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 - 어느 저주받은 개념의 계보학
알베르토 토스카노 지음, 문강형준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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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만에 며칠에 걸쳐 두터운 이론서 한 권을 정독했다.. 짧은 호흡에 다량생산을 강요하는 이 사회에서는 이제 책 한 권 꼬박 읽는 것도 어려워졌다.. 하물며 이런 긴 호흡의 책을 쓴다는 것은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불가능할 듯 보인다..

 

2. 저자의 문제의식을 요약한다면..

현재 다시 힘을 얻고 있는 반광신 담론의 탈정치적 성격이 광신의 가능성, 즉 보편적 평등과 억압받는 자들을 향한 연대를 통해 해방적 정치의 전망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애초부터 봉쇄해버린다는 것, 따라서 오염되어버린 <광신>이라는 개념 속에서 혁명적 힘을 복원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2.1. 이를 위해 그는 광신이라는 개념을 다시 열정, 격정, 정동 등의 개념으로 세분하기도 하고, 토마스 뮌처로 상징되는 중세 후기 유럽의 천년왕국운동부터, 이단의 계몽사상가 루소, 그리고 전혀 광신적이지 않을 것 같은 철학자 칸트를 거쳐, 메시아주의의 가능성에 눈을 떴던 에른스트 블로흐, 벤야민 등을 소환해내는 등 기나긴 이론적 탐구의 여정을 떠난다. 나아가, 마지막 6장에서는 정치 종교 개념 및 세속화주의자들의 냉전적이며, 탈정치적 경향을 비판하며 아감벤, 슈미트, 한스 블루멘베르크, 데리다, 바디우, 지젝 등의 사상가들이 최근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메시아주의(혹은 바울의 정치철학)를 통해 정치철학이 어떻게 광신의 문제를 피해가면서 동시에 해방의 가능성을 담보해낼 수 있는지 검토한다.. 물론 이들 사상가들의 문제의식에 대체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저자는 맑스주의자로서, 그들의 관념론적 성향을 비판하면서, 혁명의 정치란-그것이 얼마나 위태롭든간에- 실제의 사회적, 경제적 정향들 속에서 발판을 찾아야 한다는 맑스의 금언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메시아적 사건의 개별적 절대성-숄렘의 도식을 빌자면, "역사 자체를 소멸시키는 침입"으로서의 지위를 갖는-은 그것을 보편화하려는 역사적 노력에 의해 단련된다"는 6장의 마지막 문장은 그런 점에서 계시적이다.

 

개인적인 소감으로는1장과 2장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3장은 압축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고, 4,5장은 자신의 맑스주의적 충성도를 보여주기 위한 소품이다., 6장 역시 뛰어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사상가들을 인용하면서 자신 역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마지막에는 역사유물론이라는 불빛을 따라 길을 찾아가지만, 그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면서 얻은 결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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