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파시즘 -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 전쟁 철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가타야마 모리히데 지음, 김석근 옮김 / 가람기획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보면 가끔씩 갸우뚱해지는 때가 있다..

이 책을 어떤 범주에 놓아야 할까.. 저자의 입장은 도대체 어디쯤일까..

혹은 번역자는 어떤 동기로 이 책을 번역했을까.. 그리고 한국의 경우 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출판사는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내놓았을까..

 

왜냐하면 이 책은 엄밀한 의미의 학술적 역사서가 아니면서도, 대중서라고 하기도 애매한..

또 저자의 입장 역시 군국주의에 비판적인 것 같으면서도 꼭 그렇지도 않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다층적인 텍스트라든가, 폴리포닉하다던가 그런 것도 아니다.. 어쩌면 이 책은 2013년 일본이라는 사회가 전쟁을 바라보는 애매한 시각의 한 일면을 반영한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 같다.. 

 

이 책은 엄밀하게 말하면, 총력전이었던 1차대전을 부분적으로 경험한 일본 육군이 왜 그 교훈을 살려내지 못하고, 결국 아시아태평양 전쟁기 자멸의 길을 밟게 되었는가를 분석한 책이다.. 예전에는  일본육군은 러일전쟁 이후 근대전다운 근대전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돌격전술을 1940년대까지도 아무 의심없이 구사했다는 방식의 설명이 일반적이었다.. 또 야만적인 육군 vs 합리적인 해군과 같은 도식, 즉 해군사관이 전후 일본 사회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이 책은 어찌됐건 이 확실하지 않은, 하지만 일반적으로 믿어져 오던 이야기들이 남겨놓은 공백지대에 깃발을 꽂았다는 점에서 그 존재의의를 확보할 수 있다. 저자는 1차대전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비록 소수 엘리트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일본 육군의 이론가들의 텍스트들을 검토하면서, 왜 그들이 앞으로의 전쟁은 총력전이며, 따라서 인적 물적 자원을 더 많이 확보한 나라가 결국은 이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정신주의>로 귀일하게 되었는지, 그 내적 논리를 추적하고 있다..

물론 그 추적의 방법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학문적으로 엄밀하지 않고, 자주 인상비평이나, 과도한 해석으로 치닫는 등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역자인 김석근 선생은 흥미롭다고 말했지만, <시라스>와 <우시하쿠>, 또 <마코토>와 <마고코로>에 대한 해석은 과다하다.. 왜냐하면 "근대 일본의 통치원리는 시라스이다"라는 논리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엄밀한 반박이 있어왔음에도 저자는 그 전제를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여 논의를 진행시켜버리고 있다.. 또한 파시즘에 대한 정의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파시즘과 전체주의는 엄밀하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제 하나의 정설이다). 마지막으로 일본 연구자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밀교-현교> 논리의 잦은 사용은 <그는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그의 속내는 이러했을 것이다>라는 문장에서 보듯, 과다한 추측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 책의 보다 더 커다란 문제는 (육군에 한정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세운 가진 나라와 가지지 못한 나라라는 도식에 도취되어 1930년 이후 일본이 치른 전쟁을 <가진 나라>(미국, 영국, 소련 등)에 한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흔히 15년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은 결코 이들 나라와의 전쟁만은 아니었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이라는 최근의 전쟁표기가 의미하듯, 일본의 전장은 그 어느 곳보다 중국 대륙이었던 것이다.. 과연 중국과의 전쟁에 대해서 저자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또 하나 불편한 대목은 만주국에 대한 해석이다.. 저자의 논리대로 본다면 만주국 수립은 갖지 못한 나라를 가진 나라로 만드는 계획의 일환이었고, 이는 당시의 세계 정세 하에서 갖지 못한 나라가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였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동아시아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배, 만주국의 불법성/폭력성에 대한 고려는 전혀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는 <왜 우리는 당시 진정한 파시즘, 통제경제를 만들어내지 못했는가>라는 물음이 이 책의 제 1전제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논리의 귀착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리 얇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들을 몰입하게 하는 힘을 가진 책임에는 분명하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제국 육군의 실세들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출판사가 선전하는 것처럼 <군국주의와 천황의 잘못된 만남에서 왜곡된 성장까지, 일본 군국주의의 그릇된 논리의 원류를 뿌리부터 샅샅이 파헤친 문제적 걸작>인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아주 많이 유보하고 싶다.. 마치 예전에 창비에서 카토 노리히로의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원제: 패전후론)을 내놓았을 때와 같은 당혹감이다..

 

오히려 이 책은 지극히 일본인의,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아시아-태평양 전쟁 사관의 한 변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이 2012년 <시바 료타로 상>을 수상하고(시바 료타로라니, 의미심장하다) 인문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2012년의 일본 대중들의 욕망의 한 부분을 이 책이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전후 70년을 앞둔(아직까지 일본이 전후라는 말을 시대구분으로 차용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라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그것은 아직 전후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의 <정치적 무의식>을 탐색하는 데 있어서는 융용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8월 15-16일 광복절에 이 책을 읽었다.. 미완의 파시즘이라니, 파시즘을 완성시켰으면 이 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별은 세 개 주기로 했다.. 앞서 말했듯이 2013년 일본 사회의 정치적 무의식을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별 넷, 번역의 가독성에 대해서는 별 다섯, 하지만 텍스트의 엄밀함에 대해서는 별 셋, 그리고 이 텍스트를 한국사회에 내놓으면서 이에 대한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출판사의 무성의에 별 하나.. 대략 통계를 내보니 별 셋이다.. 이것도 조금 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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