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개관

따라서 여성문학은 ‘역사의 증언자로서 글쓰기‘와 ‘광장에 선 여성 주체의 글쓰기‘가 중심이 되는 한편 페미니즘글쓰기가 주류 담론과 교차 혹은 갈등하는 특징을 볼 수 있다. 민족문학과 페미니즘의 교차 혹은 갈등이라는 시대 변화 과정에서 여성글쓰기 주체는 어떻게 대응해 나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 P16

박완서_엄마의 말뚝 1

내가 최초로 만난 대처는 크다기보다는 눈부셨다. 빛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토담과 초가지붕에 흡수되어 부드럽고 따스함으로 변하는 빛만 보던 눈에 기와지붕과 네모난 이층집 유리창에서 박살나는 한낮의 햇빛은 무수한 화살처럼 적의(敵)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 P38

어머니가 세운 신여성이란 것의 기준이 되었던 너무 뒤떨어진 외양과 터무니없이 높은 이상과의 갈등, 점잖은 근거와 속된 허영과의 모순, 영원한 문밖 의식, 그건 아직도 나의 의식 내용이었다.그러고 보니 나의 의식은 아직도 말뚝을 가지고 있었다. 제아무리멀리 벗어난 것 같아도 말뚝이 풀어 준 새끼줄 길이일 것이다.
새로 복원된 성벽이 도로와 만나면서 끊어지는 데서 나는 성벽과 갈라섰다. 성벽은 길 건너로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갈라지면서 돌아다본 성벽은 꼭 신흥 부자집 담장 같았다. 아아, 내가 오빠한테 회초리를 맞던 허물어진 성터의 이끼 낀 돌은 지금 어디 있는 것일까? 나는 내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 ‘신여성‘이란 말을 마치 복원한 성벽처럼 옛것도 아닌 것이, 새것도 못 되는 우스꽝스럽고도 무의미한 억지라고 느꼈다. 나는 앞으로 다시는 그것을 복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지나간 것일 뿐이다. 다만 새끼줄 몇 발의 길이에지나지 않더라도 지나간 세월 역시 부정되어선 안 될 것 같았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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