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가족상황으로 인한 차별이 공고한 사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가족을 매개로 작동해온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중요한 토대다. 가족상황 차별 해소는 혈연·이성애 결혼 중심으로 짜인 주거와 고용 등의 체계를 재편하면서 개인의 삶에서 친밀성, 돌봄, 공동생활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며, 개인이 가족상황과 무관하게 존엄성을 인정받는 사회 토대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가족상황을 이유로 특정한 사람을 우대 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가족구성 과정, 가족구성원, 가족책임을 이유로 한 차별"을 명시하고 있고 가족 상황 차별이 비혼·성별·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장애·빈곤 등 다른 차별 사유와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문제로 보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 전반의 평등을 요청하는 과정이며 다양한 가족구성권에 대한 요구와분리되지 않는다. 주거, 고용, 의료 등에서 성차별과 소수자 차별의 관행이 해소되지 않으면 관계에 대한 권리 자체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관계권과 교차될 수밖에 없다. 2007년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이 매번 무산되는 것은 비단 반동성애단체의 훼방 때문이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여전히 공고한 이성애 가부장적 ‘정상가족‘의 신화에 집착하고 있으며 인권이 아니라 차별의 편에 서 있음을 드러낸다. - P188

1994년 유엔 인구개발국제회의ICPD에서 처음으로 ‘재생산 권리‘라는 용어가 채택되어 "부부 및 개인이 언제, 얼마나 자녀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서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결정하고, 이를 위한 정보와 수단,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최고의 건강수준을 유지할 권리"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후 재생산 건강은 성적 건강의 이슈와 함께 논의되어야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 연속적인 권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국제보건기구 WHO에서 정의한 바에 따르면, 성적 건강은 "섹슈얼리티와 관련되는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 안녕 상태"다. - P194

때로 퀴어성은 인권의 문제를 넘어선 대중문화와 상품화의 자원으로사용되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2000년대 들어서면서 ‘퀴어‘는 금기의 영역이 아닌 세련된 문화적 코드나 취향, 개방성,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탐색 같은 긍정적인 의미로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 때문에퀴어 이슈가 백인 중심, 중산층 중심, 소비주의, 쾌락주의, 섹스 중심주의등과 관련된 과잉 취향의 상징으로 소비될 뿐 정작 성소수자가 매일 일상에서 부딪히는 모욕, 위협, 해고, 따돌림, 자살시도 같은 생존 위협에서 멀어진다는 비판 또한 제기된다. 이처럼 퀴어운동의 당사자는 누구이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의 문제는 종종 이미 익숙해진 퀴어 소비‘의 의미체계 내에서 늘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 P205

에델만이 말하는 퀴어정치의 힘은 재생산적 미래주의가 장악하고 있는 사회적 장 바깥에서 그 장을 거부하고 "그래, 우리 미래가 없어" 라고선언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오히려 거기서 새로운 평등정치의 가능성을발견하는 데 있다. 즉 퀴어정치는 결혼제도의 규범에 안착하기보다는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확장해 누구라도 사회적 장에서 배제되거나 위계화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가족의 전제조건으로 간주되는 ‘혼인‘ 제도로부터 가족을 분리해내면서 정상가족 프레임을 탈중심화하여 가족의 개념 자체를 확장해낼 필요가 있다. 이는 동반자성, 대안가족성, 선택 가족성의 의미를 확장해내고 이에 걸맞은 시민적 권리를 확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 P214

성소수자와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각자의 타자성을 내재하고 있다. 낙인된 타자로 규정당해온 억압의 역사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대표‘ 하면서 인간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존의 삶을 추구하는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의 인권을 신장하는 길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모든 이의 동등한 사회참여를 통해 권리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임을 일깨운다. 인류의 많은 문화권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긍정하고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해왔던 것을 이어받아 퀴어운동이 현대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길이라는 점을 인식하자.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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