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비하면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

하긴 히로시마나 나가사키가 유명해진 것은 원폭이라는 새로운 기술 탓이다..

그보다 훨씬 커다란 피해가 도쿄나 오사카의 대공습, 그리고 이전 일본의 충칭 폭격과 같은 일련의 공습에 의해 일어났지만, 커다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재래식무기에 의한 참사이기 때문이다..

과연 뭐 그런거지 라고 말해도 되나..

 

작가는 독일군의 포로가 된 미군 병사로 드레스덴 폭격을 겪었다.. 특이한 체험이다.. 아마 공격을 주도했던 연합군 측에서도 그들이 드레스덴에 있으리라고는 거의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정부자산(GI)이니까.. 더 큰 대의를 위해 정부 자산이 조금 파괴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항상 그래왔으니까..

 

예전 제발트는 당대 드레스덴이나 함부르크 등, 독일이 겪었던 공습 체험에 대한 기억상실증에 가까운 철저한 무감각을 '고발'/비판한 적이 있다.. 아주 극소수의 문학작품에 '재현'된 폭격의 체험은 말 그대로 불지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까지 치솟는 불기둥의 도시 안에서 타거나, 익거나, 혹은 질식되어 죽었다.. 그리고 공습 이후의 풍경, 문명이 차단해왔다고 생각해온 여러 이질적인 생물들에 의해 도시가 잠식되는 풍경은 몸서리쳐지는 것이었다..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은 그 풍경들을 보았고, 또 그 풍경들을 애써 기억에서 지워가며 전후를 살아왔을 것이다..

 

드레스덴의 미군병사는 폭격 이틀 후, 그 도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군이 준비해둔 휴양지에서 말 그대로 살이 포동포동 찔 때까지 푹 쉬었다가 미국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물론 그들 역시 PTSD나 악몽에 시달렸겠지만, 그래도 복귀는 순조로웠던 것 같다..  이후의 베트남전과 같이 이들 복귀한 병사들에 대한 냉담한 시선도 없었던, "좋았던 시절"이다..

 

이 작품에 선뜻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은 역시, 그런 선택받은 미국인이 그려낸 전쟁, 그리고 전후의 삶이 주는 위화감이었다.. 폐허의 지옥을 살아내야 했던, 좀비들이 우글거리고,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온갖 다양한 이질적 생명체들이 시체들 사이를 기어다니는 세계를 살아야했던 사람들이 과연 그 시대에 대해 "뭐 그런거지"라고 내뱉을 수 있을까.. 풍자와 블랙유머 역시 선택받은 자가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닌가..

 

폭격의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구절..

 

"그럴 수밖에 없었소." 럼포드가 빌리에게 말했다. 드레스덴 파괴 이야기였다.

"압니다." 빌리가 말했다.

"그게 전쟁이오."

"압니다. 나는 불평을 하는 게 아닙니다."

"지상은 틀림없이 지옥이었겠지."

"그랬습니다." 빌리 필그램이 말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시오."

"그러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착잡할 수밖에 없었겠지, 거기 지상에서는 말이오."

"괜찮았습니다." 빌리가 말했다. "다 괜찮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나는 그걸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 어스 - 홀로코스트, 역사이자 경고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존의 역사서들에 비해 독일과 소련 사이의 끼인 지대, 즉 이중점령지대에서 일어났던 학살의 메커니즘을 다중초점이라는 틀로 정치하게 분석했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지닌 책이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사례의 나열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아쉬움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됨‘, ‘성원권‘에 대한 슬픈, 하지만 깊은 성찰. <헤일셤>이라는 상상의,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을 만들어냄으로써 작가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가장 치명적인 윤리적 딜레마를 건드리고 있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회계약론 정치+철학 총서 1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영욱 옮김 / 후마니타스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집에 두 종류의 번역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번역본이라면 다시 구매할 수밖에..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영욱 2018-08-23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ㅎㅎ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 베를린 연대기 발터 벤야민 선집 3
발터 벤야민 지음, 윤미애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어젯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를 다시 읽다가, 벤야민의 꼽추 난쟁이에 관한 구절이 너무 인상 깊어, 오래 전 읽었던 이 책을 다시 꺼내 꼽추 난쟁이 부분을 들추어본다..

 

예전에는 그냥 휙하고 지나갔던 대목이었는데 다시 읽노라니 1930년대라는 가히 수상한 시대에 파괴되어버린 자신의 유년시절의 정경을 회상하는 벤야민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아프다.. 물론 그건 미세먼지도 없었고, 학원도 없었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아연해지는,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르겠다..

 

나와 오늘 꼽추 난쟁이가 쳐다보면 사람들은 주의력을 잃는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꼽추 난쟁이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산산조각 난 물건 앞에 당황해하며 서 있다. "내가 부엌에 가려고 하면 / 나의 수프를 끓이려고 하면 / 꼽추 난쟁이가 거기 있어 / 나의 냄비를 깨뜨렸다네.
" 그가 나타나면 나는 헛수고를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정원은 작은 정원이 되고, 벤치는 작은 벤치가 되고, 방은 작은 방이 되면서 이윽고 모든 사물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나는 헛수고를 했다. 모든 사물은 오그라들었다. 마치 그들에게 혹이 생겨 아주 오랫동안 난쟁이의 세계에 동화라도 된 것처럼. 난쟁이는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라도 나타나 선수를 쳤다. 내 앞을 가로막으면서 선수를 쳤다. 그러나 우중충한 관리인이 하는 일이란, 내가 사물에 다가갈 때마다 망각의 창고에 저장하기 위해 거기서 절반을 회수해가는 일뿐이다.


사람들은 임종을 앞둔 사람의눈에는 '전 생애'가 스쳐 지나간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바로 꼽추 난쟁이가 우리들 모두에 대해서 간직하고 있는 상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상들은 영사기의전신이었던 저 팽팽히 묶은 그림책의 책장들처럼 쏜살같이 지나쳐버린다. 그 그림책의 가장자리 단면을 따라 엄지손가락을 살짝만 움직이면 몇 초 사이에 아주 조금씩 다른 상들이 나타났다. 순간적으로 지나치는 상들이 경기 중인 권투선수를 보여주기도, 파도와 싸우는 수영선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꼽추 난쟁이도 나에 대한 상들을 간직하고 있다. .. 이제 그는 그의 일을 마쳤다. 그러나 가스 심지의 타들어가는 소리처럼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시대의 문턱을 넘어 내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다. "사랑하는 아이야, 아, 부탁이다, /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주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