라'고 조언을 하니 말이다. 지식을 쌓아 똑똑한 사람이 되면 성공은 보장이 된 셈이다. 하지만 <논어>나 <맹자>에서는 그런 헛똑똑이들을 성인군자라 부르지 않았다. 그저 출세에 눈이 먼 졸장부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를 닦고 덕을 길러 먼저 인간관계를 돈독하고 진실하게 하지 않으면 말짱 꽝이라는 내용과 '데일 카네기'의 지침이 일맥상통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그게 아니었다. 데일 카네기는 훌륭한 인간관계를 갖추기 위해서 '성인군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했단다. 그저 누구라도 '인간관계'를 좋게 만들 수 있는데 그 비법이라는 것이 특별할 것이 없으니 잘 새겨 들으라는 듯이 이해를 해야 한다고 홍헌영 마스터가 덧붙였기 때문이다. 그랬다. 상대에게 '착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고, 무조건 선행을 베풀라고 '강요'하지도 않는 것이 바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례론>의 핵심 포인트였던 것이다. 비법은 '인간관계의 원리'였던 것입니다. 원리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힘들게 인격을 쌓고 도덕을 닦아 '신선의 경지'에 도달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이해했을 때 가장 기뻤다.

실례로 상대를 '설득'하고 싶으면 '호감'을 먼저 심어주고,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다면 상대방을 완전히 '설득'할 수 있는 진실함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가 무엇이겠는가? '호감'을 심어주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 아니다.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순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호감을 사고, 호감을 산 뒤에야 비로소 '설득'을 할 수 있고, 그 설득을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면 누구라도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공식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어떤가? 동양철학하고 차이점도 확연하지 않은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는 법이다. 모든 인간관계에 '공식'이 성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개별적인 인간관계가 다양하기 때문에 손을 쓸 수 없다고 방관만 하지 않기를 바란다. 80억 인구가 살아가는 지구에 인간관계가 얼마나 다양하겠는가 말이다. 그걸 일일이 다 '공식'으로 만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럴 땐 최대한 <데일 카네기 New 인간관계론>에 적혀 있는 30가지 공식 가운데 최대한 비슷한 상황으로 '전환'시키는 지혜를 발휘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30가지 유형과 비슷하게 상황을 전환시킨 뒤에 '공식'을 써먹으면 십중팔구 잘 해결될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 또한 하나의 방법일 것이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혹시라도 아직도 자기계발서의 끝판왕 <데일 카네기 New 인간관계론>을 읽지 않았다면 망설이지 말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만큼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는데도 인간관계에 자신이 없다면 더는 망설이지 말고 이 책으로 처방을 받길 바란다. 관계가 달라지면 인생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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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 5 - 최후의 예언, 제2회 스토리킹 수상작 후속작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 5
천효정 지음, 강경수 그림 / 비룡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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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 5 : 최후의 예언> 천효정 / 비룡소 (2018)

[My Review MMCCXXXII / 비룡소 1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예순한 번째 리뷰는 제2회 스토리킹 수상작의 후속작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 5>이다. 무협소설의 마지막은 '무술대회'다. 김용의 소설 <사조영웅전><신조협려>에서도 '화산논검'이라는 대결을 통해 무술 1인자를 뽑았고, 그 최후의 대결에서 승부를 겨룬 뒤에 '동사서독 남제북개 왕중양'이라는 칭호가 강호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훗날 그들의 대결이 '구음진경'이라는 무공비급의 주인을 가리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뜻하지 않게 '구음진경'을 수련하게 된 곽정과 황룡이라는 어린 영웅이 등장해서 새로운 강자가 된다는 스토리를 이어갔다. 여기까지가 <사조영웅전>의 줄거리고, 이어지는 <신조협려>에서는 2차 화산논검이 펼쳐지는데, 이 대결은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쓰러져가는 나라(송)를 끝까지 지키는 진정한 영웅이 된 곽정과 그를 돕는 불세출의 영웅 양과(신조협려)가 무술인들의 세계에 자리 잡아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그럼 건방이와 초아가 참여하는 '어린이 고수 선발대회'에서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 5> 관점 포인트 : 지난 번에 등장한 '무술인 중앙 협회(무중협)'의 초청으로 건방이와 초아는 '어린이 고수 선발대회'에 참가하러 강화도 마니산으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이 대회는 순수하지 못한 목적이 있었는데, 바로 '무중협의 수장'이 무술인들의 세계를 어지럽히는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내노라하는 무술인들을 교묘하게 납치, 감금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우곤 했는데, 그 까닭은 다름 아닌 한 권의 '예언서' 때문이었다. 그 책에 '팔팔동자'가 등장해서 모든 무술을 하나로 통합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든다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 나쁜 무리들은 저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에는 반성도 하지 않고 '팔팔동자'만 제거하면 온세상이 제 것이 될거라는 망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 고수'를 선발하는 대회를 가장해서 가장 실력이 좋은 어린이 고수를 제거해버리면 예언은 적중하지 않게 되고, 자신들이 세상을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 철썩 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암튼 그 예언서의 내용이 맞든 틀리든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된 '건방이와 초아'가 위기에 처하게 된 셈이다.

뭐, 결말은 직접 책을 읽어보면 될 것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일수록 '스포'를 하게 되면 재미가 떨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2년 뒤인 2020년에 또 다른 후속작이 등장했다. 이름하야 <건방이의 초강력 수련기>다. 작가는 같지만 '그린이'는 강경수에서 이정태로 바뀌었다. 이게 국내판매 40만부를 돌파한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에 비해 부진한(?) 원인은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 '그림체'가 바뀌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껏 책속의 세계관에 '이미지'를 다 만들어 놓았는데, 그림체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면 애써 만들어놓은 세계관의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고 새로 쌓아올려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줄거리까지 완전 방향을 틀어버린 경우에는 그냥 새 책을 읽는 느낌으로 읽을 때도 있다. 집을 보수할 때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저 내부 인테리어만 살짝 바꾸는 정도라면 몰라도 거의 집을 부수고 다시 짓는 수준이라면 그냥 '철거'를 하고 새 집을 짓던가, 아니면 아예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더 현명할테니 말이다. 그래서 '삽화'나 '표지'를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너무 쉽게 바꾸는 경향이 있다.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적도 없다. 그럼 방법은 딱 하나다. 재미 없으면 안 보고 안 사는 방법밖에...

나가는 글 : 물론 후속작이자 시즌 2에 해당하는 <건방이의 초강력 수련기>를 직접 읽고 판단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대히트를 친 책의 후속작이 완전히 다른 포맷으로 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얼핏 봤으면 '같은 시리즈'가 아닌 줄 알았으니까 말이다. 현재는 <십 년 후 건방이>라는 외전에 '만화'까지 출시된 상태다. 시즌 1인 '건방진 수련기'를 너무 재밌게 읽었기에 이 모든 책을 다 섭렵할 계획이지만, 경제적 형편이 그닥 좋...쿨럭쿨럭 암튼 시즌 2에 이어 '성인 버전' <건방이>도 후속으로 이어져서 독특한 '무협소설'의 세계관이 쭉 이어지길 바란다. 시즌 1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는 진정 대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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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10권 - 창씨개명에서 8.15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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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10권 : 창씨개명에서 8·15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8)

[My Review MMCCXXXI / 인물과사상사 3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예순 번째 리뷰는 <한국 근대사 산책 10>이다. 1940년대 일제가 조선을 '병참기지화'시키고 전쟁의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전쟁터와는 살짝 거리가 있던 한반도내에서는 그야말로 생난리가 벌어졌다.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수탈과 약탈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고, '물자'를 빼가는 것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코너에 몰리자 이제는 '사람'을 짐짝 취급하며 빼돌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징용, 징병, 성노예로 불리는 것들이다. 생계를 위해서 '일자리'를 찾던 조선의 젊은이들을 돈 한 푼도 주지 않고 부려먹는 '강제징용'이 시작되었고, 어른 학생들까지 전장터의 총알받이로 써먹으려 '학도병'이란 거창한 이름으로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으며, 어린 소녀부터 젊은 아낙네까지 일제에 충성을 다하는 짐승들의 '성욕'을 처리할 용도로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치욕을 보이며 인간이라면 저지를 수 없을 법한 만행을...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과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우리 민족의 '젊은이'들에게 감내하게 만들었다. 이런 것들을 아울러서 '민족말살'이라 부른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한국 근대사 산책 10> 관점 포인트 : 일제는 중일전쟁이 뜻하지 않게 장기전으로 돌입하자 각종 만행도 일삼기 시작했다. 일본군이 점령한 곳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깔끔하게 항복할 것이라 단순하게 생각했으나 일본군이 점령하는 곳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병력'은 점점 분산되고 '물자'는 점점 고갈되어 갔다. 그러자 일제는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점령지에서 '집단학살'을 자행하게 되는데, 이런 소식이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지자 서구열강들조차 일제의 만행을 지탄하며 만류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일제가 만행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자 미국이 앞장서서 '실력행사'에 나서는데, 일본으로 수출하는 물자들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일제는 다급해졌다. 전쟁을 치루기 위해서는 '석유 공급'이 가장 절실한데, 그 석유의 대부분을 미국을 통해서 수입해왔던 터라 미국의 석유수출 금지조치는 일제로서는 뼈아픈 곳을 건드린 셈이다.

부랴부랴 일제는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동남아를 침공했고, 다른 부족한 물자도 확보하기 위해서 남태평양섬들까지 점령해나가는데, 결정적으로 '석유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제가 최악의 결정을 내린 것이 바로 '진주만 기습', 즉 '태평양전쟁의 시작'이었다. 일제는 이 전쟁의 승부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데이터 상으로만 봐도 미국 전력을 압도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단지 '해군 전력'에서 일제가 약간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전쟁이 본격화되면 미국의 생산량이 일제의 생산량을 추월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압도적인 전력차이를 극복할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극히 정상적인 판단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진주만 기습'따위는 절대로 감행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런데 일제는 저질러 버렸다. 왜? 그동안 강대국이라 여겼던 '청나라'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했고,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까지는 아니어도 패배는 아니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과 전쟁을 저질러도 대일본제국이라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단단히 빠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제가 여지껏 패배하지 않았던 단 하나의 방법을 '태평양전쟁'에서도 바로 써먹었다. 다름 아닌 '선제공격 후 선전포고'다. 그래서 일제는 미태평양함대가 머물고 있는 진주만을 기습하였다. 그리고 기습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미 해군전력이 궤멸수준으로 파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일제의 실패 원인이었다. 미국의 '회복속도'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1차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무기 생산공장'을 가동해본 경험이 있다. 더구나 미국 본토가 타격을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생산공장을 가동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래서 전쟁처럼 철저히 '소모전'을 펼쳤을 때 소모하고 보충하는 '회복속도'가 일제에 비해서 미국이 열 배 이상 효율이 좋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제는 '미국의 석유자원'을 공급받아야 전쟁을 치룰 수 있는데,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자원소모'에 있어서도 일제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해버린 셈이었다.

그럼에도 일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며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자국민과 식민지인들을 모두 속였다. 그리고 '결사항전'만을 부르짖으며 부숴질 때까지 싸우라는 '옥쇄'를 외칠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헛소리가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할 수 있었을까? 미국이 송출하던 단파방송 '미국의 소리(VOA)'를 통해서 전쟁상황과 일제의 패망을 알리는 소식을 우리 국민들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이 방송에서 활약했는데, 이승만도 '한국어 방송'을 통해 전황 소식을 전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것이다.

일제는 정말 '최후의 발악'을 했다. 윤동주와 이육사를 감옥에서 죽게 만든 것이 바로 이 때이며, 오키나와 주민들이 스스로 자살하도록 강요하게 만든 것도 이때다. 그리고 인류 최초의 핵폭탄 실험장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벌어지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다. 패망이 짙어지면 항복을 하고 뒷일을 수습하는 것이 정상이건만 일제는 그마저도 거부하다가 정말 끝장을 볼때까지 가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1945년 8월 15일 일제는 무조건 항복을 하고, 우리는 뜻밖으로 '해방'을 맞이했다. 하지만 아직 일제의 행운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 민족의 행운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일제가 물러난 자리에 미제가 대신 들어와 차지했기 때문이다.

나가는 글 : 하나의 나라가 망하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정말 지난한 세월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동학농민운동'으로 조선의 국력이 날로 기울어가는 것을 눈치챘을 때에는 이미 망해가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세계 정세는 갈수록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로 해결이 되었고, 조선의 앞날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하던 마지막 숨결조차 일제가 훅하고 불어서 꺼뜨린 것이 1910년이었다. 그로부터 1945년까지 우리 민족은 그야말로 생지옥을 경험하고 온갖 치욕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해방이 모든 것을 한 방에 해결해주지도 못했다. 일제가 물러가자 미제가 들어와 우리 민족을 또다시 생지옥과 치욕의 구렁텅이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그 뒤에 벌어진 사건들은 강준만 교수의 <한국 현대사 산책>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자.

2026년 대한민국을 살면서 왜 100여 년전에 벌어졌던 암울하고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 들춰봐야 하는 걸까?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에 랭크된 명실상부한 선진국이자 강대국 반열에 올랐으니 어두운 과거는 그냥 묻어두고 휘황찬란한 장밋빛 미래만 그리고 누리면서 살면 되지 않은가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게 살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현재 선진국이자 강대국이라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지만,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왜냐면 아직까지도 '남북간 대치국면'은 달라진 것이 없으며, 우리를 둘러싼 주변국들이 내노라하는 선진국이자 강대국들이기 때문이다. 북쪽으로 러시아, 서쪽으로 중국, 남쪽으로 일본, 그리고 동쪽바다 저 멀리 미국이 도사리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국력으로 대한민국은 분명 10위권의 상위권을 자리잡고 있는 강대국이 맞지만, 우리를 둘러싼 주변국에 비하면 아직도 '새 발의 피'처럼 조그마한 힘을 가진 약소국의 설움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대한민국이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기고만장하고 한국을 보기에 우습게 보던 강대국들이 슬슬 한국의 눈치를 살피며 설설 기는 모습까지..쿨럭쿨럭..암튼 그렇다는 얘기다. 당장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정상 들이 한국의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알랑방구를 까고 있는 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면 무엇보다 '한국의 협력'이 없으면 아쉬운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내 나이 50살이 넘어서 이런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확실히 달라진 것이다.

내가 학창시절에 역사를 배울 땐 '약소국의 관점'에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르게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희망은 '인적자원'을 충실히 활용해서 인재를 양성한 뒤에 '기술강국'이 되어 전세계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이 전부였었다. 그게 대한민국의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백범 김구께서 우리의 얼과 문화를 계승발전시켜서 '문화강국'이 되는 비젼을 보여주셨지만, 그게 어디 우리만의 발버둥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겠는가. 전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고 '환영' 받을 수 있고, 화룡점정으로 '환장'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걸 대한민국이 해냈다. 전세계인들이 '한국의 멋'에 환장해서 미친듯이 '한국 따라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꿈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한국사'였다. 이전까지 우리가 바라본 우리 역사는 '약소국의 관점'에서 풀어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능동적이지 못하고 '수동적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풀어냈고, 스스로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타자의 목소리'에 크게 영향을 받는 소극적인 역사였다. 과연 이런 역사관을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의 역사관으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을까?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역사 재조명이라는 관점에서 리뷰를 쓰는 와중에도 댓글에 태글을 거는 이들이 많았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일본보다 아래'인 것이 사실이니 일본에게 깝치다가 된통 당한다는 둥, 이승만, 박정희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라도 발전할 수 있었으니 비난하기에 앞서서 존중하는 자세부터 바로 잡으라는 둥, 일제시대는 객관적인 사료로 입증할 수 있을만큼 서양의 식민통치보다 더 훌륭한 통치가 이루어진 시대였으니 비난을 하기에 앞서서 공부 좀 하고 제대로 비판을 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댓글도 받아봤다. 뭐, 해석에 연연하는 '역사학도'가 아닌 나이기에 나와 다른 해석을 늘어놓았다고 화를 내거나 열받을 일도 없지만, 이건 뭐 '상식'적으로 대응할 가치가 없을 정도니 대꾸를 할 가치도 못 느끼는 바다.

각설하고, 이제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관점으로 써내려 가야 한다. 그런데 '팩트'랍시고 우리의 역사를 우리 손으로 직접 먹칠을 하는 것에 열을 올리는 부류가 있어서 답답하다. 설령 그런 '역사적 진실'이 있다면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걸 애써 강조하며 '우리 역사' 전체를 끌어내려 부끄럽게 만드는 까닭이 무엇이냔 말이다. 흔히 말하는 '식민사관', '자학사관' 따위인데, 역사적 진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것은 '부끄러운 역사'일지언정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다시는 그런 부끄러움을 반복하지 않도록 철저한 반성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부끄러운 식민통치의 역사를 가졌으니 영원히 일본에 '굴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둥, 미국의 원조가 없었으면 굶어죽었을 것이니 영원히 미국의 노예로 살아갈 것을 결심해야 한다는 둥, 사대주의도 이런 사대주의가 없을 정도로 떠들어댈 것이 대관절 무엇이냔 말이다. 이제는 이런 역사 교육은 탈피해야 한다. 그런 역사를 굳이 강조하면서 '일제에 굴종하고, 미국에 굴욕을 당해도 괜찮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개무시해도 된다는 말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전세계를 선도하는 역할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역사 교육을 준비해야 할 때다. 우리가 힘이 없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기에 굳이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정복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전세계는 대한민국이 아무리 '방산기술'을 고도화해도 이를 저지하고 막을 까닭이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함부로 공격한다면 대한민국은 결코 참지 않았으며 아무리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해도 호락호락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수 있다. 이 역시 역사로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잘 살아도 우리 혼자 잘 살지 않으며 못 살아도 우리보다 못 사는 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준 이에 대해서는 아무리 오래 지났다하더라도 그보다 더한 은혜로 보답하는데 아끼지 않는다는 '인류 공영'을 실천하는 역사가 있음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역시 우리 역사를 통해서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역사관을 가질 때가 되었다.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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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9권 - 연애열풍에서 입시지옥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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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9권 : 연애열풍에서 입시지옥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8)

[My Review MMCCXXX / 인물과사상사 36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쉰아홉 번째 리뷰는 <한국 근대사 산책 9>이다. 일제시대 36년간 거시적인 관점에서 '망국의 한'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라 잃은 슬픔이 이토록 사무치고 기댈 곳 없는 설움이 그토록 서러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민족은 그 슬픔과 설움의 현장에서 살을 에이는 고통을 견디며 삶을 이어갔다. 그 어둠속에서도 빛을 내는 존재도 있었다. 천지가 개벽하는 시대를 겪으며 그간 주목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일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고 손기정 선수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제시대를 큰 그림에서 처절하고 불우한 시절이었다고 평가내릴 수 있겠으나, 세세한 부분 부분들을 살펴보면서 낱낱이 평가해볼 필요는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일제시대에 화려한 꽃을 피운 인생을 찾았다고 '일제시대 전체'를 백점 만점 주는 어리석은 짓은 제발 안 했으면 싶다. 손기정 선수가 세계 1위의 자리에 오른 뒤에 왜 고개를 푹 숙이고 승리를 만끽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건 '개인의 영광'은 더할나위 없이 기뻤겠지만 '나라 잃은 슬픔'과 함께 기뻐해줄 동포의 아픔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가 망하거나 말거나 개인적인 성취에 들떠서 환희를 만끽하고, 제 동포가 죽거나 다친 건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직 개인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민족의 배반자들'은 일제시대가 아주 좋아 죽을 것처럼 좋았을 것이다. 천지개벽하여 새세상이 열린 것만 좋아라 하고 세상이 뒤집혀져서 피해를 보고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로해줄 줄 모르는 철면피들에게 더 바랄 것도 없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한국 근대사 산책 9> 관점 포인트 : 9권에서는 특히 1930년대 풍속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책내용을 처음 접하다보면 '신세계'가 펼쳐진 듯 싶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일제시대의 암울한 정서와는 사뭇 다르게 1930년대 조선인들은 생동감 넘치게 각 분야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선을 멀리하고 바라보면 조선인들의 활기찬 모습은 사라지고 암울한 이미지만 가득하다. 이런 기현상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허나 분명한 것은 일제의 철저한 억압과 수탈, 그리고 차별은 더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조선인을 위한 식민통치'는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일제는 아주 교묘하게 방향을 틀어서 조선인들이 가지게 될 불만을 '다른 곳'으로 풀어내도록 유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한 어리숙한 군중들은 일제가 '허용'한 것들에 취해서 제 몸과 정신이 다 망가지고 생채기가 나는 줄도 모르고 활기 넘쳤고, 결국 진이 다 빠진 뒤에 제 손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 허무함에 빠지게 되었다. 일제의 교묘한 방법이란 그런 허무감조차 '일제의 탓'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저 못난 것'만 탓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조선놈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근거불명의 명제를 들이밀면서 일단 불평불만이 많은 조선인(불령선인)들은 때리고 보는 식이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일제시대에 강요된 근대화를 겪으며 '자의식'을 키웠다. 이는 일본인들과 명백히 다른 점이다. 일본인들은 '저항'을 할 줄 모른다. 아무리 불평불만이 생겨도 '위에서 억누르면' 곧 잠잠해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본문화는 '칼(사무라이)의 문화'라면서 명령에 불복하면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나는 경험에서 체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한편, 한국인들은 극렬한 저항을 한다. 부당한 것에 참지 않고 공정하지 못한 것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짓밟히면 더욱더 일어나서 온몸으로 저항하고 제뜻을 관철하려 든다. 이런 우리 민족의 드센 성정을 총칼로 다스리려 했으니 '무단통치'시기에 결국 사단이 나고 끝내 1919년 3·1운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뒤에 일제는 겉으로 '문화통치'를 내세우면서 한편으론 달래고, 다른 편으로는 얼르며 우리 민족을 '이간질'시키려 들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 내부의 문제'로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겪으며 독립운동에도 난항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부분열과 갈등도 뚜렷한 '자의식'이 없다면 아예 발생하지도 않는다. 갈등의 골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상'과 '신념'은 굳건해지기 마련인데, 이때 일제를 통하거나 국외유학을 경험하고 돌아온 이들이 전파한 '서양사상'과 '서양문화'는 우리 젊은 청년들에게 신문물을 수용함에 있어서 한 가지 기준점을 제공했던 것이다. '이 좋은 것들을 자유로운 조국에서 아무런 간섭과 차별을 받지 않은 독립된 나라에서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기준 말이다. 일제는 앞선 신문물을 조선의 청년들에게 선보이면서 '이것이 압도적인 일본의 문명이다. 그러니 저항하지 말고 누리고 즐겨라. 2등 국민으로 만족하면서 말이다. 이런 의도로 자랑을 했겠지만, '자의식'을 깨우친 조선인들에게 그런 헛소리는 먹혀들지 않았다. 차라리 조선인 차별을 하지 않고 그들의 말대로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대우하고, 출세의 기회도 똑같이 마련해줬다면 저들의 의도대로 일제에 순응하는 '착한 조선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차별이란 차별은 다하고, 수탈할 것도 몽땅 다하고서 굶주려 죽게 만들고서는 저런 헛소리를 늘어놓았으니 전혀 먹혀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1930년대 '여성문화', '대중문화', '소비문화', '생활문화' '중독문화' 등등 다양한 문화를 선보이며 눈이 팽팽 돌아가게 만들었지만, 일제의 속임수에 속아넘어가는 이들이 많을지언정 그렇게 속아서 산 세월이 얼마나 치욕스럽고 부당했는지는 경험해보면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문화적인 것들조차 조선인은 일본인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변화를 꾀했으며, 조선인들이 일본인보다 잘나면 잘났지 문화를 받아들이는 속도나 능력에서조차 뒤쳐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를 테면 '자유연애'가 소개되자 '맹목적 연애'가 진짜 연애라면서 연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할 정도로 심취해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전통적인 '정조'를 우위에 놓던 것을 하루 아침에 추락시켜버리고 '연애'가 주는 낭만에 푹 빠져서 불륜조차 당당하게(?) 하며 수많은 대중들이 이를 유행처럼 따라하는 일이 벌어졌단다. 심지어 조강지처가 있는데도 바람 피운 것이 들통나자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 '저승'에서 이루겠다며 내연녀가 투신 자살을 하자 불륜남도 똑같은 자리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것이 신문에 대서특필 될 정도였다고 한다.

어디 이뿐인가. 라디오에 심취해서 라디오 청취를 넘어 '참가'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커피 '소비'는 마약에 중독된 듯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사교댄스에 빠져서 '춤바람'을 일으켰다. 거기에 전화, 기차, 자동차, 심지어 기독교라는 종교까지 빠져들고, 마음껏 휘저으며, 결국 '우리식'으로 풀어내고 우리만의 문화로 거듭냈다. 일제시대의 모습들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지 않았는가. 현재 전세계에 '한류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이 우연은 아닌 셈이다. 서양의 것, 일제의 것일지라도 일단 우리 민족의 손과 얼을 거치고 나면 결국 '한국문화'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애초에 우리 것이 아니었지만 결국 '우리 것'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우리 것을 다시 역수출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열광한다. 낯설지 않은데 무척 낯설게 만들어 버리는 '한국만의 흥 문화'가 오롯이 담긴 덕분이다.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 일제시대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흥'으로 최악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우리 것'으로 재포장해서 다른 나라를 감동하게 만드는 저력이 말이다.

나가는 글 : 딴에는 무척 기묘하다. 이 책이 출간된 2008년에는 이런 감흥으로 이 책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차별받고 핍박받은 어두운 그늘속을 걷는 것처럼 침울하게, 때론 씁쓸하게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2026년이 된 오늘 다시 읽으니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는 100년 전의 우리 조상님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일제의 강요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스스로 근대화를 이끌었다면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정말로 만약이지만,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것'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낼 수만 있었더라면, 저들의 제국주의적 야만조차 자중하고 길들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양은 저들의 힘에 도취되고 한껏 부풀어서 저 잘난 맛에 전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어 '쟁탈전'을 벌였지만, 그 가운데 우뚝 선 나라 하나가 있어서 저들의 앞선 문물을 보여줬음에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저들의 것보다 훨씬 더 좋게 만들어내는 나라의 존재 앞에서 어찌 함부로 경거망동했겠냐는 말이다. 더구나 그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저들의 문물을 '재생산'해서 '역수출' 당하는 모습에 기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이 너무 과하다고? 현재의 대한민국의 위상 앞에서 쩔쩔매는 저들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보라. 현재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우리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전세계 10위권 안에서 놀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전통적인 강대국으로 꼽히는 나라들을 제외하고 보면 정말 대단한 위엄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런 강대국들이 '제국주의'를 앞세워서 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떨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자 '가해 당사국'이었던 것에 반해서,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송두리채 빼앗겨버린 '피해국'이었는데 불과 100년만에 그 위상이 뒤바뀐 것이다. 더구나 역사적으로 침략을 받았을지언정 침략을 한 적이 거의 없는 나라인데, 현재는 '군사대국'으로 성장해서 그 어떤 나라도 함부로 건들릴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 흔한(?) 핵무기가 없는데도 말이다. 재래식 무기만으로 주변국을 넘어 전세계에 압도적 힘을 과시할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한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한류열풍을 넘어 '한국문화', '한국제품'은 일단 믿고 본다는 인식이 세계인들에게 각인되어 버린 현재다. 도대체 이런 신뢰를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준 국가나 문화가 역사상 몇 개나 있었을까? 이게 가장 놀라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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