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라는 이데올로기 - 일본 전후를 둘러싼 기억의 노이즈
고영란 지음, 김미정 옮김 / 현실문화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2015년 8월 15일

전후 70주년

해방 70주년(도대체 <광복>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언제 출현했고, 또 성원권을 얻은 것일까.. 물론 <광복>이 아니라 <건국>을 기념해야 한다고 공개석상에서 공영방송 사장이 발언하는 나라에서 <광복>이라는 말도 감지덕지하며 써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전후라는 이데올로기: 일본 전후를 둘러싼 기억의 노이즈>(고영란, 현실문화, 2013)을 읽었다..

 

타이틀이 퍽이나 매력적인 책이었다.. 이 책을 샀던 것도, 그리고 바로 오늘 이 책을 꺼내들어 읽었던 것도 책의 제목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종종 그러하듯이 기대는 배신을 수반하는 법이다..

 

물론 전후 일본사회, 특히 1945년부터 60-70년, 즉 일본 사회가 가장 역동적이던 시절에 대한 정보가 매우 빈약한, 그래서 저 무시무시하고 가증스러운 <대일본제국>과 너무도 소프트하고 사랑스러운 현대 일본 대중문화 사이의 연결고리를 갖고 있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은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들었던 한 가지 의문은 왜 이 책에 굳이 <전후라는 이데올로기>라는 제목을 썼을까 하는 점이었다.. 이데올로기와 같은 논쟁적인, 그리고 다의적인 개념을 쓰기 위해서는 적어도 책의 서두에서 어느 정도 서술을 해줘야 함에도, 이 책은 아무런 언급 없이 이데올로기라는 말을 쓰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제목을 보고 책을 구입한 이들에게 <낚였다>는 실망감을 줘서는 안 되는 법이다.. 

 

저자의 문제의식을 아주 거칠게 요약한다면, 일본 사회에서 종종 신화화되는 <전후>의 균질화된 기억과는 다른 전후의 표상들을 <부락민>, <재일> 등 일본 사회 내의 소수자/타자의 기억들을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학연구자답게 저자는 소설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특히 전시기 일본 제국 내에서 작동하는 위계/차별의 정치에서, 부락민과 조선이 차지하던 위치가 전후 어떤 방식으로 소거되는지, 또 패전 직후 일본 공산당과 조선인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공투라는 신화 속에 가려진 양자 사이의 갈등과 모순이 1955년 6전협의 결정으로, 재일조선인이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공민'의 자격을 얻게 된 이후, 다시 말하면 각자의 에스닉 아이덴티티가 부여된 이후 어떤 방식으로 망각되고 비가시화되는지, 당대의 문학 텍스트들을 기존의 문학사적 정전 읽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읽어냄으로써 그려내고 있다..

 

물론 일본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한국인 연구자의 위치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물음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다만 그 물음이 그다지 신선해보이지는 않는다는 점.. 더구나 그 위치성이 (구)제국의 학계가 (구)식민지 출신 연구자에게 할당해주는 자리와 겹쳐진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전후 비판이 전후 일본의 균질화된 기억에 그다지 커다란 균열을 가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 문제다.. 

더구나 서사가 응집적이지 못하고 산만해서 저자가 던지려고 하는 메시지가 종종 <생소한> 인용 텍스트들 사이에 끼어, 잘 전달되지 못한다는 점도, 이 책이 가진 약점이다..

 

굳이 한국어판을 내고자 했다면, 한국 독자들을 위해 구성상의 변화를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을텐데, 일본 독자를 위해 쓴 책을 그대로 번역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아쉬운 점이다..

 

8월 15일이 아니었으면, 전후 70주년이 아니었으면 조금 더 부드럽게 평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미 해는 지고 있고, 오후까지 가독성이 떨어지는 책을 읽느라 기력을 소진해버린 내 마음은 황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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