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 베를린 연대기 발터 벤야민 선집 3
발터 벤야민 지음, 윤미애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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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를 다시 읽다가, 벤야민의 꼽추 난쟁이에 관한 구절이 너무 인상 깊어, 오래 전 읽었던 이 책을 다시 꺼내 꼽추 난쟁이 부분을 들추어본다..

 

예전에는 그냥 휙하고 지나갔던 대목이었는데 다시 읽노라니 1930년대라는 가히 수상한 시대에 파괴되어버린 자신의 유년시절의 정경을 회상하는 벤야민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아프다.. 물론 그건 미세먼지도 없었고, 학원도 없었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아연해지는,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르겠다..

 

나와 오늘 꼽추 난쟁이가 쳐다보면 사람들은 주의력을 잃는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꼽추 난쟁이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산산조각 난 물건 앞에 당황해하며 서 있다. "내가 부엌에 가려고 하면 / 나의 수프를 끓이려고 하면 / 꼽추 난쟁이가 거기 있어 / 나의 냄비를 깨뜨렸다네.
" 그가 나타나면 나는 헛수고를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정원은 작은 정원이 되고, 벤치는 작은 벤치가 되고, 방은 작은 방이 되면서 이윽고 모든 사물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나는 헛수고를 했다. 모든 사물은 오그라들었다. 마치 그들에게 혹이 생겨 아주 오랫동안 난쟁이의 세계에 동화라도 된 것처럼. 난쟁이는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라도 나타나 선수를 쳤다. 내 앞을 가로막으면서 선수를 쳤다. 그러나 우중충한 관리인이 하는 일이란, 내가 사물에 다가갈 때마다 망각의 창고에 저장하기 위해 거기서 절반을 회수해가는 일뿐이다.


사람들은 임종을 앞둔 사람의눈에는 '전 생애'가 스쳐 지나간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바로 꼽추 난쟁이가 우리들 모두에 대해서 간직하고 있는 상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상들은 영사기의전신이었던 저 팽팽히 묶은 그림책의 책장들처럼 쏜살같이 지나쳐버린다. 그 그림책의 가장자리 단면을 따라 엄지손가락을 살짝만 움직이면 몇 초 사이에 아주 조금씩 다른 상들이 나타났다. 순간적으로 지나치는 상들이 경기 중인 권투선수를 보여주기도, 파도와 싸우는 수영선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꼽추 난쟁이도 나에 대한 상들을 간직하고 있다. .. 이제 그는 그의 일을 마쳤다. 그러나 가스 심지의 타들어가는 소리처럼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시대의 문턱을 넘어 내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다. "사랑하는 아이야, 아, 부탁이다, /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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