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면서
그러나 이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농업은 사양산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첫째로 농업은 산업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유무역 이데올로기는 농업에 산업의 논리를 강요해왔고, 바로 그런 연유로 제3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선진국에서도 농업의 생산기반이 꾸준하게 약화돼온 것이다. 물론 선진국 대부분은 놀랍게도 표리부동하게 자유무역에서 농업을 예외로 두고 식량자급률 100% 이상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물론 농업이 경제의 토대이고 주권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일부를 제외한) 서방세계의 농민들까지 오늘날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일까? 초국적기업들이 호시탐탐 농업의 기반을 훼손하면서 독점적 이익을 누리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후안무치는 끝이 없다. 3년 가까이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특수를 누린 것은 방위산업만이 아니었다. 초국적 농기업들은 전시상황을 이용하여 우크라이나신자유주의 정부로부터 옥토 중의 옥토, 우크라이나 농토에 대한 장악력을 상당하게 넘겨받는 데 성공했다. 농업이 끝내 사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또다른 이유는-이 자명한 사실을 현대 도시인들만 모르는 것 같은데-인간은 먹지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실험실에서 햄버거를 만들어내면서 연금술의 비밀을 알아낸 것처럼 우쭐대지만, 대체육처럼극단적으로 가공이 된 ‘식품‘이라고 해도 그 원재료는 땅에서 나온다. 농업은 인류가 결코 손을 놓을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초국적 자본도 마지막까지 지배욕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 P8
농업에서는 최대화가 아니라 최적화가 기본원칙이다. 농부들은 무턱대고 수확량을 늘리려고 하지 않는다. 농업의 목표는 지속성의 확보이고, 그것은 최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투입물도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고 산출물도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비료가 적정 수준을 넘어가면 작물은 허약해지고 지력은 훼손되며 이듬해의 수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삭에 낟알이 지나치게 들어찬벼는 가을 태풍에 취약하다. 순환의 원리, 지속성의 가치를 최우선으로두고, 착취나 추출로 인해 근본이 손상되지 않도록 보살피는 것이 합리적인 농사방식이다. 수십 년에 걸친 녹색혁명 이데올로기 공세와 자유 - P9
무역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70% 이상의 인구를 소농들이먹여 살리고 있고, 또한 가장 생산성이 높고 땅을 잘 보호할 수 있는 영농은 가족농의 방식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우리는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 P10
백승종
알다시피 동학은 1860년(철종 11년)에 탄생했다. 그러고는 한 세대가지난 1894년(고종 31년)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소농들이 들고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유지되어온 ‘사회적 합의‘가깨졌기 때문이다. - P13
박맹수
수운이 천명한 동학의 핵심 사상은 시천주, 그 가운데에서도 ‘시‘ 한 글자에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 한 글자는 곧 인간생명의 주체인 영)의 유기적 표현으로서 인간과 우주의 자연적 통일,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통일, 인간과 사회의 혁명적 통일이 ‘시‘ 한 글자에다 통일되어 있다. 시(侍) 안에는 최수운 선생의 인간과 우주의 자연적 통일로서의 시천(天)사상뿐만 아니라, 뒷날 최해월 선생의 인간과인간의 사회적 통일로서의 양천(天)사상, 나아가 동학혁명 민중 전체와 전봉준 선생, 3·1운동 민족 전체와 손병희 선생 등의 인간과 사회의혁명적 통일로서의 체천(天)사상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김지하, <인간의 사회적 성화-수운사상 묵상>, <남녘땅 뱃노래>, 두레, 1985, 112쪽). - P26
김용휘
또한 해월의 철학은 "모든 만유가 무궁한 우주생명을 내면에 모시고있다"는 근본적 생명원리와 "한울이 한울을 먹고 산다"는 이천식천(天食天)의 생명원리를 제시했다. 이천식천은 만물의 상호의존성을 알고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모시고 살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먹는 것의 신성함과 공생의 삶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천식천은 적자생존의 논리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몸을 언젠가는 기꺼이내놓아야 한다는 자기헌신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나라는 개체 생명에 한정된 의식을 벗고 우주의 전체 생명이라는 보다 초월적 시각에서 생과 사를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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