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누델만 <철학자의 거짓말>

3년 전, 프랑수아 누델만의 책 『철학자의 거짓말』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 글을 쓰면서는 더 많은 거짓말을 한다. 글로 구현된 ‘나‘는 이미 내가 아니라 나로부터 기원한, 나보다 조금 더 낫기를 바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거짓말들을 우리의 상으로 삼는다. 어쩌면 우리는, 이 철학자들처럼, 모두 거짓말을 향해 나아가는 진실한 인간들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내가 상으로 삼은 나의 어떤 측면이다. 전부가 나는 아니지만, 그 어느 곳을 떼어놓더라도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디 내가 부족한 만큼은 책이 부족하지 않기를 공들여 비는 수밖에 없다. - P9

사람들이 서로를 움켜쥐는 것이 좋았고, 따뜻한 실내에 들어온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이 좋았고, 연말의 흥성한 분위기가 좋았고, 크리스마스의 예쁜 장식이 좋았고, 눈을 밟는 소리가 좋았고, 모두들 할 일을 내년으로 미루며 반쯤은 너그러운 마음이 되는 것이, 그렇게 맞이한 새해도 그다지 부지런하지는 못한 것이 좋았다. 그 따뜻한 분위기가 내 것이 아니더라도 좋았다. 겨울에 가장 외로워하면서도 가장 사람들 속에서 산다고 느꼈다. 앙상한나무에조차 짚으로 된 옷을 둘러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린 발을 녹여가며 겨우 잠이 들 때엔 누군가가 나에게 위로를 둘러주는 것 같았다. 나는 종종 그가 겨울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 P16

그러고 나면 깨닫게 된다. 악몽에게 자기 자리를 찾아주어야만 삶은 망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 P29

이것은 배를 곯을지도 모른다는 정도의 완전한 불안이 아니기에 어느정도 기만적이지만,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걱정없이 편안하게 선택할 만한 정도의것도 아니다. 진은영의 시 「대학 시절」을 닳도록 읽으며지긋지긋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가 그리 멀리 있지는 않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불안은 익숙한 나의 집, 불안을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 P37

이것은 나쁘기만 한 변화였을까. 수전 손택의 그 유명한 말대로 사진을 찍는shoot 일은 총을 쏘는shoot 일과 같고, "누군가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범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피사체가 된 그 사람이 자신에게서 전혀본 적이 없는 모습을 보며, 자신에 대해 절대 가질 수 없는 - P56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즉 사진은 피사체가 된 사람을 상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사물로 만들어버린다. 카메라가총의 승화이듯이, 누군가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살인의승화이다. 그것도 슬프고 두려운 이 세상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살인. 어떤 의미에서 나는 타인의 삶을 내 마음대로 사각형의 모습으로 재단하는 일을 멈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내 삶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세상을 나의 시선으로 담아두고 싶다는큰 욕망보다 내 삶만을 복기하겠다는 소박한 욕망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뒷모습을 바라보며 상상한 타인의 삶은 어디까지나 나의 소망이 반영된 것은 아니었던가?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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