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혁 3 : 19세기의 역사풍경 한길그레이트북스 178
위르겐 오스터함멜 지음, 박종일 옮김 / 한길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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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오스터함멜의 <대변혁> 장정을 마치다..

원래 작년 연말 10여일이라는 시간 동안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는데, 사정상 3권 15장에서 중단하고, 다른 일정 때문에 이어가지 못하다가 설 연휴에 마지막 3장과 결론을 읽었다.

한글책 총분량 2,407페이지.. 어찌됐건 대작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뭔가 마지막까지 다소 산만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은..

저자가 전체사를 아우르는 체계와 구조를 세우지 못한 채, 장대한 19세기사의 풍경에 압도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한다..

 

서두에서 언급된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현대세계의 탄생>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홉스봄의 19세기사 3부작(혁명-자본-제국)과 비교해본다면..

홉스봄의 천재적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논외로 하더라도-역사와 이야기를 동일하게 'histoire'라고 부르는 프랑스보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영국의 역사학자들이 한 수 우위라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심지어 저자는 독일어권이다-, 혁명(이중혁명), 자본, 제국이라는 3개의 키워드로 장기 19세기의 세 국면을 구획하고 압축적으로 이 시대를 분석해들어가는 홉스봄의 서사에 비해, 오스터함멜의 서사가 집약적이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3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쌓인 개별 연구사들의 축적, 그리고 더 이상 유럽중심주의가 통하지 않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중동과 아시아까지 포괄해야 하는 부담의 무게를 무시할 수는 없다.

장소를 유럽(그리고 북아메리카)에 한정했기 때문에 수직적이고 시계열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던 홉스봄에 비해, 오스터함멜의 저작은 저자 자신도 강조하고 있듯이 수평적이고 횡적이다.그리고 기억과 시간, 공간을 다루는 1부 근경과 정주와 이주, 도시, 프런티어, 제국과 민족국가, 강대국체제, 혁명, 국가 등 19세기 근대의 굵직굵직한 테마를 다루는 2부 전경의 구성은 충분히 탁월하다.. 다만 전세계를 아우른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저자가 속해 있는 연구환경의 포지션상,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고(한 권의 별도의 책으로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레퍼런스의 거의 전부가 영어와 독일어권 학술서다), 또 3부 개별 주제들의 구성은 다소 산만하며, 장기 19세기를 다섯 개의 특징-생산효율의 비대칭적 상승, 유동성의 증가, 상호관계 강화의 비대칭성, 평등과 등급 제도의 대립, 해방-으로 정리하는 결론은 지나치게 짧다..

그 다섯 가지 지표들 중에서도 <상호관계의 강화와 비대칭성>은 분명 기존의 다른 저작들과 달리 수평적이고 횡적인 이 책의 시점이 포착해낸 특징임에 분명하다. 저자 역시 3부의 16장(지식: 증가, 농축, 분포)와 17장(문명화와 배제)을 통해 그 지표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그 상호관계를 보다 더 역동적으로 구성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물론 또 그렇다고 저자에게 아쉬움을 일방적으로 토로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기도 하다.. 어차피 포지션의 제약이라는 것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고, 경계를 넘나들며 상호복수적인 시선들을 모두 담아낸다는 것은 한 저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최상급 내공이다. 오히려 저자가 넘겨준 바톤을 이어받아, 비유럽 세계에서 응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그 응답이 다시 또 다른 응답을 부를 때, 즉 더 이상 한쪽 방향성의 벡터만으로 움직여지는 정반합이 아닌, 메아리의 다성성이 확보될 때, 우리는 진정 길었던,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게는 특히 가혹했던19세기와 영원히 작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반향과 응답들이 이루어질 때, 저자 역시 분명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예전의 '좋았던' 시대를 추억하며 '영웅으로서의 인류학자'란 제목의 글을 레비스트로스가 쓴 적이 있지만, 이미 '영웅으로서의 역사학자'의 시대도 한참 지나가버린 21세기 20년대의 사회에서 한 개인이 이런 전체사를 쓴다는 시도 자체가 돈키호테적인 것일 수도 있다.. 더구나 모두 자기만의 조그만 연구주제에 갇혀 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전문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우리 학계에서 이런 작업은 적어도 당분간은('당분간'이 그 뜻 그대로 길지 않은 시간이길 바라지만) 결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대작을 앞에 두고 이런 저런 말들을 꺼내는 것 자체가 한심스럽고 죄송스러울 따름이지만..

 

그럼에도 쓰는 사람은 쓰는 사람으로서의 할 일이 있고.. 읽는 사람은 읽는 사람으로서의 할 일이 있는 법이니까.. 계속 읽고 쓰는 수밖에 없다..  

 

 

19세기는 1914년 이후 발생한 재난을 위해 길을 닦아 놓았다. 한나 아렌트 등은 19세기는 이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세기가 받들었던 일부 전통과 사상, 예컨대 자유주의, 평화주의, 노동조합주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1945년 이후에도 폐기되지 않았고 또한 추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1950년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1910년-버지니아 울프는 인류의 본성이 바뀐 해라고 탄식했다-은 아득히 먼 시점이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본다면 1910년은 가장 최근에 겪은 전쟁의 공포보다 우리에게 더 가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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