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문제적 인간 1
장 마생 지음, 최갑수 머리말, 양희영 옮김 / 교양인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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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스 피에르..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왠지 피냄새가 난다.. 물론 그 냄새는 공포정치, 학살, 기요틴에게서 풍겨나오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 피냄새는 혁명을 끝까지 완수하고자 했던 그와 그의 동료들의 끓어오르는 육체 너머로 피어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바로 짧은 일생을 혁명과 함께 했던 그들을 위한 송가이다.. 

90년대 중반에 학교에 들어와서, 그 해 여름 처음 접했던 프랑스 혁명사는 그 뜨거운 여름 내내 나를 중독시켰던 주제였다. 구체제의 모순, 그리고 왜 혁명은 1789년 프랑스에서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는가.. 초기 혁명의 진행과 좌절, 제 2혁명의 발발과 공화국, 혁명의 내적 모순, 나아가 제 3혁명으로의 길과 혁명의 몰락.. 드라마틱한 사건사건들과 너무나 매혹적인 혁명의 주인공들,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생쥐스뜨.. 특히 20대의 생쥐스뜨가 국민공회 연단에 서서 프랑스, 나아가 전유럽을 향해 "혁명은 유럽에서 새로운 사상"이라고 외쳤을 때, 나는 숨을 죽이며 다음 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프랑스 혁명사는 학회 세미나의 커리였다..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 <프랑스 혁명사>, <프랑스 혁명 이후의 유럽정치사> 등등 1학년이 소화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빽빽한 커리들.. 그리고 평등이란 무엇인가? 자유와 평등은 양립할 수 있는가? 공포정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민중의 역량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등등.. 지금 생각하면 하나도 제대로 답할 수 없는 물음들을 던지면서 치기어린 감상들을 쏟아내던 시기였다.. 

최근 <로베스 피에르, 혁명의 탄생>을 읽고 있노라니, 그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다시 아른아른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때의 나도 이제 나이 서른을 훌쩍 넘어버렸고, 이제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책을 꺼내 읽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물음들에 대해 치기 어린 답변을 할 수 도 없는(끊임없이 주저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지만, 이 책은 바로 그 시절의 생생한 감동을 다시 내게 던져주었다.. 

저자는 혁명의 전시기 로베스 피에르의 궤적을 밟아나가면서, 공포정치, 단두대, 학살의 그늘에서 그를 구해내고자 한다.. 그의 이름 앞에 항상 따라 붙는 "부패할 수 없는"이란 형용사는 전시기 반혁명과 음모로 점철되었던 프랑스 혁명사에서 그의 위치를 더욱 굳건히 해준다. 나아가 저자는 지롱드파와의 대립, 에베르파, 관용파(특히 당통)와의 대결 등을 상세히 그려내면서, 로베스 피에르가 결코 맹목적인 원칙론자가 아닌, '살아있는' 한 인간이었음을 보여준다. 한때 혁명의 동지가 혁명의 적이 되는 가슴아픈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가 겪었을 고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대의명분을 따르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저자는 로베스 피에르의 연설문들을 통해 훌륭하게 형상화한다.. 

사람들은 당통에게 가까워지고 있는 위험이 내게도 미칠 수 있다고 나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패라고들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당통의 친구들이 내게 편지를 보냈고 내가 그들의 연설에 사로잡혀 있다고 썼습니다. 그들은 예전의 관계에 대한 기억, 거짓 덕성에 대한 옛 믿음이 나로 하여금 자유에 대한 나의 열정과 사랑을 억제하게 하리라고 믿었습니다. 아! 이 동기들 중 어떠한 것도 내 영혼에 아무 가벼운 인상조차 남기지 못하리라고 선언하는 바입니다!.. 위험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나의 목숨은 조국의 것이고 내 심장은 두려움을 모르며, 만일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비난받을만한 것도 치욕스러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이 책이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로베스 피에르를 위시한 18세기 혁명의 수행자들은 깨닫지 못했을 혁명의 내적 모순의 진정한 원인, 즉 18세기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793년 7월 공공교육위원회에서 자신의 마음을 담아 그의 벗 르펠르티에의 보고서를 낭독한다.

3년 전부터 진행된 혁명은 다른 여러 계급의 시민들을 위해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진 것이라고는 노동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빈곤의 혁명이 있습니다.

로베스 피에르를 비롯한 18세기 산악파들이 가졌던 사회민주주의적인 진지함, 유토피아적 이상주의를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계몽주의의 아들, 나아가 루소의 아들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사회정치적 문제는 우선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오직 '계몽'의 확산으로 해결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공화력 2년 말 빵과 최고가격을 요구했던 상퀼로트와 에베르 파의 요구에 대해 온당한 답변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로베스 피에르는 공화국의 덕성을 주장했지만, 그 덕성은 바로 밑바닥을 이루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야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로베스 피에르의 개인적인 한계라기보다는 18세기의 한계인 것이다. 로베스 피에르의 연설 곳곳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려 하는 의지가 엿보이지만, 그 의지는 다시 한계라는 장벽에 가려진다. 테르미도르 반동은 로베스 피에르가 거둔 승리 자체의 '변증법적 대응물'일 뿐이다. 저자는 이 한계를 돌파하는 임무를 바뵈프에게 나아가 19세기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에게로 넘긴다. 

이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한 인물에 대한 '평전'이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사에 등장하는 다채로운 인물들의 모든 면모들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는 없다(만약 이 부분에 관심이 있다면 소불의 <프랑스 대혁명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책은 오히려 지금까지 너무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인물,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인 로베스 피에르에 대한 책이다. 혁명사의 주요 주제들, 예를 들어 1789년 인권선언의 의미, 91년, 93년 헌법의 성격, 그리고 빠트릴 수 없는 상뀔로트의 성격에 대한 문제들은 이 책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는 않다. 이 하나하나의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책들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는 영웅전을 쓰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저자는 말한다. "몇몇 순간에 혁명의 가장 위대한 인물들이 모두 소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거나 가장 중요한 시간에 수동적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데 머물렀다는 것은 혁명사가에게, 그리고 로베스피에르의 전기 작가에게는 더욱 의미심장한 일이다." 로베스 피에르(당통, 마라, 생쥐스트 등등)가 프랑스 혁명의 주역이기는 하지만, 혁명의 고비고비마다 그 위기를 극복하고 넘어섰던 힘은 이들 소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이름 없는 민중들에게 나왔음을 저자는 결코 잊지 않는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들 주인공들은 바로 그 힘을 인정하고, 그 힘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린 주체들일 뿐이다. 혁명은 결코 "단지 몇몇 선수들이 말을 옮기고, 공격을 계산하고 반격을 선택하는 장기 시합"이 아닌 것이다. 로베스 피에르에 대한 평전의 밑바닥에는 혁명기를 내달았던 민중들의 열정,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살아숨쉬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름 없는 그들에 대한 송가이기도 하다. 

역사는 여전히 존재하는 이러한 위험을 경계하라고 우리를 가르친다. 어떤 순간에 로베스피에르의 재능은 상테르, 알렉상드르, 국민방위대의 어떤 포병, 어떤 연맹군 병사, 포부르들의 어떤 상퀼로트만큼 중요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지성 이상으로 다른 요인이 나름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요인이란 우연이 아니라 민중이다. 8월 10일의 봉기의 성공에서 우연은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혁명적 봉기들 중 이보다 더 오래, 더 체계적으로, 더 공개적으로 준비된 것은 별로 없다. 그것은 로베스피에르의-또는 마라의- 위대한 정치적 용기, 위대한 지성이 민중의 집단적 의식과 영웅적 행위가 없었더라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믿음을 더욱 확실하게 해준다. 로베스피에르의 위대함은 전적으로 최선을 다해 민중을 계몽하면서 민중의 힘을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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