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의 세계사 - 새로 쓴 제3세계 인민의 역사
비자이 프라샤드 지음, 박소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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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인민의 열망을 담은 반식민투쟁을 거쳐 수립된 제 3세계 국가들의 이상이 왜 좌초되어 결국 독재정부로 귀결되고 마는가. 이들 국가들이 빠지는 <함정>과 1세계 자본의 음모에 대한 정치한 분석을 통해 저자는 지금 이 비극적 현대사의 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이유를 절실하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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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 역사 인물 찾기 13
알리스 셰르키 지음, 이세욱 옮김 / 실천문학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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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상가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저작에 있지만, 파농은 성격이 좀 다르다. 그의 사상이 전개되는 무대는 책상(그리고 빽빽한 레퍼런스)이 아니라 전장이기 때문이다. 파농의 후반부 정치적 무대였던 <혁명 알제리>를 충실히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이미 그 가치를 증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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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역사 없는 사람들 - 인류학과 정치경제학으로 본 세계사 1400~1980
에릭 R. 울프 지음, 박광식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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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류학의 전설적인 고전. 기존 역사학적 서술과는 다른 인류학적 역사서술의 한 전범을 보여준다.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이를 풀어내는 기술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친절한 번역과 역주가 아쉬운데, 이는 역자에게 요구할 문제라기보다는 인류학계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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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스뜨 2016-07-1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동감입니다만..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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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너무나 찬사 일변도의 리뷰만 실려 있어서, 짧은 주석을 덧붙이기로 한다..

 

제바스티안 하프너.. 1907년 독일 베를린 출생, 1938년 영국으로 이민.. 영국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 1954년 서독으로 귀환.. 이후 서독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

 

간단한 이력을 보더라도, 그는 <33년세대>에 해당한다.. 그가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기록인 <어느 독일인 이야기: 회상 1914-1933>에서 회고하듯, 이 세대는 유년 시절 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체험하고, 청소년기 바이마르 공화국의 위기와 이후 이어진 국가사회주의의 <청소년 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세대이다.. 하프너는 이들 세대보다 4-5년 빨랐고, 또 보수주의적인 독일 교양시민 계층에 속했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의 광풍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었다.. 그가 나치 독일을 떠나게 된 <개인사>는 <어느 독일인 이야기>에 잘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의 견해는 보수주의적 독일 교양시민 계층의 그것에 가깝다..

 

2차 세계대전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가 종종 빠지게 되는 오류 중 하나는 히틀러에 반대하는 입장을 무작정 <진보적>인 것으로 간주해버린다는 것이다..왜냐하면 지극히 보수적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이들 역시 히틀러에 반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2차대전 시기 히틀러 정권에 대한 유일한 반란을 주도했던 슈베렌 폰 슈바넨페트 역시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자였다.. 그리고 이 때 히틀러에 반대하는 이유 역시 다양할 것이다.. 문제는 이 책에서 하프너가 그 한 이유로서 지극히 유럽중심주의적인 견해를 아주 솔직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1938년 가을 혹은 1940년 여름의 유럽을 되돌려서 잠깐 정지 화면을 만들어 관찰하고, 이어서 히틀러 이후 유럽의 어두운 상태와 히틀러 이전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분명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히틀러 이전 세계의 상황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유럽은 정말로 통합해야만 했던 게 아닌가? 이런 통합은 폭력의 도움 없이 이룰 수 있었는가? 또한 적어도 처음 단계에서는 가장 강한 세력의 지배가 필요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가장 강한 세력은 당시 독일이 아니었던가? 어쨌든 두 세대 동안은 그렇다고 답할 사람들이 독일 국민뿐만은 아니었다. 1938년과 1940년의 사정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 사람들도 망설이기는 하겠지만 유보 조항을 둔 채로 "그렇다"라고 대답할 상황이었다. 그리고 1945년 이후의 상황을 보면 그 대답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아니면 적어도 그들이 생각한 독일이 히틀러의 독일만 아니었다면 틀린 것이 아니었다.

 

이 대목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하프너는 히틀러의 독일만 아니었다면, 유럽은 통합을 이루어 2차대전 이전, 그러니까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식민지를 영유한 전 세계의 패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위험한 가정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험은 20세기의 유럽이 오로지 독일의 주도권 또는 미국-소련의 주도권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주었다>고 쓰고 있다. 히틀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예를 들어, (저자가 속내를 밝히듯이) 비스마르크 같은 이가 주도를 했다면, 유럽은 독일 중심으로 통합되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히틀러가 1938년 동유럽에서, 그리고 1940년 프랑스에 승리를 거둔 다음 유럽 대륙에서 나타났던 어느 정도의 합의와 복종의 각오에서 보듯, 독일 중심의 통합에 유럽 국가들 역시 어느 정도 동의했을 것이라는 것.. 좀 더 나아가, 1945년 2월 보어만 구술에서 히틀러가 했던 <나는 유럽의 마지막 기회였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하프너의 시각에서 본다면 문제는 히틀러가 중대한 <잘못들/실수들>을 저지름으로써 <그 기회를 망쳤고>, 결과적으로 18세기 유럽의 팽창과 제국주의 이후 확립된 유럽의 우위를 결정적으로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그 잘못들/실수들이 바로 반유대주의이자, 1930-40년기에 그가 범했던 정책적 오류들이다..

 

하지만 이것을 히틀러의 정책적 오류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히틀러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지 못했다면 오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체코/폴란드 점령, 프랑스 점령과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결코 유럽의 통합이라는 목표 아래 진행된 것이 아니다.. 히틀러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상세한 연구들이 이미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를 참고하면 되겠지만, 여하튼 유럽 통합이 히틀러의 의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유럽의 모든 사람들이 예견하지 못했던 히틀러식의 전격적인 작전에 의해 성립된 1930-40년의 정치상황을 앞에 두고, 히틀러가 실수를 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자의적인 평가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좋았던 과거 유럽에 대한 불온한 노스탤지어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쨌거나 그 문제는 유럽인들끼리 해결하라고 두더라도, 이 뼛속까지 유럽중심적인 사유에서 과연 식민지로 전락한 아시아/아프리카의 운명같은 것이 들어올 여지는 없어 보인다.. 2차대전의 종결과 함께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하프너의 사유에 무턱대고 박수를 쳐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프너의 논리를 조금만 비튼다면, 한국을 비롯한 제 3세계는 히틀러 덕분에 독립 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히틀러의 실수/잘못을 박수를 치고 환영해야 한다는 것인가..

 

물론 산문가/작가로서 하프너의 재능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다.. 그리고 20세기 초 독일 교양시민사회의 지적 자양분을 흡수하며 성장한 그가 유럽 이외의 대륙에 철저하리만큼 무관심하다는 사실 자체를 탓하고 싶지도 않다.. 그것은 당대 유럽 부르주아적 세계관이 갖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세계관이 너무나 선명히 드러나는 이 조그만 책자에 무턱대고 찬사를 보낼 수만은 없다.. 그것은 (유럽이 아닌, 하지만 그렇다고 커다란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 제국 일본의) 식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 땅에서 책 읽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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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전 - 문학의 프로이트, 슈니츨러의 삶을 통해 본 부르주아 계급의 전기 서해역사책방 14
피터 게이 지음, 고유경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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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부르주아의 정신에 대해 지극히 부르주아적 관점으로 씌어진 역사서. 저자의 박학다식함과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은 이미 검증이 된 듯 한데, 뭔가 좁혀지지 않는다. 19세기 bg 정신이 내포하는 극도의 다양성에 대한 규명? 이 책의 집필의도를 묻는 작업 역시 정신분석학적 탐구주제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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