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냉전 - 인류학으로 본 냉전의 역사
권헌익 지음, 이한중 옮김 / 민음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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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냉전의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론서. 항간에 유행하는 단순한 영화비평이나 문학비평을 넘어서면서, 냉전에 대한 구미학계의 시각과 베트남에서의 자신의 필드 경험을 날줄과 씨줄로 잘 엮어내고 있다. 다만 이러한 이론화 작업이 정말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호오가 갈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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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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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힐베르크-아렌트-레비-아메리-아감벤으로 이어지는 사유의 궤적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한다..

 

우선 레비에 대한 책들을 계속 번역 출판하고 있는 <돌베개>에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비의 사색의 여정을 가장 충실하게 보여주는 이 책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가 가뜩이나 불황인 한국 출판시장에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현실은 현재 우리네 삶의 각박함을 반영하는 것 같아 그닥 마음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왜 인간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가..

왜 아우슈비츠와 같은 악-오류는 계속 되풀이되는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다..

그건 아마 너무나 절실하게 번역되어 나온 이 책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번역으로도 레비의 고뇌가 충분히 전달될 만큼 매끄럽게 번역해준 역자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책에도 나오듯이 레비에게 자신의 언어를 번역하는 것은 몹시도 중요한 것이었다..

 

문제는 한자어이다..

아주 사소한 한자 병음의 오류가 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려서는 안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106페이지의 이식은 아무리 봐도 利殖이 아니라 移殖, 혹은 이주(移住)이고..

183페이지의 역은 易이 아니라 逆인 것 같다..

 

이런 것들은 혹 번역과정에서 오타에 의해 발생하더라도, 편집부가 충분히 잡아줄 수 있는 오류이다..

그나마 몇 안 되는 한자어 병기에서 생기는 이러한 오류들이 이 책을 훼손시키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2쇄에서는 꼭 반영이 되길 바란다..

 

 

 

 

공포, 이데올로기적 유혹, 승자를 곧이곧대로 모방하는 것, 어떤 권력이건 간에-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시간과 장소에 제한된 권력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향한 근시안적 욕망, 비겁, 명령이나 규율 자체를 교묘하게 피하려는 철저한 계산에 이르기까지 그 동기는 다양하다. 이 모든 동기들은 각개로든 서로 결합되어서든 이러한 회색지대를 만들어내는 데 작용했고, 이 회색지대의 구성원들은 특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고 강화하려는 의지로 서로 결합했다.

반복하지만 진짜 증인들은 우리 생존자가 아니다. 이것은 불편한 개념인데, 다른 사람들의 회고록을 읽고 여러 해가 지난 뒤 내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차츰차츰 인식하게 된 것이다. 우리 생존자들은 근소함을 넘어서 이례적인 소수이고, 권력 남용이나 수완이나 행운 덕분에 바닥을 치지 않은 사람들이다. 바닥을 친 사람들, 고르곤을 본 사람들은 증언하러 돌아오지 못했고, 아니면 벙어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바로 "무슬림들", 가라앉은 자들, 완전한 증인들이고, 자신들의 증언이 일반적인 의미를 지녔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칙이고 우리는 예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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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노트 오에 겐자부로의 평화 공감 르포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이애숙 옮김 / 삼천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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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노트>는 까다로운 텍스트이다. 무엇보다 1879년의 <류큐 처분>부터 아시아 태평양 전쟁 말기의 최고의 격전이었던 <오키나와 전투>,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2)과 1972년 <본토 복귀>에 이르는 오키나와의 현대사에 대한 이해 없이는, 아무리 지우려 해도 <본토> 출신이라는 숙명을 지울 수 없는 지식인 오에의 고뇌가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오키나와로 가는가"라는 내면의 목소리와, "무엇때문에 오키나와로 오는가"라는 현지의 거절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오에의 고뇌와 그 고뇌가 빚어내는 글의 <공백>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텍스트는 불완전한 넋두리처럼 들릴 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오에의 다른 소설 작품들에 비해, 그리고 잘 알려진 <히로시마노트>에 비해 이 책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내게 이 책은 전쟁과 전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억과 망각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가장 <성실한> 응답처럼 보인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메도르마 슌이 쓴 <오키나와>에 대한 작품들, 그리고 도미야마 이치로의 <전장의 기억>을 함께 읽는다면 더욱 좋겠지만, 아마 이런 식으로 나갔다가는 이 세상의 모든 텍스트들을 다 읽어내야 할 것이다..

<오키나와 노트>를 가장 잘 읽는 방식의 하나는 책을 읽고 난 후, 이 책에 실린 9개의 장의 제목 하나하나를 다시 반추해 보는 것이다..

1. 오키나와가 일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오키나와에 속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2. 씁쓸한 세상: 본토의 오키나와화 논리의 의미는 무엇일까

3. 오키나와인들의 이의신청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4. <본토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등등..

만약 포스를 마구 잡고 글을 쓴다면, 아마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이 책은 기억에 관한, 아니 망각에 관한 텍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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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망각은 가해자뿐만이 아니라, 피해자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1972년 미국과 일본의 밀약에 의한 오키나와 반환에 의해 오키나와가 일본 본토로 다시 귀속된 것은, 일본 본토의 일방향적인 의지(오키나와 반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아직 전후는 끝나지 않았다는, 당시 사토 수상의 연설이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의 결과만은 아니었음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본토 복귀를 열망하는 오키나와인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프리모 레비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들이 단순명쾌했을 것이라는 토도로프T. Todorov(그리고 徐京植)의 탄식처럼, 전후 오키나와가 본토 복귀를 강요하는 일본에 맞서 저항했다면, 모든 것들이 단순명쾌했을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오키나와는 1945철의 폭풍暴風이라는 악명에 걸맞게 태평양전쟁 최대의 격전지였고, 전 도민의 1/3이 전쟁에 連累되어 죽은(더구나 그 상당수가 아군인 일본군에 의해 강요된 집단자결에 의해 죽음을 당한) 비극적 역사를 가진 섬이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섬에서 미국에서 일본으로의 반환이 구체화되던 시점에 조국 복귀라는 슬로건 아래 본토로 편입되고자 하는 열망이 표출되었던 것이다. 본토의 방어를 위해 섬 전체를 무정하게 저버렸던 일본이라는 국가에 다시 귀속되고 싶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오키나와인들의 열망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 열망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아래와 같은 자신은 오키나와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는 식의,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본토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거리낌 없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cf. 류큐국 사람들이여! 제군들의 나라는 원래 독립국이네. 도쿠가와 시대나 그 이전 당나라 때 사쓰마 번이나 중국에 공물을 바치고 겨우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번듯한 독립국이 아니었던가? 그러다가 메이지유신이라는 북새통에 일본의 오키나와 현민으로 영유된 것이다. 그리하여 좌천된 본토의 관료가 통치하고 일본의 赤子 현이 되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제 2차 세계대전 덕분에 제군들은 일본에서 벗어나 미군 통치 아래 들어가서는, 그 때문에 제군들은 미처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제군들의 둘레나 길거리를 둘러봐라. 전부 자유다. 군사시설 말고는 본토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같은 영토이지만 조선은 독립했다. 타이완도 독립했다. 제군들의 류큐는 어째서 독립하지 않는가? (<류큐신보> 19694).

물론 전후 미군정에 의한 새로운 억압통치, 그리고 철수가 예정된 미군이 빠져나갔을 경우,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취약한 오키나와의 정치경제적 구조에서 오키나와인들이 어쩔 수 없이 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는 본토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는 엄연한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 인간들은 배알도 없는 것이냐~”라고 쏘아버리기 전에, 그러한 냉혹한 현실 앞에서 조국 복귀를 슬로건으로 내걸 수밖에 없었던 오키나와 주민들의 마음 한켠에 첩첩이 쌓인 분노와 슬픔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시대가 흘러,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가 잊혀진다고 해도, 그 망각은 또 다른 의미에서 억압된 것이고, 억압된 것은 언젠가 다시 현실의 세계로 귀환할 것이라는 믿음.

모호한 말로 막연한 표현으로 암시되고 있는 것의 실체가 분명해졌을 때, 경악과 분노가 있고 막다른 벽에 가로막혀 피를 흘리는 머리가 있을 뿐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만큼 인간을 광적인 절망의 늪으로 빠뜨리는 것이 있을까? 광기에 빠지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은 분노를 내면에 응축시킨다. 그 응축된 분노는 쉽게 말로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머리가 세게 부딪친 그 벽에, 머리를 부딪칠 일이 없는 타인에게 그 축적된 분노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겠는가

조국으로 돌아가는 운동은 조국에 대한 반역 투쟁이어야 합니다. 구세대는 자신들을 일본인이라고 강조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가장 의심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본인이라고 강하게 느낀 적도 없지만 강하게 의심한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구세대와 단절이 나타납니다. 나는 중학교 교사이지만, 내셔널리즘을 가지지 않는 것은 세상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하는 󰡔기대하는 인간상󰡕의 생각에 반대합니다. 오키나와에서는 천황을 경애하는 것이 나라를 … 라는 말이 결코 성립하지 않습니다. 나라의 실체는 국민이라고들 모두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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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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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의 사상으로 들어서기 위해 가장 중요한 책. 예전 이 책에 실린 <회색지대>와 <부끄러움>을 외국어로 읽으면서도 탄복했던 적이 있다. 정말 레비가 자살하지 않았으면 모든 것이 단순명쾌했을까. 하지만 역시 증언은 남는다. 그리고 그 증언은 잔여(remnants)임을, 아감벤에게 계시한 이도 바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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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
아카자와 시로 지음, 박화리 옮김 / 소명출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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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라면 망설일 수 있지만 반값이라면. 일본어판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번역판이 나오면 살 수밖에 없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야스쿠니의 전후사가 비교적 <중립적인> 시각에서 잘 정리되어 있으며 일본에서도 호평을 받은 책이다. 다카하시의 <야스쿠니문제>와 함께 읽으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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