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게는 칼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칼자루를, 여자‘는 칼날을 쥐고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대화를 시도할수록 우리는 피를 흘릴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패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역사를 채우겠습니까. - 나혜석 - P9

타자화(他者化)란 "나는 그들과 다르고 그 차이는 내가 규정한다."는, 이른바 ‘조물주 의식‘이다. 이러한 자기 신격화는 민주주의와 예술의 적이다. 윤리적인 글의 핵심은 다루고자 하는 존재(소재)를 타자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남을 억압하는 사람은 자신을 해방하지 못한다. 실천적이고 진보적인 글은 ‘불쌍한 이’들에 대한 리포트가 아니라 글쓰기 과정에서 재현 주체와 재현 대상의 권력 관계를 규명하고, 다른 관계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 P15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쓰려면, 나부터 ‘나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과정은 나의 세계관, 인간관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검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 P16

오늘날 미디어 권력이 일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미디어가 전달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메시지이며, 몸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 P34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최대의 선이 아니라 최소의 잘못이다. - P51

한채윤은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가 신앙 때문이 아니라 이익 집단의 필요에 따른 절박한 정치적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 P68

즉, 개신교가 동성애의 ‘해악‘을 진정 걱정했다면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성장할 때부터 반대했어야 맞다. 관심이 없다가 자신의 문제를 전가할 대상을 찾은 것이다. 동성애는 발견되었다. 동성애 이미지는 사회 통념에 호소하기 쉬운 데다, ‘적‘이 강력할수록 명분도 강해진다. 동성애는 훌륭한 적‘으로 만들어졌다. 적의 구성 원리는 비슷하다. ‘적‘은 내부 비리를 은폐하고 결속시킨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해야 한다. 개신교는 동성애자를 ‘좋아하고’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 P69

글쓰기는 다른 삶을 지어내는 노동이다. - P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