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바꾼 페미니즘 강의실> 장춘익

다큐멘터리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 제임스 볼드윈의 미완성 에세이 <리멤버 디스 하우스>

<세상과 나 사이> 타네히시 코츠

1장 갈증의 언어

우리는 매일매일
남자들의 지식은 전수되는데, 왜 여성은 처음부터 똑같은 질문을 반복할까. 나를 비롯해 여성도, 여성주의자도 젠더에 대해 알기 어렵다. 여성주의는 과정의 사유다. 왜냐하면 여성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인 사유이기 때문에 매 순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대체 누가 여성이며,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현실이 계급 문제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듯, 젠더만으로는 설명할 수없다. "여성은 구조적 피해자"는 상식이지 논쟁거리(?)가 아니다. 젠더는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남녀 간 권력관계로 ‘보이는‘ 젠더는, 여성들 간의 차이와 남성들 간의 차이를 매개로 하여 작동한다. - P43

최근 작고한 철학자 장춘익은 그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주 인용하게 된다. "오래가는 항의는 아무튼 짜증나는 거야. 내가 잘 돌보고 싶은 아이도 자꾸 울면 짜증나는데, 별로동의해주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자꾸 하면 정말 짜증이 안 나겠어? ………… 항의는 내가,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는것이고, 같은 항의가 오래 반복된다는 것은 그렇게 오랫동안 결핍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항의 기간이 길어지면 저쪽은 짜증나고 이쪽은 초라하고 비참한 거야. 네가 세상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흡수하는 것이 더 많아야 한다는 것이야.……… 페미니즘(다른 입장도 마찬가지다-필자)이 네 주장의 설득력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지식이 너의 페미니즘에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것이야. 페미니즘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지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어야 사람들이 네 페미니즘도 신뢰한단다." - P53

비밀은 없다
어느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다. 대개 그렇듯 아내‘만‘ 바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 준비 중이다. 기지개를 켜며 남편이 다가와 묻는다. "내 여권 못 봤어? 12시 비행긴데, 큰일이네."
이 경우 아내의 ‘바람직한‘ 반응은 무엇일까. "(쿨하게) 그걸 - P54

나한테 물어?" 여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격하게)아니,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 어젯밤에 말했어야지! (그랬으면 내가 찾아놨지!)" 그러자 남편은 화를 냈다. "너는 찾아주지도않을 거면서, 왜 소리부터 지르냐 맨날 이런 식이라니까." 억울한 아내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 P55

불안이 정상이다. 불안은 몸의 외부와 자신의 몸이 불일치할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이성(理性)의 반응이다. "안정돼 보인다." 나는 이 말, 이런 사람을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안정을 욕망하는 현실이 싫다. 안정만큼 계급적인 단어도 없을 것이다. 넉넉하고 아쉬움이 없고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며 사랑받고 아프지 않은 상태, 어떤 부정의에도 분노하지 않는 우아한 세계 불일치와의 투쟁이 필요 없는 삶. 이런 인생이 가능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실상 가능하지 않은 상태다. - P63

암수살인
지식인의 개념보다는 지식인에게 필요한 태도를 묻는 것이좀 더 현실적인 질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식인이나 예술가에 - P66

게 필요한 덕목은 사명감이 아니다. 윤리성 추구와 지향. 가장기본적인 윤리적 자세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지식은 공부하고 조사해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어딘가에 있어서 찾아내는 대상이 아니라 특정한 시각이 없다면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다. 시각이 지식을 드러나게 하므로 지식은 발명(making)되는 것이다. 그래서객관적인 지식이란 존재할 수 없다. 시각이 앞을 결정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우리가 끼고 있는 렌즈의색깔에 달려 있다. - P67

스톱
문제는 ‘도쿄‘와 ‘서울‘이 특정 지역(후쿠시마, 밀양, 강정………)에 위험 시설을 건설하여 끊임없이 내부 식민지를 만들어내는현실이다. 한국은 문제가 생기면, 은폐(그것도 대충), 책임자의거짓말, 손바닥으로 하늘 가림, 여론이 조용해질 때까지 방관,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기, 피해자 고립을 대책으로 삼는 나라다. 진상 규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피해자를 고사시키고 문제를 떠넘긴다. 통치 세력은 이 문제에 관한 한 대단히 발전된 메커니즘과 언어를 갖고 있다. - P78

필요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을 뜻하는 용어, ‘필요악‘. 인식과 문법 면에서 모두 틀린 표현인데 사회는 이 말을 좋아한다. 불의와 불평등을 손쉽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원전, 성매매, 누가 군대에 갈 것인가 같은 문제가 대표적인 예다. 일상에서 가장 만연한 필요악 논리는 아마 성매매일 것이다. 성매매는필요악이다? 누구의 입장에서 필요하고, 누구의 입장에서 악이란 말인가. 필요도 악도 모두 남성의 시각이다. 악은 악일 뿐이다. 사회 문화적으로 제도화하면서까지 유지해야 할 필요한악‘은 없다. - P79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미국 흑인의 현실을 유려한 언어로 서술한 작가 타네히시 코츠는 《세상과 나 사이>(2015년)에서 맬컴 엑스의 말을 인용한다. "당신이 흑인이라면, 감옥에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은 흑인이 감옥에 가기 쉽다는 얘기가 아니라, 흑인의몸은 흑인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 전체 인구에서 흑인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6퍼센트 정도지만, 미국 전체 교도소수감자들 중 흑인 남성의 비율은 40퍼센트에 달한다. 미국에서흑인 남성의 인생은 17살에 결정된다. 마약을 하거나 교도소에가거나 총에 맞아 죽거나 학교에 가거나 타네히시는 말한다. "아들아, 너는 항상 맞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바로 뒤에는 사냥개들이 쫓아오는 레이스에 던져졌어."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삶은 사냥개가 쫓아오는 처지의 연속이다. - P98

흑인은 백인과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좌석에 앉을 수 없지만, 한국의 젊은 여성은 한국 남성의 옆 좌석에 앉을 수 있다. 환영받는다. 그 대신 성추행당할 위험이 높다. 한국 사회의 ‘미투 국면‘에서 우리는 버스 안에서 행해지는 여성에 대한 다양한 폭력(몸 만지기, 남성의 자위와 사정, 몰카……)을 알게 되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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