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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마도 아스파라거스 - 황경신의 이야기노트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7월
평점 :
따로 읽는 게 좋았을까? 아마도 아스파라거스
<아마도 아스파라거스>는 저자의 단편들을 모은 단편집이다. 새로운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묘하게 익숙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이건 뭐지 했더니만 예전에 나온 책의 new edition이라고 한다. 어떤 단편이 예전에 있었고 어떤 단편이 새로 추가된 건지는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느낌이 가장 강하게 들었던 건 '목성의 마지막 오후'라는 단편이었다. 질문을 하는 여자와 그 질문에 답을 하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어쩐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의 장면이 떠올랐다. 하지만 두 이야기의 내용은 좀 다른 것 같다. 그런 느낌이다.
책 속에 실린 단편들은 대부분 미묘한 기분에 빠져들게 했다. 실제로 일어날 법 하지 않은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한 편으로는 현실에 맞닿아 있다. 그래서 뭔가 '애매하다'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푹 빠져들어 읽을 수 없었다.
이야기 속에 빠져들기는 어려웠지만 매력있는 부분들은 많았다. 곱씹어 보게 되는 글귀들도 많았다. 이야기에는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장면에, 어떤 순간에는 확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 같다. 이상하게도.
"두 번째를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끝나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너는 여전히 죽을 것처럼 벅찬 사랑과 죽을 것처럼 공허한 이별 사이에 있는 거야. (책속에서, '아마도 아스파라거스')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자,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미래를 두려워했는지 알 것 같다. 아니 미래 그 자체가 아니라, 미래가 가져다주는 모든 변화를 그녀는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현재의 시간을 고정시키고, 그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세계가 조금이라도 흔들릴까 봐, 그래서 그것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바. 그리하여 그녀 자신이 영원한 외로움 속에 남게 될까 봐.
그러나 어쩌면 가장 외로운 순간은 언제나 지금이었을지도 몰라. (책속에서, 'be my muse')
"발견하기 전까지는 어떤 신호인지 몰라. 하지만 신호를 보는 순간, 그게 신호라는 걸 알게 돼."
(중략)
그런가. 신호란 원래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입을 다문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지만, 보는 순간 알게 되는 것. (책속에서, '국경의 크리스마스')
마지막의 단편들은 '국경'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붙어서 이어지는 일종의 연작이었다.
레스토랑, 음악회, 로즈가든, 가면무도회, 크리스마스, 웨이터가 뒤에 붙는 여섯 편으로 이어졌는데, '국경'이라는 공간으로 인한 신비감이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책을 다 읽고나니, 환상 속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다 나온 것만 같았다.
예전에 일본 소설을 읽을 때 자주 경험했던 기분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기분. 책 속에 녹아든 분위기가 강렬한 이야기.
환상과 어우러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헤쳐나가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
어쩌면 한번에 쭉 읽는 것보다 단편 하나하나 천천히 읽는게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뒤늦게 후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