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기원 1 - 해방과 분단체제의 출현 1945~1947 현대의 고전 16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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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세 권의 번역본을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봤다..

하나는 86년판 청사출판사 본, 또 다른 하나 역시 86년판(하지만 내 책은 2008년판 12쇄) 일월서각 본,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올해 나온 2023년판 글항아리 본이다. 

세계명작을 제외하고, 사회과학 서적에 세 권의 번역본이 있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라고 쓰려는데, 갑자기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떠올랐다.. 역시 세 권이다)..

90년대 말, 어느 여름에 내가 읽었던 판본은 86년판 청사 본이었다. 헌책방의 서가를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구입한 책. 그 때도 이미 이 책은 충분히 낡아 있었다.. 아직 <해방 3년사/8년사>라는 테제가 대학가에는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 책이 세미나 커리로 사용되는 걸 본 적은 거의 없다. 대개 그 당시에 읽었던 책은 <다현사>나 아니면 <청년사>였으니까.. 이 책은 이미 그 시절에도 대개는 다 아는, 하지만 같이 읽지는 않는, 그런 책이었다. <다현사>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내게 이 책은 사회과학적인 의미에서의 절제, 혹은 균형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열정이 전해지는 텍스트로 기억된다. 꽤 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다.  

일월서각본 역시 마찬가지로 그로부터 한참 후 어떤 헌책방에서 우연히 구입한 것 같은데, 이 책은 한 두 챕터를 훑어보긴 했지만, 완독하지 않았다. 같은 해 번역출판되었는데, 결국 일월서각판만 살아남았다. 물론 일시적인 지속이었고, 얼마 후 현세의 삶을 다하였지만.. 그래도 12판까지 낼 수 있었던 것은 번역이 더 좋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출판사의 힘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번역에서 커다란 차이는 느끼지 못했으니까.. 일월서각은 여전히 의문스러운(일본어의 不思議라는 표현이 적절한데) 출판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산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렸다. 

그리고 올해 알라딘에서 대대적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한다는 광고를 보고, 출판되자마자 이 책도 구입해버렸다. 더구나 이번엔 지금까지 소문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2권까지(2권의 한 두 챕터는 예전에 창비에 번역 소개된 적이 있지만, 전권이 번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 영어판과 일본어판까지 구입했는데, 읽지 못했다). 그러고보니 10여년 전에 어느 술자리에서 한 서울 사립대 역사학과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다, 뜬금없이 이 책 2권의 번역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전쟁의 기원> 2권은 언제 번역되나요?

에? 번역이 안 되었나요?

네. 역비에서 영문판은 출간됐지만, 번역은 아직.. 모르셨나요? 

글쎄요. 전혀 몰랐네요..

네. 그런데 왜 번역이 안 되는 것일까요?


이 분은 조선 시대 전공이라, 현대사에 대해 묻는 것 자체가 실례이긴 했지만, 뭐 그래도 이 땅에서 역사학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현대사, 그리고 이 책의 소재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근거 없는 전제를 깔고 취기에 기대어 던진 물음이긴 했지만.. 정말 궁금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현대사에 대한 그 지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왜 정작 한국에서 2권은 번역이 안 되는 걸까..


그러던 어느날, 글항아리에서 1-2권 전권이 번역출간된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고, 감회가 새로웠다. 아마 두 종류의 번역본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새로운 번역본을 선뜻 구입한 것 역시(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그 기쁨이라는 감정이 불러일으킨 비합리적 충동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구입 후 대개의 책들의 운명이 그렇듯이 바로 서가의 깊숙한 곳으로 향하지 않고 책상 근처에 놓여 있다가 이틀 전 손에 걸리게 것은 역시 '우연히' 듣게 된 <정전협정> 체결 70주년 뉴스 때문이었다..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정전협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70주년이니까.. 이 책을 읽는 것으로 내 나름의 방식으로 기념해볼까. 홉스봄 선생님이 <제국의 시대> 어딘가에서 <-주년>이라는 방식의 기억/기념은 근대적인 현상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러고보면 이런 방식의 책읽기도 굉장히 근대적인 것이다(나는 <마들렌>이라는 기표를 나름 좋아한다).   


그런 연유로 이틀 전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초중반부분부터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책 출간 이후 50여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이 책 역시 비켜가기는 어려우리라.. 냉전체제, 더구나 군부 독재 시절의 암운이 남아 있던 시절, 거침없이 미국과 한국 친미보수주의자들의 선조들(반일을 반공으로 바꾸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던 '보신'의 달인들)에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던 저자의 문체도, 많은 후속연구들, 그리고 사회운동과 민주화를 통해 이제는 한국현대사에서 나름 당연한 '상식'이 되어버렸다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물론 그 <상식>을 다시금 뒤집으려는 세력이 여전히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한국 사회의 역동성일 수 있겠지만). 아마 이 책이 출간되던 당시 가장 논란이 되었던 대목은 이 책의 2부 1945-1947년 중앙의 정치상황일 것이다. 

루스벨트 사후 미국 정치의 두 파벌인 국제주의와 군부로 대표되는 일국점령파의 대립이 결국 후자의 승리로 귀결되는 가운데, 남한으로 들어온 미군정의 거듭되는 뼈아픈 실책(실책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한민당과 미군정의 영합, 그리고 신탁통치 여론의 혼란을 틈타 결국 주도권을 확보하면서 단독정부 수립으로 향해가는 양자의 움직임, 그리고 대중의 압도적 지지라는 정치적 여론의 힘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이러한 반동적 정치세력들의 공세에 주도권을 뺏긴 채 점차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가는 건준, 인공까지.. 이런 이야기들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또 남침설 vs. 북침설을 둘러싼 논쟁 역시 이 책의 1권을 읽다보니 그닥 중요한 논쟁은 아닌 것 같다.  


아.. 하지만.. 괄목상대刮目相對.. 라고 했던가..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눈에 다시금 힘을 주기 시작하기 시작한 것은.. 한낮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어스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저녁 무렵.. 이 책의 3부 <1945-1947년 지방에서 발생한 한국인과 미군의 충돌>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저녁 7시경부터 정확히 밤 11시 55분까지, 5시간은 근래에 보기 드문 몰입도를 보여준 시간이었다.. 아마 지금 이렇게 오전에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어젯밤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학의 연구대상인 전통적인 마을/촌락은 대개 자급자족적이고 안정적이며 조화로운 공동체를 연상하기 마련이다.. 인류학자들은 그러한 마을에 들어가서, 사회를 연구한다. 하지만 그러한 이상형으로서의 <마을>은 과연 존재하는가? 아니, 마을이라는 연구단위야말로 안정과 통제를 본원으로 하는 사회과학의 산물이 아닐까.. 과연 마을에서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들은 마을이라는 연구단위가 갖는 이데올로기를 의식해 왔을까.. 

어쩌면 학사가 갖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는 이런 의문들을 품고 있던 시절에, 떠올렸던 책들이 그레고리 헨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그리고 커밍스의 이 책 <한국전쟁의 기원>이었다. 아마 1940년대 후반이라는 남한의 정치적 현장을 동시대에 관찰했던 헨더슨의 통찰력이 <소용돌이vortex>라는 굉장히 논쟁적이지만 중요한 개념을 만들어냈으리라 여겨지지만, 이 책은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에게 그다지 인용되지 않은 저주받은 걸작이 되었다. 그리고 커밍스 역시 지방 인민위원회의 흥망성쇠, 그리고 그 마지막 불꽃으로서의 10월 봉기를 서술하면서 소용돌이라는 메타포를 쓰고 있다. 이 책의 3부를 읽고 있노라니 커밍스가 서론에서 헨더슨을 언급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1945년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직후의 남한, 한반도 바깥으로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이 다시 유입되는 가운데 급격한 인구변화, 일제가 남겨놓은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발달된 교통(철도)과 통신 인프라, 토지 소유 관계에서 서울과 떨어진 정도(지리적 위치), 그리고 미군 진주까지 걸린 시간(공백기의 길이) 등의 변수가 각 지역의 인민위원회 성립과 발전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개관한 8장, 그리고 경기도에서 제주도에 이르는 남한 각 지역의 지방인민위원회의 운명을 서술한 9장, 그리고 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봉기에 이르는 남한 사회의 소용돌이와 그 결말을 이야기한 10장은, 왜 이 책이 지금까지도 고전으로 남아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들의 문장들 곳곳에는 당사자일 수 없는, 하지만 이 나라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미국의 국민이라는 데서 오는 부끄러움(혹은 죄의식), 그리고 연구대상에 대한 거리, 그리고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회과학자로서의 직업의식과 패배한 자들에 대한 연민이 함께 묻어나온다.. 아마 그 문장들이 갖는 힘이야말로 7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땅의 독자들의 등골을 시리게 하는 서늘한 냉기의 원천일 것이다. 


<테제>라는 것은 물론 한 시대의 정치경제적 소산임에 분명하다. <해방3년사>, <해방8년사>라는 테제가 필요한 시대가 있었고, 나 역시 그 시대의 끝자락을 통과한 세대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이미 신자유주의의 판타스마고리아가 모든 이들의 꿈을 지배하는 듯이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테제들은 유의미한 것일까. 그리고 나는 과연 <패배의 기록>(누군가에게는 승리의 기록이겠지만..)으로 점철된 이 책을 2부까지 완독할 수 있을까.. 45년 해방이 가져다준 유토피아의 꿈에 도취되어 거리로 나섰다가 지옥을 경험한 후 꿈에서 깨어나 마을로 돌아온 사람들은 과연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이 책 10장의 마지막 결론을 적어본다..



미국은 공산주의자가 이끈 조직적 혁명을 찾으려고 했건만 대신 체계 없고 실험적이며 자연발생적인 농민 전쟁의 광범한 파편을 발견했을 뿐이다. 하나씩 살펴보면 지역주민의 수많은 원한의 산물이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해방된 한국의 체제에 불만의 절규가 쌓인 것이었다. 그러나 봉기는 지방적이고 자연발생적이었기 때문에 일본인이 남긴 근대적 통제 수단에 진압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미국과 한국인 우익 세력이 장악한 철도, 도로, 통신시설과 어떤 지역의 봉기든 투입돼 처리할 수 있는 전국적 경찰 조직은 결말을 이미 정해놓았다. .... 봉기 이후 한국 농민의 가장 큰 손실은 그들의 이익을 보호해준 지방 조직이 사실상 소멸됐다는 사실이다. 남한 전역에서 대부분의 인민위원회와 농민조합이 사라졌다. 전국과 지방의 중요한 좌익 조직의 지도자들은 죽거나 투옥되거나 체포되거나 은신했다. ... 모든 좌익이 연합해야 한다는 민전의 정확한 주장은 산산이 부서졌으며, 대중적 기반의 큰 상실과 좀더 과격하고 폭이 좁은 조직인 남조선노동당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적어도 농민에게 합리적 선택은 평온한 농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국민국가, 냉전, 독재, 민중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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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1900년
존 루카스 지음, 김지영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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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를 떠올리며.. 당대 최고의 문필가가 기억을 통해 재구성해낸 빈의 풍경과, 역사학자가 사료를 통해 재구성해낸 1900년대 부다페스트의 풍경. 여기에 발터 벤야민의 <1900년 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을 더한다면 세 도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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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1900년
존 루카스 지음, 김지영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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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와 함께 읽을 것..

당사자인 당대 최고의 문필가가 기억을 통해 재구성해낸 1900년대 빈의 풍경과, 마찬가지로 당사자인 역사학자가 사료를 통해 재구성해낸(과연 자신의 기억은 포함되지 않았을까) 1900년대 부다페스트의 풍경. 여기에 발터 벤야민의 <1900년 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을 더하면 세 도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듯. 그 풍경들이 처절하게 아름다운 것은, 그 곳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은 인용..

그 표현의 우아함에 일단 판단정지..


'불행의 씨앗'은 이 장의 제목이다. 그러나 씨앗을 뿌리는 것과 열매를 맺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역사학자는 인과관계에 대한 소급적 귀인 오류를 범할 때가 많다. 즉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어떤 일에 대해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이전에 일어난 어떤 일이 필연적으로 나중의 일로 이어진다는 가정에서 일의 진행 상황을 판단함으로써 시간의 전후 관계나 일의 인과관계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예수가 말했던 씨앗 뿌리는 사람과 씨앗에 관한 비유를 상기해보자. "그가 씨앗을 뿌렸을 때, 어떤 것은 길가에 떨어져 공중의 새들이 그것을 먹어버렸고, 어떤 것은 돌 위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버렸고, 어떤 것은 가시밭에 떨어져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으니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마가복음 4: 2-20)." 죄지은 인간의 본성을 지닌 역사학자는 이것이 모든 씨앗 뿌리는 사람과 모든 씨앗에 해당된다는 점,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약속의 씨앗이든 불행의 씨앗이든 그 모두에 해당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점은 우리가 다루는 문제에도 적용된다. 그곳에 불행의 씨앗이 있었고, 많은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지만, 그 씨앗의 열매가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즉 그것들이 필연적으로 이후의 비극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340).  


이 책은 헝가리와 부다페스트의 정치에 관한 역사서는 아니지만, 전쟁이 끝나는 시기에 다가갈수록 정치, 즉 그 영향과 기억이 수십 년 동안 한 세대 이상의 마음을 어둡게 만든 비극적인 전개와 사건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전쟁 초기에 일시적이나마 거리와 광장 그리고 도시의 정신까지 밝게 비추던 빛줄기가 1917년 후반의 어느 때에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이 여름 도시의 기후가 어둡고 비에 젖은 무거운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이른 오후에서 늦은 밤으로 시간이 흘러가버렸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는 인상적인 역사학자가 보여주는 은유적 이미지 이상의 것이 있다. 우리는 이어지는 격변기에 활동했던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오후와 저녁 늦은 시간에 페스트의 어두운 거리의 어두운 아파트의 어두운 방에 모여 비밀 집회를 열었던 사실을 알고 있다. 급진주의 지식인 단체였던 갈릴레오단(체제 전복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1918년 초 자유주의 정부에 의해 해산을 명령받았던)의 비밀 모임이나, 시인이자 예언자였던 어디 엔드레가 죽어가던 방이나, '국민위원회'가 헝가리 10월 혁명을 선언했던 어두운 간판의 '어스토리어 호텔'을 생각할 때마다 그 장면은 어두움으로 채색되곤 한다. 그 혁명은 후드득 빗방울이 날리고, 구름이 여기저기 흩어져 바람에 휘날리고, 공기는 흙투성이로 더러워진 늦은 10월의 어느 날 일어났다. 남아 있는 사진 속에 시위하던 군인들이 꽂았던 과꽃(이 혁명은 '과꽃 혁명'이라 불린다)이 살짝살짝 보이지만 그 꽃에 광채는 전혀 없었다(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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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송태욱 옮김 / 체크포인트 찰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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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본 648엔의 책이 16,000원의 번역서로 둔갑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는 한데. 고레에다의 원점이 잘 드러나는 책인 것은 분명. 주제를 풀어내는 고레에다의 독특한 관점도 흥미롭고. 다만 <미나마타병> 관련 책은 인기가 없으니까 번역이 안 되지만, 저자가 고레에다 이기 때문에 번역이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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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정토 - 나의 미나마타병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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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절판되었던 이 책이 다시 재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무엇보다 기뻐하며, 도서관에 책을 주문하고 다시 읽었다.. 

초판 번역에서 발견되었던 몇몇 사소한 번역상의 오류가 여전히 눈에 띄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원제인 <고해정토: 나의 미나마타병>라는 제목 그대로 재출간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재출간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1부 <고해정토>의 재출간을 계기로, 절판이 되어버린 2부 <신들의 마을>(녹색평론사)이 하루빨리 재출간될 수 있기를.. 그리고 고해정토 삼부작의 마지막 권인 <하늘 물고기>도 번역 출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예전에 썼던 서평을 다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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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들 중에서는 가끔씩 소리 소문 없이 세상에 나와 잊혀져버리는 책들이 있다이시무레 미치코石牟礼道子의 <苦海淨土わが水俣病>(<슬픈 미나마타>김경인 옮김달팽이, 2007)도 그런 책들 중 하나이다내가 이 책의 소재를 알게 된 계기는 <歴史学研究> 569(1987) 특집 <과거를 향하는 마음>에 실린 타키자와 히데키滝沢秀樹의 글 <民衆史方法関連して>에서였다민중사의 시각에서 일본사회의 원()과 한국사회의 한()이라는 감정을 비교하면서민중들의 원한을 억압해온 일본사회의 문제그리고 한국 근현대사에서 <한풀이>라는 행위의 의미를 고찰했던 이 글은 전후 일본 사회의 감정의 구조structure of feelings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당시의 내게 매우 흥미롭고 신선한 시각을 준 텍스트로 기억된다이시무레 미치코의 세계는 이 글의 말미에 잠깐 소개되고 있었다메이지 이래로 일본 사회의 분노나 원한은 끊임없이 억압되어 왔지만결코 그것은 소멸되지 않고 전후에도 계속 터져 나온다이시무레 미치코의 일련의 작품들은 바로 그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60년대 일본 사회의 고도자본주의화에 경종을 울린 대표적인 공해병, <미나마타병>을 테마로미나마타 지역의 공동체에 장기간 거주하면서(이시무레 자신이 그 인근 지역 출신이기도 하다조사 취재한 기록문학작품으로그녀가 써내려간 미나마타 연작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이시무레가 그려내는 미나마타병 환자들의 증상은 처참함 그 자체다깨끗한 바다에서 바다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던 그토록 건강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손이 저리기 시작하더니걸음을 잘 못 걷고(무도병 증세), 경기를 일으키다가 속속 죽어나가는 것이다.

 

심지어 수은에 중독된 어패류를 먹지 않은 신생아들마저 선천성 미나마타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처음에 그들은 종종 젓가락을 떨어뜨리거나 문지방이나 미닫이에 걸려 넘어지거나 해서 버릇없는」 아이들로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버릇없는> 행동조차 아예 볼 수 없게 되었다이때부터 그 아이들은 시각청각 등 감각이 모두 없어지고깊고도 조용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당시만 해도 태반 속의 아기의 경우 어머니의 체내에 있는 오염물질의 중독으로부터 보호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학적 상식이었기 때문에신생아들의 경우는 미나마타병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그들의 증상이 미나마타병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그 아이들 중 누군가가 죽어야 했고그 죽은 아이의 시체가 해부되어야 했다하나의 증상이 질병으로 공적으로 인식되기까지의 <잔인함>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이는 보상금을 둘러싼 인정투쟁의 가장 비극적인 양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가능한 보상금을 주지 않으려는 회사 측의 의도 때문에말 그대로 가장 취약한 상황에 처해있던 아이들은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누군가 빨리 한 명이 죽기를 기다리고 있어야만(그래서 그 아이가 해부대 위에 올라가 그들의 뇌와 장기가 미나마타병에 의해 침식되었음을 '과학적'으로 검증해야만했기 때문이다미나마타병 자체가 당시로서는 전혀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이었기 때문에그 증상과 원인을 '학문적으로파악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그 인정투쟁을 위한 '증거'가 확보되기까지의 십여 년의 세월 동안 많은 주민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죽어나가고, 그 기간에도 공장은 계속해서 폐수를 방류했다는 사실에까지 이르면啞然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 보상금이라는 것 역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미나마타병(정확히는 증상발병 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공장 측은 아직 병의 원인이 밝혀지기 전인 1959년 서둘러 환자모임과 '위로금계약을 체결하는데계약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회사 측의 성실한 의무수행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책임을 미연에 회피하려는 책략임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이의 생명 연간 3만 엔

어른의 생명 연간 10만 엔

사망자의 생명 30만 엔

장례비 2만 엔

물가가 오르자 1964년 4월에 생명의 가격이 조금 올라서

아이의 생명 연간 5만 엔

그 아이가 20세가 되면 8만 엔

25세가 되면 10만 엔

중증의 어른이 되면 11만 5천 엔

(환자호조회)은 장래에 미나마타병이 갑(공장)의 공장 배수에서 기인한 것이 밝혀져도 새로운 보상요구는 일절 하지 않기로 한다.

 

이시무레는 아이 생명 연간 3만 엔어른 생명 연간 10만 엔이라는 바로 이것이 일본국 1950년대의 인권사상이 등에 붙이고 다니던 가격표라고 말한다또 하나의미심장한 구절은 아직 미나마타병이 공장의 폐수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점이 밝혀지지 않았던 그 시절회사는 장래에 미나마타병이 공장의 배수에서 기인한 것이 밝혀져도 새로운 보상요구는 일절 하지 않기로 한다는 조항이다말 그대로 이 조항을 붙임으로써병 때문에 생계를 꾸릴 수 없어 당장 한 푼이 아쉬운 가난한 어부들에게 말도 안 되는 액수의 위로금’(배상도 아니고심지어 보상도 아닌 위로금이다. 1965년 한일 협정 당시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의 명칭이 떠오르지 않는가배상도 아니고 심지어 보상도 아닌 독립 축하금’. 실로 동일한 논리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을 협박처럼 들이대면서 자신들이 나중에 감당해야 할 책임을 미연에 회피해버렸던 것이다그리고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회사는 자체 내 실험을 통해 폐수가 미나마타병의 직접적 증상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실험결과를 숨기고 공표하지 않았다.

 

결국미나마타병은 6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본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의학진과 사회운동가들이 대거 미나마타로 몰려오면서그리고 1965년 니가타에서 제 2의 미나마타병이 발병사회적으로 문제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1968최초 발병이 있은 지 15년 만에 마침내 공해병으로 정식 인정된다(하지만 이미 그보다 6년 전인 1962년 구마모토대학 의학부에 의해 미나마타병의 원인이 밝혀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며이미 400호 고양이 실험을 통해 그 원인을 알고 있었으면서도구마모토 대학의 논리에 대해 공장에서 배출된 무기수은이 왜 신체에 들어가면 유기수은으로 바뀌는지 알 수 없다며 반론을 폈던 공장 측의 행태를 더더군다나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1969년 6(미나마타병 제 1차 소송미나마타의 29세대 112명이 질소공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냄)부터 진행된 일련의 재판들에서 피해 환자 측이 승소하면서점차 구제의 길도 열리게 된다. <공해 피해구제법>(1974년 공해건강피해보상법으로 바뀜)이 실행된 것도 이 해(1969)이다앞서 언급한 1959년의 위로금’ 계약의 경우도계약 성립시 계약자의 '무지'(innocence)로 인한 경우에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판결에 의해 무효가 선언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는 이미 미나마타병이 발견되고 폐수가 첫 의혹을 샀던 1956혹은 첫 사망자가 나왔던 57그도 아니라면 이후 대량의 사망자가 속출하던 59년의 시점에아니 그 이후라도 신속하게 대처했더라면 수많은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회사 측의 방해와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더욱 큰 참사를 낳았다는 점이다이는 미나마타병이 하나의 의학적 차원을 넘어선 사회적 문제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하라다 마사즈미 교수 등의 주도로 앞서 언급한 우이 준구와바라 시세이 등이 매주 강사로 참여한 미나마타학이라는 강좌가 개설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질병의 사회성에 대한 자각 때문이었다.

 

또 하나그 동안 미나마타병 환자들은 질병이 주는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전염이나 천형’ 등 의학적 지식의 부재가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편견과 낙인또 미나마타병 논란의 여파로 회사가 철수하면 지역경제가 붕괴될 것을 우려하는 지역시민들의 시선 때문에 맘대로 고통을 호소하지도 못하는 이중의 고초를 치러야 했음을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어디 미나마타뿐이랴, 2011년 3월 후쿠시마 방사능 누출사고 이후 다시 재조명되고 있는 것처럼 중앙과 지방의 착취-피착취 관계-왜 도쿄전력의 발전소가 간토에서 그렇게 떨어진오히려 도호쿠 지역에 가까운 후쿠시마에 위치해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관계가 지역 주민들의 동의에 입각한 헤게모니적 지배 아래 작동하고 있는 현실은 근대 일본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변주되어 왔다.

 

법정에서의 승리하지만 미나마타병임을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는가라는 벽이 남아있었다실제로 고양이가 100퍼센트 멸종된 시라누이해 연안에 살던 20만 명의 사람들 중미나마타병으로 인정된 환자는 2,265즉 기껏해야 1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미나마타병에 걸렸다고 하소연했지만환경청과 미나마타병 의학전문가 회의는 계속해서 이를 거부하며심지어 재판소의 미나마타병은 의학적이지 않다고 항소했던 것이다그리고 보상금을 둘러싼 난항과 환자들이 보상금을 바라는 이익집단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상황 속에서 주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한다실제로 우리도 종종 소위 학문적’ 글들에서 확인하지 않는가. ‘객관적 가치중립이라는 입장에서 주민들이 토해내는 일련의 목소리그리고 행위들을 이해관계니 전략'strategy이니 하는 식으로 기술하는 글들을과연 그들은 한없이 추락해가는 '절망의 심연', 그리고 그 심연에서 터져 나오는 '원한'이라는 감정을 최소한 이해하려는 시도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돈은 한 푼도 필요 없어그 대신 회사의 잘 난 사람들위에서부터 줄줄이 수은모액 마시라고 해위에서부터 차례로, 42명이 죽을 때까지그 부인들도 마시라고 해태아성 미나마타병 환자가 태어나게그리고 그 다음에 순서대로 69미나마타병에 걸리라고 해그러고 또 100명 정도 잠재 환자가 돼보라고 해그거면 충분하니까!

 

여기서 '수은모액'은 1968년 5월 질소공장이 결국 미나마타병의 원인인 아세트알데히드 생산을 중지하고그에 부수한 유기수 폐수 100톤을 의미한다공장은 이 100톤의 폐수를 한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드럼통에 주입하던 중공장의 조합에게 들켜 저지당했고이후 이 유기수은모액은 죄업의 상징으로 남았다고 한다. ‘황당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쨌거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당시 한국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고그래서 '착잡한이야기이기도 하다제 3의 미나마타병(제 2의 미나마타병은 60년대 중반 일본의 니가타에서 발생했다지역사회의 신속한 대응과 회사와의 투쟁으로 이 사건은 '다행히조기에 수습되고또 이 지역의 운동세력 이후 미나마타 지역과 연대하면서미나마타 지역에 대한 보상의 길로 발전하기도 했다)이 한국에서 발생할 수 있었을 위험을 미연에 구해준 회사의 노동조합에 감사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처음 책을 읽으면서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근대 일본 사회의 민중들의 원한(み・)이라는 문제였다메이지시기를 거쳐 '전후'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는 민중들의 분노나 원한의 감정을 끊임없이 억압해온 사회라는 것은 이제는 일반적인 정설이다. 다시 말하면근대 일본이라는 윤리적’ 세계는분노라는 감정을 항상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즉 그러한 감정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 자체를 “‘미덕에 반하는” 것으로 폄하하는그래서 ()과 한()을 잊어버리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라는 것이다패전 직후 일본 사회 내에서 소위 <전쟁 체험파戦争体験派>를 중심으로 분노를 망각해버린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전개된 바 있지만이 역시 전쟁의 그림자가 걷혀 가면서 소멸되어 버렸다이렇게 분노나 원한을 잊어버리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에서 일본사회의 민중들은 항상 권력에 순응하며 살아왔다는 그런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그들의 원한이 어떻게 새로운 정치로 전화될 수 있는가그 가능성의 한 측면을 찾고 싶었던 것이 이 책을 꺼내 들게 된 이유였다그러나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책은 좋은’ 텍스트는 아니다저자의 강력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체그리고 미나마타병이라는 실체의 압도적인 무게감에 짓눌려다른 생각들을 펼쳐나가는 것 자체가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악마로서의 미나마타병에 대한 대립 항으로써저자가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해내고 있는 근대 이전의 미나마타 사회라는 구도 역시 '엄밀한의미에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하지만 이를 단순히 사회과학적인 입장에서 근대의 대립 항으로 전근대를 찬미했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 '쉽고', '가벼운비판이다왜 그녀는 지역사회 주민들그것도 미나마타병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고또 그 자신들 역시 현재의 증상에 신음하는혹은 이들 환자들을 보면서 자신도 언제 발병할지 모르는 처지에 두려워하는 주민들의 구술을 통해이런 아름다운 전근대의 세계를 그려냈을까오히려 이 작품은 이런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를 그려냄으로써 이 세상에서 추방당한 채고해정토(苦海淨土)를 헤쳐 나가는 사람들의 <그 후それから>를 포착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저자도 스스로 밝히듯이 이 책은 사회과학도엄밀한 의미의 르포도 아니다오히려 시의 언어와 산문의 언어가 서로 만나고 겹쳐지는 흔적trace과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나을 듯싶다.

 

이 글은 예전 어떤 잡지에 서평으로 실은 글을 (참고문헌과 인용을 포함하여) 많이 축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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