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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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소 책을 보내준 저자의 환대에 대한 응답이 너무 늦어버렸다..

잠깐, 그것은 정말 보답을 바라지 않는, 절대적 환대였던 것일까..

아니면 증여/선물gift이었던 것일까..

 

1.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마 내가 여전히 <절대적 환대>에 대해서 회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순수한' 혹은 '절대적' 환대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여기에 "다만 이 불가능성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현실적인 (조건부의) 환대는 이 불가능한 환대의 그림자 속에서 일어나며, 이 불가능성과 관계맺음으로써 스스로를 변형의 가능성 앞에 개방하기 때문이다." 정도의 주석을 달면서, 엉거주춤 합의를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절대적 환대가 여전히 가능함을 주장하며, "만일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하다면, '나'는 어떻게 '우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 내가 '우리'에 속하는지 아닌지 나는 어떻게 아는가?"라는 저자의 목소리가 여전히 순진무구하게 들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있기에 환대가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2. 만약 선물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더 간단해진다. 그 룰에 따르면 되기 때문이다.. 부르디외가 잘 정리한 것처럼, 선물교환의 성립조건은 1)증여와 답례에 시간적 간격이 있어야 하며, 2)증여된 물건과 답례품이 달라야 한다는 것. 즉 선물 교환은 지연과 차이(둘 다 불어로 difference이다)에 의해 이중적으로 규정된다.. 문제는 그 시간적 간격이 너무 벌어져버렸다는 점에서, 즉 너무 늦었다는 점에서 1)은 이미 어긴 것 같고, 증여된 물건에 비해 답례품이 너무 약소하다는 점에서, 2)의 성립조건도 간당간당하다는 점이다. 차이는 있지만, 너무 차이가 나도 문제가 아닌가.. 흠..

물론 부르디외의 논리는 너무 <전략적 사유>에 빠져 있어서, 가끔씩 사람들이 갖게 되는 <순수성>마저 전략처럼 읽어버리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왜냐하면 선물은 가끔씩 <은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글이었다.. 일단 사람, 장소, 환대라는 세 주제가 서로 긴밀히 얽혀들어가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그 구성을 채워주는 유려한 문체가 좋았다.. 마치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것이 많은 누나/언니가 어린 동생들에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이러한 화법/말투가 사유의 소프트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자의 논의는 푸코, 부르디외, 고프먼 등등 많은 텍스트들에 대한 성실한 비판적 독해를 통해 만들어진 단단한 것이고, 마지막 장(7장)에서 공리주의자들과 맞서 싸우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가히 전투적이다.. 그것은 예전 어느 학회에서 사회생물학(?) 논자들과 맞서 싸우던 저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편 논리적 궁지를 끝까지 파헤치기 보다는, 그냥 의뭉스럽게 넘어가버리는 부분이 다소 아쉽기는 했지만, 또 어찌 보면 그 궁지는 인문사회과학적 사유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런 식의 처리 방법도 하나의 기술techne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또 책 중간에 간간이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들도 보이지만,-예를 들어 한국과 중국의 사회에 대한 논의나, 혹은 태아를 환대할 권리는 엄마에게만 있다는 주장 등- 그것은 저자와, 혹은 책을 읽은 다른 누군가와 충분히 이야기하며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이기에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다.. 내 책읽기가 평소의 까칠함에서 벗어나 다소 기울어져 있는(편향적인)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빛을 발하는 부분은 풍요로운 <주석들>이다.. 주석들에서 간간히 터져나오는 비평적 사유는 본문을 압도할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어서 위태롭기까지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저자가 엄청난 독서가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유가 본문을 따라가면서도, 잠시 벗어날 때 만들어지는 주석의 자리는 이 책의 색깔을 훨씬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특히 경상도 출신이고 강남에 거주하며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60대 남자에 대한 정신분석이나, 제주도에서 택시기사와 승객 사이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미묘한 관계성에 대한 분석 대목을 읽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난다..

 

오랜 세월에 걸쳐 깊어진 사유들이 켭켭이 쌓여 만들어진 노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무겁지 않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가볍게 돌파하는 신공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무엇보다 그간 한국 사회에 침투해온 아감벤 류의 <비관주의>에 단호히 맞서 <사회적인 것>, 그리고 <절대적 환대>를 옹호하고 있다는 것 역시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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