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시간표 전쟁 - 제1차 세계대전의 기원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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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첫 번째 주말..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볕에 바깥으로 나갈 의지를 이미 상실한 채..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서가에서 고른 책 한 권..

하루만에 끝까지 읽었으면 싶었고(300페이지 미만이어야 한다).. 

제목도 흥미로웠고(이미, 슐리펜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쓸 거라는 암시를 팍팍 주고 있지만).. 

또 무엇보다도 전쟁사가로는 워낙 유명한 저자의 책인지라, 주저하지 않고 꺼내서 읽기 시작.


그러고보니 작년 이맘때쯤 읽었던(이라고 쓰려고 하다, 확인해보니 22년 6월 30일.. 같은 여름이긴 하지만, 그래도..) 바바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이 생각나기도 했고.. 

당시 여름을 맞아 괜히 1차세계대전사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었는데.. 돌이켜보니 그 계기가 됐던 책이 마침 그 해 번역되었던 모드리스 엑스타인스의 <봄의 제전>이었다.. 1차세계대전 전야의 유럽의 문화사(모더니즘)에 대한 나름 흥미로운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고 나서 내친 김에 한동안 서가에 방치해두던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몽유병자들>을 오랜만에 꺼내 들어 먼지를 털고 꽤 열심히 읽었고(정리를 잘 해두지 않아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20세기 초 발칸의 지형학, 특히 당대 유럽의 트릭스터였던 세르비아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이 인상적인 책이었는데_ 바바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 역시 아마 <몽유병자들>의 레퍼런스에서 발견한 책이었던 것 같다.. 

cf. 당시는 절판 상태라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난 후 출판사에 이런 책 절판 상태로 방치해둘 거냐고 댓글을 남겼었는데.. 소리소문 없이 가격을 조금 올려서 같은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과연 개정판일까.. 미리 보기가 없어 확인할 수 없다.. 그래도 이런 책은 구입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동시대 진행형이던 우크라이나 사태(지금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를 보면서.. 세계대전이라는 것 역시 이런 우연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뒤엉키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고보니 근 1년 만에 다시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 한 권을 꺼내서 읽고 있는 셈이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1차세계대전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그 기원(origin)을 규명하는데 에너지를 쏟고 있는 듯 한데(그런 점에서 과거 한국전쟁 연구와도 비슷하다).. 어쩌면 유럽인들에게 그러한 관심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으면서 세계의 부를 독점한, 그리고 유럽의 헤게모니가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 되리라는 장밋빛 미래에 도취되어 있던 구대륙 유럽인들에게 있어, 제1차세계대전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그리고 왜 이런 파국적인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는지 깨닫지 못한 채 자신들을 파멸의 늪으로 빠트린 사건이었을테니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인 역사가 테일러의 입장은 꽤 냉정하다..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면 그런 사건에는 엄청난 원인이 있으리라 기대하고 찾아내려는 것이 요즘 세태다. 그러나 1914년에 발발한 전쟁은 어쩌면 엄청난 원인이 없을지 모른다. 이전의 30년 동안 국가 간의 외교, 세력균형, 동맹체제, 군사력 증강이 평화를 낳았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오랜 기간 평화를 가져온 바로 그 요인들이 이제 대규모 전쟁을 가져왔다. 매우 비슷한 사고방식인데, 30년 동안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 안전운전을 해온 운전자가 한 번 실수해서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1914년 7월, 일이 잘못되어버렸다. 역사에서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말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역사학자인 저자가 그 기원을 규명하는 작업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이 책은 사라예보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리기 전에 이미 독일, 그리고 다른 유럽의 국가들에서도 군사 동원을 위한 시간표(그것은 다름 아닌 20세기 근대의 상징이자 합리성, 효율성, 정확성의 상징이기도 한 철도 시간표)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는 점,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암살된 이후에도,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러시아, 그리고 영국(프랑스에 대한 분석이 거의 없다는 것도 특징인데)의 정치가들이 <동원>에 대한 절대적 믿음, 그리고 오해들 속에서 자신들을 파멸로 몰고 가는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다는 점을 간결하면서도 나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친절하게 요점만 간추려 이야기해주듯. 


1914년에 전쟁이 발발한 유일한 원인은 속도와 공세에 대한 믿음의 산물인 슐리펜 계획이었다. 독일이 프랑스와 러시아에 동원하지 말라고 요구할 때까지의 외교가 작동했다. 당시 상황에서 어떤 나라도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인들에게 유럽의 자유를 무너뜨리려는 계획된 의도는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계획된 의도를 품을 시간 혹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모두가 군사적 준비를 위한 기막히게 정교한 틀에 갇혀 버렸다. 특히 독일인들이 그랬다. 모든 나라 국민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러 나간다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옳았다. 모든 나라의 일반참모부가 공격이 유일한 방어책이라 믿었으므로 모든 방어작전은 다른 누군가에 대한 공격으로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관해서 더 이상 밝혀져야 할 것은 없다. 억지책으로도 억지에 실패한 것이다. 언젠가는 그럴 것이라 생각했어야 했다. 억지책은 아흔아홉 번 성공하더라도 한 번 실패할 있다. 그 한 번의 실패로 대참사가 빚어진다. 억지책을 찾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제 1차세계대전이 남긴 교훈이다. 


좀.. 맥이 빠지는 결론이긴 한데.. 그러니까 억지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뭐 이런 이야기가 중심인 것은 아니고.. 다만, 왜 그렇게 뛰어난 능력과 교양을 갖춘 정치 엘리트들이 다른 가능성들을 하나둘 씩 던져버린 채 불 속으로 뛰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는가.. 그 오류의 역사를 다시금 상기함에 있어 <슐리펜 계획>과 같은 근대적 시간표가 만들어낸 <필승의 전략>에 대한 그릇된 믿음들을 다시금 재검토해보자는 메시지는 꽤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아마 오늘날 전세계적인 전쟁 게임을 주도하고 있는 전략가들 중에서도 그런 믿음들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꽤 많이 있을테니까.. 

문제는 그들을 어떻게 감시(watch)할 것인가 일텐데.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면 그런 사건에는 엄청난 원인이 있으리라 기대하고 찾아내려는 것이 요즘 세태다. 그러나 1914년에 발발한 전쟁은 어쩌면 엄청난 원인이 없을지 모른다. 이전의 30년 동안 국가 간의 외교, 세력균형, 동맹체제, 군사력 증강이 평화를 낳았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오랜 기간 평화를 가져온 바로 그 요인들이 이제 대규모 전쟁을 가져왔다. 매우 비슷한 사고방식인데, 30년 동안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 안전운전을 해온 운전자가 한 번 실수해서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1914년 7월, 일이 잘못되어버렸다. 역사에서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말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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