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착의 사상 - ‘오키나와 문제’의 계보학과 새로운 사유의 방법
도미야마 이치로 지음, 심정명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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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니, 빨리 읽은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압박감으로 다가왔지만, 어느새 3주가 흘러버렸다.. 역시나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도미야마 선생의 책이라, 역자도 양해해 주리라 믿고, 조금 늦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인상을 잠깐 남긴다..

 

도미야마의 세 번째 책이 번역되었다.. <전장의 기억>, <폭력의 예감>, 그리고 이번에 나온 <유착의 사상>이다.. 역자는 심정명.. 도미야마 선생의 수제자니만큼 번역은 믿고 보기로 했다.. 실제로 전작의 번역에 비해 훨씬 깔끔하다.. 도미야마의 원서를 본 이들이라면 이 말이 역자에게는 굉장한 칭찬이라는 것을 충분히 깨닫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아마 그러한 문체가 도미야마에게 다가가는 것을 어렵게 하는 장벽이기도 하다.. 실제로 도미야마의 책은 그 내용의 깊이에 비해 한국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여전히 읽기 녹녹치 않은 도미야마의 문장을 오랜만에 따라 읽으면서, 선생 생각이 나서 잠깐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도 했다.. 꿈을 꾸듯 몽롱하게 느릿느릿 이야기하면서도, 사유의 끈을 결코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사유를 다른 언어로 확대시키는 그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에게 예리한 통찰력과 함께 자신의 사유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곤 했다.. 그건 촌철살인의 직선의 언어가 아닌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는 곡사포의 언어다.. 말에 대한 집착을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말이 진정 짊어져야만 하는 영역은 여기에 있다. 정치는 역시 말로 표현되어야만 하며, 말로써 이를 짊어지려고 하는 작업을 포기한 순간 세계는 무조건적인 폭력으로 뒤덮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미야마의 사유가 갖는 힘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의 문체가 하나의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될 것같다. 그의 사유는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가끔씩은 그 진행형이 너무나 어지럽게 전개되어 있어, 독자들을 종종 미궁에 빠뜨리곤 하는 것이다.. 이제 50대 중반에 이른 그의 사유는 조금 더 간결한 문체를 장착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논리적 설명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의 경험과 관련된 언어의 층위에 주목하는 그의 성향은 종종 아포리아에 자신의 논의를 의존하는 듯 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스피박의 언어를 빌려 말하듯, "아포리아는 딜레마나 패러독스와 같은 논리적 카테고리와 구별된다. 경험이 전제와 구별되듯 말이다. 아포리아 자체는 뚫고 나갈 출구가 없는 상태를 말하지만, 뚫고 나가고 있다는 경험 속에서 알게 된다. 이렇듯 그것은 마성 속에서 펼쳐지며, 그러므로 불가능한 것의 경험이다."

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래서 그는 논리적으로 정식화된 이론보다는 미래를 찾는 말이 어디에 있는지 찾고자 한다. 개인화되고 타자화되어 파일에 보관된 이들의 침묵을 깨고 다시금 말하기 시작하는, 또 다른 말의 수맥에, 자연화된 이들이 "적의를 품은 자연, 근본적으로 반역적이어서 감당할 수 없는 자연"으로 표정을 바꾸는 가운데 생겨나는 말들이 '위험한 계급'의 말로서 작동하는 것에 그는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죽은 넋이나 산 넋의 말을 계급의 언어로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절대 동의.. 하지만 이 말을 논리적으로 정식화하는 작업을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섬광처럼 오는 말들을 어떻게 다시 <산문화>할 수 있을까.. <광기의 역사> 이래 푸코가 고민했던, 그리고 너무나 투명하게 보여주었던 그 언어를, 도미야마는 아직 자신의 장(오키나와와 일본)에서 찾아내는 중인 듯하다.. 그래서 그의 글은 그 치열한 격투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지만, 그래서 불완전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나는 도미야마의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그건 사유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고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성실한 격투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언어를 단련하는 것.. 왜 언어인가라는 질문에는 <어느 책 읽고 글쓰는 일개 노동자>인 나 역시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역시 말로 표현되어야만 하며, 말로써 이를 짊어지려고 하는 작업을 포기한 순간 세계는 무조건적인 폭력으로 뒤덮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까지..

왜 <流着의 사상>인가에 대해서는 또 다음 기회에..

호기심에, 혹은 다른 이유로 이 책을 꺼내든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고 그의 사유의 정수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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