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le of thumb(눈대중)이 이런 뜻이었어?!!!

머리말_모든 것의 시작

1970년대 미국 사회 운동의 중요한 축이었던 발본적(拔本的), 근본적이라는 의미의 급진주의(radical) 페미니즘은 기존 페미니즘이공적 영역에 한정돼 있다고 비판하면서, 사적인 문제로 여겨지던 성과 사랑, 가족을 정치학으로 이론화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공권력의 폭력만이 ‘정치적 문제가 아니고, 소위 ‘부부 싸움‘은 대칭적인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남성 폭력의 중립적 표현이며, 여성에게는 국가보다 남성과 맺는 ‘사적‘ 관계가 정치와 권력의 근본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여성들이 당하는 폭력은 거의 파트너

프리모 레비는 평생 ‘경험한 자아‘와 ‘말하는 자아‘ 사이의 간극에 시달렸다. 홀로코스트 피해자가 그 비극을 경험하지 않은 ‘특권‘을 가진 자에게 베풀어야 하는 배려와 관용. 나는 이 부정의를 참을 수 없다. 나는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고통, 폭력, 슬픔이 연구되기 어려운 이유라고 생각한다.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고통이 언어화될 때만이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다. 내 고통이 역사의 산물이라는인식만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그런 점에서 학문이란 무엇인가, 지식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저는 오늘꽃을 받았어요
- 피해 여성이 피해 여성에게 주는 편지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제 생일도 아니었고 다른 특별한 날도 아니었답니다.
지난밤 우리는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어요.
그가 던진 수많은 잔인한 말들에 저는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하지만 지금 저는 그가 미안해하는 것도,
그리고 그가 한 말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아요.
왜냐하면 그가 오늘 제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우리의 기념일도 아니었고 다른 특별한 날도 아니었답니다.
지난밤 그는 저를 벽으로 밀어붙이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마치 악몽 같았어요.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죠.
오늘 아침 깨어났을 때 제 몸은 온통 아프고 멍투성이였어요.

하지만 지금 저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할 거라는 걸 알아요.
왜냐하면 그가 오늘 제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어머니의 날‘도 아니고 다른 특별한 날도 아니었답니다.
지난밤 그는 저를 또다시 때렸어요.
이제까지 어느 때보다 훨씬 심하게요.
만약에 그를 떠난다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제 아이들을 돌보나요? 돈은 어떻게 하고요?
저는 그가 무섭지만 그를 떠나기도 두려워요.
하지만 지금 저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할 거라는 걸 알아요.
왜냐하면 그가 오늘 제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답니다.
제 장례식 날이었거든요.
지난밤 그는 결국 저를 죽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때려서요.
만약에 그를 떠날 만큼 용기와 힘을 냈다면,
저는 아마 오늘 꽃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 이 시는 가정 폭력 생존자이자 여성운동가인 폴레트 켈리(Paulette Kelly)의 작품이며, 신혜수의 번역문을 다듬어 수정했다.

1장 ‘아내 폭력’, 가부장제의 축도

‘아내 폭력‘이 비정치적 문제라는 전제 아래, 그것이 사회적 이슈여야 하는 이유를 심각성에서 찾고 있다. 폭력 문제를 고려하는 데가장 기본적인 관심사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의 몸이 아프고 고통을 당한다는 여성 개인의 권리 침해에 대한 우려와 문제 의식은 없다. 한국 사회에서 ‘아내 폭력‘은 언제나 아내(여성)에 대한 폭력이아니라 가족에 대한 폭력으로 환원된다. 즉 한국 사회에서는 가정 폭력(domestic violence, family violence)이 원래 의미인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violence in the family)이 아니라 가정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family)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 ‘아내 폭력‘에 대한 접근 방식은 주로 ‘폭력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자‘
는 가족 유지를 근간으로 한 것이었다. - P28

이러한 시각은 같은 가정내 폭력인 아동 학대를 한 ‘인간‘의 미래를 짓밟는 행동, 노인 학대를 미래의 ‘자신‘을 학대하는 것으로접근하는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이는 대다수 가정 폭력 연구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제점인데, 아동/노인 학대는 피해자개인의 권리 침해로 이해되지만, ‘아내 폭력‘은 여성의 인권보다는가족 해체에 대한 우려가 더 우선시된다. 그래서 아동/노인 학대는사회의 즉각적인 개입이 강조되지만 ‘아내 폭력‘은 부부 간의 심리 - P29

적인 문제로 경시되면서 ‘비바람은 집안에 들어가도 법은 집안에 들어갈 수 없다‘15)는 논리가 강조된다. - P30

이처럼 가정 폭력이 왜 근절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는 가정 폭력이 왜 근절되어야 할까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일반적인 통념은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가족이 파괴되기 때문에 가정 폭력이 나쁘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조금 생각을 뒤집어보면가족은 무조건 소중하다는 생각, 혹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은 해체되면 안 된다는 가족 유지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토록 극심한 폭력으로도 (남성 중심적) 가족이 빨리 파괴되지 않는 것이 실은 더 큰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피해 여성들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폭력가정을 떠나지 못해서 가정 폭력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현재의 가족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을피해자, 가해자, 사회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한, 우리가 그토록 지 - P31

켜야 하는 가족이 과연 누구를 위한 가족인가를 새롭게 질문하지않는 한, 가정 폭력은 근절되기 힘들다. - P32

19세기 영국의 관습법 (common law)은 ‘엄지손가락 법칙(rule of thumb)‘이라고 하여 매의 굵기가 남편의 엄지보다 굵지만 않으면아내 구타는 정당하다는 원칙을 발전시켰다. 대략적으로 잰다는 뜻인 영어의 ‘rule of thumb(눈대중)‘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26)18세기 프랑스 법은 구타를 인정하되, 날카롭거나 위협적인 도구의사용은 금지하고 때리고 차거나 뒤에서 누르는 것으로 제한했다고 한다. - P35

리처드 겔즈의 연구에 따르면, 5년간 미국에서 ‘아내 폭력‘으로 사망한 여성의 수는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의 수와 비슷하며 미국의 소아마비 환자 모금 본부(March of Dimes)에 의하면 임신중 남편의 구타가 기형과 유아 사망의 주 원인이라고 보고하고 있다.36)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 기혼 여성의 5퍼센트는 ‘아내 폭력‘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호소하였다. - P38

한편, 여성의 경험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명명(naming) 작업은 여성주의자에게 딜레마를 안겨준다. 여성학에서 명명은 현상을여성의 입장에서 재구성하는 것과 정치적 지향을 동시에 포함하는(double-edged) 작업이어야 하는데, 아내 폭력 개념은 이 점에서 한계가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여성이 인간이 아니라 단지 아내로 간주되기 때문에 폭력을 당하는 현실에 대한 분석과 여성의 정체성이 더는 아내로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동시에 하고자 하는데, 아내 폭력 용어는 이러한 관점을 모두 포괄하지 못한다. 즉, 이 개 - P45

념은 아내 폭력이 아내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 제기되어야 한다는 본 연구의 입장과는 모순되는 것으로, 이 문제에 대한 여성주의 정치학의 대안적 가치를 담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위와 같은 한정적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아내폭력이 아니라 ‘아내 폭력‘으로 표기한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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