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
김영우 <제가 해보니 나름 할 만합니다>
2장
공식적인 주권 회복, 즉 제국주의 지배가 끝난 이후에도(한국의 경우는 8.15 광복) 문화적·경제적 지배가 지속되는 상황을지적하고 이에 대한 각성을 주장하는 탈식민주의(후기식민주의)사상은 프란츠 파농에서 시작되었다. 스물여섯에 쓴 파농의 대표작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기존의 이론을 응용한, 파급력이 큰 저서라는 점에서 융합을 상징한다. 구조적이든 개인적이든 지배/피지배의 인간관계는 문명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파의 ‘검문‘을 피하지 않고는 지난 세기를 말할 수 없다. 식민주의 심리학의 창시자인 파농은 정신분석학과 정치경제학을결합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를 사유한남성이었지만, 동시에 그 자신의 이성애자 남성성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파농 이후 흑인 인권 운동과 탈식민주의 사상은 진전을 거듭했다. - P87
파농의 가장 큰 업적은 헤겔과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재해석하고 전복한 데 있다. 헤겔 변증법의핵심은 주인과 노예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역동적 상호 관계다. 그래서 타인을 억압하는 사람은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고 노예의 투쟁은 주인을 구원한다. 덕분에 1980년대 한국 사회는 잠시나마 ‘노동자가 투쟁으로 자본가를 해방시킨다‘는 논리가 가능했다. - P88
지금의 자본주의는 파농의 다른 고전 제목대로 우리를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로 만들었다. 우리는 착취하는 자의 언어로 말하고 그들을 더 걱정한다. - P90
분단(分) 체제의 기반은 이분법이고, 이분법은 문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논리다.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의 문해력이 낮은 근본 원인은 분단과 식민주의다. ‘건국‘ 이후 지금까지 남한 사회의 문해력은 외부의 기준에 따라 좌우됐다. 반미, 반북, 친일...... 이와 관련한 언설이 그자체로 ‘생명줄‘이거나 ‘반(反)국가‘인 사회에서 어떻게 문해력을 논하겠는가. 국가보안법은 국가가 개인에게 행사하는 폭력이라는 점에서 인간과 지식 모두를 압살해 왔다. 그러나 색깔론도 국가보안법도 여전히 활발히 작동하고 있다. - P94
산업자본주의 시기에는 몸을 써서 노동(공부)을 함으로써 사회 성원권을 인정받았다. 잘하든 못하든 간에 노동은 미덕이었다. 지금은 소비 주체의 시대다. 소비가 곧 노동이다. 온라인 공간에 오래 머물면서 포털 사이트에 자기 시간을 제공하는 소비행위(검색)가 공부가 되었다. 이 대세를 거스를 기력이 있는가. 하향 평준화는 필연이다. ‘긴 글‘이나 조금만 익숙하지 않은 문장에도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근본적으로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이 없는 셈이다. - P96
문해력은 자신의 가치관과 무지에 대한 자기 인식의 문제다. 그러므로 문해력 향상의 첫걸음은 에포케(epoche, 판단 정지)이다. ‘나는 모른다‘는 자세가 공부의 시작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해력부터 의심해야 한다. 물론 우리 몸에는 이미많은 의미들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무지하다고 가정하는 데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부가 중노동인 이유다. 잠깐의 판단 중지. 그 잠깐의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 앎은 자기 진화의 과정이지 시비를 판단하는 행위가 아니다. 지식을 하나의 고정된 정보로 여기는 이들은 타인을 ‘가르치려 들지만, 알아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들은 우리를 ‘가르친다. - P98
동무(同舞)는 독무(獨舞)가 전제되어야 한다. 운이 좋으면 아름다운 결과가 나온다. 많은 이들이 그 어감 때문에 융합이 무언가를 합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융합은 합하는 작업이 아니라 융합하는 개별적 몸들이 접속하는 상태다. 융합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각자의 가치관이 충돌하여 새로운 사유를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인과 충돌할 자기만의 몸이있어야 한다. 이처럼 도반은 믿을 만한, 편한 길동무라기보다는자극과 긴장 관계에 가깝다. - P104
그래서 앎의 궁극적 목적은 배제 없는 ‘온전함(holism)‘이다. 온전함은 경계, 선입견 없이 모든 것을수용하는 자유로운 가능성의 상태를 말한다. 그러려면 일단 우리의 온 몸을 비우는 노력, 적어도 상상이라도 자주 해야 한다. - P108
분과 학문이 아니라 가치관을 중심으로 한 분류가 융합이다. - P111
하지만 융합은 주체(사람)와 가치관의 문제이다. 1979년, 이화여대에서 출간한 《여성학》은 ‘여성의 정치 참여 형태‘ ‘경제발전과 여성의 지위‘ ‘여성 연구의 인류학적 접근‘ ‘여성 생리와 영향‘ 등 기존 학문과 ‘여성‘을 연결하고 책의 서두에는 ‘여성 해방 운동의 이념‘(정의숙) ‘여성 문제의 본질과 방향‘(윤후정) - P116
‘여성과 사회 구조‘(이효재)를 실었다. 지금 읽어도 융합의 모델로서 손색이 없는 선구적인 시도이다. - P117
공부의 기준이 다양한 사회만이 대안이다. ‘사다리‘가 하나인 것도 문제지만 그 사다리를 우리 스스로절대화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비교적 평등한 사회에서도 학력격차는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인권 침해, 취업 불평등, 인격 모독으로 연결되지 않는 문화 만들기가 훨씬 중요하다. - P123
김영우 작가의 책 《제가 해보니 나름 할 만합니다》에는 대한민국 ‘진보적 부모‘의 솔직한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자녀가세상에 대한 건강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춘, ‘그러면서도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학생이 되길 바란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아이를 다르게 키우고 싶었다. 실은 이런 마음도 욕망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알아서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부모가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은퇴자금을 사교육비로 날리지 않도록, 자녀가 스스로 알아서 공부도 잘하고 인성도 좋고 ‘부모 고마운 줄도 알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런 ‘천사‘는 많지 않다. - P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