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 결정론의 편향
생산적 노동의 협소한 개념화
약탈적인 사냥꾼/전사의 사회적 패러다임

2장 성별노동분업의 사회적 기원

관계의사회적 기원에 대한 연구는 여성해방을 위한 정치 전략의 일부이다(Reiter, 1977). 남녀의 불균형한 관계의 기원과 기능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것을 극복할 수 없다. - P119

양성 사이의 억압적 관계의 기원을 묻기 시작하면서, 지난 한 세기동안 사회과학자들이 내놓은 오래된 설명들 중 어느 하나도 마뜩한것이 없음을 곧 알게 되었다. 진화론자든, 실증주의기능주의자든, 심지어 맑스주의적 접근법이든 간에 결국은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변화의 영역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따라서 불균형한 성별노동분업의 기원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논쟁에서 흔히 사용하는 몇몇 개념에 내재한 생물학적 편향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 P120

생물학적으로 오염된 자연에 대한 개념으로 인해 신비화된 것은지배와 착취, (남성)인류의 (여성)자연에 대한 지배관계이다. 이런 지배관계는 위에서 언급한 여성에게 적용된 다른 개념들에도 내재해 있다.
노동 개념을 보자. 여성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생물학적 규정 때문에,
여성의 출산과 육아, 그리고 다른 가사노동들은 노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노동 개념은 자본주의적 조건 아래에서는 일반적으로 남성의 생산적 노동,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 P121

이런 구분이 어느 정도는 보편적인 남성의 성차별주의 때문이라고할 수는 없다. 이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결과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수단으로 직접 사용될 수 있고, 혹은 기계와 곧 연결될 수 있는 인체의 부분에만 관심이 있다. - P122

마찬가지로 애매한 생물학적 논의가 지배적 힘을 발하는 곳은 한족 개념과 관련한 부분이다. 이 개념이 유럽중심적이고 비역사적 방식으로 일반화되어 사용되면서 핵가족이 남녀관계들을 전체적으로 제도화하는 기본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구조로 제시되었다. 또한 이 개념은 이 제도의 구조가 서열이 있고 불평등한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고있기도 하다. ‘가족 내의 동반자의식 혹은 민주주의‘라는 말은 이 제도의 본색을 가리는 역할을 할 뿐이다. - P123

생명 생산은 자본축적의 조건아래 이루어지는 생산 노동을 비롯해 다른 모든 역사적 형태의 생산노동의 영원한 전제조건이다. 생명 생산은 무의식적인 ‘자연적‘ 활동이 아니라 일로 규정되어야 한다. - P125

나는 생산적 노동에 대한 이협소하고 자본주의적인 개념이 자본주의 아래의, 그리고 실재 존재했던 사회주의 아래의 여성 노동을 이해하기 힘들게 만드는 가장 막강한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 P126

남/녀의 인간적 본성은 생물학적으로 일련의 과정을 따라 전개되어 온 것이 아니다. 이는 남/녀가 자연과, 그리고 서로 상호작용하는 역사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인류는 동물이연명하는 것처럼, 그저 사는 것이 아니다. 인류는 자신들의 삶을 생산한다. 이 생산은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 - P129

이후로, 맑스는 넓은 의미에서 ‘일‘을 개념화할 때, ‘자연물을 전유‘
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연을 전유하는 것이 일이라는 의미이다. - P129

인류의 생산 혹은 출산과 관련된 것을 ‘자연적(즉, 역사와 관련 없는 과정으로, 생산수단과 노동의 발전과 관련된 것을 역사적 과정으로 구분하는 것은 맑스 이론 내에서 여성과 여성의 노동에 대한 사적유물론적 개념화가 근본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P132

여성이 출산을 하고 젖을 만들면서 자체의 자연성을 전유하는 것은남성이 자신의 몸이라는 자연을 전유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의손과머리 등이 도구를 만들고 다루는 일과 성찰을 통해 기술을 습득한다는 의미에서 마찬가지이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 활동은 일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런 활동을 단순한 생리 작용으로, 다른 포유류의 활동과 비슷한 것으로, 의식적인 인간의 영향력 밖에 놓인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여성의 해방, 여성의 인간화에 여전히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여성 몸의 생산성을 동물의 번식과 동일시하는 이런 관점은 지금도 인구학자와 인구 계획가들이 전 세계적으로 선전하면서널리 보급되고 있다. 이런 관점은 가부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노동분업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결과라고 이해해야 한다. - P138

구세대와 신세대 사회적 진화론자들의 설교와는 대조적으로,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남성 사냥꾼‘보다 ‘여성 채집자 덕분이라는 결론이, 특히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비판적 연구를 통해 입증되어왔다. 현존하는 사냥꾼과 채집자 내에서도 여성이 양식의 80%를 제공하는 반면에 남성은 사냥으로 극히 일부만 제공한다(Lee and deVore, 1976, Fisher, 1979:48에서 재인용). - P147

우리는 남성-사냥꾼 가설의 신비를 벗길 수 있고, 위대한 사냥꾼이라고 하더라도 여성이 매일 생산해내는 식량이 없었다면 생존이 불가능했을 것임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왜 여성이 채집자와초기 경작자로서의 우월한 경제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서열이 있고 착취적인 남녀관계가 수립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는지의 문제에 여전히직면해 있다.
이 문제를 이런 식으로 묻는다면, 우리는 정치권력이 경제력에서 자동적으로 나타났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의 논의를 통해보면 그런 가정은 견지될 수가 없다. 남성 지배가 남성이 우월하게 경제적 기여를 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P152

그러나 이 생산양식은 남성의 무기에 대한 독점과 동물의 재생산행위를 관찰한 것, 이 두 가지를 통해 가능해졌다. 남성이 동물의 재생산 행위를 조종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재생산 기능들을 발견했다. 이는 성별노동분업에서의 변화만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관계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사냥꾼과 달리, 목축유목민에게 여성은식량의 채집자나 생산자로서는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 - P156

은 자녀를, 특히 아들을 출산하는 의미에서 필요했다. 여성의 생산성은 이제 ‘출산‘으로 축소되었고, 이는 남성에 의해 전유되고 조정되었다(Fisher, 1979:248ff 참조).
주로 전유적인 수렵과 채집 경제와는 달리, 목축유목민의 경제는
‘생산적 경제‘이다(Sohn-Rethel). 그러나 이런 생산양식은 동물과 인간을 조종하고 영토를 확정하기 위해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 P157

그러므로 노예제는 무역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남성이 무기를독점하면서 등장한 것이다. 노예가 매매될 수 있으려면, 무기를 휘두르는 주인에게 잡혀서 전유되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 이렇게 약탈적으로 노동력을 취득하는 것은, 그것이 ‘개인적 계략을 위해서든 판매를 위해서든 간에, 이 전사-사냥꾼에게는 가장 생산적인‘ 활동으로 여겨졌다. 이 전사-사냥꾼은 여성의 생산적인 농업노동에 기초한 경제체제에서 먹고 살고 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수렵 채취자가 아니라는 점은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이들은 여성 경작자들의 ‘남편들이었다. - P158

‘식민지 시대 이전의 아프리카 사례들을 통해 보면 무기 독점에 기초한 남성의 약탈적인 생산양식은 주로 여성으로 이루어진 다른 생산경제들이 존재하고, 이들을 공격할 수 있을 때에만 생산적‘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이는 비생산적 생산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약탈, 노획, 강도질 등과 교역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보여주기도 한다. 돈(카우리 조개껍질)과 교환 혹은 거래되었던 것은공동체의 필요품 이상으로 생산된 여분의 잉여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기를이용해 훔치고 전유된 것, ‘잉여‘로 규정된 것이었다. - P160

따라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생산 능력에 대한 이전의 ‘야만적 통제형태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강화하고 일반화시킨 것이다. 교환가치 생산을 위한 대규모 노예제 혹은 강제노동은 분명한 자본주의 제도이다. 이 제도는 자본주의 세계 안에서 전근대적 단계와연동되어 있다‘(Wallerstein, 1974:88). - P165

요약하자면, 다양한 형태의 불균형하고 서열적인 노동분업은 역사를 거쳐 오늘날 전 세계가 자본축적의 엄명아래 불평등한 하나의 노동분업 시스템으로 구조화된 단계까지 와 있다. 이 불평등한 노동분업은 약탈적인 사냥꾼/전사의 사회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것이다. 사냥꾼/전사는 자신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무기를 이용해 다른 생산자의 - P171

생산력과 생산품을 전유하고 종속시킬 수 있는 이들이다.
이런 착취적이고, 쥐어짜내는, 전혀 상호적이지 않은 자연에 대한대상관계는 가장 먼저 남성과 여성, 남성과 자연 사이에서 수립되었고, 자본주의를 포함한 다른 모든 가부장적 생산양식의 모델로 남았다. 자본주의는 이를 가장 정교하고 가장 보편화된 형태로 발전시켰다. 11 이 모델의 특성은 생산과정과 생산품을 통제하는 이들 자신이 생산자가 아니라, 전유자라는 점이다. 그들의 이른바 생산성은 타자-결국은 여성 생산자의 존재와 종속을 전제로 한다. 월러스틴이말한 것처럼, •잔혹하게도, 노동력을 낳는 이들이 식량을 기르는이들을 부양하고, 이들은 다른 원료를 생산하는 이들을 부양하고, 또이들은 공업 생산에 관련된 이들을 부양한다‘(Wallerstein, 1974:86). 여기서 월러스틴이 빼놓은 것은 이들 모두가, 이 과정 전체를 결국은무기를 통해 통제하고 있는 비생산자들을 부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패러다임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은 비생산자가 다른 이들이 생산한 것을 전유하고 소비(혹은 투자)한다는 사실이다. 사냥꾼-남성은 기본적으로 생산자가 아니라, 기생자이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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