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개관
여성문학 역시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근대 초기 여성의 자각과 계몽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식민 현실과 교섭하면서 계급과민족, 성 간의 교차성을 본격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식민지 시기 여성 작가의 등단과 작품을 살펴보면, 1930년대 들어 작가군과작품 경향에서 의미심장한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대 초기부터 1920년대까지 개인의 자유와 자각, 그리고 이런 가치를 획득하기 위한 계몽의 정신이라는 주제를 다뤘다면 1930년대부터는 식민현실에 대한 비판, 사회주의(자)의 부상과 리얼리즘으로 작품 경향이 이동한다. 이런 경향의 시작을 식민지 시대 농촌 현실과 노동 문제를 여성의 시각에서 형상화한 박화성의 소설 「추석전야」(1925)가발표된 1920년대 후반으로 보고자 한다. 1920년대후반부터 1930년대 말까지인 근대 여성문학 형성기의 특징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눠 볼 수 있다. 전반기는 사회주의자 여성의 등장과 리얼리즘의 여 - P17
성적 전유로, 후반기는 성찰적 여성 주체의 등장과 여성성의 분화로 보고 경향을 개관한다. - P18
그러나 이 소설에서 보여준 사회주의 이념의 세례를 받은 ‘주의자‘ 여성, 노동자 여성의 형상을 확장한 강경애의 『인간 문제는 일제강점기에 쓰인 최고의 노동소설로 인정받는다. - P23
이처럼 1930년대 전반기 여성문학은 하층계급 여성, 노동자여성, 구여성의 삶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고, 개인의 각성과 계몽이 아닌 사회주의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이전 시기와 확실하게 구별된다. 사회주의자 여성, 노동자 여성의 등장과리얼리즘의 젠더적 전유는 근대 여성문학 형성기인 1930년대 전반의 문학이 남긴 뚜렷한 성과이다. - P25
1920년대 낭만주의 감상주의는 근대 시의 출발과 형성을 이룬 핵심 정조였다. 이후 우리 문학사에서 감상주의는 여성적인 것으로 정의되었고, 이 젠더화된 정의가 자리 잡은 시기가 1930년대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성의 추구와 감정의 절제를 모토로 한 1930년대 시단에서 감상성·감상주의는 주변적이고 열등한 정서로 여겨졌다. 하지만 모윤숙과노천명으로 대표되는 1930년대 여성 시인들의 시 세계를 감상주의가 아닌 다른 경로로 읽어 볼 수 있다. 가부장제 · 민족주의·식민주의에 동의하는 여성성과 주어진 젠더 체계를 허무는 시도들이 공존하고 서로 경합하는 양상을 중심으로 읽는다면 1930년대 중후반여성소설의 특성과 연결되는 지점이 보인다. - P31
1930년대는 여성문학이 식민 현실을 젠더의 시각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려 낸 시기였다. 난민이나 유민이 된 여성의 고통스러운 삶을 공감과 연대의 윤리로 포착하는가 하면 남성 중심의 가족로망스와 윤리를 내파內破했다. 남성 중심의 문학장이 여성에게 부과한 ‘여성적‘ 글쓰기라는 틀과 ‘여성성‘의 개념을 영리하게 전유해여성성, 여성적 글쓰기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해석자와 가치 부여자에 따라 유동적이고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1930년대는 ‘주의자‘ 여성부터 여성성을 연기하는 여성까지, 민족 혹은 집단의 ‘대표자‘ 여성부터 민중 여성까지, 신여성부터 구여성까지 포괄하면서 근대와 전근대, 계급과 민족 그리고 성이 착종하고 교차하는 식민 현실을 풍부하게 담아낸 여성문학 형성기로 자리매김했다. - P34
나혜석_이혼고백장
주부로서 화가 생활하고내가 출품한 작품이 특선이 되고 입상이 될 때, 씨는 나와 똑같이 기뻐해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나에게 남편 잘 둔 덕이라고 칭송이 자자하였습니다. 나는 만족하였고 기뻤었나이다. 아주위 사람 및 남편의 이해도 필요하거니와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외다. 모든 것의 출발점은 다 자아에게 있는 것이외다. 한집 살림살이를 민첩하게 해 놓고 남은 시간을 이용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외다. 나는 결코 가사를 범연히 하고 그림을 그려 온 일은 없었습니다. 내 몸에 비단옷을 입어 본 일이 없었고 일분이라도 놀아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제일 귀중한 것이 돈과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건대 내게서 가정의 행복을 가 - P92
져간 자는 내 예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 예술이 없고는 감정을 행복하게 해줄 아무것도 없었던 까닭입니다. - P93
모든 사람의 경우와 처지를 생각해 보자 그때 거기에서 자기를찾습니다. 사랑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요구하는 사람을먼저 자기로 만들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내심의 자기도 모르는 정말 자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지도 알지도 못하는 자기를 찾아내는 것이 사람 일생의 일거립니다. 즉 자아 발견이외다. 사람은 쓸데없는 격식과 세간의 체면과 반쯤 아는 학문의 속박을 많이 받습니다. 있으면 있을수록 더 가지고 싶은 것이 돈이외다. 높으면 높을수록 더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 지위외다. 가지면 가지니만치 음기로 되는 것이 학문이외다. 사람의 행복은 부를 득한 때도 아니요 이름을 얻은 때도 아니요 어떤 일에 일념이 되었을 때외다. 일념이 된 순간에 사람은 전신 세청한 행복을 깨닫습니다. 즉 예술적 기분을 깨닫는 때외다. - P122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서양에나 동경 사람쯤 하더라도 내가 정조관념이 없으면 남의 정조관념이 없는 것을 이해하고 존경합니다. 남에게 정조를 유인하는 이상 그 정조를 고수하도록 애호해 주는 것도 보통인정이 아닌가. 종종 방종한 여성이 있다면 자기가 직접 쾌락을 맛보면서 간접으로 말살시키고 저작시키는 일이 불소하외다. 이 어이한 미개명의 부도덕이냐.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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