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플 (리마스터판)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정세랑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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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다닐 때마다 유심히 보는 것 중 하나가 도보 거리에 구립 도서관이 있는지 여부다..

사정상 <자기만의 방>과 상당 기간 떨어져 지내야 하는 처지로선.. 그래도 어느 정도의 장서를 갖추고 있는 구립 도서관이 근처에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조건인 것이다.. 한여름 늦은 오후의 피난처(shelter)로도 이만한 곳이 없다.. 도서관에 다녀올 때마다 도서관 예찬론을 부르짖는 내게 함께 사는 이는, 사람들의 손때가 너무 묻어 낡은 책들을 빌려올 때면 "도서관 이용료라고 생각하고, 새 책 사서 기부해" 라고 말하곤 한다.. 정말 그래야 할 지도 모르겠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도 그런 손때가 가득 묻은, 이미 겉표지가 너덜너덜해진 책이었다.. 

언젠가부터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그닥 찾아 읽지 않게 되면서.. 정세랑 작가의 책도 내겐 이 작품이 처음이었다.. 솔직히 이 책을 찾아 읽게 된 것 역시, 얼마 전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보고서를 읽다가, 보고서에 인용된 흥미로운 문장 하나에 마음이 갔기 때문이다..


너 그거 알아?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안전법들은 유가족들이 만든 거야.

정말?

몇백 년 전부터 그랬더라. 먼 나라들에서도 언제나 그랬더라.


예전, <미나마타병 사건>에 대한 글을 쓰면서 느꼈던 여러 복잡한 심정들을 꿰뚫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적한 어촌 마을에 찾아온 이름 모를 '괴질'이 전세계 최초의 '공해병'이 되기까지 12년에 이르는 기나긴 세월, 그리고 정식 공해병으로 인정된 이후에야 시작된 피해자들에 대한 배보상과 인정투쟁, 그리고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미나마타병 재판에 이르기까지 미나마타병 사건의 전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주체들은 환자들, 그리고 유가족들이었다..  

다행히 대출 가능한 책 한 권이 남아 있어, 늦은 오후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항상 그렇듯 일단 첫 페이지부터 읽는다.. 

초판 2016년, 리마스터판 2021년..



제목 그대로.. 50명.. 아니 정확히는 51명의 사람들의 이야기..

연작들에 이전 인물들이 겹치기 출연을 하는 경우가 많아,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나로서는 전날 읽은 이야기로 페이지를 되돌리게 된다.. 그래서 책을 완독한 어젯밤, 그냥 무심히 다이어리에 51명의 인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봤다..

문화인류학 시간에 배운 계보도와, 친소관계, 혹은 우연한 마주침 등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 사이를 점선으로 표시해보니, 다소 산만해보였던 <정세랑의 세계>가 조금 더 한 눈에 들어왔다. 2010년대에도(아니, 2020년대인 지금도) 여전히 <참사공화국>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무너져 내리는' 땅에서 살아가는(생존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이 작가의 주된 목적이었나보다.. 그러다보니, 작품의 주 공간은 병원과 환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과 지인들의 세계다. 

 

감수성이 예민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찰력도 훌륭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묘한 감정들을 표현해내는 언어적 감각이 좋았다..


물론 희락은 현을 좋아했다. 아꼈다. 하지만 현은 그 호감의 성질이 도로시가 오즈를 떠나며 허수아비에게 사실은 네가 제일 좋아, 말했을 때 정도의 호감인 걸 알고 있었다. 

희미한 선들을 보는 법을 배웠다. 넘기 전에는 희미하다. 넘고 나면 선이 아니다. 벽이 된다.


이런 문장들을 읽다 보면, 아~ 하는 탄식이 절로 난다.. 과연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언어다.. 


어젯밤 51명의 사람들의 관계도를 종이 위에 그리면서 정세랑의 세계는 아직 <자기만의 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작가가 이 작품을 쓰면서 어떤 세계를 구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이건 순전히 오독이고, 어쩌면 독자로서의 바람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작품을 중반 정도까지 읽어나가면서, 어떤 기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구성을 좀 더 발전시킨다면 우리 시대의 <인간 희극>(human comedy)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어쩌면 21세기 한국사회에 대한 발자크 식의 <풍속 연구>가 가능할지도..


하지만 그런 세계를 구축해내기에 작가의 시선은 지나치게 따뜻하고 또 말랑말랑하다.. 병원과 환자 이야기가 많다 보니, 가끔씩 <슬의생>의 다소 진부한 에피소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 KBS의 <인간극장> 같은 휴먼 다큐 같은 느낌도 강하게 묻어 나온다.. 보트랭같은 악마는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사생활 정경>을 그리고 있는 작가에게 사회학/인류학을 요구할 수는 없는 법이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민족지(ethnography)를 쓰는 것이 작가의 의도는 아니었을 테니. 


그럼에도 이런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19세기 근대 서구 사회에 대한 가장 훌륭한 민족지를 썼던(자신의 꿈을 완성시키지 못한 채 심장발작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발자크를 떠올리며(역시 맑스의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다!), 정세랑이 만들어낸 아직은 조그만 세계가 점점 더 확장되기를 바랐던 때문인 것 같다.. <인간극장>을 넘어서는 <인간희극>으로.. 

그리고 이러한 바람은 우리 사회의 총체성을 파악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큰 언어가, 아쉽게도(난 문학 전공자가 아니니까..), 그리고 여전히, 문학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때 우리 사회에도 <사회과학의 시대>라는 것이 있었다고 하는데(물론 '전설!'로만 남아 있다).. 사회과학을 향한 그 뜨거운 열기들은 다 어디로 흩어져 버린 것일까.. 태생이 '쪼개기 신공'(discipline이라는 단어가 갖는 절묘함을 새삼 떠올리며..)의 산물이긴 하지만 사회과학은 한때 자신이 꿈꿨던 <세계의 산문>을 쓰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해버린(망각해버린) 것이 아닐까.. 


정세랑 작가에게 괜한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님을 마지막 변명으로 남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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