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읽다..
무슨 철지난 <쥐스킨트>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한 때 유행했던, 그것도 다른 소설(<좀머씨 이야기>)이 유명세를 타면서 덩달아 읽혔던 책 아닌가..
그런 줄 알았고, 또 그렇게 대충 읽었다.. 94년 정도의 일이었다.. 이번에 다시 꼼꼼이 읽으면서 만만치 않은 작품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세미나>란 여전히 유용한 자기 훈육-장치다.. 그리고 역시 (밥맛!이긴 하지만-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

세미나의 어떤 한 분은 이 소설이 정확히 서유럽 사회에서 만들어진 <성자전>의 한 패러디였고, 그래서 많은 유럽인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그렇겠구나> 생각하면서도 내 눈을 끌었던 대목은, 사실 소설의 첫 부분이었다..
18세기 프랑스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혐오스러운 천재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천재적이면서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은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사드나 생-쥐스트, 푸셰나 보나파르트 등의 다른 기이한 천재들의 이름과는 달리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라는 그의 이름은 오늘날 잊혀져 버렸다. 물론 그것은 오만, 인간에 대한 혐오, 비도덕성 등 한 마디로 사악함의 정도에 있어 그르누이가 그 악명 높은 인물들에 뒤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그의 천재성과 명예욕이 발휘된 분야가 역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않는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18세기의 천재들의 삶에 대해서는, 저명한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붓에 의해 대부분 평정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특히 그의 <푸셰,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을 읽어보라.. 한 시대의 천재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그의 솜씨는 거의 예술에 가깝다-- 이미 대가에 의해 평정된 그 지대에 쥐스킨트는 왜뛰어들었을까(더구나 이 작품은 그의 처녀작이다).. 역시 방점은 <천재>가 아니라 <냄새>에 찍혀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말하면 <왜 냄새가 그토록 중요했는가>라는 물음이다..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18세기 중엽의 대공포(grand peur)에 대해 다음과 같은 흥미있는 주석을 달고 있다..
18세기 중엽의 몇 해 사이에 갑자기 공포가 솟아오른다. 의학용어로 표명되지만 근본을 헤아려보면 도덕적 신화에 의해 고조되는 공포가 그것이다. 수용시설에서 퍼져나가 이윽고 도시를 위협하려는 몹시 불가사의한 병을 '누구나' 두려워한다. 감옥 열병이 이야기되기도 하고,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호송 수레, 쇠사슬로 줄줄이 묶여 도시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병의 원인을 흘린다고 하며, 괴혈병의 전염이 상상되기도 할 뿐만 아니라, 병으로 인해 탁해진 공기가 주거 구역을 오염시킬 것이라 추측되기도 한다. 그리고 중세에 퍼졌던 커다란 공포의 이미지가 새롭게 대두되면서, 격렬한 공포의 은유를 통해 제 2의 공황을 촉발시킨다..

18세기 중엽은 다름 아닌 앙시앙 레짐의 절정기, 즉, <혁명 전야>이다.. 누군가는 이 텍스트에서 혁명 전야의 <대공포>를 연상할 지도 모르지만(이미 푸코 이전에, 빛나는 혁명사가 알베르 소불은 <1789년의 대공포>라는 책을 썼다.. 물론 그가 말하는 <대공포>는 푸코의 그것과는 종류가 조금 다르지만..) <대공포>라는 당시의 혼란이 푸코에게 중요했던 것은 그것이 바로 수용시설에 대한 새로운 <관리>의 출현, 나아가 <비이성>에 대한 <이성>의 무자비한 개입이 이루어지는 한 전환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는 뭐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있는 내용일텐데, <향기>를 읽고 있노라니, <광기의 역사>의 그 다음 구절이 상당히 흥미롭게 읽혔다는 것이다..
18세기 후반기에 전개될 개혁운동의 첫번째 기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불순물과 독기를 걷어내고 그러한 발효현상을 모두 완화시킴으로써 오염을 줄이며 해악과 병이 공기를 탁하게 하고 도시의 대기로 전염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구빈원, 형무소, 모든 수용의 장소는 더 확연하게 고립되고 더 맑은 공기로 둘러싸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18세기 중엽의 광기/비이성과의 전쟁은 동시에 냄새와의 전쟁이기도 했다는 것.. 그리고 <향수>산업의 발전이 도시를 뒤덮고있는 냄새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 공포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고래로부터의 한 비책이었다면, 18세기라는 시기는 일반의 향수로도 그 냄새의 공포를 억누르지 못하는, 다시 말하면 하나의 한계점에 도달한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르누이는 이 묵시록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출현한 <사도>가 되는 것이다..

아.. 계속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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