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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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됨이다. 그건 그냥 씨발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씨발됨의 상태다. 앨리시어와 그 동생이 그 씨발됨에 노출된다.˝ 세상에, <씨발>이라니. 하지만 <씨발> 이외에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난쏘공>의 시대와 지금 우리 시대와의 괴리일까.. 바뀐게 별로 없지만 또 많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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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로서의 인류학자 - 레비스트로스, 에번스프리처드, 말리노프스키, 베네딕트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 7
클리퍼드 기어츠 지음, 김병화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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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사회과학과 인문학은 어떤 차이가 있나 궁금할 때가 있었다.. 어차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동일한 것이 아니냐고.. 그런데 왜 인문대학과 사회과학대학은 분리되어 있는 것일까..

<융합>이 대세라고들 하지만, 여전히 이들 사이의 관계는 좋지 않은 편이다.. 인문학은 사회과학이 뻔한 것에 힘들 들인다고, 즉 이미 결론이 나와 있는데도 그걸 밝히기 위해 과학적 방법을 들이대는 짜고치는 고스톱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사회과학은 인문학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단적으로 사회과학자에게 당신의 사유는 매우 인문학적이군요 라고 한다거나, 혹은 인문학자에게 당신의 글은 과학적이군요 라고 말하면 그건 칭찬일까, 아니면 욕일까..

 

물론 일반인들에게 이런 싸움은 너무나 시시한, 혹은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동안 내겐 이 문제가 꽤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철 모르던 시절, 나는 <인류학>이라는 학문을 <아주 우연히>(강조) 전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인류학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경계에 있는 학문이라느니, 양자를 접합하는 학문이라느니 하며 자화자찬하는 경우가 있지만(인류학이 과로 설치된 대학을 보더라도, 어느 곳은 사회과학대학에, 또 어느 곳은 인문대학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어디에 속해 있다는 것이 그 인류학과의 풍토가 더 인문학적이냐, 혹은 사회과학적이냐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실제로 인류학은 사회과학 내에서는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또 인문학에서는 (문사철에 비해) 전통이 얕다는 이유로 이래저래 따돌림 당하기 일쑤였다.. 물론 그 때문에 소수학문인 인류학은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더욱 과학적이고 싶었고, 그래서 더욱 <과학>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화라는 것이 인간의 삶과 관련된 복합총체라고 한다면, 그리고 인류학이 인간의 제도만이 아닌,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인류학이 과연 인문학임을 포기할 수 있을까.. 

 

기어츠의 <저자로서의 인류학자>를, 그리고 또 베네딕트의 글 <인류학과 인문학>을 읽으면서, 이런 글들이 조금 더 빨리 번역되었더라면, 한동안 떠안고 있었던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는 나름의 길들을 보다 빨리 찾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적 성향의 보수성 때문에 기어츠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 관계 없이현재의 인류학이 처한 곤경에 대한 그의 진단은 너무나 적확하다..

민족지가 <세계를 종이에 담아내는 글쓰기>의 일종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검토가 가로막혀 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1)민족지란 실용적 형태의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문학적 문제만 궁리해서는 안 된다는 편견, 2)섬세한 관심을 기울일만큼 가치 있는 인류학 문헌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한계, 쉽게 말해서 (아쉽지만)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인류학에는 플로베르도 콘래드도 발자크도 없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3)지식이 전개되는 방식에 관심을 쏟다 보면 어떤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능력이 약화된다는 <믿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은 진단에 비해, 그가 풀어내는 본문의 이야기가, 자신의 섬세하고 유려한 이전의 저작들에 비해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다는 것.. 기어츠는 자신이 선정한 네 명의 인류학의 거장들에 대한 일종의 텍스트 비평을 시도하고 있는 듯한데, 바르트-푸코로 이어지는 <저자> 논의를 (아쉽게도) 아주 거칠게 건너 뛰면서, 그들을 하나의 정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으로 끝내고 만다.. 뭐, 거기까지 기어츠에게 바란 것은 아니었으니, 그닥 아쉬움은 없지만, 그래도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경계에 있는 학문으로서 인류학의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가 퇴색되지 않을까 그게 오히려 문제다..

 

자신이 이미 시인이었던 베네딕트는 그 문제에 대해 훨씬 이전부터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더구나 <과학주의의 화신>이라 불렸던, 자신의 존경하는 스승 <파파 보아스> 밑에서 (서로) 눈치를 보면서(이 역시 중요하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눈치를 볼 수 있는 풍토.. 아마 초기 인류학의 진정성은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인문학적 관심을 어떻게든 인류학과 접목시키려 했기에, 그녀의 고민은 더욱 컸을 것이다.. 당시 미국 사회과학계의 풍토에서는 불모에 가까운 여성 학자로서, 많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그녀가 이뤄낸 성과들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값진 것이다.. 그런 그녀가 미국 인류학회 회장직을 퇴임하면서 <인류학과 인문학>이라는 이름의 강연을 했던 것은 그런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과학자는 동물들에 관해 더 큰 일반화의 이론을 제시할 수 있다. 동물들은 학습하고 발명하는 특별한 기능을 갖고 있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생활방식, 즉 문화를 창조하는 종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의 질서를 벗어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연의 진화에 의해 인간은 상황과 본능의 동물에서 더욱 나아가 창조와 발명의 존재가 되었다.

... 인문학은 사회과학이 뻔한 것에 힘을 들이고, 또 무미건조하다고 비판한다. 사회과학은 인문학이 너무 주관적이라고 비판한다. 인류학자는 뻔한 것에 힘을 들인다는 비난이나 주관적이라는 비난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인류학자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60여년이 흐른 지금, 인류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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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 - 인류학의 휴머니스트
마거릿 미드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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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계가 낳은 가장 걸출한 두 명의 여성, 미드가 쓴 베네딕트 평전이라는 점에서도 일독의 가치가 있다. <과학>이기를 고집하면서 상아탑으로 도피해버린, 소수의 동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읽지 않는 글들을 쓰고 있는 지금의 (인류)학자들에게 왜 <학>이 위기에 처해있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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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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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문화사판을 가지고 있으니 군침만 흘릴 뿐. 선뜻 구매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다. 세이초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전, 언젠가 한 블로그에 한국에 세이초붐이 일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예측을 했다. 워낙 전후 일본의 문제적 인간이라서. 하지만 펠레도 아니고 예측은 항상 빗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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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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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월 20일 규슈의 한 바닷가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 남녀의 시체가 발견된다.. 소위 情死다. 죽은 남자는 당시 비리로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하던 한 관청의 실무대리. 직급은 낮지만 사실상의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이었기 때문에 경시청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여자는 도쿄의 한 요리집의 여급..
사건이 일어나기 6일 전인 1월 14일 18시 그들의 규슈행이 도쿄역의 플랫폼에서 목격자들에 의해 목격된다. 도쿄발 하카다행 야간기차인 아사카제에 두 사람이 사이좋게 올라타는 것을 그 요리집의 단골인 한 남자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그를 배웅하기 위해 나온 같은 요리집의 여급들이 목격한 것이다.. 목격자들이 있었던 곳은 13번 플랫폼, 그리고 두 사람이 승차한 아사카제가 정차해 있던 것은 15번 플랫폼..

너무나 통속적인 정사, 그리고 그들을 목격한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사건은 자살로 거의 굳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건을 담당한 규슈의 한 시골 베테랑 형사의 한 마디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평일 저녁 6시처럼 혼잡한 시간대에 과연 13번 플랫폼에서 15번 플랫폼의 기차를 볼 수 있는가.. 기차시간표를 검색해보니, 그 시간대에 13번 플랫폼에서 15번 플랫폼의 기차를 볼 수 있는 것은, 즉 13번 철로와 14번 철로에 기차가 들어서지 않은 시간은 고작 4분.. 우연 치고는 너무나 절묘하지 않은가..

수사망은 14일의 현장을 목격한 인물로 좁혀진다.. 죽은 남자가 근무하는 관공서의 납품을 담당하는 회사의 사장, 그리고 비리 주범으로 지목되는 관공서의 장과는 개인적인 친분까지 있다(최근 마쓰모토 탄생 100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드라마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전전 중국전선에서 함께 생사를 나눈 상관/부하의 관계로 그려지고 있다.. 1957년의 일본, 사회파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마쓰모토의 작품에는 지난 전쟁의 흔적이 강하게 묻어나온다.. 예를 들어 마쓰모토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주인공 중의 하나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항상 범죄의 대상, 혹은 범인이 되기 쉬운 '전쟁미망인'이다). 문제는 알리바이다..

두 사람의 사망시각은 대략 1월 20일 20-21시경.. 하지만 용의자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었다.. 이 시각 용의자는 도쿄에서 출발하는 야간기차를 타고 일본의 최북단인 홋카이도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21일 오후 하코다테와 삿포로 사이의 오타루 부근에서 기차에 그가 타고 있었다는 제 3자의 증언과 21일 20시 40분 경 삿포로역에서 그를 만났다는 신뢰할 수 있는 증언까지 있다.. 알리바이는 그야말로 완벽하다.. 적어도 20일 저녁 용의자가 일본 본토의 최남단인 후쿠오카에 있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간단히 정리해보자..

1. 20 저녁 8-9시 후쿠오카의 한 바닷가에서 남녀가 청산가리를 먹음(21일 오전 발견).
1.20 우에노발 급행 '도와다'로 21일 아침 아오모리 착.
1.21 아침 9시 50분 연락선(아오모리-하코다테)으로 하코다테 착. 연이어 하코다테발 급행 '마리모'로 20시 34분 삿포로 착.

이 작품의 묘미는 시행착오를 거듭해가면서 이상의 철벽같은 알리바이를 하나둘씩 깨트려가는데 있다.. 거기에는 독자들을 몰입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새 수첩을 꺼내어 기차 시간표를 끄적거리면서 시간을 계산하게 되는 것이다..
열차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추리소설에서 열차는 단골처럼 등장하는 무대이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떠올려보라.. 특히 기차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거의 예외없이 시간표대로 해당장소를 달린다는 점에서, 가장 결정적인 알리바이의 소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나 결정적이라는 믿음이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도 한다.. 전 열도가 거미줄처럼 엮어진 일본의 철도망에서는 때로 애매한 공백들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미묘한 4분의 공백이나, 상행선과 하행선의 교차 시간.. 혹은..


지금도 매달 발매되는 무려 천 여페이지에 달하는 <JR시간표>에는 (야간열차를 포함하여) 24시간 동안 일본 각지를 달리는 열차들의 타임 스케줄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가히 숫자들과 역이름으로 채워지는 풍경이다..개인적인 체험으로 보더라도 일본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때는 그 거미줄 같은 철도망을 확인하면서, 여행일정에 맞춰 기차시간표를 짜는 것이었다.. 현재 지점에서 목적지까지는 어떻게 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까.. 특급을 탈까, 아니면 보통을..그리고 중간에 열차를 갈아타는 지점에서는 바로 이어지는 열차를 탈 것인가, 아니면 내려서 1-2시간 주위를 돌아볼까.. 상행과 하행은 다른 노선(철로)을 이용해볼까.. 등등..

여기에는 철도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혹은 메타포)으로 존재하는 일본 사회의 특수성도 깔려 있다.. 60년대 미국 중심의 경제개발계획으로 철도보다는 고속도로 건설에 주력한 한국에서 철도는 도로의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거미줄같은 도로망을 철도가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오르한 파묵의 터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이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식민지 시기를 제외하고는 소설에서 철도(혹은 기차)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근대 초기부터 철도 건설에 주력한 일본에서 철도는 근대의 상징으로서, 지금까지도 가장 친근한 운송수단이며, 그래서인지 (식민지 시기를 제외하고는 철도(혹은 기차)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그다지 없는 한국과 비교해보더라도) 철도는 문학작품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이다.. 일본의 국민소설가인 나츠메 소세키의 대표작인 <산시로>의 도입이 구마모토에서 도쿄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도 흥미롭다.. 그리고 일본의 철도사업은 계속 이어져, 그렇게 넓지 않은 면적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본의 총 철로 길이는 아마 세계에서 다섯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이다(한 때, 근대화의 기준을 국토의 총 철로 길이로 계산하던 시절이 있었다.. 홉스봄의 책에 나왔던가).

또한 1970년 일본 고도성장의 정점에서 치러진 전국적인 축제였던 오사카 만국박람회(줄여 만박)에 맞춰, 도쿄와 오사카를 3시간에 주파하는 돗카이도 신칸센이 처음 운행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리고 그 철도에 몸을 싣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사카 만박을 찾아왔다.. 공식방문자수만 해도 6천 4백만.. 일본 인구의 거의 절반이 오사카에 왔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만박에 의해 정비된 철도 인프라와 관광산업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Discover Japan>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말 그대로 일본의 숨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찾아다니자는 캠페인인데, 이 때부터 일본인들이 철도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의 오지들을 여행하러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볼프강 시벨부시가 이야기한 근대 철도여행의 역사(특히 파노라마로서의 차창의 발견)가 그 정점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점과 선>을 읽으면서, 사건의 열쇠이기도 한 기차시간표를 수첩에 써내려가노라니, 예전 일본 여행을 다니면서 기차 시간표를 보며 일정을 짜던 기억이 떠올라 괜시리 즐거워졌다.. 다시 한 번 옛날로 돌아가 묵직한 기차시간표를 들고 일본 열도를 한 번 돌아다녀볼 수는 없을까.. 뭐 <어떤 그리움>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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