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은 다르다. 우리는 트레이드도 없고, 자유계약을 맺어 다른 팀으로 이적하지도 않고 심지어 은퇴조차 하지 못한다. 야구팬끼리 ‘팀 세탁‘이라 부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람들도 있고, 특히 가장 애정하던 선수가 팀을 떠나 다른 팀으로 가면 그 선수 따라 팀 - P29

옮기는 게 당연하다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내 경우엔 그건 불가능했다. 야구를 끊었으면 끊었지, 팀을 바꾼다니. 야구팬 인생을 통틀어 가슴을 가장 크게 뛰게 했던 야생마 이상훈이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우리와의 경기에서 마운드에 오른 모습을 보고 잠시 멍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팀으로 갈아타지 못했다. 물론 여기에는 잠시 ‘유행‘으로 특정 팀을 좋아한다고 했다가 이내 곧사라지는 불꽃 같은 ‘야구 과객‘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끈기‘이기 때문이다. - P30

계파야구 덕후가 많아진 데는 인터넷, 모바일의 발달로 정보의 접근성이 쉬워진 상황도 한몫했다. 야구팬들은 이 도움을 바탕으로 이전보다 쉽게 ‘덕질‘을 여러 가지 형태로 진화시켰다. 끝없이 모으는 ‘수집파‘, 전국의 야구장을 순회하며 경기를 찾는 ‘직관파‘, 응원단상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렁찬 소리로 응원가를 부르는 ‘치어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필력을 뽐내며 비평과 분석을 올리는 ‘서술파‘, 데이터를 분석하고 다양한 가공 데이터의 이해를 통해 야구에 - P68

접근하는 ‘숫자파‘, 다른 팀 팬들을 도발하고 싸우는 것에서 재미를 찾는 ‘어그로파‘ 등. 많은 경우 카테고리가 겹치기도 하고 그날의 상황과 자신의 기분에 따라 캐릭터가 바뀌기도 한다. 많은 돈을 들여야 가능한 수집이나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충분해야만 가능한 전국 야구장 투어는 일상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다. - P69

그런데 모두에게 흔하지는 않은 경우들이 생겼다. 좋아하는 것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것을 음악으로 만들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좋아하는 게 있다면한껏 좋아하는 것이 좋다. 내가 이 대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두가 알 정도로 열렬히 좋아하면 더 좋아할 일들이 생긴다. 그 방식이야 자기가 좋은 방식이면 좋다. 굳이 누구를 따라할 필요도없고 누구와 비슷해지려고 해봤자 되지도 않는다. 유행이나 트렌드도 따라가봤자 얼마 지나면 구식이 되고 만다. - P73

우리가 녹음하고 올리는 내용들, 정말 별거 없는데, 그저 누군가랑 같이 얘기 나누고 서로가 ‘동료‘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엘지트윈스가 몇 년째 왕조를 이루며 여유로운 상황이었다면 - P86

물감 번지듯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 처참하게 바닥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더라도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 뭔가 될 것 같았는데 미끄러진 허탈감. 이번엔 좀 나아지겠지했던 기대감을 무너뜨리는 빌런들 야잘잘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사람들과 만나서 서로 재미와 위로를 건넸다. 이건 아주 운이좋았던 것이다. 이것만으로 충분히 즐겁고 유쾌한 상황이었지만운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 P87

스코틀랜드 출신의 밴드 트래비스는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멜로디의 명곡을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명답을 내놓았다.
"별로인 곡을 많이 만드세요."
그 이후로 어떻게든 곡을 쓰면 완성하려는 버릇이 더 강하게 생겼다.
"내가 역작은 못 만들어도 다작은 하지!"
이 신조로 많은 곡을 쓰고 있고 근래에는 많은 동요도 줄기차게 - P95

쓰는 중이다. <야잘잘>을 함께 하는 둘은 나에게 누르면 음악 나온 다며 ‘음악 자판기‘라는 별명을 붙여줬는데 나는 꽤 마음에 든다. 아주 오랫동안 이렇게 곡을 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P96

공연은 경기장 앞 공터에서 야구 경기가 펼쳐지기 한 시간 전쯤 시작되었다. 5시가 넘어가면서 조금 선선해지지 않을까 했던 우리의 기대는 매번 우승을 바라보는 엘지트윈스 팬들의 바람 같은 것이었다. 리허설과 공연을 하며 우리는 모두가 아지랑이가 되어 증발하는 체험을 했고 공연 후 나는 시구를 위해 흐느적거리며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야구장에서는 식전 행사가 한참이었다. 털이 복슬복슬한 사자탈을 쓴 마스코트들이 운동장을 돌며 팬들과 즐겁게 놀고 있었다. 나도 어깨를 풀고 대행사 직원과 캐치볼을 하며역사적인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곧 경기 시작이 임박하자 마스코트들이 내가 대기하던 곳으로 와서 탈을 벗었는데,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그때까지 내가 얼마나 엄살을 떨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뭔가 숭고한 느낌마저 들던 사자탈 안의 얼굴들, 땀이 범벅이라거나 비 오듯 쏟아진다는 말은 얼마나 부족한 표현인가. 내 좁은 언어의 범위에서는 그 광경을 표현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한껏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마운드에 올랐다. - P100

내 응원팀은 아니지만 프로야구의 시구를 했다는 기쁨은 며칠동안이나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공에 "2015. 8. 9 대구 삼성-넥센전 시구 포수 이홍련"이라 직접 적어 투명한 사인볼 보관 박스에고이 모시고 계속 쳐다보는데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그러나 악의무리들의 음해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터. 특히나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돈에 팔린 자본주의 시구" "푸른 피의 엘지팬" "신짝처럼버린 팬심" 등의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따지고보면 딱히 틀 - P102

린 말도 아니어서 조용히 잠잠해질 것을 기대했지만 그들의 공세는 날이 갈수록 강해져 급기야 나는 독립운동가를 밀고한 친일파정도의 위상에 다다랐다. 사실 대부분은 "적어도 안에 엘지트윈스셔츠라도 입었어야지! 오바마 못 봤어?"라고 다그치다가도 끝에는 "그래도 부럽네…………"로 마무리 지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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