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여행을 다니면서 읽기에는 꽤나 무거운 책이었다..
이번 달 초 오키나와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 책을 알게 됐지만, 떠나기 전 이런저런 잡무때문에 책을 읽지 못했다..
책 한 권도 짐이 될 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고민하다가, 책을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물론 그 무게감에 있어 책은 항상 <정직>하기 때문에 여행 내내 책은 짐의 한 부분을 차지했고, 실제로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도 어제였지만, 지금으로서 그닥 후회는 없다..
어쩌면 이 책이 오키나와에 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2일간의 여행을 다녀온 후, 어제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밤 11시까지 마치 신들린 것처럼 그녀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중간에 감정이 복받쳐올라 꺼이꺼이 통곡하기도 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나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파묵이라면 그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첫 장에서부터 느껴진 책의 힘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내 몸이 앉아 있던 책상과 의자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 .. 이는 마치 내가 읽고 있던 책장들로부터 내 얼굴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그러한 강력한 힘 때문이었다. 그 빛은 나의 이성을 무디게 만드는 동시에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다. 나는 이 빛 안에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었다. 혹은 그 안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신들린 듯한 기분을 느낀 것은 예전 세월호에 대한 글을 쓰느라 자료를 보고,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의 요동 이후 처음이다.. 물론 세월호는 동시대, 내가 사는 이 사회에서 일어난 비극이기에 그만큼 감정이입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70여년 전 그것도 저 먼 나라,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가..
오키나와에 갔을 때 들렀던 사키마 미술관의 한 벽을 가득 채우며 걸려 있던 <오키나와전의 그림>이 떠오른다.. 이 작품은 히로시마 <원폭의 그림>으로 유명한 마루키 이리/마루키 토시 부부가 그린 그림이다.. 검게 그을린 듯한 회색의 땅과 새빨간 화염, 그리고 푸른 바다로 삼분할된 듯한 거대한 화폭에는 무수한 시체들과, 곧 죽어갈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지옥도와 같은 풍경은, 지금은 <밝은 태양과 푸르른 바다>의 남국 이미지로 가득한 오키나와의 1945년 모습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화폭 한 구석에 화가는 이 섬에 강제로 끌려 왔던 조선인들이 겪어야 했던 비참한 운명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었다..
일본 본토 유일의 지상전을 경험한 이 섬은 1945년 3월부터 6월까지의 전투로 군인들뿐만 아니라 무수한 민간인들이 전쟁에 연루되어 학살당한 비극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패전 이후에도 이 섬은 해방되지 못한 채, 미군의 점령지로 남았으며, 1972년 일본에 <반환?>된 이후에도 <태평양의 요석>이라는 구실 아래 기지의 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키나와에 가면 줄곧 듣는 이야기지만, 일본 본토 면적의 0.1%에 불과한 이 섬에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 기지의 76%가 자리잡고 있다..
사키마 미술관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미술관이 자리한 장소성 때문이기도 했다.. 이 미술관은 오키나와 중부 기노완시의 시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후텐마 기지>의 펜스 바로 옆에 마치 구멍을 내려는 듯이 서 있다.. 실제로 미술관 3층 옥상에 올라가보면 후텐마 기지의 활주로와 거기에 늘어서 있는 수직 이착륙 헬기 <오스프레>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기지와 미술관의 기묘한 공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전쟁의 비참함과 이를 되풀이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미술관은 연약하게나마 항변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서두가 길어져버렸지만, 그것은 아마도 스테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강렬함이 마치 오키나와의 풍경들이 주었던 그 강렬함의 연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전쟁의 비참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그 전쟁의 참상은 잊혀지며, 다만 훈장들과 영웅들의 서사시, 그리고 미담으로 기억되고 기념될 뿐이다.. 실제로 그토록 끔찍한 내전을 경험한 나라에서조차 거대한 기념관을 세워가며 자랑스럽게 지난 전쟁을 <기념>하고 있지 않은가..
알렉시예비치가 그 달콤한 거짓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을 몸소 체험했던, 아니 파시스트 군대의 침입을 몸으로 막아냈던 여성들의 전쟁체험, 그리고 전후의 이야기를 그녀들의 육성으로 직접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눈에 지난 전쟁은 조국을 지켜내야 한다는 미명에도 불구하고(실제로 그녀들 역시 그러한 숭고한 목적 때문에 전쟁에 지원했지만) 결코 아름답고 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많은 차별과 고난을 감내하고 승리한 이후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역시 결코 명예와 영광이 아니었다.. 그들은 때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욕설까지 들어가며,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전후의 현실로 슬그머니 들어가야 했다.. 어쩌면 45년까지의 전투뿐만 아니라, 그녀들이 살아가야 했던 전후의 삶 역시 전쟁의 연장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오키나와인들이 겪어야 했던 전쟁, 그리고 전후의 경험과 그대로 겹쳐진다..
왜 전쟁은 되풀이되는 것일까.. 왜 인간은 과오를 되풀이하는가.. 그 하나의 이유는 과거를 망각하고, 또 그것을 미화하기 때문이다.. 망각은 시간의 자연스러운 힘이기도 하지만, 또한 잊게 만들고자 하는 인위적인 힘의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비참한 전장의 경험을 계속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힘든 것이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그래서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은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축복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그 강렬한 체험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다.. 그 체험이 왜곡되고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게 만드는, 그리고 그 다른 이야기를 후세대들에게 교육하고 주입하는 과정에는 다른 어떤 <힘>이 개입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힘>이다. 전장을 체험한 여성들의 증언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증언은 바로 그 <힘>이 얼마나 현실을 미화하고 왜곡시키는 것인지를 폭로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난 후 어쩌면 이 책은 연작의 형태로 계속 씌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전장을 경험했던 전투원 여성들의 목소리이다.. 그들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기에 전장의 또 다른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2차 세게대전은 군인, 군속 등 전투원보다 더 많은 비전투원(민간인)들이 희생된 최초의(?) 전쟁이었고,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그리고 최근의 전쟁에서 보듯, 현대전에서 이러한 양상은 이제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비전투원, 여성, 소수자들에게 전쟁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마 그들의 증언은 이 책이 준 충격을 덮고도 남을만큼 더 엄청난 것이리라.. 물론 그 증언들을 모으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증언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우리들에게 그/녀들의 목소리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코 공적인 장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은밀한 곳에서 새어나오는 그 조그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런 소중한 책들이 계속해서 씌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