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H.D.F. 키토 지음, 박재욱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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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그리스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문헌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들이 아닌 정말 '순수한' '아마추어' 인문학 애호가라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 지 난감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아마추어는 지식의 정도가 낮다는 뜻의 비하나 폄훼가 결코 아니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고대 그리스야말로 전문가 혹은 전문적 지식보다 삶의 전체성을 추구하는 아마추어적 자세를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던 시대가 아닌가.. 전문가들의 시대는 어쩌면 인간이라는 종족의 위대함이 쪼그라든 시대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극히 사소한 것이었다..

얼마 전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되는 아킬레우스의 '분노', 종잡을 수 없는 고대 그리스 신들의 변덕, 그리고 서사시라는 장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던 차에, 서가에 꽂혀 있는 이 책이 문득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반값 할인의 광채에 눈이 멀어 닥치는대로 쓸어담던, 그 좋았던 시절(belle epoque)의 유물이었다.. 그리고 아마 당시 "1951년 펠리칸 총서로 출판된 후 전 세계에서 수백만 부가 판매된 고대 그리스에 관한 최고의 고전"이라는 출판사의 문구에 낚여 이 책을 샀던 기억이 난다..

 

볼륨이 두텁지 않다는 것.. 상대적으로 평이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부터 읽을 필요 없이 관심이 가는 주제부터 골라서 읽어도 된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일 듯 싶다.. 당연히 나는 4장 그리스 정신의 정수 <일리아스>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나름 흥미로워서 첫 장으로 돌아가 계속 읽어내려갔다.. 특히 고대 그리스의 정치사, 특히 페르시아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5-7장을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역자가 말한 것처럼, 1951년에 출간된 책이다보니 시대에 뒤떨어진 장도 있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그리고 만약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정도는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마음 한 구석에 싹틀지도 모르겠다-여러 문제들이 있다는 말이 들려오긴 하지만 그래도 그리스어 원전의 감성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천병희 선생의 번역본은 고마운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원전들에 대한 지식 없음이 이 책을 읽는데 커다란 장애가 되거나 하는 그런 일은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은 꽤 평이하다.. 정말 한 분야에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를 계속해 온 노교수가-한국대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존재들이지만-, 일반 대중이나 학부생들을 상대로 하는 개론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 읽었던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 문두스(Mundus), 그레고리우스가 강의를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분명 한 때 우리나라 독서계에 돌풍을 일으킨 <로마인이야기>보다는 훨씬 수준이 높은, '고급진' 이야기다.. 하지만 수준이 높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정말 우리는 그런 점에서는 고대 그리스보다 훨씬 퇴보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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