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여행 리포트
아리카와 히로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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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말았다, 고양이 여행 리포트

 

이봐, 사토루.

여행이 시작된 뒤 사토루가 자란 마을을 두 군데 보았어. 농촌을 보았어. 바다도 보았어.

앞으로 우리 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또 어떤 풍경을 함꼐 볼 수 있을까? (p.141~142)

 

고양이 나나와 그의 주인 사토루의 여행 이야기.

길고양이 나나와 사토루가 함께하게 되는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그런데 어떤 사정이 생겨서, 사토루는 고양이를 맡길 곳을 찾아 어린 시절 친했던 친구들을 차례로 찾아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토루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친구 고스케를 위해 기상천외한 일을 벌였던 추억.

중학생 때 만난 친구 요시마네와 수학여행 때 근처에 살던 고양이를 만나러 가려고 탈출을 감행했던 추억.

고교시절 때 만난 스기, 치에코와 친구가 되고 어릴적 기르다 맡기게 된 고양이를 보러 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던 추억.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마을에도 찾아갔다.

결국 이모 노리코와 함께 살게 된 사토루와 나나.

그들에게 결국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마는데...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울어버릴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평범한 힐링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눈물샘을 자극한다.

사토루가 사랑하는 나나를 맡겨야만 하는 '사정'을 짐작하게 되는 순간부터 조금씩 눈물이 나려고 했다.

버스 안에서 읽어서 눈물을 참느라 힘겨웠다.

훌쩍거리며 겨우 참아 집에 와서 뒷부분을 읽는데, 나나가 사토루를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부분에서 결국 펑펑 울고 말았다.

그리고 뒷이야기까지 그 여운은 지속됐다.

 

나의 리포트는 이제 곧 끝난다.

이것은 절대 슬픈 일이 아니다.

우리는 여행의 추억을 세면서 다음 여행을 떠난다.

먼저 간 사람을 생각하면서. 나중에 올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또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지평선 너머에서 만날 것이다. (p.314) 

 

고양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야기.

그건 사토루의 삶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마지막에서 나나가 독백하듯이, 삶을 '여행'에 비유하고 있다.

각각의 삶의 순간에서 누군가를 만나 추억을 쌓아가는 시간의 소중함.

선명하게 기억하는 세상의 수많은 것들.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웃는 얼굴.

그런 것들이 함께했으니 분명 사토루와 나나의 여행은, 그들의 삶은 행복했겠지.

이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사토루와 나나가 여행하며 본 것들에 대한 조금 긴 독백이 있는데, 그 부분들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으니 감각적인 즐거움이 더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끝에는 분명 펑펑 울게 되겠지만, 영화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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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키퍼
톤코하우스 지음, 유소명 옮김, 에릭 오 감수 / ㈜소미미디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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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이야기, 댐키퍼

 

햇살이 반짝 반짝 눈부신 마을에 사는 피그.

마을 한쪽 커다란 댐 위, 풍차가 그가 사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르는 그의 정체는 댐 키퍼!

댐 건너편, 꿈도 희망도 없는 새카맣고 무서운 세상인 '어두움'이 밀려오지 않도록, 그는 열심히 풍차를 돌린다.

하지만 일하느라 더러워진 피그를 모두 '흙투성이'라고 놀릴 뿐. 그에겐 친구가 없다.

 

나는 댐 위에 있는 풍차에서 살고 있어.

나는 아침마다 저녁마다

풍차를 돌려서 바람을 일으켜

그러면 '어두움'이 멀리멀리 밀려가거든.

나는

우리 마을을 '어두움'으로부터 지키는 댐키퍼야. (책속에서)

 

어느 날, 마을에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 '폭스'가 전학오며 상황이 바뀐다.

괴롭힘 당하던 피그를 폭스가 도와주고, 둘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친해진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 피그는 폭스가 보여주는 흙투성이인 자신의 그림을 보며 아이들이 웃는 걸 보고 만다.

충격 받은 나머지 풍차를 돌리는 것도 잊어버리게 되고...

어느새 마을은 밀려드는 '어두움'으로 뒤덮이고, 피그는 정신없이 달려가 모든 걸 잊고 풍차를 돌린다.

서서히 어두움이 물러가고 빛이 돌아온 마을에서, 피그는 자신이 오해했었다는 걸 알게 된다.

흙투성이라 놀리는 게 아니라, 함께 더러워진 모습으로 웃는 두 친구의 모습이었던 것!

화해한 둘은 함께 풍차를 돌린다.

 

 

나는 오늘도 풍차를 돌려

'어두움'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거야.

그렇지만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야! (책속에서)

 

 

같은 이름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동화책 <댐키퍼>.

아이들이 읽기에 딱 좋을 그림동화다.

'어두움'을 몰아내는 피그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모습, '어두움'을 열심히 밀어내는 모습이 좋았다.

읽으면서  어두움이 밀려오고, 밀려나는 것이 피그의 마음상태와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림의 질감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림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또 어떨까 궁금해졌다.

특히 마을로 밀려온 어두움이 밀려나면서 서서히 빛을 되찾는 건 역시 애니메이션 쪽이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보를 찾아보니 지난 5월 3일부터 원화 전시회도 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다.

예전에 동화 원화 전시회를 본 적이 있는데, 책으로 보는 것과 달랐기에, 원화만의 느낌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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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신 - 평화로운 부활동 시작 방법
키자키 나나에 지음, 미즈노 미나미 그림, 김동주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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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교 농구부원들의 순수한 청춘 드라마! 농구의 신

 

키자키 나나에의 <농구의 신-평화로운 부활동 시작방법>은 고등학교 농구부 이야기이다.

중학교 시절 너무 열심히 농구를 한 탓에 외톨이가 되었던 이쿠.

그는 고등학교에서는 더이상 부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아는 사람이 없는 안죠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그러나 그를 발견한 농구부 부장 쥰야의 끊임없는 권유에 "농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깨닫고 농구부에 들어간다.

부원들에게 각자의 사정이 있었던, 약소 농구부지만 그들의 목표는 전국대회 출전.

약소 고등학교 농구부의 청춘드라마가 이 소설의 내용이다.

 

"농구를 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더라도 나는 지금 있는 멤버가 베스트라고 생각해. 올해야말로 분명 현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어." (p.179)

 

학원물을 좋아한다. 학창시절 동아리 활동하는 내용을 계속 읽는 건, 아쉬움을 흩어내기 위해서일까?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대리만족하면서.

스포츠 만화를 나름 읽어왔다. 그 영향인지 <농구의 신>의 소재나 캐릭터 설정에서 익숙하게 느껴진 부분이 있었다.

주인공 이쿠와 관련해서 떠오른 캐릭터로 배구 만화 <하이큐!!>에서의 카게야마가 있었다.

그 역시 배구밖에 모르는 바보였고, 끝없는 향상심을 자신 뿐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요구하다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중학교 시절 다닌 학교가 강호교의 부속 중학교여서 그대로 진학할 수 있는 형태였으나 동료들과의 불화로 다른 학교에 진학한 것도 비슷한 점이다.

다만 카게야마는 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쿠와 다른 점이다.

이후 새로운 동료를 만나고, 새 팀에서 자신의 옛 동료와 연습경기를 하는 내용도 둘이 모두 겪은 일이다.

이런 내용을 보면 스포츠에서는 정말 '맞는 팀'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소설이나 만화 속 인물 뿐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으니까.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단체로 하는 스포츠는 자신의 능력만큼이나 팀원들과의 합이 중요하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정신적인 성장에 대해서도 담아내고 있었다. 타인을 돌아보지 않았던 면이 있었던 이쿠의 성장. 특히 이쿠와 중학교 시절 동료였던 코마이와의 대화가 그런 부분들을 떠오르게 했다.

 

"너는 언제나 이래…!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겨도 상관없다는 듯이 놔버리고…, 그런데 주변에서 금방 똑같은 것을 갖다줘. 진심으로 원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 그러니까 그렇게 간단히 코토가노를 버렸던 거야!" (p.161)

 

정면으로 부딪쳐오는 적의가 오히려 시원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중학생 때는 이런 식이 아니었다.

코마이는 항상 이쿠를 무시했고, 한숨을 내쉬었고, 눈을 마주치지 ㅇ낳고 고개를 돌렸다.

(같은 포지션을 두고 경쟁했으니까….)

그냥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도 다른 유니폼을 입고 서로 맞서야만 가능했던 걸까.

질려버릴 정도로 서툴다. 자신도. 코마이도. (p.258)

 

스포츠물을 읽을 때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농구의 신>에서도 고교 농구부원들의 풋풋하고 순수한 열정이 느껴진다.

오로지 목표를 위해 곧게 나아가는 모습이 마음을 진하게 두드린다.

'농구'에 그정도까지 푹 빠져들어 다른 건 돌아보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이 멋지다.

그건 주인공 학교 농구부원만이 아니다. 주요 라이벌로 나온 코토가노 고등학교 측도 그랬다.

나쁜 수단을 쓰는 사악한 악역이 아니라, 라이벌이다. 결국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펼치려는 것.

<농구의 신>의 결말은 열린 결말이다. 현 대회를 하나하나 돌파하고, 우승후보 코토가노 고등학교와의 마지막 승부만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끝난다.

한 권이라는 책의 분량에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하나하나 깊게 다루기엔 부족한 양이니까. 부원들의 개인사를 좀더 파고들수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기 장면도 좀더 많이 보고 싶었다. 농구 만화라도 찾아 봐야겠다.

여담으로 책표지의 일러스트도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 이쿠인 듯한 남학생이 농구 공을 잡고 있는 모습이 멋지다.

일러스트 작가인 미즈노 미나미의 <무지개빛 데이즈>도 알고 있던 작품이라 반가운 마음이다.

 

-소미북스 라이트 서포터즈 1기 자격으로 쓴 서평이지만 개인적인 생각만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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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4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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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는 한 가지 모습만 있는 게 아니다, 야만인을 기다리며

어느 역사책에서 이런 내용을 본 기억이 난다. 나라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통치자들은 외부에 전쟁을 일으키곤 했다고. 그건 특정 한 나라만의 일이 아니라, 많은 나라가 그러했다. '우리' 안에 없는 존재들에 대한 철저한 배척.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제국은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졸 대령'으로 대표되는 세력이, 변경 도시 밖에 사는 토착민들을 '야만인'으로 규정하며 그들을 잡아와 고문한다.

화자인 변경도시의 치안판사 '나'는 이 상황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잡혀온 죄수들은 제국이 묘사하는 '잔인한 야만인'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만 나서서 상황을 바꾸려 하진 않는다. 졸 대령 일행이 떠난 뒤에야 그들을 나름대로 도우려 한다. 그들이 돌아가고 남겨진 야만인 여인을 발견하게 되어 치료하고 관계를 맺는다.

이렇게 보면 치안판사는 나름 도덕적인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도 제국주의자에 속하는 건 마찬가지다. 나서서 불의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고문하는 이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끊임없이 환기시키려 한다. 상처 입은 야만인 여인을 치료하며 어떻게 다쳤는지를 이야기해보라니. 그걸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고통일텐데. 그건 그가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녀는 그가 처음 잡혀온 야만인들을 방관하던 걸 기억하고 있다. 폭력을 방관하는 것 역시 폭력이 아닌가.

그가 여인을 부족에게 데려가기로 한 것도 아마 자신은 폭력적인 이들과 다르다고 증명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인이 자신을 떠나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여인은 거절한다. 자유를 택한다. 그는 애써 부정하려 하겠지만, 여인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역시 제국의 입장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는 걸.

치안판사가 야만인 여인을 대하는 방식은 제국주의의 또다른 방식이기도 하다. 야만인들을 자신들의 문명 안에 끌어들이려 하는 것. 그들을 교육시켜 더 낫게 변화시키고 있다고 믿는 것. 자신들만의 방식이 옳다고 믿는 것.

뒤의 내용이 더 있다. 돌아온 치안 판사는 야만인과 내통했다는 취급을 받아 고문을 받아 몸이 상한다. 졸 대령 일행은 야만인 정벌을 위해 떠나지만, 그들의 정벌은 실패한다. 변경도시는 황폐해지고, 많은 이들이 떠나가고 몇몇만 남아 살아간다.

거짓된 적, 위협을 야만인에게 씌워 체제를 유지하려 했던 제국. 그것은 결국 야만인의 반격을 받고 산산이 부서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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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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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앨리스 먼로가 서술한 여인의 삶

언제부턴가 장편보다 단편 읽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앨리스 먼로의 책이 좋았다. 주로 단편을 쓰는 작가니까. 거기에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후광까지 드리워졌으니.

<거지 소녀>는 다른 작품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단편 '연작'이라는 점. 책에 실린 10편의 단편의 주인공은 모두 '로즈'라는 여성으로 동일하다.

단편들은 로즈의 삶을 차근차근 따라가게 한다. 연결성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단편을 읽으면서 이전 단편 속 로즈를 생각했다.

단편집을 장편처럼 읽었던 것 같다. 띄엄띄엄 나누어 단편으로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에야 들었다.

<거지 소녀>의 단편들은 가난한 환경이었던 고향 핸래티에서 자란 로즈가 그곳을 떠나 이곳 저곳을 떠돌며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 로즈가 경험하는 다양한 관계들이 있었다.

책 소개에 있었던 '거지 소녀' 단편 이야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로즈가 만난 남자들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읽었었다.

그녀의 아버지, 그녀를 '거지 소녀'라고 부르며 그녀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패트릭. 친구의 남편이었던 클리퍼드, 방송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던 톰, 갑작스레 소식이 끊겨버렸던 사이먼. 하지만 그들 모두 로즈가 품은 희망을 배신하고 만다. 그나마 그런 관계가 아니었던 건 어릴적 동창이었던 랠프 정도다.

단편을 읽다보면 이들만큼이나 로즈가 만난 각양각색의 '여성'들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녀들과 로즈의 관계에 집중하게 되었다.

로즈의 새어머니 플로. 그녀는 로즈에게 자신이 겪었다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로즈는 자라면서 점점 그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플로는 그런 그녀가 겪을 수 있을 위험들을 경고한다.

 

과거, 즉 플로의 이야기에 나오는 수상쩍고 멜로드라마 같은 과거는 현재와 크게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적어도 로즈에게는 그랬다. 현재의 사람들을 과거에 끼워맞출 수가 없었다. (책속에서)

 

플로는 로즈에게 있어서 벗어나고 싶은 공간을 의미하는 존재이면서도, 일종의 애증 섞인 관계였다. 부모와 자녀들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로즈가 사춘기에 동경하던 상급생 소녀 코라. 우연히 로즈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로즈는 그 사건을 통해 그녀를 동경하게 된다. 코라를 통해 로즈는 '애정'의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그 감정은 결국 시간이 흘러 바래졌지만.

시간이 흘러 대학에 들어간 로즈는 헨쇼 박사를 만난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 장래가 기대되는 여성을 머물게 하고 지원해주는 나이 든 독신 여성이다. 헨쇼 박사는 그런 여학생들을 지원해 독립할 수 있을 직업을 갖게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어쩌면 로즈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로즈가 자란 환경이, 헨쇼 박사가 겪어온 세상과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결혼하면서 중산층의 삶을 누리게 된 로즈는 조산원에서 조슬린을 만나 친분을 나누게 된다. 이 친분은 로즈가 또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계기가 된다. 

로즈가 방송 일을 시작하면서 친해진 도러시는 그녀가 만나는 남자에 대해 경고하며 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이 시기에 로즈는 딸 애나와 잠시 함께 지내는 시간도 가지지만, 결국 애나는 전남편 패트릭에게 돌아가게 된다.

로즈가 살던 집 근처의 상점 여자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았지만, 로즈와 나름의 유대감 비슷한 것이 있었다. 로즈가 산 물건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그녀의 생활에 대한 부러움 같은 것들에서 비롯되는 것.

로즈가 어릴 적 선생님이었던 미스 해티도 있었다. 그녀는 어린 로즈가 시를 베껴 써오라는 숙제를 해오지 않자 그날 남아서 시를 베껴 쓰라고 한다. 그녀는 이야기한다. "네가 시를 잘 외울 수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해선 안 돼.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책속에서)

 

결국 그 말대로 되어버렸다. 로즈는 똑똑했지만 객관적으로 특별히 뛰어난 삶을 살았다고 보기엔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대부분의 삶이다. 살아가다 보면 나만 겪는 감정, 나만 겪는 일 같은 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특별함이라는 건 신기루 같은 것이다. 로즈의 삶을 차근차근 따라가는 <거지 소녀>의 마지막 단편에 이 대사가 있어서 더 강렬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처럼 <거지 소녀>는 주인공인 로즈 뿐 아니라 다양한 여성 인물들의 삶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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