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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현실인듯 상상인듯, 보이지 않는 도시들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꺼내들었다.
표지를 넘기니 그 안에 적어둔 책 구매 연도가 적혀있다. 2011년. 벌써 4년 전이다.
오랜만에 다시 읽었지만 여전히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이미지를 채우는 책이었다.
그래도 처음 읽었을 때보다는 조금 더 알아갈 수 있었다. 예전에는 그저 스치고 흩어졌다면, 이번에 읽을 때는 각 도시 안에서 이야기하는 상징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을 연상할 수 있었다. 아무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이 책은 도시들이 주인공이다. 오래전, '동방견문록'을 썼던 마르코 폴로가 거대한 제국을 이룩했던 황제, 쿠빌라이 칸 앞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도시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내용이다. 몇 부로 나뉘어 있는데, 전체적인 도시들은 또 같은 제목에 번호가 다른 것들이 섞여 있다. 그러니까 두 가지 방식으로 묶어낼 수 있다. 하나는 순서대로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제목을 가진 도시끼리 묶어 읽어보는 것이다. 아직 두 번째 방식은 취하지 않았는데, 다음에 읽을 때는 순서대로 말고 같은 제목을 가진 도시끼리 읽어볼까 생각중이다.
그런데 마르코 폴로가 이야기하는 도시들은 모두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도시들도 보인다. 하지만 그 기묘함 뒤에는, 과거에 존재했었던, 현재에 존재하는 도시들의 모습이 숨어있으며, 몇몇 도시는 이상적인 도시들의 모습도 있다. 결국 그가 이야기하는 도시들은 현실이면서, 동시에 상상 속에 존재하는 도시들인 것이다. 그게 뒤섞여 있는 것은, 그 도시들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르코 폴로 속의 기억 속에서 재배치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은 필요 이상의 것들로 넘칩니다. 기억은 도시를 존재시키기 위해 기호들을 반복합니다. (p.29)
이 책은 서점에서 돌아다니다가 다소 충동적으로 구매했다가 막상 읽어본 후에는 당황했던 기억이 있는 책이다. 읽기는 어렵지만 묘한 매력이 있는 책. 이탈로 칼비노의 책은 그런 것 같다. 아니, 어쩌면 환상소설들이 그런 걸까? 이제까지 읽었던 흥미로운 환상소설들은 이런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 안의 상징들을 해석하려고 했기에 어렵게 느껴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해하려 하지말고 그저 묘사되는 도시들의 모습을 상상해 가며 읽는 것이 더 어울린다. 어딘가에 있을법한, 혹은 어디에도 없을 듯한 도시의 이미지들이 차례차례 독자앞에 등장하고, 쌓여가는 그런 책이다.
전에 읽을 때와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차이를 두었떤 또 하나는, 이번에는 각 '부'의 처음과 끝에 있는 마르코 폴로와 쿠빌라이 칸의 대화 부분을 더욱 꼼꼼하게 보았다는 점이다. 혼란스러웠던 내용을 가닥을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여러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다시 읽으면서 확실히 느꼈다. 또 한 번 천천히 두고두고 읽어가야겠다고. 시간이 좀더 흐른 후에, 기억에서 희미해질 때가 되면.
도시의 형태는 그 목록이 무한하다. 모든 형태가 자신의 도시를 찾고 새로운 도시들이 계속 탄생하게 될 때까지. 모든 형태의 변화가 끝나고 나면 도시의 종말이 시작된다.
지도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로스앤젤레스, 쿄토, 오사카 같은 도시와 형태 없는 도시들의 시작도 끝도 없는 그물망들이 넘쳐난다.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