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기획 - 혁신관료와 일본 전시국가
제니스 미무라 지음, 박성진 옮김 / 소명출판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오전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암살>이라는 영화를 보러갔다..

천만이라는 숫자의 관객들이 봤다는 영화를 보시고 싶어하는 부모님의 간청과 천만 관객의 영화를 극장에서는 그다지 보고 싶어하지 않는 내 성향 사이에서 다소 주저하다가, 결국 두 분과 함께 극장에 갔다..

뭐, 역시나 진부한 스토리에, 이제는 익숙한 배우들의 애드립, 어느 비평가의 말처럼 <토포스의 나열>에 불과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2시간 20분 동안 열심히 봤다.. 때때로 뭉클한 구석도 있었다.. 해방 이후 70여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과거청산은 커녕 독립군의 후손들이 발을 붙이고 살아갈 수 없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는 <부끄러움>의 코드를 건드리고 있었다..

 

아놔.. 이렇게 풀어야 할 역사가 아닐 터인데.. 우리는 언제쯤 <비분강개>에서 벗어나 좀 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36년 식민지 역사와 해방 8년사, 그리고 이후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까.. 물론 이렇듯 뒤틀려버린, 그래서 "나라를 빼앗겨도 절대 독립운동하면 안 된다"는 조소와 체념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비분강개>는 인간적인, 또 소중한 감정이지만, 그 시대를 냉철히 인식하는 지성적 언어가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역시 안타까운 일이다..

 

해방 70주년에 대한 내 나름의 기획으로, 어제에 이어 오늘 읽은 책은..

제니스 미무라, <제국의 기획: 혁신관료와 일본전시국가>(박성진 역, 소명출판, 2015)..

 

2002년의 학위논문을 10년에 걸쳐 상당부분 수정, 보완해서 완성했다는 말에 걸맞게(그런데 역자는 종종 사소한 실수를 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공을 깎아내리고 있다.. 서문의 역주에 웨더헤드 동아시아연구소가 컬럼비아대학에 있는 연구기관이라고 밝혔으면서, 역자후기에는 코넬대학교에 있다고 쓴다던가, 구마모토 5고라고 썼다가 구마모토 2고라고 쓴다던가.. 이런 사소한 실수는 출판사가 충분히 편집과정에서 잡아줄 수 있는 것들임에도.. 소명출판..아..)

그 꼼꼼한 주석을 보더라도 굉장히 탄탄하게 씌어진 책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1930년대 이후, 즉 15년 전쟁기 제국 일본의 테크노크라트들의 기획에 대한 역사적 평가이다.. 저자는  동아시아 공영권, 대아시아주의와 같은 구상이 흔히 지적되는 것처럼 군국주의의 허황된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정학, 그리고 사회적으로 포괄적이고 기능주의적 사회를 지향한 진보적 개념들을 과학기술과 발전시킨 일종의 테크노-파시즘적 구상 속에서 표출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테크노 파시즘을 간단히 요약하면 통제를 통한 자유의 성취, 조직을 통한 혁신의 창출, 공동체를 통한 자율성의 추구, 수직적 계층을 통한 지위 향상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저자 자신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당대 제국 일본을 끌고 나갔던 테크노크라트들의 기획은 결국 그들이 보수주의적 자본주의 현상유지 지지자들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전쟁에 지면서 결과적으로 좌초되고 말았지만, 그들의 기획이 가진 이상주의적 속성까지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저자는 1930년대 만주국 건설에 참여했던 테크노크라트들의 사상적 배경이나 실제 기획, 그리고 이들이 결국 1930년 후반 본토 일본으로 돌아와서 참여했던 혁신주의적 기획에 대해 치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조금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은 역시 이들 테크노크라트의 <실체>, 즉 그들이 슬로건으로 내뱉었던 <말>이 아니라, 그들의 기획과 당대 역사적 현실 사이의 <접점>이다.. 저자는 그들이 남긴 보고서나, 논설, 그리고 그들이 이후 남긴 회상기 등을 중심으로 그들이 어떤 기획을 하고자 했는지, 그 <의도>는 아주 상세히 그리고 있지만, 실제 그들의 모습을 그려내지는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만주에서 관동군과 자본가, 그리고 혁신관료라는 집단은 사상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을까.. 도대체 어디까지가 혁신관료인가.. 또 아시아(의 인민)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정말 질적으로 관동군이나 보수주의적 자본가들과 달랐던 것일까.. 만주국의 역사를 과연 혁신관료들의 보고서를 통해서 제대로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제국 일본의 군국주의를 무능력한 악의 축으로 재단해버리는 기존의 편견에 맞서, 전시기 제국의 기획자들은 제국을 경영하기 위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규명하는데 첫 번째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전전과 전후 일본은 일면의 연속성을 갖는다는 것까지 함께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워낙 다양하고 두터운 연구성과들에 의해 뒷받침된 논지라 반박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 역시 미국의 일본계 연구자로서 저자가 갖는 포지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이 제국 일본의 역사를 훨씬 다층적으로 보게 해준다는 점도 분명하다..또한 그렇다고 저자가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분명히 이러한 신체제가 갖는 반동성, 공격성, 배타성, 수직성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이런 책을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해지지만은 않는 이유는 왠지 이러한 시도 역시 과거 제국 일본에 대한 일종의 노스탤지어로 소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 때문이다.. 예전 간단히 리뷰를 적은 바 있는 가타야마 모리히데의 책 <미완의 파시즘>과 이 책이 같은 계보에 속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억측일까..

 

영화 <암살>에서 보듯, 우리는 식민자에 대해 하나의 표상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것 역시 하나의 만들어진 기억에 지나지 않지 않은가.. 식민자들은 다양한 얼굴들을 가지고 있다.. 그 얼굴은 때로는 사회주의와도 인도주의와도, 또 근대주의의 모습을 띠고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다양성에 주목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식민자>라는 것이다.. 그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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